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2 ----------------------------------------------
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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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루나는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군인들에게서 배운 것 같은 경직된 행동도 크게 줄었고, 예전보다 감정표현이 훨씬 잦았다. 크게 웃는 일도, 투덜거리는 경우도 많아졌고 그 와중에 자주 준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피하거나 어려워하는 것 보다는 나았기에 준은 그녀의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가끔 곤란한 질문을 던질때도 있지만 이제는 적당히 받아넘길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의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알고 있었고, 루나도 자신의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흘 정도 나하라와 오아시스를 왕복하며 실러스토를 괴롭히던 와중에 던전이 등장했다.
“거리가 꽤 있긴 하지만 나쁘진 않을 것 같군.”
이번에 새로 나타난 던전은 나하라에서 약 500킬로미터 쯤 떨어진 지역에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가는 데만 하루를 생각해야하는 거리였다. 그래도 한동안 던전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잘만한 곳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혼자라면 그냥 차에서 자도 되지만 그래도 루나까지 함께 하는 던전공략이었다. 그녀까지 차에서 재우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굳이 저까지 따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지금 필요한 것은 어그로시스템의 데이터고, 던전의 데이터는 이미 충분히 모았거든요.”
“애초에 던전에 가본 게 한번이 전부잖아. 이번기회에 데이터를 좀 더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궁금한 것도 있고.”
“5레벨 말인가요?”
루나의 말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그녀를 5레벨까지 올려두려는 생각이었다. 준의 입장에서는 펠로우쉽 대상자가 5레벨이 되어도 인벤토리가 생성이 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인벤토리가 생성되는지, 그리고 혹시 직업이 생성될 수도 있고.”
준도 5레벨에 처음 기술자의 직업을 얻었다. 루나의 경우도 과학자 직업을 얻으면 새 기술이나, 혹은 기존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루나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준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득이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기술은 전부 준이 배울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준에게도 좋은 거지요?”
“그렇지. 기술이라도 생기면 정말 좋은거고.”
“그럼 가야겠네요.”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같이 가고 싶긴 했지만,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거부한 것 뿐이다. 가야할 이유가 생겼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의 합류를 결정하고 나서 준은 다시 숙소를 고민했다.
“오토쉘터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걸 여기서 구할 순 없을 테고...”
외계행성 탐사대원들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설 때 종종 사용하는 오토쉘터는 버튼 하나로 5m*5m 크기의, 외부와 완벽히 차폐되는 공간을 설치하는 물건이었다. 극한 환경에 대비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탐험용 장비중 하나로, 전문가용으로 나온 물건들은 산소발생기에 방사선 차단까지 가능했지만 너무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인근에 다른 도시는 없는 거지?”
“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에요.”
“외도들이 잔뜩 깔려있겠군.”
“아마도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거에요.”
“괜찮아. 대흉근이 있으니까. 골렘 1,2,3호도 있고. 그 녀석들을 믿으면 돼.”
준의 말에 루나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보통은 이럴 때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 않나요?”
“나는 그다지 믿음직한 녀석이 아니거든.”
준의 말에 루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5인용 텐트가 전부였다. 원버튼 형식이고, 바닥에 깔 단열매트도 포함된 물건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인벤토리를 가진 준에게 텐트의 크기나 무게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좀 크더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았다.
현재 준의 경험치는 1만을 넘어서 있었고, 결정체만 3000개가량을 가지고 있었다. 레벨업을 한 이후 델타폰에서 수입이 있었고, 필드사냥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큐브에 들어가는 경험치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10레벨 이후의 레벨업은 꽤나 힘들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 레벨업 욕심도 접어둔 상태였다.
‘10레벨에 필요한 경험치가 10만 정도 였으니, 11레벨을 가려면 최소 15만 이상은 필요하겠지.’
지금으로선 까마득한 수치였다. 물론 이대로 델타폰과 니들리스 시리즈 등이 잘 팔리면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1레벨을 올리기 위한 경험치가 15만이라는 것은 꽤나 뼈아픈 수치였다. 단순계산으로 150억에 해당하는 금액인 것이다.
차라리 그 경험치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큐브를 확장하면 1500칸이고, 험비를 제작하면 50대를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대흉근과 같은 노란색 외도를 15마리 정도를 만들 수 있는 경험치였다.
1레벨을 올리는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너무 큰 것이다.
‘스탯도 정말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것 같군.’
1레벨을 올리기가 힘들어진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스탯을 너무 아무렇게 찍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의 스탯은 현재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등비등하게 올린 상태였다. 그는 잠시 정보창을 열어 스탯을 확인했다.
힘 16(+12) 민첩성 23(+11) 지능 21(+11) 정신력 24(+11)
다행히 스탯을 올리는 기술을 두 개 얻어 약간의 이득을 얻긴 했지만 이래서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은 스탯이 15니까, 한쪽에 올인하는 게 낫겠지?’
준은 가능하면 힘이나 민첩성 쪽으로 찍고 싶었다. 지능과 정신력, 특히 그중에서 정신력은 전투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긴 하지만 준의 입장은 그전에 때려잡으면 된다는 쪽이기 때문에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힘은 찍는대로 돌아왔다. 현재 힘 수치가 28인데, 30을 넘기면 셀럼을 힘으로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킬로그램의 부서진 문을 힘으로 뜯어서 열어버린 그 괴물같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없이 거대해 보이던 셀럼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준은 전율이 일었다.
“크기와 무게는 관계없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을까?”
밥이 내어놓은 텐트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준이 입을 열었다. 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느정도 크기까지 괜찮은거야?”
“글쎄. 한 5미터까지는 괜찮을 거 같은데?”
정육면체를 기준으로 5*5*5를 계산하면 총 125칸의 큐브가 필요한 공간이다. 그 정도면 준이 현재 경험치와 결정체를 소모하여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용 공간이었다.
“5미터라... 그 정도 크기면 빈 창고 하나정도 크기쯤 되겠군. 아예 창고를 뜯어가는 건 어때? 그 안에다가 침대 몇 개 정도 넣으면 그럭저럭 하루 이틀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을걸? 그정도 공간이면 마시거나 씻을 물을 챙겨가기에도 충분할 거고.”
“좋은 생각이군.”
텐트는 아무래도 좁고, 그러다 보면 루나와 부딪힐 일도 많다. 그녀를 텐트에 재우고 자신은 차에서 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녀도 차에서 자겠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빈 창고가 있어?”
“하나 있잖아.”
“아...”
준은 그제서야 자신이 검둥이를 심문할 때 사용하던 창고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정도 크기면 인벤토리에 넣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였다.
‘100칸 정도만 늘려도 되겠군.’
준은 거기에 추가로 넣을 가구 몇 가지를 의뢰했다.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욕조 정도였다. 욕실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것까지 개조하려다 보니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았다.
“한 삼일 걸릴 것 같은데.”
“그 정도면 괜찮아. 그나저나 그물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잖아.”
“궁금하면 가서 봐. 녀석들 아주 죽으려고 하던데. 아마 네 욕을 엄청나게 하고 있을걸.”
밥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익숙치않은 일이다보니 이만저만 고생하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상점을 나와서 막스의 집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좁은 마당에 그물을 펼쳐놓고 네 남자가 끙끙대면서 그물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물 자체가 특수재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엮는 것도 그물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야 했다. 헌데 아무런 장비 없이 그걸 일일이 손으로 하려다 보니 섬세한 바느질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시간이 하릴없이 소모되는 모양이었다.
“잘 되가?”
“끙... 애들 표정 안보이냐? 내가 이일을 왜 맡았나 싶다.”
막스는 사흘 만에 십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그의 투박한 손으로 바느질을 한다는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꽤 어울리는데?”
“야... 솔직히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다. 지금 욕나오기 일보직전이니까 이만 돌아가. 내가 어떻게든 이거 완성시켜서 보여줄테니까.”
“우오오아!”
쿵! 쿵!
갑자가 무스타파가 머리를 쥐어뜯더니 근처에 있는 나무기둥에 머리를 들이받기 시작했다. 결국 짜증을 참지 못하고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막스나 준에게 덤빌수는 없어서 저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았다.
“흠. 이걸로 애들 밥이나 사줘.”
준은 인벤토리에서 결정체 열 개를 꺼내서 막스에게 건넸다. 이렇게 까지 고생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약간 미안한 감정을 담아 건넸다.
물론 이 일을 하나 사냥을 하나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준이 주는 돈이 좀 더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손에 익숙한 일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단 사흘 만에 막스가 저렇게 늙어버린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막스가 결정체를 받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애송이 사장님이 금일봉을 하사하셨다! 힘내서 빨리 끝내자!”
“우오아아! 너 이 통 큰 자식아! 방금 전에 속으로 욕해서 미안하다!”
그러자 아랍형제와 배정현이 환호를 하며 욕인지 칭찬인지 사과인지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지르면서 맹렬한 속도로 바느질을 해나갔다.
알카트뢰즈. 인구 십만의 감옥행성. 그곳에는 해마다 거의 1만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수형지로 떠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수형기간을 마치고 떠나는 이들은 약 7할 가량. 나머지는 아예 이곳에 눌러앉거나, 혹은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랑튀르 형제단처럼 밴디트가 되어 도적떼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밴디트들 역시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이유는 다양했다. 외도들의 사냥감이 되어 죽거나,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자살하거나, 굶어죽거나, 탈수증상으로 죽는다.
하지만 그들 중 아주 적은 숫자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개척되지 않은 오아시스에 정착하여 도시를 이루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일반 개척도시처럼 마을을 이루고, 야생동물과 외도를 사냥하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생필품을 조달 할 수는 없다보니, 그들 중 일부가 평범한 수형자처럼 행세하며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 중 하나가 스토크에서 처음보는 물건 하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게 휴대폰이라는 말인가?”
“델타폰이라는 건데, 일단 이 물건끼리는 통화도 되고 음악이나 영상도 시청가능하지.”
“그럼 통신비는 어떻게 지불하는 거지?”
“결정체를 그 위에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흡수한다네.”
스토크의 상점주인 클라크는 최근 굉장히 살맛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하라에서 직접 공수해 온 델타폰이라는 물건 덕에 상점의 매출이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그에게 눈앞의 헌터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 비싼 물건을 어떻게든 팔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클라크는 이 물건을 살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을 입에 담았다.
“게다가 이 물건으로 그... 19금 동영상도 볼 수 있어.”
“흠...”
그러나 그 헌터는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보통 이 말한마디면 영혼이라도 빼다줄 것 처럼 굴며 물건을 사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인 모습이었다.
‘이 사람 게이인가?’
워낙 특이한 사람이 많다보니 그런 사람 한둘쯤 있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동성간의 연애나 결혼이 일상화된 사회다 보니 딱히 편견같은게 있지도 않았다. 다만 야동을 미끼로 물건을 팔수없게 되어서 아쉽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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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가 마음이 편해졌어...
다음 편은 새벽 5시쯤 올라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