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34)화 (334/340)

(334)

루디는 활동 초기에 발렌시아누스의 대리인임을 강조하고자 그의 검은 사두마차를 탔고, 그녀 자신의 존재감이 생긴 지금은 주문 제작한 녹색 사두마차를 탔다.

사야 옌은 그 마차에 숨은 장치들을 잘 알고 있었다.

쐐애애액!

창문 밖에서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들려오더니, 굵은 쇠뇌 화살촉이 창문을 때렸다.

캉!

보통 창문이라면 그대로 부서졌겠지만, 황립 마도 공방의 마법사들이 ‘견고함’ 주문을 새겨넣은 유리는 약간 금이 갔을 뿐이었다.

사야 옌은 유리가 버텨줄 걸 믿고 창문을 바라보았고, 순식간에 적들을 파악했다.

좌우 목조 건물 위에 궁수와 쇠뇌 사수 열댓 명이 잠복해 있었고, 창고 건물 사이 좁은 골목에서 깡패 수십 명이 뛰쳐나왔다.

“와아아아!”

“말부터 빼앗아!”

“나와! 이것들아!”

그녀는 침착하게 좌우 문고리를 걸었다.

나무만큼 가볍고 강철처럼 단단한 합금으로 만든 문짝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쾅! 쾅!

깡패들의 몽둥이와 손도끼가 마차 문을 두드렸다.

“이거 왜 안 부서져!”

짜증 어린 고함이 터져 나온 순간, 사야 옌은 마차 뒤로 몸을 날렸다.

루디의 사두마차에는 뒷문이 있었다.

“어이!”

암살은 소란을 피워서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쪽과 진짜로 잠입하는 쪽이 다를 때가 많았다.

사야 옌은 그 양쪽에 모두 능한 일류였다.

“살고 싶으면 돌아가지?”

음마요신(音魔妖神).

귓속에 정확하게 때려 박히고, 신경을 자극해 자연스럽게 주의를 돌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녀의 기술 중 하나였다.

문을 부수려던 깡패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디로 나왔데?”

“저거 계집이냐 사내냐?”

“동방의 환관은 그거 뗀다는데.”

깡패들이 손도끼와 몽둥이를 들며 경박한 웃음을 흘렸다.

사야 옌은 지붕 위 쇠뇌 사수들을 눈치채지 못한 척 태연하게 걸으며 조끼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잘 아네? 너희도 떼 줄게.”

그리고 손목 힘으로만 단검을 뽑아 던졌다.

쉭!

바람 한 줄기가 분 듯한 소리가 났다.

길쭉한 마름모 모양에 끝에 고리가 달린 투척용 단검은 깡패의 옷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고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박혔다.

가랑이 사이에.

“끄어어억!”

깡패가 돼지의 절규 같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고, 사야 옌은 두 자루 단검을 뽑아 드는 동시에 몸을 날렸다.

타악!

다음 순간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쇠뇌 화살이 박혔다.

퍽!

그녀는 길 오른쪽 목조 창고 쪽으로 달리는 동시에 깡패들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열 사람이 동시에 화살을 퍼붓는 듯한 속도였다.

쉭! 쉭! 쉭!

깡패 여럿이 순식간에 바닥을 굴렀고, 목조 창고 위 쇠뇌 사수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타악!

사야 옌이 단숨에 목조 창고 위로 도약했다.

“늦었어.”

쇠뇌 사수 하나가 그녀를 향해 장전된 쇠뇌를 겨누었다.

뼈를 깎아 만든 화살촉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래. 늦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게 울렸다.

그림자밟기, 영각(影脚).

사악-!

다음 순간 그녀는 이미 쇠뇌 사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체내 마나를 극한으로 제어해 존재감 자체를 지우는 기술이었다.

“이-!”

푸칵!

쇠뇌 사수가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진 걸 눈치챈 순간, 이미 그의 목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미친!”

“쏴!”

쐐애액! 쐐애액! 쐐애액!

쇠뇌 사수들이 마차가 아니라 사야 옌을 노렸다.

사야 옌은 등 뒤에 한 명, 앞에 두 명이 있는 걸 확인했고, 그대로 뒤로 도약하며 재주넘기를 펼쳤다.

파앙!

그녀의 신영이 허공에서 회전하고, 세 발의 쇠뇌가 허공을 갈랐다.

턱, 그리고 푹!

그녀는 등 뒤에 있던 사수의 목덜미를 잡은 뒤 단검으로 턱 아래를 쑤셔 절명시켰다.

타악!

“미친 시녀 한 명만 있다며!”

“저런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둘 남은 사수가 떨리기 시작한 손을 놀려 재장전했다.

사야 옌은 몸을 숙이며 정면으로 돌진했다.

철기무용(鐵器無用).

따당!

쇠뇌 두 발이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촤악!

목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마지막 사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히, 히이익!”

그러나 그는 세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옷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서 그의 몸을 붙들고 있었다.

그림자 묶기, 영박(影搏).

섬유를 조종해 상대를 옭아매는 기술이었다.

“다 죽이라고 하셨으니까.”

푹.

사야 옌은 마지막 사수까지 확실히 죽인 뒤, 마차 쪽으로 돌아갔다.

“오래 걸렸네요.”

루디는 이미 길 왼쪽 창고에 있는 활잡이들과 깡패들을 죄다 쓰러트리고 마부와 함께 다친 말을 치료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장기는 본래 정면 대결이 아니라 잠입과 기습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야 옌은 변명하지 않았다.

“좋네요.”

루디가 기껍다는 듯 웃었다.

“마도구 같은 게 있으면 챙겨 가죠. 지금 가는 곳에서 좋아할 거예요.”

“예. 각하.”

“거기서 사야의 장비도 챙겨줄게요. 앞으로는 더 빨리 끝내야 할 일도 생길 테니까요.”

그게 정답이었다.

* * *

루디가 도착한 곳은 발렌시아누스의 종합공방이었다.

배움의 거리와 마법 거리, 황립 마도 공방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이 거대한 양성시설은, 망나니 대공의 권세를 상징했다.

“전투용 마도구 개발, 옛것 연구, 기계 기사와 마총 사수 육성까지. 모두 본래 그 영지의 주인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죠.”

사야 옌은 루디가 발렌시아누스 이야기를 할 때 말이 많아진다는 걸 배웠다.

또한 방금 말한 사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어떠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챘다.

그녀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걸 상징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게 뭐죠?”

루디가 눈썹을 끌어 올렸고, 사야 옌은 신중하게 답했다.

“제국의 황제께서는 기계 기사가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눈 하나 까딱 안 할 분이라는 것 아닙니까?”

루디가 환하게 웃었다.

“똑똑해서 좋네요.”

이번에도 정답이었다.

사야 옌은 발렌시아누스의 쌍둥이라는 황제가 신성 황제라 불리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배웠다.

‘사람이 아니겠군.’

루디가 상냥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들어가요. 지난번에는 마차에 남아 있었으니까 안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죠? 이 안은 진짜 신기해요.”

그녀는 루디를 따라 종합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세상에.’

공방의 탑 안은 문자 그대로 별세상이었다.

“용의 비늘이랑 천둥새의 깃털을 가져와!”

“일주일 동안 밤을 새워서 이 마도서를 해석했지.”

“이게 상아탑 자료고, 이게 황실 자료고, 이게 교회 자료야. 전부 정리해서 책 한 권으로 만들어 오도록.”

천장의 조명은 하나같이 마도구였고, 기기묘묘한 생물이나 광물 조각이 그득했으며,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화려한 로브를 입고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들과 의수나 의족, 의안을 차고 백의를 입은 조수들이 복도를 달렸다.

척 보기에도 기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책과 서류가 손수레에 실려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치이이익!

펑! 펑!

저 멀리 보이는 연무장에서는 키가 2m도 넘는 거대한 갑옷들이 대검을 휘둘러댔고, 그 옆 연무장에서는 시녀 백작이 쓰는 것과 비슷한 무기를 든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겨댔으며, 빗자루와 양탄자를 탄 마법사들이 ‘H’ 문양이 있는 공터에서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 * *

루디가 계단을 몇 층 올라갔고, 한 연구실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연구실 문은 강철로 만들었고, 은 회로로 ‘견고함’ 주문을 새겨 놓았다.

“세레라지에 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곧이어 문이 스르륵 열렸다.

넓은 방 안에는 일반인이 표지만 봐도 정신이 나갈 마도서가 가득했다.

넓고 중후한 마호가니 책상이 있었고, 고양이 세 마리가 방 안을 돌아다녔다.

사야 옌은 그 고양이들에게 각각 뿔이 한 개, 두 개, 세 개씩 나 있는 걸 봤다.

그녀는 몹시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관측한 바에 따르면, 발렌시아누스 대공과 그 측근들은 이 제국에서 그들이 본래 맡고있는 직책 이상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듯했다.

아까 시약을 보니 발렌시아누스 대공에게 뽑아낸 뿔과 비늘도 있던데, 고양이에게 뿔이 있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루디 왔니?”

한 사람이 연구실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야 옌은 그녀를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흡!”

발렌시아누스가 활활 타오르는 불이라면, 그녀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벼락이었다.

남색 로브와 챙 넓은 고깔모자는 마법사의 기품을, 긴 생머리는 속세와 단절된 신비한 분위기를, 새침한 미소는 그녀 본연의 인간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역시 그녀의 본성은 눈빛에서 드러났다.

좌우 눈동자 색이 다른데도, 두 눈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찰나를 사는 사람이야.’

그녀는 사야 옌이 암살을 위해 움직이는 그 순간, 극한의 집중력으로 시간이 한없이 늘어나는 듯한 그 순간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듯했다.

“인사드리세요. 세레라지에 대공 전하이십니다.”

사야 옌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사야 옌입니다. 루디 님의 활동을 다방면으로 보조하고 있습니다.”

세레라지에가 그 자기소개가 마음에 든 듯 웃었다.

남색 눈이 반짝이고, 핏기 옅은 입술이 흥미롭다는 듯 살짝 말려 올라갔다.

찌리릿!

사야 옌은 그 순간 그녀의 본질을 꿰뚫린 듯한 전율을 느꼈다.

‘방금 뭐였-.’

“루디. 실력 있는 부하를 뒀구나.”

“헤헤. 다 발렌 님 덕분이죠.”

“그래. 네 겸손도 대단하잖니.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리며 살 수가 있는 거니?”

“세상 사람들이 다 전하처럼 자기 잘난 맛에 사시는 건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그게 뭔 재미니.”

루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세레라지에는 그런 루디의 뺨을 조물조물 주물렀다.

‘루디 백작을 저렇게 가지고 놀 수 있을 줄이야. 광기를 뛰어넘은 총기다.’

사야 옌은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세레라지에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금은 요동을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옌. 머리카락은 왜 그러니? 넌 긴 생머리가 더 나을 듯하잖니.”

그녀의 본능이 속삭이길, 그건 절대 외모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육체의 변이 자체에 익숙한 건가? 혼과 육, 힘과 물질에 대한 통찰을 가진 듯해. 꼭 고향의 고승들 같군.’

“……잘렸습니다.”

“안타깝잖니. 이걸 마시렴.”

세레라지에가 품속에서 푸른색 마법 물약을 꺼내 내밀었다.

“…….”

무슨 끔찍한 약일지 몰랐다.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실험 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야 옌은 지금 자신이 시궁창 물이나 간장을 퍼줘도 달게 마셔야만 할 상황임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사르르륵!

곧이어 머리에 잊고 있던 무게가 늘어났다.

“어어?”

당혹감에 목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사야 옌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자라나 허리까지 내려왔다.

세레라지에가 흡족하니 웃었다.

“발모 촉진의 물약은 성공인듯하잖니. 부작용으로 며칠간 팔다리에도 약간 털이 날 수 있지만, 그건 곧 가라앉잖니.”

사야 옌은 한쪽에 걸린 큰 거울을 보며 넋 나간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감사, 합니다.”

루디가 그녀에게 두 마도구를 내밀었다.

“이건 ‘귀면’이고, 이건 점멸 단검이에요. 영체화 마스크와 깜빡이 단검이니까 적재적소에 쓰도록 하세요.”

세레라지에가 책상 속에서 또 다른 병을 꺼냈다.

유리병 속에 금속광 띄는 액체가 찰랑였다.

“이건 ‘아콰테그’라는 거잖니. 받아 가려무나. 아. 네가 가져온 쇠뇌는 마커스가 곧 손목용으로 개조해줄 거란다.”

사야 옌은 당혹감에 눈동자를 굴렸다.

‘왜 이렇게 마도구를 퍼주는 거지?’

루디가 그녀의 생각이 읽힌다는 듯 웃었다.

“사야에게 필요할 테니까요?”

“!”

“발렌 님은 악덕 귀족이 아니라고요. 제국은 형벌 부대원에게 일부러 고통을 줄 만한 여유가 없어요. 빨리 받아 가요. 저도 아까우니까.”

상냥한 시녀 백작은 잔혹한 암살자의 얼굴까지도 붉혔다.

* * *

사야 옌은 아콰테그 흘려 넣은 손목 보호대, 점멸 단검, 귀면을 받았다.

검은 천으로 만든 야행복까지 입으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세레라지에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신입 제자 중에 이상한 아이가 있잖니. 배후를 알고 싶구나.”

그녀에게 아주 일상인 일이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실력을 보여줄 기회였다.

실력을 보이면 신뢰를 얻을 테고, 신뢰를 얻으면 어떠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기회를 잡을 실력이 있었다.

바다 건너온 이 땅에도 보속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타르티. 좋은 소식이 있어.’

그게 그 빌어먹을 망나니 대공의 기분에 달렸다는 게 고깝기는 했지만.

어쩌면 새 땅에서 다시 출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