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 ----------------------------------------------
알카트뢰즈
“이 근처는 무생물형 외도가 많지. 그중에선 특히 골렘이 많은 편이다.”
“잡는 방법은?”
“보통의 골렘과 흡사하다. 몸 안에 숨겨져 있는 결정체를 찾으면 된다.”
“그럼 곤란할텐데. 결정체를 부술수는 없으니까.”
핵을 부숴야 골렘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핵이 결정체였다. 그걸 부수면 기껏 사냥을 해봐야 남는게 없는 것이다.
“방법이 있지. 결정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외부와 차단시키면 된다.”
막스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언덕위에서 상체를 드러내고 있는 바위골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물러서! 놈을 평지까지 끌어낸다! 무스타파! 마흐무드! 애새끼들 위치 좀 잡아!”
막스와 함께 온 아랍계 헌터인 무스타파와 마흐무드가 재빨리 신입들의 위치를 지정했다. 두 사람은 쉴새없이 입을 놀리며 손에 든 끝이 뭉툭한 철봉으로 위치를 탁탁 지정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이 새끼들아! 뒤지고 싶냐!”
“걷는 놈 누구야!”
퍽퍽!
어기적거리던 신입 수형자들이 몇 번 두드려 맞더니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덕위에는 골렘이 성큼성큼 걸어내려오고 있었고, 밑에서는 아군인지조차 궁금한 흉악한 헌터들이 위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개처럼 굴리는 두 사람에게 당하면서도 반항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막스가 처음 사람을 모을 때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생존이 더 급했던 사람들이고 겨우 이런 일로 자존심을 세울 것이었으면 따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 놈들은 말을 잘듣는군.”
무스타파가 콧수염을 문지르며 만족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준은 일단 근접딜러였기 때문에 그의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준은 해머를 쥔 손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특이외도를 본적은 있지만 실제로 자신이 사냥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정도이려나. 셀럼이라면 손쉽게 잡겠지만...’
애초에 비교하기가 어려운 대상이다. 그는 중급 헌터였고, 자신은 얼마전까지 최하급 사냥터에서 외도를 잡았다.
물론 준도 자신의 실력을 어느정도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권총탄 정도로는 한방에 죽지 않을 체력, 철창을 힘으로 구부릴 수 있을 정도의 힘. 그리고 프로운동선수에 육박하는 민첩성은 근접전에서 준의 위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거기다 지능과 정신력이 30에 달한다. 당장 시험해 보진 않았지만 경험치를 투자해서 서은설이나 홍창만의 기술을 가지고 온다면 뛰어난 원거리 딜러로서 활약할 수도 있었다. 다만 엔지니어링을 사용해 만든 도구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굳이 배우지 않은 것 뿐이었다.
‘그나저나 펠로우쉽이 닫혀있어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건가?’
펠로우쉽 창을 열어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당장은 골렘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골렘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흐아앗!”
쿠웅!
막스가 해머를 들더니 땅을 내리찍었다. 골렘을 맞추려는 생각이 아니라 충격파를 통해 골렘의 어그로를 자신에게 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헌터들 사이에서는 저것을 기술로 완성시켜서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후두두-
충격파와 함께 골렘의 몸에서 작은 돌들이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원위치를 찾아갔지만 확실히 어그로는 끌린 듯 막스를 향해 움직였다.
딜러들이 대기하는 동안 막스가 해머를 들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골렘의 시선을 끌었다.
쿠웅! 쿵!
3미터 정도의 크기인 골렘은 덩치도 덩치였지만 그 질량이 비슷한 덩치의 다른 외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큰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녀석이 한 번 발을 구를때마다 중심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골렘은 그 무게 때문에 스피드가 느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후웅!
“핫!”
막스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눕히며 골램의 주먹을 피했다. 힘을 중시하는 스타일상 몸으로 맞아가며 탱킹을 하는 편인 막스였지만 상대가 골렘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저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주먹에 맞으면 갑옷이고 뭐고 없었다. 막스는 최대한 회피하며 해머를 휘둘러 녀석의 몸을 직접 타격했다.
쿵- 쿠웅-
맞추기보다는 일단 회피하는 것에 신경을 더 쓰다보니 어그로를 잡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걸리는 듯 했다. 준은 차분히 막스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장민성과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힘 자체는 장민성보다 센 것 같아. 전투센스는 장민성 쪽이 훨씬 좋은 것 같고...’
스피드는 비슷비슷했다. 따지고 보면 장민성은 애초에 스탯자체가 높은 편이 아니었다. 경험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센스로 탱킹을 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인 능력치만 가지고 비교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보면 장민성도 나쁘지 않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특이외도를 상대로도 탱킹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2레벨을 찍으면서 추가로 오른 스탯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홍창만과 서은설도 2레벨을 찍으면서 실력이 상승했기에 딜러 몇 명만 더 섭외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델타의 보조가 없이는 펠로우쉽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레벨업은 안되겠지만 훈련을 통한 스탯상승이나 경험자체가 주는 실력향상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돌아갈때쯤이면 충분히 하급사냥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어느덧 어그로가 잡혔는지 막스가 수신호를 주었다. 먼저 무스타파와 마흐무드가 철봉을 이용해 중거리 타격을 입혔다. 신입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공격하다보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었기에 한명한명씩 차례로 딜러를 투입할 생각이었다.
현재 딜러진의 구성은 근접 딜러 5명과 원거리 딜러 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스타파와 마흐무드를 제외한 신입수형자들은 근딜 3명 원딜 3명이었다. 다행히 골렘의 크기가 크다보니 근접딜러 5명이 붙어도 충분히 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곧 무스타파의 신호의 맞추어 차례로 한명씩 붙어서 딜을 시작했다. 근접딜러 중에서는 마지막으로 준이 나섰다.
“원딜들 정신 똑바로 차려! 아군 공격하는 놈들은 다음부터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무스타파는 팔이 긴 편인데다 철봉의 길이까지 더해 거의 원거리 딜러처럼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딜러진을 조절하는 데 능숙함을 보이는 것으로 봐선 꽤나 경험이 많은 헌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쾅! 콰콱!
준이 투입되고 원딜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원딜 3명은 모두 활이나 석궁을 사용했는데 상대가 상대인 만큼 딜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실드는 착실히 까이고 있었으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하앗!”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준은 무스타파가 자신을 흘낏 노려보는 것을 깨닫고 해머를 쳐들었다. 최하급 외도를 잡을 때 처럼 어그로가 튈까 싶어 일단 힘조절을 하는 차원에서 마나를 평소의 절반정도인 10정도만 일으켜 사용했다. 총 마나가 200이니 스무번을 때릴 수 있는 정도였다.
쾅!
준이 휘두른 해머가 골렘에게 적중하는 순간 꽤나 묵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실제로 실드가 얼마나 사라진 것인지 눈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소리만으로도 데미지가 꽤나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쓸만한 놈이 있군.”
막스는 골렘이 움찔거리는 틈을 타서 큰 동작으로 해머를 휘둘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격이 제대로 먹히자 골렘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준은 슬쩍 눈치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해머를 들었다. 해머가 경험치를 쏟아부어서 만든 제작품도 아니었고, 마나도 적게 사용해서인지 어그로가 심하게 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준은 안심하고 원래대로 마나를 실어 타격했다.
쿵! 쾅! 퍼퍽! 딱!
마치 리듬을 맞추듯 공격이 쏟아졌다. 마나를 모두 소모한 근접딜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뒤로 빠졌다. 이제 근접딜러는 무스타파와 마흐무드, 그리고 준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무스타파가 입을 열었다.
“하급헌터로군. 어린놈이 꽤나 실력이 있는 걸.”
20대 초반이면 하급헌터라고 해도 이상한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양계인 준의 외모는 다른 이들보다 평균적으로 몇살은 어려보였기에 무스타파의 반응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었다.
준은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이가 어리든 말든 실력만 있으면 대접해주는 것이 헌터들의 세계다. 준은 묵묵히 망치질을 하며 골렘의 실드를 깎았다.
골렘의 패턴은 꽤나 단순했다. 내려찍기, 짓밟기, 크게 휘둘러치기, 이 세가지를 반복하며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위험한 것은 크게 휘둘러치기 였다. 이 공격을 할 때는 어그로를 끌고 있는 막스를 제외한 근접딜러 전원이 거리를 넓혀야 했다. 골렘의 팔이 길다보니 그 공격의 범위가 넓었고, 정신을 놓고 딜을 하다보면 미처 피하지 못해 얻어맞을 위험성이 있었다. 너무 순조롭게 레이드가 진행되다보면 간혹 그런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하필 지금 그 상황이 벌어졌다.
“피해!”
막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골렘의 동작을 보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준은 황급히 딜을 중지하고 물러섰지만, 정신없이 도끼를 찍어대고 있던 근딜하나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쾅!
“커헉!”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도끼를 든 근접딜러가 골렘의 주먹에 맞아 십여미터를 날아갔다. 맞는 순간 들린 소리로 봐선 즉사였다. 아무리 헌터가 마나의 보호를 받는다해도, 저런 공격을 무방비로 맞게 되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 모습에 놀란 원거리 딜러 들이 순간적으로 딜을 멈추었다.
“근딜들 위치사수 하고, 원딜들은 딜 지속해!”
무스타파가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딜러들이 황급히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쓰러진 헌터쪽으로 자꾸 시선을 주었다. 준도 슬쩍 그를 보았지만, 움직일 생각을 않는 것으로 봐서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정신차리자.’
지금까지 손쉽게 외도를 상대하다보니 방심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것이 레이드 현장이었고, 지금은 그런 일상적인 순간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상기한 준은 머릿속에서 방금의 장면을 지우고 해머를 휘둘렀다.
쩌정! 쩍!
지금까지 들리지 않던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골렘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위기를 느낀 골렘의 움직임이 불규칙하게 변했다. 막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실드가 까졌다. 근딜은 다리 쪽 집중공략하고, 원딜들은 팔을 노려!”
이제부터는 결정체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 골렘은 부서진 부분의 복구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일단 움직임을 제한한 후 일일이 부숴가면서 확인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콰직!
준이 휘두른 해머가 골렘의 무릎을 때리자, 큰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휘청였다.
“딜 좋고! 쓰러뜨릴때까지 때려!”
쾅! 쾅! 쿵!
몇 번 더 휘두르자 골렘이 기우뚱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딜러들이 집중적으로 다리를 공격하다보니 오른쪽 정강이에서 결정체가 발견되었다. 그러자 막스가 재빨리 다가와서 결정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쿠웅. 푸스스-
보기엔 별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막스가 드러난 결정체에 손을 대자마자 골렘의 몸이 구심력을 잃고 무너졌다. 막스는 그 틈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붉은색 결정체를 꺼내들었다.
준은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예상대로 경험치는 오르지 않았다. 특이외도의 엑조틱 에너지는 모두 결정체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저것을 얻어야만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막상 힘겹게 잡고도 경험치를 얻지 못하자 준은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레이드 중에 사망자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후. 운이좋군.”
막스가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총 레이드 시간은 삼십분 가량이었다. 시간도 적게 걸렸고, 결정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분명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헌터 하나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도 막스는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신입들을 데리고 레이드를 하다보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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