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3 ----------------------------------------------
던전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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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 스피어!”
마지막 한 줌의 마나를 끌어올려 창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창이 거의 활처럼 휘며 엄청난 힘으로 샌드피쉬를 후려쳤다.
퍼억!
오리쉬의 창대에 얻어맞은 샌드피쉬가 거칠게 튕겨나갔다. 당연하지만 그걸로 녀석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다른 동료를 향해 샌드피쉬를 날려 보내기 위함일 뿐이었다.
“어어? 뭐야 이거!”
갑자기 자신의 곁으로 떨어진 샌드피쉬를 보며 놀라는 동료를 두고 그는 황급히 반대쪽으로 달렸다. 어차피 난전상태에서는 어그로도 분산되어 있어 가까이 있는 놈을 먼저 치게 되어 있었다.
동료에게는 미안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도망칠 수 있도록 잠시라도 시간을 벌어주길 바랬다.
‘이제 난 살았...?’
쿵!
그렇게 약간의 죄책감과 살수 있다는 희열을 느끼며 달려나가던 오리쉬가 돌연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이... 이럴수가...’
절망이 뇌리를 스쳤다. 거대한 골렘이 그를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쿵! 쿵! 쿵!
엄청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오리쉬는 그것이 자신의 심장소리인지, 골렘의 발 소리인지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놓고 있었다.
풀썩.
“아아...”
오리쉬는 무릎을 꿇었다.
“하하... 제기랄. 정말 이렇게...”
그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달려오는 골렘을 바라보았다. 거의 3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한 골렘. 살면서 저런 놈은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었다.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리에서 살아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죽을거라면 깔끔하게, 고통없이 죽고 싶었다.
쿵쾅쿵쾅!
눈을 감은 그를 향해 골렘의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더니 거대한 바람이 그를 휙, 치고 지나갔다.
뒤로 풀썩 쓰러지며 그는 생각했다.
‘별로 아프진 않군. 죽는 건 많이 아플거라고 생각했는데.’
헌터로 살면서, 그리고 알카트뢰즈에 오면서 그는 숱한 죽음을 보아왔다. 그들 대부분은 외도에게 일부는 헌터들끼리의 전투에서 목숨을 일었다.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편안하게 죽어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녀석들. 전부 엄살이었구만.’
그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는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프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자신이 계속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오리쉬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서히 눈을 떴다.
“아...?”
몸을 움직여보자 아픈 곳 하나 없이 제대로 움직였다.
쿵! 쾅!
“헛?”
등뒤에서 골렘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골렘이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갔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찰나 그 거대한 골렘이 자신들의 동료를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내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으앗!”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어차피 죽을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그리고 골렘의 목표가 인간이 아니라 샌드피쉬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외도가 외도를 공격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아니, 가끔 그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적어도 헌터들이 근처에 있을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동의 적을 앞에두고 자기들끼리 싸울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골렘은 그런 상식을 모조리 부수고 있었다. 녀석은 방금의 공격으로 축 늘어진 샌드피쉬의 꼬리(로 추정되는)를 잡고는 휘휘 돌리더니 땅바닥에 철푸덕,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내리쳤다. 녀석이 아무리 고무와 젤리의 중간 정도로 탄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충격을 받고서도 멀쩡하면 그건 붉은색 외도가 아니었다.
쿵! 쿵! 철푸덕!
녀석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상대했던 녀석을 몇 번 땅이 울릴 정도로 내리치더니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붕붕붕!
처음에는 애들 장난처럼 보였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골렘은 거의 샌드피쉬의 몸이 일자가 되어 찢어지기 일보직전까지 돌리다가 손을 툭 놓았다.
휘이잉!
“어어어?”
샌드피쉬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거리까지 날아가는 것을 보며 오리쉬는 자신의 눈을 계속해서 비벼야 했다.
쿵! 콰지직!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이 전장에 없었던 새로운 인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쪽은 아직 한창 전투중이었다. 그리고 그자 역시 자신들이 애먹었던 샌드피쉬를 너무나도 손쉽게 요리하고 있었다.
쿵!
쩌저적!
그자가 바닥을 커다란 해머로 내려칠때마다 샌드피쉬가 펄떡이며 땅위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럴 때마다 샌드피쉬는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었다. 녀석은 거의 공격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쿵!
결국 놈은 마지막으로 내리친 해머에 땅위로 펄떡 뛰어오르더니 두 번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저게 말이 되는 건가...?”
저런 식으로 땅을 내리쳐 샌드피쉬를 잡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보통 녀석이 땅속에 있을 때는 공격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잠시 기다렸다가 녀석이 공격을 위해 땅위로 몸을 드러낼 때 순간적으로 폭딜을 해서 잡는 것이 일반적인 샌드피쉬의 공략법이었다.
‘땅을 내리찍는다고 해서 샌드피쉬가 데미지를 받을 이유가 없잖아.’
그것은 그가 S급 니들리스 해머의 파괴효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샌드피쉬의 몸 자체는 유연하기 때문에 파괴효과에 면역이지만, 땅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지나치게 유연한 몸이 오히려 충격을 몇 배로 받게 만들었다. 고무공에 상처가 나게 되면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더 쉽게 찢어지게 되는데, 어찌보면 그와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
오리쉬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뭐가되었든 간에 살았다. 살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리쉬!”
그때 멀리서 자신을 향해 동료하나가 소리를 치면서 달려왔다. 같은 레이드 팀에서 오랜시간 손발을 맞추어 왔던 그람제이였다. 그제서야 오리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은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것도 오랜시간 함께 보내왔던 친구에게 샌드피쉬를 던지면서까지 혼자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짓을 한 놈을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겨우 살아남았는데, 이제 동료의 손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리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여차하면 공격을 해서라도 도망쳐야했다.
“너 임마! 응? 왜 아직도 창을 쥐고 있는거야? 다 끝났어! 우린 살았다고!”
오리쉬는 그람제이의 반응이 그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이 약간 얼떨떨해 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래. 다 끝났지. 우린 살았어. 헌데 괜찮은거냐?”
“그래. 다행히 크게 다친곳은 없어. 저기 쓰러진 놈들도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 저 사람이 온 덕에 다행이지 뭐냐. 난 네가 골렘을 향해 달려갈때만 해도 우리가 다 죽을거라고 생각했다고. 샌드피쉬 두 마리도 힘들었는데 골렘이라니.”
“아. 하하. 그래 맞아. 어떻게든 골렘을 막아보려고 했는데... 그냥 스쳐지나가더라고. 하하하.”
오리쉬는 그제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도망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골렘을 혼자서 상대하려고 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어쨌든 그 오해덕분에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골렘은 어떻게 된거야?”
“몰라. 샌드피쉬를 처리하더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에 그냥 왔어. 아무래도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것 같은데?”
“저러다가 갑자기 공격하는 거 아니야?”
“글쎄... 일단 부상자는 멀찍이 떨어뜨려 놓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좀 불안하지? 저렇게 큰 골렘은 처음 보니까.”
오리쉬는 그람제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말도안되게 크냐하면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녀석들 중에서는 가장 큰 편이었다.
“저 사람은?”
오리쉬는 바닥에서 죽어나자빠져 있는 샌드피시의 몸에서 결정체를 분리하고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그는 겨우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동양인의 나이가 원래보다 어려보인다는 것을 감안해도 20대 초반을 넘을 것 같지 않았다.
“너도 처음 봐? 아무래도 스토크 사람 같지는 않지?”
“응. 저 정도 실력이면 유명할텐데 모르는 걸 보면 다른 지역 헌터 같은데... 어?”
준을 보고 있던 오리쉬가 이상한 소리를 내자 그람제이도 고개를 돌렸다. 준이 골렘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해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맨손으로 골렘을 상대할 생각인가?”
“저, 저거 저래도 될까?”
오리쉬는 약간 긴장하며 준을 바라보았다. 그람제이도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내가 골렘을 향해 하는 말에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렸다.
“내가 그 짓하지 말라고 했지? 기껏 잡은 놈을 그렇게 날려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당장이라도 골렘에게 얻어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골렘은 오히려 그 사내의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저건...”
“주인에게 혼나는 애완동물 같은데...?”
오리쉬의 말을 그람제이가 받았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자신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마주치게 되면 사람은 두 가지 행동을 보인다.
포기하고 인정하거나, 아니면 자기합리화를 통한 현실도피를 하거나.
“저거 혹시 그냥 소환수 아닐까? 마법사들은 골렘같은 거 잘 쓰잖아.”
“그, 그럴거야. 아마도. 틀림없어.”
아마도에서 틀림없는 사실로 넘어가는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현실을 부정하기로 결정했다.
준은 샌드피쉬에게서 나온 결정체를 집어들고 대흉근에게 다가갔다. 최근 재미를 들였는지 툭하면 외도를 저렇게 날려버리곤 했다. 아무래도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너 임마.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그러면 너에게 줄 결정체를 못건진다고.”
-미안. 잘못했다. 안 그런다.
준이 화를 내는 듯 하자 대흉근이 꼬리를 말고 수그러들었다. 어휴, 하고 한숨을 쉰 준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습관대로 그냥 말했구나.’
얼마전부터 대흉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번거롭게 델타를 통하지 않고 그냥 지시하는 것이 습관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외도를 꾸짖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뭐,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이상하게 보이긴 하겠군.’
그보다 대흉근을 부린다는 사실 자체가 더 이상하지만, 준은 그 부분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애써 변명하거나 해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에 흘러넘쳤다.
“그럼 이만.”
준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헌터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던전의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준과 대흉근의 사이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대체 그가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이 던전안으로 사라지자 그람제이가 뭔가에 홀린듯이 입을 열었다.
“어? 저기 들어가면 안되는데...?”
“마, 막아!”
“멍청한 녀석아. 이미 들어간 걸 어떻게 막아!”
“그럼 당장 들어가서 데리고 나와!”
“저길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 여기있다가 죽을뻔했던거 벌써 잊었어?”
중구난방처럼 터져나오는 헌터들의 목소리들 가운데 마지막의 외침은 오리쉬의 것이었다. 그는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곳에 있다가 또 외도가 튀어나오거나 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의 말에 그제서야 현실을 깨달은 나머지 헌터들이 쓰러진 자신의 동료들을 보았다. 그들때문에라도 이곳에 더 있기는 힘들었다.
“그럼 저 사람은 어떻게 하지?”
그람제이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니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만약 그자가 던전안에서 죽는다면 별 상관없겠지만, 만에하나 던전을 깨버리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제대로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라도 책임론이 불거질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은 그 피해를 입을 당사자가 한두 명 일때나 통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백 여명에 가까운 헌터들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와중에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모른 척 해.”
오리쉬의 말에 그람제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뜻을 깨달은 그는 다른 헌터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들 동의하는 거겠지?”
그람제이의 말에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던전을 지키던 와중에 갑자기 외도가 나타나서 어쩔 수 없이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만 말하면 되는 거다. 그러면 만약 저자가 던전을 깨더라도 우리책임은 하나도 없어지게 되는거라고. 이 바보 멍청이들아.”
“아아. 그렇군.”
“알았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오리쉬가 설명해주자 그제서야 깨달은 다른 헌터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이런 일로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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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하나더 투척. 좋은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