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54화 (5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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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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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다행인지 정예외도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와서는 위험조차도 되지 못하는 일반외도들과 그 사이 섞여 있는 특이외도를 물리치고 나아가니 통로의 끝에서 커다란 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너머에 이 던전의 에너지원이 있어요.”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설명해주니 따로 준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애초에 던전 자체가 일방통행의 길이 아닌만큼 가는 중에도 통로가 여기저기 나 있었는데, 그녀가 없었다면 계속해서 준이 방향을 알려줘야 했을 것이다. 물론 딱히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감이라고 우길 수밖에 없었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준이 알려준 방향으로 갔다가 정예 티그리스가 나타났으니 바스라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우려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루나의 존재로 해결되니 준은 내심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문이라... 무슨 고대신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군.”

바스라는 약간 감탄하며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이쯤에와서는 통로는 상당히 넓어져 있어 높이가 10미터, 너비는 거의 20미터에 달했다. 거기다 천장을 떠받치는 기둥과 거기에 새겨진 독특한 문양의 조각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일행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불길한데.”

바스라가 입을 열었다. 누가봐도 수상하게 생긴 문이니 만큼 그 안쪽에 무언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솔직히... 좀 겁이나는 군요.”

루나의 말에 몇몇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통로에서 마주친 티그리스만 해도 엄청나게 고생하면서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안에 있는 녀석은 티그리스보다도 훨씬 더 강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녀석을 과연 이 구성을 잡을 수 있을까?

던전에 들어오기 전만해도 자신만만하던 그였지만 막상 이 커다란 문 앞에 서자 위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들어가기 전 부터 겁을 먹을 이유가 있을까? 만약 던전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던전을 클리어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겠지.”

볼칸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실제로는 다른 지역의 레이드 팀에서 던전을 깨는데 성공했었다. 그들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 역시 디테일한 정보는 없었지만 그들이 성공했다면 자신들이 실패할 이유는 없었다.

‘흠... 문이라.’

다른 사람들이 문 뒤에 무엇이 존재할까를 생각하는 동안, 준은 이런 곳에 인공구조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웜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별로 없으니...’

인간이 만든 것일리는 없다. 그렇다면 웜홀 뒤편의 다른 어디선가에서 이런 걸 만들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외도자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신기한 것으로 따지만 문 같은 것보다는 외도의 존재 자체가 더 이상한 것이다.

‘모르겠군. 외도가 이걸 만들었을리는 없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런 던전을 만들어 우리 우주에 뿌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야 추측일 뿐이다. 일행은 문을 천천히 밀었다. 대여섯 명이 붙어서 열자 문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기이잉-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쪽에서 은은한 빛이 느껴졌다. 안쪽의 광경은 넓은 대전이었다. 대성당의 회랑을 방불케 하는 열주가 죽 이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붉은 색 융단으로 보이는 것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몇 단은 높게 쌓여진 단 같은 것이 있었다.

그 단 가운데 커다란 의자하나가 있었다. 돌로 된 작은 의자였으나, 주변의 다른 기물이 없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리고 그 의자위에 한 남자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준은 그 얼굴이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온 인간이 자신들을 제외하면 그밖에 없었으니까.

“그랑튀르!”

바스라가 외쳤다. 그러자 멀리 의자에 앉아 있던 그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시선이 불안정했다.

“아아. 그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랑튀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뭐지? 느낌이 이상한데?’

준은 통합정보시스템을 열어보았지만 그의 상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루나가 손에 들고 있던 엑조틱 검출기를 두드리더니 외쳤다.

“저 자에요! 저 자에게서 강렬한 엑조틱 반응이 일어나고 있어요!”

“뭐라고?”

준은 그녀의 말에 미니맵을 펼쳐보았다. 미니맵을 확대해보니, 확실히 현재 그랑튀르가 있는 위치에서 던전의 핵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준은 그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의자의 아래로 붉은색 양탄자가 넓게 퍼져 있었다.

‘아니... 저건.’

하지만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이 양탄자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흐르고 있는 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의자의 뒤로, 어둠의 베일속에 감추어져 있는 시신들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기 뒤에 시체가 쌓여있군.”

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의자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냥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체의 더미였다. 그랑튀르에게 시선이 팔렸던 탓에 그늘진 곳에 쌓여있던 시신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 놈들은... 그랑튀르 형제단 놈들이겠군. 부하를 죽인건가...?”

바스라가 입을 열었다.

뚜벅. 뚜벅.

그랑튀르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신고 있는 가죽장화에서 혈흔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너희들이 다인가?”

그랑튀르의 상의는 반쯤 풀어헤쳐져 있었다. 그 사이로 가슴 한가운데에 주황색으로 빛나는 결정체가 눈에 띄었다. 그 모습에 모두들 헉 하고 헛바람을 들이 삼켰다.

“무슨...? 결정체를 몸 안에 이식했다고? 인간의 몸으로?”

루나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말인가? 흥미롭지 않나?”

그랑튀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무슨 짓을... 네 부하들은 어떻게 된거지?”

볼칸은 그의 뒤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대략 스무 구에 이르는 사체를 가리키며 외쳤다.

“아아. 녀석들도 영광으로 생각할거야.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거니까.”

“뭐라고?”

대답은 볼칸이 했지만 다른이들도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뒤의 녀석들은 이 기묘한 행사에 희생된 모양이었다.

그랑튀르 뒤부어. 강도강간 및 각종 혐의로 징역 170년을 받고 알카트뢰즈에 수형중인 사내. 이 행성에 도착한 그는 평생동안 황량한 사막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절망에 빠졌다.

이 삭막한 행성에는 인간으로서 즐거움을 느낄 만한 것이 없었다.

비록 몸은 자유로웠지만 식량이라는 족쇄로 강제로 묶인 그들은 그저 매일같이 외도를 사냥하며 얻는 결정체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을 이어갈뿐이었다. 그나마 수형기간이 짧은 이들은 그것을 희망으로 삼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랑튀르는 평생을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은 상태.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렇게 비참하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몇몇 수형자들과 함께 거주지를 이탈하고 다른 헌터를 사냥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랑튀르 형제단의 시작이었다.

식량문제는 외도를 잡아먹으며 해결했다. 식용이 가능한 몇몇 외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외도는 먹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인성을 마비시킨다. 그로 인해 때때로 인간으로선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대신 그들이 가진 마나량을 늘려주는 순기능도 있었다.

어쨌든 순조롭게 자유생활을 이어나가다보니 처음에는 몇 명 정도에 불과했던 조직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유사한 처지에 있던 헌터들은 많았고 그들을 유혹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백여 명의 단체로 성장한 그랑튀르 형제단은 레이드팀을 습격하는 정도를 넘어서 작은 마을을 습격하여 그곳의 물자를 약탈하는 정도까지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반복되는 범죄는 결국 꼬리가 잡혔고, 카랑카 마을에서 헌터들과 군인들의 협공을 받아 절반의 사망자를 남기고 겨우겨우 목숨만 챙겨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게 카랑카를 떠나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는 나하라 주변에서 나타났다는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던전에서는 막대한 양의 결정체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결정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미끼로 더 많은 헌터들을 끌어모아 다시금 자신의 조직을 키울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조직을 만들어 언젠가는 이 행성을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던전을 찾아 들어간 그는 거침없이 외도들을 깨부수고 들어가 마침내 마지막 방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이게 뭐지?”

던전의 중심부, 그곳에는 자그마치 주황색 외도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중급헌터인 그랑튀르는 어렵사리 녀석을 물리칠 수 있었다.

헌데 그 외도를 죽이고 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결정체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 본적없는 회색빛깔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자, 그랑튀르는 머릿속에 강렬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먹어라.’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 처럼 그 회색빛의 결정체를 입안에 털어넣은 그는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깨닫기 전, 이미 그는 부하들의 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외도라고 불리는, 지금껏 적으로만 생각했던 그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하하하!”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했다. 어차피 인간으로서의 삶도 끝장난 마당에 외도의 삶이라고 한들 그리 다를 것이 있을까? 아니, 오히려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 인간이었을때 느꼈던 온갖 심리적인 불안들이 모두 사라져 지금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가슴 한 가운데에 박혀 빛을 발하는 주황색의 결정체가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이대로 밖을 나가서 헌터란 헌터는 죄다 죽이고 다녀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마치 던전 전체가 자신의 감각기관 안에 놓인 듯, 손바닥처럼 훤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일련의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계속 오거라. 달콤한 죽음을 느끼게 해다오.”

그랑튀르는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훔치며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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