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30)화 (330/340)

(330)

2층은 침식자가 움직이기 충분한 넓이였고, 천장도 꽤 높았다.

둘은 테이블 옆으로 이동해 대결을 준비했다.

뚝, 뚜두둑!

폴이 변이를 마치고 눈을 빛냈다.

좌우로 갈라진 긴 턱에는 흉악한 이빨이 잔뜩 돋아 있었고, 긴 혓바닥은 채찍 같았으며, 온몸은 판금 갑옷을 입은 듯한 감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네 개의 팔 중 두 개는 창날 같았고, 두 개는 바위 같았다.

그가 유스티아누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각오해라.”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침식자 기사면서도 정신 파동도 쓸 수 있다는 걸 과시했다.

“훌륭하군.”

“…….”

사제가 흡족하니 고개를 주억거렸고, 주교 역시 흥미롭다는 듯 몸을 앞으로 슬쩍 기울였다.

유스티아누스가 황금빛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냈다.

“그래. 형제의 피를 묻힐 각오를 해야겠군.”

우웅.

그가 폭 좁고 날이 두툼한 한손검에 푸른색 마나 블레이드를 옅게 둘렀다.

폴이 한 걸음 나아가며 바위 같은 팔을 휘둘렀다.

부웅!

통나무를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두툼한 갑각이 번들거리고, 거친 스파이크에서 검붉은 기운이 불꽃처럼 튀었다.

유스티아누스의 호리호리한 몸을 단번에 으깨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대공이었던 소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침착하게 한 걸음 물러서며 검을 내질렀다.

퍽!

섬광 같은 찌르기가 어둠 내린 2층에서 빛났다.

후욱!

맹렬한 칼바람이 일고 벽에 걸린 촛불이 흔들렸다.

푹!

그의 한손검이 정확히 폴의 팔꿈치 관절 안쪽을 파고들었다.

“끄윽…….”

폴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온 힘을 다해 유스티아누스의 검에다 팔을 휘두른 모양새였다.

“합일께 은총을 받았지만, 넌 그 은총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군.”

유스티아누스가 손목을 비틀며 검을 뽑았다.

독성 체액이 뚝뚝 묻어 나와 나무 바닥에 떨어졌다.

치이이익!

널빤지에서 고약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감히 내 신앙심을 모욕해!”

폴이 격노하며 몸을 날렸다.

쐐애액! 쐐액!

창날 같은 손톱을 단 긴 팔이 연달아 날아들고, 바위 같은 두꺼운 팔이 한 방을 노렸다.

“신앙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다.”

유스티아누스는 낭랑하게 답하고 검을 들었다.

코앞에 검을 세웠다가 앞으로 겨누는 자세가 자연스러웠다.

퍽-!

다시 한번 맹렬한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창날 같은 손톱과 손가락 사이가 꿰뚫리고, 폴이 비명을 질렀다.

“끄으으윽!”

“네 갑각은 단단하지만.”

퍽!

“그 사이는 무르고 연하며, 신경이 남아있지.”

퍽!

“나처럼 섬세한 검객을 만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나?”

퍽!

팔꿈치, 무릎 아래, 어깨, 목, 다시 반대쪽 팔꿈치.

유스티아누스는 도축 장인처럼 검을 내질렀다.

얇은 갑각이 뚫리고 채액이 튀었다.

뽑는 순간 손목을 돌리며 신경을 그어버렸기에, 상처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끄으윽!”

촤아아악!

폴이 채찍 같은 혓바닥을 내질렀다.

콰득!

유스티아누스는 장갑 낀 왼손으로 혓바닥을 잡아챘고, 되려 힘껏 잡아당겼다.

“캑!”

폴이 숨을 토했고, 그는 그 순간 다가가 폴의 입 안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푹!

“컥, 커거걱.”

폴이 기겁하며 네 개의 눈을 파르르 떨었다.

유스티아누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주교가 말했다.

“거기까지.”

“…….”

유스티아누스는 잠시 이를 악물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숙여줄 때였다.

그는 검을 거두며 폴을 돌아보았다.

“넘치는 힘을 발산하며 자만하지 마라. 그 힘은 과시하기 위해 받은 게 아니야. 더 효율적인 형태를 고민하도록.”

폴이 피 섞인 기침을 토하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교가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폴. 방금 들은 말을 기억하거라. 너를 더 헌신할 수 있게끔 해줄 말이다.”

“예, 예.”

폴은 황송해하며 몸을 일으켜 자리로 돌아갔고, 주교는 말을 이었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합일하신 분이 곧 자각하실 테고, 그럼 우리는 진정 그분의 뜻에 따라 영생을 누릴 수 있겠지.”

“남방대륙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들은 그분들을 이용하고 있지만, 어쨌든 동지는 동지다. 소환 의식에 참여해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이 남부의 형제 중에서 지원자를 받을 것이다.”

“남쪽 바다에도 교인을 보냈다. 본래 어인족은 인어의 노예 종이 아니라 다곤 신의 아이들이지. 그들의 해방과 합류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합일의 날을 기원하자꾸나.”

침식자들이 남은 제물을 한 줌씩 들어 올렸다.

“위하여!”

그때만큼은 유스티아누스도 함께 외쳤다.

물론 그가 바라는 건 합일의 날이 아니었다.

‘너희가 제이릴리스와 싸우다 다 같이 죽어버리기를.’

* * *

신민들에게 주일은 노는 날이 아니라 기도하러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황족에게 주일은 기도하러 가는 날이 아니라 협잡질을 부리러 가는 날이었다.

제이릴리스는 금실로 수놓은 단정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하얀 베일 위로 성자가 씌워주었던 화관을 썼다.

백발과 노란 화관은 따스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단정한 드레스는 절제미이자 눈에 띄는 붉은 입술의 배경이었으며, 특유의 분위기는 신성 황제의 이름에 어울리는 위엄을 불러일으켰다.

“오오. 폐하의 이목구비가 제 미래보다 뚜렷해요.”

“폐하를 보느라 일주일이 6일이 되었어요. ‘목’이 빠져버렸거든요.”

“폐하. 너무 아름다운 존재를 보면 기억을 잃는다고 해요. 폐하. 너무 아름다운 존재를 보면 기억을 잃는다고 해요. 폐하-.”

시녀들이 하나같이 감격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제이릴리스는 전신거울을 보며 흐뭇하니 웃었다.

“가자꾸나.”

그녀는 대성당 오전 예배 시간에 귀족들, 평민들 앞에서 마테오스의 설교를 듣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신성 황제시다!”

“광명교회의 수호자!”

“폐하! 만수무강하소서!”

“47번째 솔레타라스께 광명신의 은총이 있기를!”

신성 황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신도들과 내가 심어둔 포고꾼이 하나같이 만세를 불렀다.

함성을 듣자 하니 이제 슬슬 포고꾼은 빼도 될 듯했다.

제이릴리스는 단상과 제일 가까운 의자에 앉았고, 설교 시간 내내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정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이 여름 날씨에도 끝까지 베일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자마자 빈방으로 들어가 옷을 훌훌 갈아입었다.

“몸을 둘둘 감싸는 옷은 답답해서 못 입겠구나. 팔을 감싸는 천은 얇은 장갑이면 족하고, 등을 감싸는 천은 끈이면 족하노라. 그대는 도대체 어떻게 한여름에도 그 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인지 신기하구나.”

나는 등을 돌린 채로 성물 화관을 조심스레 받아 종이로 싸고 상자에 넣은 뒤, 시녀들을 시켜 황궁으로 가져가게 했다.

“화룡의 심장과 불의 상급 정령의 정수를 먹어 놓고 더위를 느낀다면 웃기지도 않는 소리일 것이옵니다. 게다가 소신은 몸을 단단히 잡아 주는 옷이 좋사옵니다.”

이건 취향인 동시에 버릇이었다.

회귀 전 40년간 속이 다 곪아 터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몸으로 살았더니, 겉이라도 단단히 조이고 싶었다.

또 옛것이나 이물을 하도 많이 먹었더니, 절제된 인간성의 상징인 각 잡힌 제복에 손이 더 가기도 했다.

“으음. 그것도 그러한가? 추위도 더위도 남의 이야기지만 답답함은 어쩔 도리가 없음이야.”

“더 가벼운 드레스는 없사옵니까?”

“가벼운 것이야 많지. 정숙하고도 가벼운 게 드물 뿐이노라. 그래. 그것도 연구해 봐야겠구나. 분명 짐 같이 생각하는 귀부인들이 많을 것이야.”

짐 같이 생각하는 귀부인들이 많을 것이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그녀가 참 황제다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에는 그녀도 나도 사람들의 필요와 마음을 헤아릴 엄두를 내지 못했지.

“왜 웃는가?”

“아니옵니다. 올라가시지요. 성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옵니다.”

* * *

최근 황실과 대성당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이제는 광명교회는 굳이 황실을 비난하며 민중의 지지를 끌어모으지 않았다.

“세속과 신앙의 균형이 아주 잘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이릴리스가 주일마다 대성당에 출석하며 교회의 체면을 살려주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랑소와와 도로이센을 들쑤셔 대성당의 세력을 늘릴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성자에게는 호재가 하나 더 있었다.

최근 카리오사가 닻 군도를 정복하고 왕을 칭했다.

그녀도 광명교 군주인 만큼 그녀가 새로 얻은 땅에도 사제와 주교들을 보내줘야 했는데, 이를 고르는 건 성자와 교황에게 매우 즐거운 일거리였다.

홍의주교가 바글거리는 대성당에서 주교는 찻물이나 뜨고 다니지만, 다른 영지로 나가면 수만에서 수십만 교인의 예배를 집행하는 권력자가 된다.

“성하!”

“성하!”

“제발 절 보내 주십사!”

“광명신이시여!”

그러니 각 주교는 어떻게든 동부로 가기 위해, 그 아래 파벌을 이룬 사제들은 어떻게든 자기 주교를 동부로 보내기 위해 안달이었다.

인사권을 가진 성자와 교황이 황실과 손잡고 무슨 짓을 벌이든 간에 ‘아니되옵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신성 가로등과 정화병을 위한 전투 축복 성물의 양산도 착착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화창한 여름날.

그렇게 화목하던 우리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갈 수도 있을 듯했다.

“대공. 최근에 상아탑 쪽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자 마테오스는 자주색과 검은색 예복을 입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신음하던 젊은 신학생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카락이 그윽하고도 날카로운 눈을 가볍게 가렸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눈동자는 내 사악한 본심과 음모를 죄다 꿰뚫어 보았다.

“성자님-.”

나는 뭐라 변명, 아니. 해명하려 했지만, 검은 성자 마테오스는 내 말을 단호히 끊었다.

“광명신께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미친 마법사들이 결국 세계의 틈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더군요.”

“그게-.”

그가 다시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시약과 어떠한 마도서가 사용되었는데, 어떠한 시약은 황궁에서 흘러나왔고, 어떠한 마도서는 증오해 마땅한 이종족의 것이라고 합니다.”

“실은-.”

그가 또다시 내 말을 끊었다.

“핑계 대지 마십시오. 그 시약이 대체 무엇의 손가락이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겠습니다. 그 위험한 걸 왜 정화해버리지 않고 이용하려고 드는지도 묻지 않겠습니다.”

“감사-.”

“감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에야말로 상아탑에 이단심문관들을 보내겠습니다. 예.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다.”

마테오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나는 도시 한복판에서 광명교 정화병 군단이 진군하고, 빗자루와 양탄자 탄 상아탑 마법사들이 폭격을 떨구는 그림을 떠올리며 기겁했다.

절대로 안 되지.

“부디 재고해주십사-.”

마테오스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찻잔이 거세게 흔들렸다.

“게다가 코넬의 그 신전은 대체 뭡니까?”

제이릴리스가 한숨을 내쉬었고, 아르고스가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나는 재빨리 해명했다.

“수인 준동 대책입니다. 제가 분명 루디를 시켜 서류를 보내드렸을 텐데-.”

마테오스가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쳤다.

쾅! 쾅!

“아무리 그래도 아몬 신 신전을 수도에 세우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그 정도는 괜찮은 신 아닙니까? 이미 교회에서 인정한 신앙이잖습니까?”

“저도 입장이라는 게 있습니다! 주교들이 실적 세우겠다고 이단심문관 풀어서 덮치려는 것을 막아주려고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아는 겁니까?”

실적?

지금까지는 할 말이 없어서 듣고 있었다.

하지만 실적 이야기가 나온 이상 말이 달랐다.

제이릴리스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다.

나는 뻔뻔하게 턱을 쳐들었다.

“아니! 애초에 인사권을 가지고 목줄 잡아 놓던 건 성자님이시잖습니까? 너무 조이면 이상한 곳으로 튀어 오르는 게 당연하지요. 성자 노릇 하루 이틀입니까?”

“지금 뭐라 했습니까?”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데로 내뱉었다.

“알 거 다 아시는 분이 아몬 신전 하나 가지고 왜 이러십니까? 쪼잔하게.”

마테오스가 뺨이라도 맞은 표정을 지었다.

“쪼, 쪼잔? 신성 모독입니까? 그래요. 해보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끼리 싸울 때는 더 언사가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이가 그러했다.

마테오스가 마시던 찻잔에 손가락을 담근 다음, 내 얼굴에 뿌렸다.

그 와중에도 찻물 온도를 확인해주는 게 참 고마웠다.

하얀 물방울이 우우 날아오는 게 느릿하게 보였다.

“회개하라!”

성자에게 닿은 이상 다 썩어가는 늪도 맑은 성수가 되는 만큼, 위생적인 문제는 없었다.

나는 한 방 맞아 주고 이걸 문제 삼아 이 언쟁을 끝내려 했다.

촤아아악!

“어?”

문제는 찻물을 맞은 내 얼굴이 불타는 듯 지글거렸다는 거다.

“끄아아악!”

나는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치이이익-!

하얀 연기와 붉은 증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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