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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알스버그
[하아. 하아.]
[하. 하.]
셀럼을 제외하고 특이외도를 사냥해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엑조틱 결정이 나오는 특이외도를 사냥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특이외도라는 것들도 별거 아닌 모양인데?]
근접에서 딜을 하던 툴리오의 말에 몇몇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물론 그들이 셀럼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붉은색 엑조틱을 드랍하는 특이외도를 상처하나 없이 잡고나니 근거없는 자신감이 깃들었다.
셀럼의 실력은 커녕, 자기자신의 실력조차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붉은 색 맞네요.]
어느새 튜틀립프스의 사체로 다가온 준은 셀럼이 건네 준 엑조틱 결정체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엑조틱 결정체 자체는 준에게 친숙한 물건이었다. 장비를 이용해 스캔을 해보니 결정도가 14정도 되었다. 이정도면 현 시세로 대략 700만원정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급한대로 써야할 물건이라 약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정제되기 전의 결정체라도 얼마든지 엔진에 사용할 수 있었고, 그런 비상시의 운용방법까지 숙지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기본이었다.
튜틀립프스의 사체는 바스러진 스펀지 같은 느낌이었다. 챙겨봐야 쓸데도 없기에 그냥 버리기로 했다.
[이거면 엔진을 가동시키기에는 충분한데. 이만 돌아갈까요?]
열차폐용 세라믹 상자에 결정체를 담은 준은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사실 레이드를 더 지켜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눈앞에서 처음 본 레이드 현장은 영상과는 달리 훨씬 더 긴박했고, 아드레날린이 넘쳤다.
삭막한 우주선 안에서 컴퓨터와 기관들만 만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해방감이 있었다.
하지만 일행의 목적은 엑조틱을 구하는 것이고, 사실상 임무는 종료되었다.
[일단 보고부터 하지.]
셀럼의 말에 브랜든이 통신회선을 열었다. 헌데 보고를 위해 입을 열던 브랜든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격렬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통신이 끝날때까지 기다린 일행은 브랜든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작전을 속행하라는 함장님의 지시입니다.]
[속행이라니? 결정체는 이미 얻었잖아?]
당황스럽다는 듯 셀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브랜든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리엘 함장님은 목표지점을 탐사하길 바라십니다. 엑조틱 에너지원에 가까이 가면 무언가 있지 않겠냐고.]
[그런 일은 전문 탐사대원을 보내야지! 급조한 팀으로 갔다가는 전멸 할 수도 있다고!]
[직접 말씀하시겠습니까?]
브랜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셀럼이 회선을 열더니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용이야 뻔했지만, 표정으로 봐선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젓던 셀럼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다들 디스플레이 확인해봐. 무슨 사진이 찍힌 모양이야.]
준은 재빨리 스팅스에서 보내온 위성사진을 디스플레이에 띄웠다. 처음에는 메탄 구름 덩어리만 보이는 듯 했다. 처음부터 엑조틱 에너지원 부근에는 짙은 구름 때문에 사진판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때문에 직접 가서 확인하려 했던 것이고. 헌데 이번에 보내온 사진은 약간이나마 구름이 걷힌 상태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몇 번이고 확대하자 무언가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이건...?]
준이 가장 먼저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우주선?]
[그렇지? 약간 생긴게 이상하긴 하지만 이정도 구조물은 우주선이라고 밖에 이야기 할 수 없겠지.]
셀럼도 동의한 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원 개발도 취소되었고, 생명체가 살지 않는 이곳에 인공구조물이 있을리가 없다.
헌데 사진에는 뚜렷하게 반짝이는 타원형의 앞부분 형태가 찍혀 있었다. 적어도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걸 본 이상 그 함장이 그냥 가자고 할리가 없지.]
셀럼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저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엑조틱 반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운이 좋다면 훨씬 더 많은 엑조틱 결정체를 얻게 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위험했다. 셀럼의 감각은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탐사조의 목숨과, 엑조틱 결정체의 가치.
어느쪽이 중요한지는 저울에 올릴필요도 없었다.
[다들 잘 생각해. 자칫 잘못했다간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저 욕심많은 함장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싶은거야?]
셀럼이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중급헌터였고, 가진것이 너무 많았다.
모든 일행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다들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그렇긴 한데... 난 좀 할 만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먼저 입을 연 것은 툴리오였다. 그는 붕괴된 튜틀립프스의 사체를 보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사진이 찍힌 방향으로 향했다.
[다들 프리랜서로 돈 벌 자신있어? 이런식으로 해고당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른 기업에도 취직안되는 거 알잖아. 하지만 조금 모험을 감행한다면 결정체 몇 개쯤 챙길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붉은색 결정체만 해도 오백은 쳐준다고. 다들 돈 필요하지 않아?]
그의 말에 흔들린 몇몇 헌터들이 툴리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눈치를 보던 나머지 헌터들도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또 그 헌터들의 꽁무니에 브랜든이 슬쩍 따라붙었다.
[브랜든!]
준이 그를 불러세웠다. 브랜든의 주름진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이건 기회야. 내 평생 한번밖에 없을지도 모를 기회라고.]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에요?]
[너야말로 뭐하는 거야? 돈 필요하잖아?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쳐. 헌데 넌 해고라도 당하게 되면 끝장이라고.]
브랜든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준은 말문이 막혔다. 그랬다. 그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만약 해고라도 당하게 된다면 남은 것은 몸으로 갚는 수밖에 없었다.
장기매매나, 매춘. 아니면 인체실험의 대상으로 팔려 갈수도 있겠지. 아니, 그게 아니다. 사실 정말 두려운 것은 어쩌면 남은 평생을 이렇게 노예인 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준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내딛었다.
[헤이. 보이. 정말 갈 생각이야?]
셀럼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준을 불렀다. 그는 셀럼을 돌아보았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거구의 사내. 준은 조금이라도 그 사람을 닮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되는 건, 돈이 많은 자들만 가능한 일이었다.
[가야죠.]
셀럼은 잠시 머뭇거리다 머리를 벅벅 긁는 시늉을 했다. 헬멧때문에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지만 그의 기분은 잘 알 것 같았다.
[갓댐.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몇시간을 이동한 끝에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구름이 유난히 두껍게 끼어있었고, 종종 구름사이로 번개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함선과의 통신이 끊겼어요.]
준이 말했다. 일행은 다들 헬멧을 톡톡 건드리면서 통신회선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근거리 통신은 가능한걸로 봐선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계열은 아니고, 아마 저 구름이 통신을 차단하는 것 같아요.]
[메, 메탄구름이 아무리 두꺼워도 통신이 차단될 리가 없어.]
브랜든은 잔뜩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거기에 있을지 모를 위험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이럴거면 애초에 여기까지 왜 온거야.’
준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자신도 별 다를 바는 아니었기에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사진의 정체는 확실해 졌네요. 저건 확실히 우주선이에요. 연방분류법에 따르면 우주모함 급이군요. 한눈에 보기에도 십만톤은 가볍게 넘겠는데요?]
일행의 눈앞에는 거대한 우주선의 파괴된 잔해와 흔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부분은 타원형 몸체의 선수 부분. 하지만 저 정도로 우주선이 파괴되었다면 안에 누가 타고 있었든지 간에 생존자는 없을 것이다.
[저런 우주선 본 적 있는 사람?]
셀럼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함선에 대해서 지식이 풍부한 준 마저도 처음보는 종류였다.
[파티마 제국 쪽인가? 그 녀석들 저런 거 만들 수 있어?]
[만들려고 하면야 못 만들 건 없죠. 덩치만 키우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헌데 아무리 봐도 그쪽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제멋대로 만드는 게 우주선이라지만 어느정도 일관성이라는게 있는 법인데...]
어차피 우주에서 만들어지고 우주에서만 돌아다니는 함선들은 디자인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애초에 행성에 내려앉을 일이 없기에 공기저항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많은 파티마 제국인들은 일단 크고, 아름답게라는 모토로 각종 함선 들을 생산해댄다. 그 수준이 금으로 우주선 외벽을 씌운다던가 하는 저렴한 미적감각이었지만, 어쨌든 찬찬히 뜯어보면 아주 엉뚱한 것만은 아니었다.
헌데 정말 저런 건 처음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거 아냐. 계집애들처럼 거기 서있지 말고 다 같이 가자. 안에 뭐가 있나 보면 정체를 알 수 있겠지.]
툴리오는 누구보다도 먼저 언덕을 내려갔다. 우주선의 잔해에서 무언가 건질게 있다면, 먼저 발견하는 쪽이 이득이었다.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헌터들은 저마다 흩어져 무언가 쓸만한 물건이 있나 찾기 시작했다.
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셀럼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눈만은 여기저기 훑어보며 쓸만한 물건이 없나 찾고 있었다.
[우주선 구조는 대체로 비슷하긴 한데, 뭔가 다르네요.]
[다르다니?]
셀럼은 잔해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잡동사니 몇 개 주워봐야 특이외도 하나 잡는 것만 못했다.
[예를 들면...]
준은 근처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배관하나를 찾았다. 배관은 일 미터 길이로 통째로 떨어져 나와 있었고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지 밸브도 달려 있었다.
[이거 열어 보세요.]
[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삐걱. 삐걱.
셀럼은 힘을 주어 밸브로 돌렸다. 그리고 밸브는 열리기는커녕 더 단단히 그 입구를 조였다.
[뭐야? 반대론가?]
셀럼은 잠시 당황하더니 다시 반대로 돌려 밸브의 입구를 활짝 열었다. 뿌듯한 기분이 드는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활짝 떠올랐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이 왜 이걸 돌렸는지 생각이 난 것인지 준을 돌아보았다.
[이것도.]
준이 냅다 던진 것은 아까와 같은 밸브였다. 마찬가지로 닫힌 걸 열고 준을 보자 그는 아예주변을 쭈그려 앉아 고철 덩어리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낑낑거리면서 커다란 문짝을 집어 들고 있었다.
셀럼이 조금 도와주자 회전손잡이가 달려있는 강철문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세워졌다. 땅속으로 삼십센티 정도 박힌 것 같지만 준은 애써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이 문 어느쪽으로 여는 걸까요?]
[흠... 그러고보니.]
셀럼은 그제서야 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아까의 밸브도 그렇고 문짝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도구들의 사용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었다.
셀럼은 잠시 고민하더나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딱 치고선 입을 열었다.
[이 우주선의 주인은 왼손잡이였군!]
[...이런 사소한 것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엄연히 오랜세월을 거친 관습을 통해서 굳어진 것들이에요. 왼손잡이...는 아니겠고, 어쩌면 다른 문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리가. 문명이 다르다면서 겨우 차이점이 밸브나 손잡이 방향 정도라고?]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어쨌든 좀 더 찾아보면 재미있는게 나올지도 몰라요.]
준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때의 두려움이 다 가셨는지, 좀 더 우주선의 폐허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 작품 후기 ============================
한 편 쓰는데 너무 오래 걸리네요. 하루에 네다섯편씩 올리는 분들은 대체 어떻게 쓰는 건가요.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