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 ----------------------------------------------
던전 출현
그랑튀르 형제단 쪽은 준을 견제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연합측에서 가만히 눈뜨고 보고 있을리 없었다.
“아군이다! 모두 힘을 내라!”
“와아아!”
단 한 명 뿐인 응원군이지만, 접전의 상황에서 단 한명의 존재감은 크다. 게다가 그가 원거리에서 적들을 충분히 괴롭혀 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파동권!”
파앙!
“윽!”
“조심해!”
반경 3미터 가량을 퍼져나가는 파동권의 충격은 데미지와 함께 전열을 흐트러트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 사이로 파고들어 거센 공격을 하는 연합측 헌터들의 공격에 그랑튀르 형제단은 점점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정면을 방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만 뒤통수를 맞으니 전투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파앙! 팡!
준은 가능한 한 빠르게 파동권을 연사했다. 데미지 자체는 높지 않아도 정통으로 맞으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갈 정도의 충격은 줄 수 있었다.
범위 안에 걸려드는 것만으로도 정상적인 전투를 진행 할 수 없었다. 그랑튀르 형제단의 헌터들은 열세를 느끼며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일격에 죽일 수는 없지만, 일단은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괜찮겠지.’
마음 같아서는 대흉근을 소환한 다음에 니들리스 해머를 들고 당장 뛰어들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연합쪽 헌터들에게 자신의 밑천을 전부 드러내 보이는 꼴이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준은 차분히 기술을 연사했다.
“윽. 일단 후퇴해라!”
결국 준의 공격에 버티다 못한 그랑튀르 형제단이 후퇴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낱 도적단 따위가 질서정연하게 군기를 갖추고 도망칠 수 있을리 없었다.
“크악!”
“아아악! 살려줘!”
촤악! 푹!
후퇴하는 그랑튀르 형제단의 뒤를 연합측 헌터들이 쫓았다. 이미 양쪽에서 상당한 희생이 나온 상태였기에 연합측 헌터들도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그들의 단 한 명도 살려보낼 수 없다는 듯 필사적으로 추격했다. 하나라도 더 죽여서 동료의 원한을 갚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양측 모두 전장을 이탈하자, 준은 공격을 그만두고 언덕 아래를 보았다. 십여 구의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추격에 참가하지 않은 몇 사람만이 남아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 명을 세 명이 감싼 형태로 그 한명이 보호를 받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가운데 있는 자만 옷을 입은 태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허리선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라인이 같은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여자인가?”
준이 입을 열어 말하자 그 말을 들은 듯 그 자가 고개를 들어 준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그, 아니 그녀는 모자를 슬쩍 들어 감사의 인사를 했다.
모자 안쪽으로 긴 머리가 살짝 흘러내렸다.
준은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안 끼어들었으면 모를까, 싸움에 참여한 이상 무슨 일인지 알 권리정도는 있다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그 여성은 준이 다가오자 먼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미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준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저쪽이 그랑튀르 형제단이 아니라면 끼어들지 않았을 테니까.”
“어쨌든 도와주셨으니 저에겐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소개할게요. 저는 알카트뢰즈 관리공단 소속의 연구원 루나 미스틸테인이라고 합니다.”
“준 알스버그.”
루나는 전형적인 금발벽안의 미인이었다. 가볍게 악수를 하면서 그녀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준을 응시했다.
“헌데 이런 곳에 왜 혼자 계시는 거죠? 여기는 위험지역입니다.”
“나야 헌터니까. 오히려 그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 걸. 왜 여자가 이런 곳 까지 와있는 거지? 아 오해하지는 마. 여자라고 차별하려는 건 아니니까. 아다시피 여기는 수형소잖아.”
“저는 이곳에서 웜홀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갑자기 던전이 늘어나기 시작한다는 소식에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온 거죠.”
“그렇다는 이야기는 유난히 알카트뢰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건가?”
“아직까지는요.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행성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이대로 계속해서 던전을 탐사할 생각인가? 아까 그놈들은 조무래기들 같던데. 그랑튀르 뒤부어는 아직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다고. 그놈이 나타나면 이런 적은 숫자로는 버틸 수 없을걸.”
“다소 위협이 있더라도 여기서 물러날 순 없어요. 인류를 위해서라도 던전의 비밀은 반드시 밝혀내야할 문제니까요.”
“그전에 죽어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준의 말에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갑자기 이렇게 공격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자들이 어째서 우리를 공격했는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어요.”
“난 어쩐지 알 것 같은데.”
준은 눈앞의 루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남자들만 득실득실한 알카트뢰즈에서 여자를 만났으니, 남자를 건드릴 정도로 굶주린 그랑튀르 형제단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저도 대강은 추측하고 있어요. 놈들은 자신들을 이곳에 가두어 놓은 연합에 증오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때문에 연합정부 사람들로 보이면 일단 공격부터 하고 본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사람이 많지도 않은 이런 산속이라면 특히나 더 그랬을 겁니다.”
“음... 듣고보니 그 말도 그럴듯하군.”
“네? 다른 이유라도 있었던 겁니까?”
루나의 말에 준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네가 여자라서 노림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당장 자신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청 화를 냈었으니, 그녀도 그러지 않는 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그 쪽 말이 맞아. 그보다 던전의 위치는 알고 있는 건가?”
“대략적인 위치는요. 엑조틱 에너지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보통 웜홀이 생성되니 그곳에 있을 겁니다.”
그녀는 팔목에 감아놓은 스마트패널을 꺼내들더니 위성GPS를 보여주었다. 준이 예상한 위치와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크게 멀지는 않았다.
“그렇군. 그럼 함께 움직이는 건 어때?”
“그쪽도 목적이 던전 인 겁니까?”
“모른 척 하지 말지. 이시기에 여기에 있는 이상 던전이 목적인 건 당연하잖아. 그쪽은 혹시모를 습격에 대비해서 든든한 아군이 있어서 좋고. 나는 던전의 위치를 알 수 있어서 좋고. 윈윈이라고 생각하는데.”
준의 말에 루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함께온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머리를 바짝 깎은 작은 체구의 헌터가 입을 열었다. 가장 연장자로 보였는데, 그가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실질적인 대장인 듯 했다.
“이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다.”
“하지만 볼칸 대위님. 이 사람은 우리를 도와주었는데요?”
“애초에 던전을 노리고 온 자입니다. 조사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잊지마십시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전부 범죄자들입니다. 인간쓰레기 같은 놈들이죠.”
볼칸 대위는 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준은 입맛이 썼다. 기껏 도와주었더니 쓰레기 취급이나 당할 줄은 몰랐다.
당장이라도 확 뒤집어 버리고 싶었지만 준은 최대한 자신을 억눌렀다. 막스와 대화를 하면서 배운 것이지만, 상대와 대화를 할 때는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했다. 먼저 흥분하게 되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그러다 보면 허점을 보이게 된다. 특히 저런 자들은 일부러 도발을 해서 상대방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준은 일부러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훗. 누구 덕에 목숨이 붙어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모양이지?”
“네가 없었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안전한 후방에서 기공파만 날린 주제에 자신의 힘으로 저들을 물리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볼칸은 준이 다된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준이 나타나기 전까지 팽팽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실력은 꾸준히 훈련을 받은 자신의 부하들이 더 뛰어났고, 시간만 더 있었다면 준이 오지 않았어도 결국 이겼을 거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준의 도움으로 희생자가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렇다만.”
“건방진 자식. 싸구려 영웅심리로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선...”
“건방진 게 누구인지 모르겠군. 당신 부모는 생명의 은인에게 그리 대우하라고 가르치던?”
뿌득!
“그래도 약간의 도움은 되었다 생각해 참았더니 너무 기어오르는 구나. 죽고싶은 거냐? 꼬마야?”
불칸이 얼굴이 시뻘개진채 으르렁 거렸다. 그의 한손은 이미 허리춤에 가 닿아 있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빼어들 기세였다.
준도 싸움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가 연합의 군인이라고 할지라도 은혜를 원수로밖에 갚을 수 없는 자에게 고개를 숙일 생각은 없었다.
숫적으로 부족하긴 하지만 정 위험하다면 대흉근이라도 소환시킬 작정이었다.
“그만. 그만 하세요. 두분다.”
루나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준도 잠시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를 식혔다. 다만 불칸은 아직도 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만 얼굴에 힘 빼. 10년은 더 늙어 보이니까.”
“큭.”
준이 그런 불칸의 속을 슬쩍 긁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검을 빼어들기엔 루나의 눈초리가 너무 매서웠다. 그녀가 자신의 상관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임무가 그녀를 보호하는 것인 만큼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녀가 이 알카트뢰즈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일단 함께 가도록 하죠. 대신 던전의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는 말아주세요. 사람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조사에 방해가 되니까요.”
“조사가 끝난후에는 괜찮은가?”
“네. 그때는 어쩔 수 없겠죠.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질 것도 아닐테니까.”
루나의 말에 준이 한 마디 덧붙였다.
“만약 다른 놈들이 먼저 있으면 어떻게 할 셈이지? 지금 이 산의 주위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던전을 찾기 위해서 수색을 하고 있어. 우리보다 그쪽이 먼저 찾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양해를 구하는 수밖에요. 수형자 분들은 결정체를 좋아하니, 그걸로 잠시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던전을 발견한다고 해도 바로 입장할 수는 없었다. 다른 레이드 팀이 모두 모여야 들어가는 만큼 그 사이 조사를 한다해도 충분했다. 다만 먼저 던전을 발견한 이들이 정부인사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었다.
그걸 무마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결정체를 건네주는 것이다. 헌터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툼없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욕심만 안부리면 될 것을...”
“네? 뭐라고요?”
“아, 아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을 뿐.”
준은 올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정도의 실력이면 얼마든지 이곳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욕심을 부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결국 하지 않아도 될 잘못을 하게 되었고,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하나둘 씩 연합소속의 헌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볼칸 대위 직속의 부하들로, 분대급의 인원이었지만 그 중요성 때문에 대위인 볼칸이 지휘를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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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 필력이 부족함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내일은 더 잘써지길 바라면서 노력하지만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흐흐.
하려던 이야기는 사실 이게 아니라...
사정상 내일은 연재가 힘들 듯 합니다. 하루 푹 쉬고 다음날 부터 힘내서 다시 달리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