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5 ----------------------------------------------
레벨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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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쾅!
준이 니들리스 스패너를 휘두를 때마다 좀비화 된 시신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일격을 버티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선 일반외도 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팔다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간 채 비척대며 달려드는 좀비들의 모습은 분명 공포스러운 것이지만, 그것들을 상대할 힘이 있을때는 그저 느려터진 샌드백에 지나지 않았다.
크아앙!
한쪽에서는 검둥이가 거대화 한 채 좀비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고 있었다. 오히려 준 보다 녀석이 쓰러뜨린 수가 많을 정도로 검둥이의 활약은 대단했다.
“너도 뭔가 해봐.”
준은 자신의 앞주머니에 들어있는 시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징그러워요오...”
시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다시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거대한 외도를 상대로는 잘만 싸우면서도 저런 녀석들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다니, 뭔가 모순적이지만 또 그게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네가 딱히 할일은 없지.”
그렇게 입구의 안내센터에 있는 좀비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자 조금 시야가 트였다. 준은 검둥이를 불러 미니맵에 보이는 표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벌컥!
캬아악!
돌연 복도의 문이 열리면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준은 대체 이 연구소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대흉근!”
쿵!
결국 일일이 녀석들을 해치우는 것보다는 대흉근을 부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흉근의 커다란 덩치는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컸다.
“처리해.”
-알았어. 그거 한다?
“그거...?”
준이 잠시 녀석의 말이 무슨 뜻인가를 생각하던 찰나 대흉근이 갑자기 두 주먹을 맹렬한 기세로 비비기 시작했다. 이윽고 대흉근의 주먹에 스파크가 튀더니 불길이 확 일었다. 그제서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를 깨달은 준이 황급히 외쳤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야. 그거 안...”
화르륵!
콰앙!
대흉근이 주먹을 내리치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그러자 복도를 막아서고 있던 수십의 좀비들이 한꺼번에 불이 붙더니 고통스러워 하며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윽... 이럴까봐 말리려고 했는데.”
매캐한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러자 이윽고 스프링쿨러가 동작하며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아아-
“끙. 괜한 짓을 했네.”
설마 녀석이 나오자마자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던 준은 다시 대흉근을 인벤토리로 집어넣고, 타다만 좀비들을 향해 니들리스 스패너를 휘둘렀다.
뒤쪽에서는 여전히 검둥이가 따라붙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 않는 녀석들이라 한 번에 머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지겹게 달라붙었다.
‘그리 세진 않은데 귀찮긴 엄청 귀찮군.’
만약 누군가 준의 발목을 잡을 생각이라면 좋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준이 쳐들어 가는 입장이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이 정도 시간을 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겨우겨우 좀비들을 처리하고 나니 스프링쿨러도 동작을 멈추었다. 준은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 양쪽으로 활짝 열린 문안에는 수없이 많은 실험도구들이 있었다. 루나의 말대로 하루아침에 준비한 것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십년 이상 연구를 진행하던 곳으로 보였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군.”
예상했던 해부된 인간이라던가, 실험용 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플라스크와 컴퓨터 등의 기계들만 잔뜩 들어가 있는 실험실들이었다. 아마 제대로 된 물건들은 연구소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경험치가 들어오는 걸 보니, 어쨌든 이 좀비들도 전부 외도는 맞나보군.”
그 양이 극히 적긴 했지만, 분명히 잡을때마다 경험치가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시미와 검둥이까지 나눠가지다 보니 지금껏 백여마리의 좀비를 잡았음에도 들어온 경험치는 겨우 10이 조금 넘을 뿐이었다.
대충 계산해봐도 마리당 1도 되지 않는 경험치였다.
준은 그렇게 좀비를 처리해가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좀비를 사냥하는 것에 질려가고 있을 무렵 비척거리는 좀비들 가운데서 날카로운 기세하나가 준의 심장을 파고 들어왔다.
“읏?”
퍼억!
“큭!”
준은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단 일격이었지만 체력이 300가량 빠져나갈 정도였다. 하필이면 맞은 곳이 심장부근이었기에 더 충격이 컸다.
“누구냐!”
하지만 준의 외침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좀비들 틈에서 몰래 공격을 성공시킨 녀석은 어느새 도망치고 없었던 것이다.
“약삭빠른 놈이군.”
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심장에 정확히 명중한 공격이었다. 어차피 5분이면 회복될 데미지라고는 하지만 그토록 가까이 접근 했을때까지 몰랐다는 것은 심각한 실책이었다.
준은 더욱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놈은 일격에 준을 죽일 작정이었던 것인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던 준은 복도 끝에 넓은 휴게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정갈했을 그곳은 이제 부서진 자판기와 의자들, 흘러나온 캔음료의 잔해들로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준은 꽤나 엽기적으로 생긴 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 참...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녀석은 머리가 두개에 팔이 네 개, 다리가 두개 달린 괴물이었다. 키는 이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신 덩치는 어마어마하게 큰데다 마치 오뚜기 인형처럼 보일 정도로 배가 부풀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통합정보시스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애당초 녀석들은 외도백과사전에 실릴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두 사람의 헌터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으니까.
“크크크! 지옥에 온것을 환영한다!”
“내 이름? 내 이름은 인간도살자!”
“아니다! 내 이름은 나이트레이더!”
“누구 마음대로! 내 이름이 멋지지!”
“아니다! 내이름이 더 낫지 않냐!”
두개의 머리가 제멋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준은 그 꼴사나운 모습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름 같은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보아하니 실험체인 모양인데, 그렇게 불편한 몸으로 싸울 수나 있겠냐?”
솔직히 말하면 녀석의 몸은 전혀 싸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일단 다리가 네개라는 점에서, 그리고 녀석들의 팔다리가 각각 다른 이의 명령을 받는 다는 점에서 그랬다.
“퓨, 퓨젼! 퓨전하면 네 배는 강해진다!”
“아니다! 두 배지!”
녀석들이 다시 서로 싸울 기색을 보이자 준은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골렘 1,2,3호!”
쿵! 쿵! 쿵!
휴게실의 내부는 제법 넓었기에 4미터에 달하는 녀석들이 충분히 들어차고도 남았다. 갑자기 나타난 골렘시리즈에 놀란 괴물이 눈을 꿈뻑이며 입을 다물었다.
“인간도살잔지, 나이트쉐이던지 간에 이곳에 있는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게 너희들이겠지?”
“아니다. 그건...”
“닥쳐. 말하면 안 돼!”
“그래. 말하면 안 되는 그분이다.”
쿵! 쩍!
맨 앞에 있던 골렘 1호가 괴물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녀석의 몸이 눌려지더니 다시 퉁, 하고 골렘 1호의 주먹을 튕겨내었다.
“후. 깜짝 놀랐다.”
“선제공격 비겁하다! 비겁해!”
두 녀석의 입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나불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치 고무공같군. 골렘시리즈의 질량타격에도 신체에 별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 저런 식의 공격은 죄다 흡수한다는 건가?’
신체가 마치 고무처럼 유연하다. 그러면 니들리스 해머도 사용불가, 인간형이긴 하지만 저런 몸에는 스턴도 먹히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준은 일단 골렘시리즈를 앞에 세워놓고, 원거리 공격을 시도했다.
“더블 애로우!”
“파동권!”
퍼펑! 펑!
양손에 하나씩, 두개의 기술을 동시에 내뿜은 준의 공격이 쌍두괴물에게 적중했다.
“하하하. 간지럽군!”
“난 좀 따가운데!”
“그건 네가 약하니까?”
“병신아. 니가 나잖아!”
생각보다 내구성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고무처럼 탄력이 있는 괴물이라면 날붙이로 공격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하필 준은 검같은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다.
“검둥아. 저 녀석 좀 공격해봐. 발톱으로.”
-네. 형님.
좀비를 전부 해치우고 작아져 있던 검둥이는 메타모포시스 기술을 통해 단숨에 몸을 키웠다. 인간일때에는 결정체가 있어야 거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펠로우쉽을 체결한 이후에는 그의 의지대로 그것을 조절할 수 있었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힘을 사용하면 다시 원래의 검둥이로 돌아가지만 좀비정도를 상대하는데 그리 큰 힘을 소모할 이유는 없었다.
크워어!
골렘들이 계속해서 쌍두괴물을 두들겨 패고 있었지만, 녀석들은 하하하 웃으면서 계속해서 그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어지간한 놈들도 주황색 골렘형제들에게 얻어맞으면 저렇게 멀쩡하지는 못할텐데, 아마도 방어에 특화된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촤악!
그리고 골렘들의 사이로 검둥이가 뛰어들어가 날카로울 발톱으로 녀석의 몸을 찢어발길 듯이 내리그었다.
“으아앗! 개한테 물렸어!”
“바보야! 물린게 아니라 할퀸거지!”
“하여튼 엄청아파!”
“네가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
준은 슬슬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검둥이의 공격은 효과적으로 녀석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아직도 쌩쌩했다. 늑대인간의 발톱은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그 한두 번의 공격으로 쓰러질 녀석들은 아니었다.
확실히 저 녀석은 실드가 없거나 아주 조금만 있었던 대신 육체 자체가 굉장히 탄력있고 질긴 녀석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능력 자체는 별게 없는 것 같은데.’
애초에 저런 몸으로는 공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보아하니 주황색 외도에도 미치지 못한 녀석이 이토록 오랜 시간을 버티는 거 자체가 신기한 노릇이었다.
“하. 결국 그냥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건가.”
당장 머리속에 떠오르는 방법이라곤 그저 저 녀석이 죽을때까지 두들겨 패는 것 뿐이었다. 그때 문득 준의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준은 골렘 1,2,3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니들 흉근이 처럼 손 모양 바꿀 수 있지 않아?
-바꿀까?
-바꿀까?
-바꿀까?
“한놈만 말해!”
준은 지끈 거리는 이마를 쥐고는 외쳤다. 셋 다 거의 쌍동이 같은 존재다 보니 같은 말을 세번이나 들어야 했다.
“어쨌든 손을 칼 처럼 날카롭게 만들어봐. 그래야 저 녀석에게 공격이 제대로 먹힐거야.”
-알았다.
준의 말대로 대표로 골렘 1호만 메시지를 보내왔다. 녀석들은 대흉근보다는 지능이 떨어지는지 준이 확실히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스릉!
세 마리의 골렘이 동시에 양손을 날카로운 검으로 만들었다. 물론 재질이 ‘구리’이다 보니 철로 만든 것에 비하면 그 내구도는 확연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골렘이다. 그 정도 강도 차이는 얼마든지 엑조틱 에너지의 주입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공격! 검둥이 빠지고!”
-넵. 형님.
저렇게 큰 골렘들이 동시에 칼을 난도질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검둥이가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으아아! 얘네 뭐야! 갑자기 변신해?”
“우리도 공격하자! 공격!”
쌍두괴물은 그제서야 위협을 느낀 것인지, 등 뒤에서 무기를 꺼내어 각각의 손에 쥐었다. 네 개 다 검이었는데, 문제는 그것을 휘두를 대상이 다름아닌 구리 골렘이라는데 있었다.
촥촥촥!
깡깡깡!
세 마리 골렘이 휘두르는 검 형태의 팔 6개와 쌍두 괴물이 휘두르는 네 개의 검이 서로의 몸을 난도질 했다. 하지만 피해를 입는 것은 쌍두괴물쪽이었다.
녀석의 공격은 골렘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검에 마나를 싣지도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기술도 형편없는 녀석들이군. 최하급 헌터들이었던가?”
어떤 실험의 희생양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긴 싸움을 끝낼때가 되었다.
“으으... 좋은 싸움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쌍두괴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거대한 몸에서 피를 뿜으며 쿵, 하고 쓰러졌다. 덩치가 덩치다 보니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준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녀석의 시신 뒤에 큰 문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골렘에게 시켜 녀석의 시체를 한쪽 구석으로 밀었다.
‘자동분류는... 좀 찝찝하지.’
그래도 한때 사람이었던 녀석이다. 저 시체를 그냥 두는 것도 보기 흉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흡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