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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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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체력과 정신력이면 한 번에 열 시간 가량의 운전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아니었다. 세 시간 정도 달리고 나자 루나의 표정이 급격히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험비의 승차감이 그다지 좋지 않은데다 길도 오프로드다 보니 세 시간이라고는 해도 엄청난 피로감이 엄습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3레벨에 불과한 그녀의 체력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근처에 쉴만한 곳이 있을까?”
사실 인벤토리에 넣어둔 쉘터를 꺼내면 당장 이곳에서 쉴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곳이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서 쉬고 싶었다.
“아... 전 괜찮아요.”
“그런 얼굴로는 설득력이 없어. 어차피 던전에 들어가는 건 내일이 될 테니까 굳이 무리할 필요도 없다고.”
“저 아이들도 저렇게 멀쩡한데 약간 부끄러워지네요.”
루나는 시미와 검둥이가 뒹굴거리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준이보기에는 시미나 검둥이보다 약한게 당연했지만 그녀는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겉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했지? 저 녀석들 저래봬도 나하라에서 당할자가 없는 녀석들이야. 어지간한 중급헌터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라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제가 어른이잖아요.”
“나이도 쟤가 더 많지만.”
어쨌든 그녀가 말하려고 하는게 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준도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녀의 성격자체가 그런 것을 굳이 일일이 수정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솔직히 시미를 보고 연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였고.
“지형 상 여기가 가장 가까운 오아시스에요.”
루나가 스마트패널을 열어 검색하더니 델타의 맵에 한 점을 찍었다. 준도 맵을 통해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헌데... 뭔가 좀 이상하네요.”
위성사진을 살펴보던 루나가 사진을 확대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준이 흘깃 보자, 오아시스의 위성사진에 무언가 흐릿한 물체들이 찍혀 있었다.
“더 확대는 못해?”
“초점자체가 흐트러져 있어서 확대해봤자 소용없어요. 헌데 이상하네요. 다른 곳의 사진은 정상적으로 찍혔는데 왜 유독 여기만...”
“인식방해라도 걸려있는 거 아니야?”
“위성의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인식방해는 아무나 걸 수 없어요. 그 정도는 최소한 상급헌터 이상이 아니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상급헌터는 알카트뢰즈로 안오지?”
“네. 그 정도 위험인물은 평범한 방식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니까요.”
“그냥 위성카메라에 이상이 있는거 아니야?”
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현재 알카트뢰즈를 도는 위성은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그중에서 몇 개가 고장났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하필 오아시스가 있는 지역만 흐릿하다는 건 말이 안돼요. 이런 건 관리공단에서 직접 수정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그곳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거야? 그것도 위성카메라를 속일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누군가가?”
“아닐 확률이 높긴 하겠지만요. 솔직히 둘 다 확률이 너무 낮은 일이에요. 누군가 이런 곳까지 와서 살고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상급헌터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요.”
“가보면 알겠지.”
준은 차량의 방향을 틀어 루나가 찍어준 곳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 무엇이 있던지 눈으로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설령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잠시 쉬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보여?”
준은 차량을 이끌고 오아시스가 있는 곳으로 진입했다. 어차피 험비의 우렁찬 엔진음 때문에 누군가 이곳에 있다면 그들이 접근하는 것을 모를 리 없다는 생각에 굳이 숨거나 하지는 않았다. 설령 누군가 적대적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딱히 뭔가 보이는 건 없는 것 같은데...”
“좀 더 들어가볼까.”
준은 멀리 보이는 오아시스를 향해 더 가까이 차량을 몰았다. 그러자, 강한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응? 왜 하필 지금...”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이 오아시스쪽으로 차량을 끌고 갈수록 모래바람은 점점 짙어졌고, 종내에는 10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아무래도 수상한데?”
“뭔가 있는 것 같긴해요. 엑조틱검출기에서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있어요.”
루나는 스마트 패널과 연동된 초미량엑조틱 검출기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읽고 있었다. 준이 보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십 개의 그래프가 나열된 모습이지만, 그녀에게는 그 사이에 숨어있는 의미가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적어도, 던전핵급 이상의 엑조틱 에너지가 저 안쪽에서 검출되고 있어요. 뭔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흠... 하지만 이렇게 시야가 보이지 않아서는 더 들어가는 것도 무리야.”
준은 일단 차량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겨우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대기는 언제 모래바람이 불었냐는 듯 다시 쾌청한 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로 수상하면 확실히 무언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군.”
“하지만 저 모래바람을 걷어내지 못하면 안으로 진입은 힘들 것 같아요.”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준이 강하다 하더라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모든 돌발상황을 컨트롤 할 수는 없었다. 골렘들을 풀어서 넣어보는 방법도 잠시 생각해봤지만 녀석들도 시각을 이용해 주변정황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도 무리였다.
“단순 정신교란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아닌 것 같군.”
준은 일단 차에서 내렸다.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루나에게 심하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보이는 위치에서 잠시 쉬어갈 생각이었다.
“물리적인 방해에요. 이 정도의 대규모 인식방해라면 심상치 않은 능력인 것만은 확실하네요.”
“혹시 이것도 정부에서 추진하는 비밀 연구소 같은 게 아닐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 미래연구소를 털어버린 전력이 있다보니 이번에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글쎄요. 정부에서 추진하는 비밀연구소라면 굳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두 군데나 만들어 놓았을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긴 그도 그렇군.”
“하지만 아직 저 안에 있는게 뭔지는 모르니,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겠죠.”
“저기 뭐가 있던 간에, 일단은 좀 쉬도록 하지. 만약 저기서 스스로 우리를 찾아온다면 더 좋겠는데 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쪽에서 대비하고 있는데 찾아오는 불청객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적어도 준은, 이곳 알카트뢰즈에서 누구를 만나든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상황이었다.
준은 일단 인벤토리에서 창고를 개조한 쉘터를 꺼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서 커다란 집이 나타나자 루나는 눈을 깜빡이며 준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지간해선 놀랄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솔직히 대단하네요. 집을 꺼내다니.”
“널 위해서 준비했어... 라고 이야기 하면 좀 바보같이 들리려나?”
“저를 위해서라구요?”
순식간에 루나의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달아올랐다. 준은 속으로 아차하며 자신의 입을 원망했다. 비록 그녀를 위해 만든 것이 사실일지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건 그녀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생색을 내려던 것뿐이야. 별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굳이 그렇게 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평상시의 그녀로 돌아왔다.
“그럼 집 구경을 좀 시켜주시겠어요?”
“얼마든지.”
준은 쉘터의 문을 열었다. 창고자체는 목재로 만들어진 가건물이라 개조하기가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다만 창문을 하나 더 내고, 욕실을 만드느라 시간이 걸린 것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화장실은 오물을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 따로 만들 수가 없었다.
“굉장히 아늑해 보이네요. 어머. 그런데 검둥이는 왜 안들어 오는 거에요?”
루나는 문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검둥이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이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자각한 모양이지. 원래 개는 밖에서 키우는 거잖아.”
-안들어 올거냐?
-형님. 여기 거기 맞죠?
-그래. 그렇다고 설마 내가 널 또 때리겠냐? 그냥 들어와.
-하하. 전 바깥에서 혹시 누가 오는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검둥이는 그렇게 말하곤 정말 충견처럼 문밖을 딱 지키고 섰다. 그 모습만 보면 정말 늠름해 보였지만, 사실 그냥 쉘터에 들어오기 싫은 것 뿐이었다.
“충견이네요. 어디서 저런 똑똑한 개를 데리고 온거에요?”
“자꾸 잊어버리는 모양인데. 쟤 외도라니까.”
“아 참. 그랬죠? 저런 모습을 보면 도저히 외도라고 생각되지가 않아요. 시미도 그렇고.”
시미는 이미 쉘터안의 소파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쉘터의 옥상에는 태양전지판이 붙어 있었고, 쉘터 안쪽에는 펍에서 공수해온 작은 냉장고와 준이 만든 대형 디스플레이가 걸려있었다.
디스플레이 자체는 단순히 델타폰을 크게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경험치가 300정도 들어갔지만 뭐... 티비의 대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아까운 돈도 아니지.’
간이쉘터에 대형 텔레비전과 냉장고, 욕실까지 완비해 두니 준의 숙소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 구축되었다.
차라리 집을 따로 짓지 말고 이런식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장실과 수도를 생각하면 간이쉘터로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전 잠시 쉴게요.”
루나는 그렇게 말하고 두 개 중 하나의 침대에 누웠다.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그녀는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준은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던전부터 해결하자. 이곳에 오는 건 언제라도 가능하니까. 게다가 저 이상한 모래바람에 대한 해결책도 찾지 못했고.’
무작정 밀고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긴 했지만, 일단은 차분히 준비를 하고 다음에 알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곳까지 온 이유는 던전을 깨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해결해야할 일은 그 외에도 많이 있었다. 오아시스에 거점을 마련하는 일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실러스토를 처리한 다음에, 볼칸과 함께 이곳의 정체를 캐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던전핵에 이르는 엑조틱에너지 신호가 잡혔다고 했었지?’
루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저 모래바람 안쪽에 던전핵을 삼킨 누군가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상급헌터의 존재가능성이 확 올라간다는 이야기였다. 던전핵은 인간을 외도화 시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더욱 강력한 힘을 선사한다. 그랑튀르의 경우는 외도화가 된지 시간이 얼마지나지 않았고 그 힘들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에 준에게 쉽게 당했지만, 만약 상당한 기간동안 그 힘을 갈고닦은 녀석이 있다면 상급헌터의 수준에 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물론 그럼에도 준은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상급헌터라고 할지라도 노란색 외도 다섯과 주황색 정예외도 하나, 그리고 자신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급 헌터 중에서 상위능력자 였던 셀럼이 주황색 외도와 1대1이 가능한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상급헌터라면 노란색 외도와 1대1이 가능한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 그 정도 능력자가 다섯명 이상 나타나지 않으면 준에게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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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