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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
결국 준은 호랑이 길드와 다시 레이드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근딜 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와서 인력시장으로 다시 나가기도 꺼려졌고, 호랑이길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길드장도 성질이 불같다 뿐이지 평소에는 매너좋고 예의바른 청년이다. 홍창만이야 신경쓸게 없었고, 문제는 서은설이지만 악의를 가지고 대하는 것은 아니니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
“뭐라는 거에용?”
“그 말투 좀 어떻게 해 봐. 너 지금 틀림없이 나 놀리고 있는 거지?”
“아니에용! 전 원래 말투가 이렇다용!”
“야. 방금 무지 어색했거든?”
“호호호. 뭔가 잘못들었겠죵!”
“와. 소름 돋는다.”
홍창만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준은 홍창만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한 서은설을 버려두고, 장민성을 향해 다가갔다.
“레이드 일정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일단 서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늘려갈까 생각중입니다만...”
“사실 제가 세일럼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열흘밖에 안돼서 그런데, 일정을 좀 빡빡하게 짰으면 좋겠어요. 당장 내일부터 트럭을 한 대 빌려서 하루종일 사냥을 하는 게 어떨까요?”
사실 서은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길드와 함께 하려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서로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이 길드에서 장민성의 카리스마는 절대적이었고, 그런 그가 자신의 편의를 봐주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무리한 부탁도 들어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사실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힘들게 움직이면 안한다고 하실까봐 살짝 걱정했습니다.”
“그럴리가요.”
돈이 엄청나게 벌리는데.
“참. 그리고 저도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장민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공격력 조절이 가능하십니까? 강한 건 좋지만, 매번 때릴 때 마다 어그로가 튀니 위험한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아시다시피 강력한 공격을 먹일수록 어그로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니까요.”
“어느정도로 조절하면 될까요?”
“지금보다 절반 정도로 하면 어그로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해본적은 없지만 몇 번 연습하면 될 것 같아요.”
장민성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급헌터인 셀럼하고만 연습을 하다 보니 힘 조절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한 번에 쓰는 마나가 대략 20정도 되니까, 10정도로 줄이면 되겠지.’
보통 서은설이나 홍창만이 한 번에 사용하는 마나를 수치로 따지면 3~4정도였다. 그러니 단번에 20이 넘는 마나를 때려 박는다는 것에서 부터 이미 비교가 안된다.
게다가 약하게 여러번 때리는 것과 강하게 한 번 때리는 것은 효율에서부터 넘사벽의 차이가 난다. 마나소모량은 여섯 배 정도지만 공격력은 열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탱커인 장민성과의 차이는 더 극심했다.
준의 일격에 외도들이 자꾸만 머리가 돌아가는 이유였다.
“헌데 판테라 같이 방어력이 낮은 놈들에게 까지 공격력을 낮출 필요가 있을까요?”
“흐음. 하긴 녀석들은 두 방이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공격력을 높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말입니까?”
장민성은 크게 놀랐다. 사실 지금도 필요이상으로 강하다. 최하급 사냥터에서 준 정도의 딜량을 가진 헌터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다니,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마나를 충분히 끌어올리는데 약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지금까지 보다 두 배 정도는 더 세게 때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종의 차지 공격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렇게 하면 한 방 밖에 못 때리지만.”
준이 최대한 마나를 끌어다 쓰면 40정도의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큰 공격을 하게 되면 남은 마나와 상관없이 잠시는 쉬어주어야 하지만 판테라처럼 방어력이 약한 녀석은 일격에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흠... 그럼 약간 작전을 선회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판테라 같이 방어력이 낮은 녀석은 풀 차지로 때려서 단번에 잡는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럼 그런식으로 하는 걸로 하죠.”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준은 장민성에게 서로 말을 놓기로 제의했다. 어차피 남은 9일 동안은 매일 같이 얼굴을 봐야할 사이였다. 나이도 동갑이니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라도 말을 놓는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장민성은 별다른 이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은설도 말을 놓기로 했다. 물론 준은 동의하지 않았다.
트럭을 빌리는 데는 기름값을 포함해 30만원가량이 들었다. 지나치게 바가지 씌우는 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만큼 보급이 수월했기에 여러모로 이쪽이 이득이었다.
새롭게 전술을 짠 준과 호랑이 길드의 레이드 속도는 놀라웠다. 준은 공격력을 낮춘 대신에 더 많이 때렸고 결과적으로 같은 시간대비 훨씬 많은 딜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판테라 같은 방어력이 낮은 외도의 경우, 단 일격에 때려잡으면서 비약적으로 사냥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준 님. 나랑 결혼하자.”
서은설이 몽롱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준은 그녀를 무시하고서 트럭의 화물칸에 판테라의 사체를 실었다. 걸어 다닐 때는 배낭크기 때문에 가죽과 발톱 정도만 분리해서 가져가지만 트럭이 있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통으로 가져가서 파는 쪽이 훨씬 비싸게 받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몇 마리야...?”
홍창만이 몇 번인지 모를 숫자를 세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해가지기 전까지 사냥한 숫자는 총 21마리였다. 나중에는 외도를 사냥하는 것보다 녀석들을 찾는 게 더 일일 정도로 수월한 사냥이 이어졌다.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장민성의 목소리는 거의 신음처럼 들릴 정도였다. 준은 머리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 다 얼마야? 한 마리당 적어도 50만원은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최소한 천만원이다. 이미 수익의 절반을 나눠갖기로 약속한 상황이니, 적어도 500만원은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셈이다. 경험치도 약 25정도가 들어와서 총경험치가 30이 됐다.
약간 아쉬운 것은 가장 비싸게 쳐주는 크립토디라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녀석 하나 잡자고 시간을 끄느니 차라리 흔한 판테라를 많이 잡는 편이 이득이었다.
“이정도 했으면 충분해. 오늘은 아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군.”
장민성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말 다한 거다.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외도를 잡아 본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탕.
갑자기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장민성의 표정이 굳었다.
“모두 차량에 탑승해.”
“무슨 일이야?”
준이 물었다. 재빨리 움직이는 호랑이 길드원들의 행동을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듯 했다.
“밴디트다.”
“밴디트?”
“헌터를 사냥하는 헌터를 우리는 밴디트라고 불러. 들어본 적 없는거야?”
서은설이 대신 대답했다.
“처음들어봐. 그런 놈들을 본적은 있지만.”
준은 툴리오를 떠올렸다. 그는 셀럼이 가진 붉은색 결정체를 노리고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한 적이 있었다.
시동이 걸리고, 차량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리는 트럭안에서 준은 질문을 이었다.
“그러니까 놈들은 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헌터를 사냥한다는 거지?”
“그래. 사실 헌터라고는 했지만 밴디트 중에는 헌터가 아닌 자들도 많다. 일반인 중에서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이 팀을 짜서 헌터들을 공격하는 거지. 아다시피, 헌터들은 총기류에 매우 약하니까.”
“그건 그렇지. 외도들처럼 항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상급을 넘는 헌터들은 항력을 흉내낼 수 있다고 들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급헌터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준도 상급헌터는 어쩌다가 한두 번 지나가는 것을 봤을 뿐이었다. 그것도 주위에서 그 사람이 상급헌터라고 말해줘서 알게 된 것이지 겉으로 봐선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헌데 총을 쓴다고 꼭 밴디트라는 보장은 없지 않아? 호신용으로 얼마든지 총 정도는 가지고 다닐 수 있고.”
“그런 일반인이 이런 위험한 곳에 돌아다닌 다는 것부터가 의심스럽잖아. 100퍼센트 확실하지는 않아도, 꽤나 높은 확률로 밴디트일 가능성이 있어.”
서은설의 말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들의 말이 맞았다. 헌터들은 거의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애초에 외도들에게는 화약무기가 통하지 않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헌터들은 총기 사용 자체가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무력을 보유한 헌터들이 총기까지 자유롭게 사용한다면 정부에 큰 위협이 될 것을 염려한 각국의 정부들이 무기소지에 제한을 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헌터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사실 정책 자체는 헌터들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인들의 헌터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그런 조치라도 있어야 그들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헌터가 인류의 구원자라고 해도 오늘날의 헌터에게까지 그런 대우를 해주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분간 이 지역은 피해야겠군. 내일 부터는 남쪽으로 가자.”
“아. 거기 싫은데.”
“뭐가 있는데?”
준이 묻자 서은설이 살짝 입술을 비죽거리며 대답했다.
“모기. 습지라서 벌레들이 많아.”
“몸에 바르는 약 있지 않아?”
“그냥 모기가 아니라서 그렇지.”
서은설은 양팔을 감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쿨리킨이라고, 사람 키 만한 모기들이 돌아다녀. 그것도 외도인데... 으으. 하여튼 싫다.”
“그놈도 돈이 되는 거야?”
“눈알을 레스토랑에 팔면 돈을 꽤 주거든. 그런 걸 왜 먹는지 몰라.”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포만감도 있다. 마나를 늘려준다는 속설도 있어서 헌터들이 즐겨 먹는 음식중에 하나지.”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 다 뻥이라고. 장삿속이지. 그냥 모기 눈알이라면 안먹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지어낸거야.”
“그렇다곤 해도, 맛있다는 건 사실이다만.”
아무래도 장민성은 모기눈알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서은설은 어쨌든 여자라고 벌레를 싫어하는 모양이었고. 준은 홍창만을 돌아보았다. 그는 자고 있었다.
트럭이 세일럼 시티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트럭에 실린 외도의 숫자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덮을 것이라도 준비했어야 했나.”
준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자꾸만 얼굴을 가렸다.
“어차피 이만큼 외도를 사냥해댔으면 소문은 퍼질대로 퍼진다. 얼굴을 가려봐야 소용없어. 차라리 얼굴을 알리는 쪽이 낫지. 유명해지면 그만큼 사기를 치기 어려워지니까.”
“많이 당해본 말투네.”
“여기에 신규로 들어오는 헌터들은 대부분 초심자들이다. 나이도 어리지. 그런 이들을 등쳐먹으려는 놈들은 얼마든지 있고, 우리라고 처음부터 경험이 많았던 건 아니었으니까.”
“멀쩡한 가죽이 상했다고 반값으로 후려치고, 내장 같은 건 돈이 안된다고 고기값만 주기도하고, 발톱 열개를 한 개 값으로 쳐주질 않나... 하여튼 엄청 당했어. 준님이 우릴 만난 건 행운이라고 자부해도 좋아. 아, 이런 건 돈 받고 가르쳐 줘야 되는데.”
“무슨 사기 당한 걸 자랑하고 자빠졌냐.”
“부끄러워하긴. 준님 평소에 엄청 운좋다는 소리 듣지 않아?”
“최근들어 그런 소릴 듣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꽤나 재수없는 편이지.”
준님이라는 호칭이 매우 거슬렸지만, 어쩐지 태클을 걸어주길 바라는 것 같아 무시해버렸다.
사체를 모두 처리하니 총 1083만원이 나왔다. 렌트비용과 기타 경비를 제하고 절반을 나누어 510만원을 받기로 했다. 만원단위는 쿨하게 받지 않았다. 얼마전까지 몇만원이 없어서 굶을 걱정을 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벌써 600만원이 모였어. 이대로만 해도 돌아가기 전까지 오천만원 정도는 모을 수 있겠다.’
단 열 흘 만에 빚의 절반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한번만 더하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사실에 준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장비 좀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장비? 이제와서 더 필요한 게 있는 거야?”
“쿨리킨 잡으러 가야되잖아. 놈들은 불에 약한데 내가 화염마법을 아직 못쓰거든. 그래서 화염방사기를 살거야.”
“어차피 항력때문에 못쓰잖아.”
평범한 불로 외도를 죽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열로 외도를 죽일 수 있었으면 인류가 그렇게 고생했을리가 없다.
“실드가 까지면 그때 불태워 죽이는 거지. 그래도 꽤 쓸만해.”
“아. 그렇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식무기가 안 통한다는 사실만 생각하다가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항력이 없는 외도는 그냥 좀 무서운 맹수일 뿐이다.
준의 머리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잠깐만.”
“응? 왜?”
“화염방사기, 그거 얼마나 해?”
“글쎄... 한 백만원정도 하려나? 가격 꽤 나갈거야. 저번에 중고로 샀다가 하루만에 고장났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새 걸로 살까 생각중이라서.”
“그 돈 나줘라. 내가 만들어 줄게.”
준은 제작스킬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는 서은설과 함께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러 다녔다. 주 재료는 철이니 만큼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 기대해. 내일 멋진놈으로 가지고 오지.”
“으음... 하루만에 만들 수 있겠어? 괜히 허세부리다가 쪽팔리기 없기?”
서은설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준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런 제작도구도 없이 하루만에 화염방사기를 만든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걱정 접어두시고. 이 준님을 경배할 준비나 하고 있어.”
“...자기 입으로 준님이라니. 어우. 나르시스트.”
“...”
새로운 제작품을 만들 생각에 들떴는지 분위기를 너무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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