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의 망나니 오빠로 사는 법 (337)화 (337/340)

(337)

광장은 당연하게도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고, 나와 텐티아 경은 사람들을 밀쳐 가며 그 중심으로 달려들어 온 참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총합 2천은 넘어 보이는 침식자 무리 한가운데에 뛰어든 꼴이 되었다.

“게헤헤헤!”

“히히히히!”

“킬킬킬킬.”

이 마을 것들이 영육을 넘긴 옛것의 모양새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의 몸인데 등 뒤로 검은 갑각 날개나 곤충의 다리가 잔뜩 자라나서 바르작거렸고, 이마에서 긴 더듬이가 자라났으며, 턱이 좌우로 갈라졌다.

곤충 특유의 겹눈은 덤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완전 변이 침식자는 보이는 않았다.

“이 벌레 새끼들이!”

사람을 벌레라 부르는 건 썩 좋지 않은 말버릇이었다.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깔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파리의 눈과 사마귀의 턱을 가지고 온몸에서 자라난 거대한 개미 다리 스무 개를 버둥거리는 촌장을 보고 있으면, 벌레 새끼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지 모르겠다.

중간중간 나름 이 마을의 간부 포지션이었던 침식자도 있는지, 하얀 뼈로 만들어진 부리와 깃털 달린 긴 팔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부디 이 마을 놈들이 어쩔 수 없이 침식된 것이기를 바란다.

자의로 저런 모습이 되었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여간 옛것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해악을 끼치는 것들이다.

“키에에엑!”

침식자 하나가 사마귀 같은 앞발 두 쌍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색은 검은색이고 톱날이 가득했는데, 자세히 보니 톱날이 가시가 아니라 사람 이빨이었다.

“감히!”

나는 놈을 향해 불길을 내지르려 했지만, 텐티아 경이 한발 빨랐다.

퍽!

붉은 망토가 휘날리고, 그림 같은 돌려차기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판금 씌운 전투화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놈이 썩은 나무처럼 쓰러졌다.

풀썩!

스르르릉.

텐티아 경은 화한을 빼 들며 놈의 머리를 짓밟았다.

“이 텐티아가 너희들에게도 안식을 주겠다. 더 이상 아무런 죄도 짓지 말거라.”

내심 그녀가 검으로 목을 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텐티아 경은 다리에 힘을 주어 놈의 머리를 짓밟았다.

어쩐지 회귀 전보다도 과격해진 느낌이었다.

퍽!

침식자의 머리통은 썩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피와 뼛조각이 날아오르고.

“키에에엑!”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마을 사람들이었던 것들이 몰려들었다.

우우우웅!

그러나 난 이미 공명의 불길을 왼팔에 준비해둔 뒤였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 새끼들이 감히-!”

쩌저저적!

‘보이지 않는 손’ 장갑을 흡수한 손등에 도자기 같은 금이 내달렸다.

이깟 시골 마을 정도야 지푸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버릴 수 있었다.

“천천히 구워주마!”

불길을 고리형으로 터트리려던 찰나, 내 몸이 붕 떠올랐다.

“키익?”

“시익!”

퍽!

나와 텐티아 경을 향해 몰려들던 침식자들은 자기끼리 부딪치며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 * *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폐하?”

텐티아 경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보니, 마을 위에 떠 있던 제이릴리스의 무심한 손짓이 보였다.

그녀의 왼손에서 보랏빛 광채가 번뜩였고, 나와 텐티아 경의 몸이 그녀 옆까지 떠올랐다.

“시이이익!”

침식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드러냈다.

제이릴리스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낭랑하게 중얼거렸다.

“신민은 신민으로 있을 때 신민이니라.”

하얀 뼈 부리를 단 놈이 두려움 또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신성, 황제!”

“짐 말고 다른 자를 섬기는 신민은 이 땅에 필요 없노라.”

다음 순간 그녀의 오른손에 검보라색 원반이 떠올렸다.

우우우웅-!

원반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조금씩 투명해지고 넓어졌으며, 바닥에 닿을 때는 거의 마을 전체를 뒤덮을 넓이가 되었다.

나는 내심 제이릴리스가 이 마을을 그대로 짓눌러 버릴 생각이리라 짐작했다.

스윽!

그러나 반투명한 검은 원반은 집과 침식자의 머리를 그대로 통과하며 바닥에 놓였다.

쿵!

다음 순간 적어도 2천은 되어 보이던 침식자 놈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중력이 강해지기라도 한 듯 검은 원반에 찰싹 달라붙었다.

“키르르륵!?”

“시이이익!”

“코르르륵?”

적잖이 당황했는지, 자기들끼리 버둥거리다 서로를 걷어차기도 하는 등 아주 가관이었다.

투두두둑!

으지지직!

땅속에도 알집 같은 걸 숨기고 있었는지, 지하에서 무언가 솟아올라 검은 원반 아래쪽에 달라붙었다.

제이릴리스가 나른하게 읊조렸다.

“땅 위, 땅 아래. 어디 하나 짐의 눈을 피할 수는 없노라.”

그녀의 손짓에 따라 검은 원반이 하늘로 떠올랐다.

우우우웅!

원반 위로는 2천의 침식자가, 원반 아래로는 검은 알집이 가득 붙어 있었다

다음 순간 원반이 반으로 접혔다.

“키-!”

콰직-!

2천의 침식자가 검고 넓은 빵 사이에 발라먹는 토마토소스처럼 뭉개졌다.

제이릴리스는 반원을 두 번 더 접었고, 그대로 허공에 둥실둥실 띄워 놓았다.

“그대여.”

그리고 그녀가 날 불렀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예. 폐하!”

“불태워 버리거라.”

“아래에서 태울 수도 있었사옵니다.”

그녀가 날 보며 씩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엿보였다.

약간은 우쭐한 미소였다.

“오는 길에 새로 만든 마법을 시험해보고 싶었느니라. 이중 중력장, ‘황제의 변덕’이니라. 어떠한가?”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녀는 오는 길에 이 마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세레라지에가 새로운 주문을 두 개 개발하고, 그 주문을 이용한 마도구를 만들어서 황실에 납품하기까지 총 6개월 정도가 걸렸다.

물론 주문은 개발보다 제품화가 더 힘들고, 제이릴리스는 마법이 아니라 권능에 가까운 힘을 다루지만, 오는 길에 마법을 새로 만드는 건 역시 초월적인 업적이었다.

그도 그렇고, 황제의 변덕이라.

원반 위아래를 모두 달라붙게 한 다음 쥐어짜는 현상을 일으키는 파괴술 응용계열 마법은, 그 효과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난 장수하고 싶으니, 이 감상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신중하게 그녀의 마법을 평가할 만한 말을 골랐다.

“이 마법은 눈에 보이는 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모두 해치울 수 있으니, 분명 역사서에 남을 것이옵니다. 눈에 보이는 대귀족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침식자들을 모두 해치워 온 폐하의 행보와도 잘 어울리십니다.”

아부는 내가 패악질보다 잘하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고, 제이릴리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늘 신기하구나. 짐도 짐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모르거늘, 그대는 어찌 짐의 마음을 그리 잘 알아주는고?”

우쭐하던 미소가 잠시간 순수하게 변했다.

물론 그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아니라, 황제의 여유에 가까웠다.

* * *

제이릴리스가 나와 텐티아 경을 깔끔해진 마을에 내려 주었다.

나는 적을 쓸어버리기 위해 위력을 증폭한 공명의 불길이 아니라, 적을 정화하기 위한 정령의 불길을 보냈다.

화르르륵!

삼각형으로 뭉친 침식자 덩어리가 허공에서 활활 타올랐다.

사아아아.

그게 다 타서 순수한 옛것의 기운만 남고, 그 기운이 한 번 더 타서 붉게 벼려진 다음 내 안으로 스며들 무렵, 저 멀리서 일단의 기마병이 보였다.

“하늘에 뜬 고귀하신 분들께서는 어디의 누구이십니까? 저는 이 땅의 영주인 아벨리스 남작입니다.”

이제야 오는구나.

나는 손등에 올라온 핏줄을 ‘보이지 않는 손’ 장갑으로 가렸다.

마을 하나가 이 꼴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냐며 잔소리를 잔뜩 퍼부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남작과 네 기사, 일단의 중장기병, 그리고 나름 쓸만해 보이는 전투 사제 셋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성수 병이나 은검 등 무장 상태를 보니 니벨룽겐을 보고 급하게 끌어모은 병력은 아니었다.

“이 마을의 침식자를 토벌하기 위해 왔는가?”

“예. 그렇습니다. 고귀하신 분들께서 이미 끝내 주신 모양이지만요.”

“그대는 깨끗한가?”

“그렇습니다.”

방금 옛것의 기운을 실컷 먹어치운 주제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난 얼굴에 열 겹 철판을 깔고 물었다.

텐티아 경이 그와 병사들 주변을 오가며 침식자 검사를 했고, 내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벨리스 남작이 뭐라 말하고 싶은 표정을 지었고, 난 선수를 쳤다.

“이 마을을 토벌하려고 오는 길이었는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몇 차례 병사들을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아 마을 전체가 침식되었다고 짐작했습니다.”

그가 다시 뭔가를 물으려 했고, 나는 또 말을 끊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 근래에 침식이 번지고 있는 모양이군. 남작의 직할령에는 문제가 없는가?”

“예. 황제 폐하의 은혜와 교회의 가르침 덕에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이어졌다.

“최근 제 주군이신 백작께서 황제 폐하로부터 신성 가로등이라는 마도구를 받아 공방에서 양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인구 3만 이상의 도시부터 보급 중입니다.”

“으음.”

“곧 황실에서 성물이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제들도 기대 중입니다. 또, 근래의 네 백작께서 침식 교단을 잡기 위한 합동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합동 작전?”

“불시에 암흑가를 습격해 깡패와 수상한 마법사들을 잡아들였고, 모험가, 용병, 상단, 떠돌이들을 수색했으며, 관문과 성문의 검문 검색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침식률이 높은 극빈층을 도시에서 줄이기 위해 정착촌 건설과 개간을 돕고…….”

아주 모범적이고 깔끔한 대책이었다.

내가 코넬, 하드리탄, 마테오스 등 각 방면의 전문가들과 만들어, 제이릴리스가 공표한 공문의 내용 그대로였다.

“효과가 있는 듯한가?”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남작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런 변방 마을의 문제까지 눈을 돌리고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많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절대 귀하신 분들의 공을 깎아내리려던 건 아니나, 저희만으로도 충분히 토벌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나는 애써 얼굴을 굳혔다.

흐뭇한 웃음을 감추려고.

“그래. 알았네. 이 마을 침식자들과 우리가 조우한 건 정말 기막힌 우연이었겠군.”

“그렇습니다. 저. 한 가지 질문이-.”

그때 서쪽 하늘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마탄 다발이 솟아올랐고, 허공에서 폭발했다.

쐐애애액-.

펑!

신호용 마탄이었다.

니벨룽겐의 점검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 듯했다.

나는 남작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정말 미안하군. 갈 길이 급한지라 어서 돌아가 봐야겠어. 실례했네.”

사아아아-.

파괴술 특유의 보랏빛 기운이 나와 텐티아 경의 몸을 감쌌고, 우리의 몸이 다시 하늘로 떠올렸다.

나의 폐하께서 돌아갈 때는 걷고 싶지 않으신 듯했다.

“뭐, 뭐냐?”

“흡!”

“비행?”

남작과 병사들이 놀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나왔고, 남부의 강렬한 햇살이 쏟아졌다.

“큭!”

그들이 눈을 찡그리거나 팔뚝으로 얼굴을 가린 순간, 제이릴리스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냈다.

“황제…… 폐하?”

아벨리스 남작의 넋 나간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얼핏 들려왔다.

* * *

니벨룽겐의 정비는 완전히 끝나있었다.

엔진은 한 번 껐지만, 잔여 마나 덕에 나나 제이릴리스가 힘을 쓰지 않아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었나?”

나는 마커스에게 물었다.

그가 보안경과 각종 장비를 매단 가죽 하네스를 벗으며 답했다.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처음 설계대로 한번 비상하면 식량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날아도 문제없을 듯합니다. 후후. 역시 전 천재로군요.”

나는 그에게 꿀밤을 먹이려다가 손을 내렸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대공 전하. 전 당신께 두들겨 맞고 굴복한 귀족입니다. 갑자기 잘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멀쩡한 목소리로 날 개자식 만들지 말게.”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나는 제이릴리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금빛 눈동자에는 간질간질한 웃음이 어려 있었고, 붉은 입술은 호선을 그렸다.

나 역시 비슷한 상태인 듯했다.

“그래. 좋은 일이 있었지. 그렇고말고.”

내가 해왔던 일이 옳았다는 것만큼 고무적인 게 있을까?

유유히 니벨룽겐에 탑승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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