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14화 (1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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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

기술

엔지니어링(초급) ; 오랜 숙련과정을 통해 사용자의 뇌에 공학적 사고가 자리 잡았습니다. 기본적인 물품을 손쉽게 제작, 수리 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 1%)

스패너를 제작하자 숙련도라는 것이 생겼다. 숙련도를 모두 채우면 엔지니어링 초급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쓸데없이 큰 스패너 (B급)

본래는 너트를 조이거나 풀 때 사용하는 공구이지만 종종 영화나 소설에서 범죄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스패너는 지나치게 커서 본래의 목적을 잃었지만 무기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B급 이상부터는 특수효과가 붙습니다.

특수효과 : 데미지에 비례해 스턴확률이 높아집니다. 인간형 생물에만 적용됩니다.

‘특수효과라는 게 붙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저 경험치를 소모해서 좀 더 편리하게 물건을 생산하는 기능인 줄만 알았던 제작스킬에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준은 두 번째 만세를 불렀다. 경험치를 소모하는게 아깝기는 하지만, 잘만 만들면 일반적인 물건보다 훨씬 좋은 물품을 만들 수 있었다.

‘B급 이상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높은 등급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 제작물품에 시간을 들여야 했다. 쓸데없이 큰 스패너의 경우에는 준이 직접 디자인하고 크기와 재질까지 모두 만들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덕분에 B급이 나온 것 같았다.

‘A급이 아닌 게 아쉽긴 하지만 뭐, 특수효과는 붙었으니까.’

인간형 생물에게만 한정이긴 하지만 외도중에는 인간과 유사한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혹여나 저번처럼 같은 헌터들끼리 싸우게 될수도 있었다.

준이 건네준 스패너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셀럼이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밸런스가 잘 잡혀 있네. 마치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느낌이야.”

“그만큼 좋은 공구라는 거죠.”

준은 적당히 둘러댔다. 브랜든 같았으면 절대로 통하지 않을 변명이지만 셀럼은 별다른 의심없이 믿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거 들고 휘두를 수 있겠어? 그냥 보기에도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데. 이런거 잘 못 쓰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통짜 쇠로 만든 스패너의 무게는 거의 10kg에 육박했다. 양손에 하나씩 그레이트 소드를 들고 휘두르는 셀럼이 할말은 아니지만, 그의 말대로 보통 사람이 이걸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손으로 휘두르면 얼추 될 것 같아요.”

현재 준의 힘 스탯은 15. 예전보다 강하다곤 해도 아직 이런 무기를 휘두르기엔 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준은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근력운동을 병행할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고 휘두르는 것은 근육뿐만 아니라 관절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헌터는 일반인에 비해 회복력이 훨씬 뛰어났고, 그 덕에 이런 상식 밖의 수련행위도 가능했다.

케플러41 항성계(41 kepler)

행성, 수라드(Surad)

엔진을 수리한 스팅스는 이십여 일의 항해 끝에 원래의 목적지였던 수라드 행성에 도착했다. 지구와 크기와 환경이 거의 흡사한 수라드는 외우주 개발의 중간기지로서 이천 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개척 행성이었다.

수라드가 이렇게 큰 이유는 단순히 거주가능한 행성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은 초창기 외도들의 집결지 중 하나로, 아직도 레이드 가능한 특이외도들이 다수 서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구의 1.12배에 불과한 행성의 크기에 비해 육지의 면적은 두 배가 넘었다. 그 덕분에 상당부분의 지역은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았고, 수십 년 째 결정체를 쏟아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외도가 서식하고 있었다.

기이잉- 텅.

수라드의 궤도 플랫폼에 들어선 스팅스가 화물칸의 문을 열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라인레일을 가져다 댔다.

“읏차!”

준은 나무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최근 들어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함선들이 많이 개발되어 점점 화물운송이 대형화, 간편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것을 활용할 만한 플랫폼이 많지 않았다. 스팅스같은 폐기 직전의 화물선이 아직도 돌아다니는 이유였다.

“읏차!”

준은 화물칸에서 50킬로그램이 넘는 상자를 번쩍 들어 레일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항해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그러다가 저번처럼 일주일 동안 앓아 누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번에는 괜찮아요. 미리 몸을 좀 만들어 놨거든요. 대신 이일 끝나면 약속대로 착륙선에 태워주시는 겁니다.”

지난 20일간 셀럼에게서 무기술을 배우면서 쓸데없이 큰 스패너를 수없이 휘둘렀다. 그 덕에 준은 힘 스탯 1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겨우 1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근력훈련만으로 얻은 것이다. 레벨업을 하지 않아도 스탯의 상승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어. 어차피 스팅스는 보름 후에 출항이고, 그사이에 특별한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웬일이야? 지상으로 내려가려는 거, 처음 아니야?”

“바람 좀 쐬려고요. 가끔 사람도 보고 그래야죠.”

준은 그렇게 말하며 화물들을 옮겼다. 작업은 두 시간 안에 끝났다. 어차피 대부분의 짐들은 크레인이 필요한 것들이었고, 준과 다른 선원들이 옮긴 것들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작은 물건들이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아직 건설중이었기 때문에 수라드 행성은 대형 착륙선을 이용해 화물을 나르고 있었다. 내려갈때는 물건을 꽉 채운 채 무동력으로 떨어지고, 올라올때는 로켓을 이용해서 쏘아올리는 식이었다.

고전적이지만 그만큼 안정성도 높아서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준은 고개를 들어 머리위에 있는 수라드 행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구와 비슷한 푸른별인 수라드는 바다보다 육지가 많고 지각도 불안정해 대체로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외도들이 설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 졌고, 헌터들도 상주하며 결정체를 생산해대고 있었다.

이번에는 준도 그 자리에 끼어볼 생각이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보이.”

“그동안 고마웠어요.”

수라드 행성에 내린 준은, 착륙장에서 셀럼과 이별을 고했다. 헤어지고 나면 언제 또 만날지 기약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내일 다시 만날 것처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몸을 돌려 걸어가던 셀럼이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돌렸다.

“힘든 일 있으면 전화해라.”

“남자랑 통화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준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셀럼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돌아섰다.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셀럼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준은 이미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는 셀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으로 정을 느낀 사람과의 이별은 그렇게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짝.

준은 가볍게 손뼉을 치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혼자였다. 더 이상 궁금한 것을 물어볼 사람도, 자신의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줄 사람도 없었다.

“자 그럼...”

준은 손목에 감아둔 구형스마트패널을 펼쳤다. 그가 향할 곳은 세일럼 시티. 비교적 헌터를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기업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레이드 팀도 많아서 초보자들이 사냥하기 좋은 곳이라는 추천마크가 있었다.

다 좋은데 이곳에서 거리가 약 200km 떨어져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투루룩- 투투투투-

준은 고속버스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정비를 보지 않은 것인지 디젤엔진 치고도 상당히 격렬한 시동음이 들렸다. 지구같은 경우는 이미 모든 차량이 전기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런 개척행성은 아직도 디젤버스가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차가 출발했고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버스는 금세 최고 속도인 150km를 넘어섰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준은 크게 하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한가로운 것도 오랜만이네.”

버스안에는 운전기사를 포함해 십여 명이 타고 있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아직도 운전기사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역연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자동제어시스템보다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비용이 더 싸기 때문이었다.

퍽!

밖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바라보니 외도로 보이는 2미터짜리 생물체 하나가 도로 밖으로 튕겨나가고 있었다.

“에이. 재수없게. 또 수리비 나가게 생겼네.”

버스기사가 투덜대며 입을 열었다. 외도가 버스에 치이다니,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기에 준은 약간 컬처쇼크를 느꼈다.

준은 운전기사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자주 있는 건 아니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그럴때마다 내 돈으로 수리해야 돼서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게 아니야. 심지어 저놈들 저렇게 치여도 안 죽는다니까. 도로 주변이라도 정리를 해달라고 그렇게 민원을 넣는데 정부에서는 듣는척도 안한다고.”

“돈이 안되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민간 헌터들이 있잖아요. 외도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다닐텐데.”

“그 놈들은 전부 다른 도시로 가있어. 이 근처는 별로 벌이가 좋지 않거든. 외도가 있다고는 해도 몇 마리 정도만 몰려서 다니는 정도니까, 수지타산이 안맞는다는거야.”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지. 한 번은 그 특이외도인지 뭔지가 나타나서 도로가 마비된 적도 있었다니까. 마친 그곳을 지나던 헌터들이 아니었으면...”

운전기사는 계속해서 투덜댔고 이야기가 길어질 듯 하자 준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세일럼 시티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일럼의 인구는 대략 10만 명 정도. 그중에 약 4분의 1이 헌터였다. 나머지는 헌터의 가족이거나, 그들에게 장사를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도시 주변은 철조망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곳곳에 헌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헌터들의 도시라는 말답게 안전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그 때문인지 바깥에서 보기에는 마치 전쟁 중의 도시를 보는 듯 삭막했다.

하지만 버스가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풍경이 완전히 변했다. 마치 시장 통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번잡했다. 신규 유입되는 헌터가 늘어나자 그들에게 장사를 하려는 이주민들도 부쩍 늘어난 때문이었다. 헌터들이 많다고 해서 유난히 살벌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은 도시군.’

스마트패널에서 세일럼의 정보를 검색하던 준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준은 일단 숙소에 짐을 풀었다. 다음 할 일은 헌터자격증을 받는 것이다. 레이드가 사회시스템화 되어있는 무역연합에서 헌터자격증은 중요한 절차였다.

다행히도 자격요건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신분증과 함께, 자신이 헌터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만 있으면 됐다.

준은 자격증 심사를 위해 세일럼 시청으로 향했다.

“음... 저기 무기가 뭐라고?”

시청의 뒤뜰. 헌터자격요건을 심사하기 위한 장소에서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사내가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준은 그의 그런 반응을 이해했다. 자신이 심사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거요.”

준은 등에 걸쳐 매고 있는 1미터짜리 대형 스패너를 흔들었다. 무게가 무게다 보니 어깨가 아팠지만 이런 물건을 허리춤에 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그거...그거 혹시 몽키스패너 아닌가?”

“몽키스패너는 여기 구멍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요. 이건 그냥 스패너에요.”

준이 니들리스(Needless:쓸데없는)라고 부르는 ‘쓸데없이 큰 스패너’의 머리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준의 설명에 사내는 침착하게 문서를 살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패너는 규정에 없는 무기라서 안 될 것 같네.”

“네? 어째서죠?”

준은 당황하며 니들리스를 들고 마나를 밀어넣었다. 스패너의 머리부분에 푸르스름한 마나가 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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