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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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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전부 저 오아시스에서 온거겠지? 그곳에 도시가 있는건가?”
“내가 왜 그걸 대답해야하지?”
클라우드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저자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아하니 아직 애송이 같았다. 이런 곳에 여자를 데리고 다닐 정도라면 심성도 모질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자라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그래?”
준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루나가 창가에 붙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준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루나. 뒤로 물러서.
-네?
-별로 볼만한 장면은 아닐거야.
-무슨 말씀이시죠?
-지금부터 난 이 녀석들을 전부 죽일지도 몰라. 굳이 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감당할 수 있겠어?
-준. 절 어린애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하긴 그렇군.
루나의 말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카트뢰즈에 있었던 시간은 준보다 그녀가 훨씬 길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소에 있었을 테지만, 던전을 직접 탐사할 정도로 발로 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였다. 어쩌면 준보다 더 많은 죽음을 보아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밴디트들이 자신을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랑튀르 형제단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곁에 준이 없었다면 그녀가 어떤 꼴이 되었을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그때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
처음 준이 그랑튀르 형제단을 마주쳤을때, 십여명이 죽어나간 상황에서도 그녀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보기보다 험한 일을 많이 겪어 왔다는 증거였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로군.’
준은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꽤나 무시를 당해왔다. 실제로도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유난히 어린애 취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준 자신이 그녀를 연약하고 연구밖에 모르는 여자라고 생각한 것도 결국은 외모로만 판단한 결과였다.
준은 루나에 대한 걱정을 접고 도발적인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클라우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나, 둘, 셋, 넷... 총 18명이로군.”
“무슨...?”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한 명씩 죽는다.”
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얀점퍼를 입은 자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것 같...!”
콰앙!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대흉근이 녀석의 머리위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그자는 단 일격에 온몸이 으스러지며 그대로 즉사했다. 온몸의 뼈가 어긋나고 사지가 찢어진 채 흙구덩이에 찌부러져 있는 모습은, 살인을 밥먹듯이 저지르는 밴디트들 조차도 차마 마주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투툭. 툭.
대흉근이 주먹을 한번 털자, 죽은 자의 뼈와 살점들이 밴디트 들에게로 후두둑 튀었다.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녀석들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것이 방금전까지 살아있던 자신의 동료라는 것을 깨닫고는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욱...”
“웨엑.”
“으음...”
클라우드는 자신이 완전히 무언가를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1분전과 조금의 차이가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저 어린 청년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냉혹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흠... 생각보다 끔찍하군.’
대흉근에게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저런 비쥬얼 쇼크까지 더해질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준은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클라우드를 쳐다보았다.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항상 기분이 더러웠다. 설령 그들이 죽어도 싼 놈들이라 하더라도, 살인의 충격은 고스란히 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냉철’ 스킬을 배워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져 있었을 것이다.
“다시한번 묻지. 저 오아시스에 밴디트들의 도시가 있는 건가?”
“그... 그것은...”
클라우드는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준이 다시한번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하얀점퍼를 입은자들 가운데 하나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있습니다! 있어요! 저 안에 우리들의 도시가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클라우드가 낭패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어차피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입은 아직 열여섯이나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데드맨시티.
그들은 그 도시를 그렇게 불렀다. 밴디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대략 300명 정도가 모여살고 있는 도시였다. 정확히 언제 만들어 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3년은 넘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300명이나 되는 밴디트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는 말인가? 대체 식량은 어떻게 조달하는 거지?”
알카트뢰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식량이다. 경작은 애시당초 불가능하고, 야생동물들의 숫자도 극히 적었기 때문에 그정도의 인원이 모여있다면 식량수급이 원활할리가 없었다.
“일단은 외도를 사냥하면서...”
“어차피 인간사냥도 같이 했겠지. 어쩌면 인육을 먹었을 수도 있겠고.”
준의 말에 밴디트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분위기상 준의 말에 반박을 할수도 없었거니와, 그 말이 사실과 그리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아. 헌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외도의 고기는 한정되어 있어. 특히 골렘이 많은 이 곳에서는 더욱 먹을 걸 구하기 힘들었을테고. 인육만으로 식량을 보충할수도 없었겠지.”
“부족한 식량은 다른 도시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렇군. 그런 방법도 있었겠어.”
어차피 상점들을 운영하는 주체는 일반 상인들이었다. 수익만 올릴 수 있다면 그 대상이 밴디트든 아니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도시를 감싸고 있는 모래바람은 처음부터 있던 것인가?”
“아닙니다. 최근 1년 사이 생긴것입니다. 새로운 헌터가 도시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은?”
“그, 그것은...”
하얀점퍼를 입은 자들의 시선이 전부 클라우드에게로 향했다. 준은 그 시선의 의미를 깨닫고는 입술을 깨문 채 침묵하고 있는 클라우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시로 들어가는 방법을 아는 자가 한정되어 있다 그거로군.”
“...그건 나도 모른다.”
“정말 모를까?”
준은 클라우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준이 걸음을 옮길때마다 밴디트들의 움찔하며 조금씩 물러섰다.
준은 클라우드에게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말해라.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그, 그건...”
준은 순간적으로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두려움 때문에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짧은시간에 준의 급소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스릉!
턱!
하지만 그가 소매 속에 숨겨놓은 단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준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더 빨랐다.
“이런 걸 숨겨놓고 있었던가.”
“크윽.”
준은 클라우드의 손목을 쥐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가 아무리 중급헌터라 할지라도 전문적으로 근력을 단련하지 않은 이상 준의 힘을 감당 해 낼 리가 없었다.
뿌드득!
“크아악!”
준이 녀석의 손등을 힘으로 부러뜨리자, 클라우드의 손에 쥐어져 있던 단검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윽.
준은 그의 목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클라우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준의 눈동자는 조금의 감정변화도 없었지만, 그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속에서 그는 무서울 정도의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 이제 말해봐.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거지?”
“마, 말하면 살려줄 건가?”
“제대로만 말한다면.”
“그걸 어떻게 믿지?”
“계약서라도 써줘야 하나? 어차피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말하거나, 말하지 않고 죽거나.”
뿌드득.
준은 녀석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커헉.”
클라우드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자는 절대로 자신을 살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도시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나면 틀림없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죽기는 싫었다.
“기, 길이 있다. 쿨럭.”
준이 목을 쥔 손을 놓자, 거세게 기침을 반복하던 클라우드가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만약 제시간을 맞추지 못한다면 우리도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시계도 없는데 시간을 어떻게 맞추지?”
“태양의 위치를 보고 파악한다.”
준은 클라우드가 꺼내든 소형 수제 해시계를 보며 혀를 찼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그것은 비록 정교하기는 했지만 22세기에 사용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기원전도 아니고 해시계라니... 잘도 이런 물건을 사용하는 군.”
알카트뢰즈는 지구에 비해 자전축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지는 않아 비교적 해시계의 오차율은 낮았다. 그렇다 해도 매일 조금씩 시간이 어긋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용하다보면 감으로 시간을 알 수 있다.”
“나야 길만 알 수 있으면 그만이지. 안내해.”
준은 클라우드를 포함, 17명의 밴디트들을 이끌고 오아시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루나.
-네. 말씀하세요.
-넌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검둥이를 놓고 갈테니까, 무슨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같이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 던전이라면 모를까, 밴디트들은 좀 달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혹여나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너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
루나의 현재 체력은 145에 불과했다. 거의 6000에 가까운 준에 비하면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약 저들의 도시에 진입했다가 무슨일이 생긴다 해도 준 자신은 얼마든지 도망쳐올 자신이 있었지만 루나는 달랐다.
그녀의 체력으로는 자칫 잘못했다간 큰 상처를 입거나 사망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기다릴게요.
-일단 오늘은 동정만 살펴볼테니까, 금방 돌아올거야. 아무리 나라도 300명이나 있는 도시를 혼자서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은 거짓이었다. 던전핵의 보유자가 데드맨시티 안에 있는 것이 확인 된 이상, 준은 반드시 그자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던전핵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이다. 인간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칼 레이건을 제 시간에 죽이지 못했다면, 녀석은 헌터들을 납치하여 실험을 지속했을 것이고, 알카트뢰즈 전체가 외도화 된 헌터에 의해 점령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물며 데드맨시티의 모래바람은 1년 전부터 지속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녀석이 칼 레이건 이상 가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었다.
‘내 고객들을 그런 식으로 잃을 수는 없지.’
준에게 인간들을 외도의 공격에서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정의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느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 앞서, 준이 행동하는데에는 개인적인 이해타산도 깃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알카트뢰즈에 문제가 생기면 준의 사업에도 같이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4월 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2015년이 된게 어제같은데 벌써 4개월이 지나다니.
시간이 정말 총알 처럼 지나갑니다. 이 아까운 시간들,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