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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칸과 공병대가 상점과 펍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 함께 쉘터에서 며칠 간 지냈고, 그들이 떠난 이후에도 관성처럼 한 집에서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생각해보니 두 번인가.’
처음은 자신이 강제로, 두 번째는 루나쪽에서 강제로 시도했다. 어느쪽이든 강렬한 기억이었기에 이쪽은 잊을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 이라고 한 이유는, 그저 이상하게 보이기 싫어서였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은 실수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왕 거짓말을 할거라면 처음부터 부인하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이미 밥은 재미있는 화제거리를 찾았다는 듯 마스터에게 달려가고 없었다. 아직 막스 일행도 도착하지 않았고, 다른 헌터들이 자리를 잡기에는 시간이 걸렸기에 당장 밥의 말상대는 마스터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르겠다. 흘러가는대로 두자.”
매번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결론도 나오지 않는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마음이 움직인다면 좋고, 그렇지 않는다면 않는대로 가면 될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어색하기만 할 뿐 사태의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발전기 재고숫자를 맞추고, 해가 지기전까지 델타폰을 좀더 생산한 준은 저녁 시간이 되자 느긋하게 펍으로 향했다. 이미 펍 안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준이 넘긴 실러스토의 살로 만든 요리였다.
“뭐가 나올지 모르겠군.”
준은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펍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넓은 테이블에는 네 사람분의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밑, 준의 바로 옆자리에 검둥이를 위한 그릇이 놓여져 있었다.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실러스토는 민물고기임에도 불구하고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았고, 지방질이 많아 육질은 거의 돼지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각종 야채를 같이 익혀 맛의 균형을 잘 맞추었고, 레몬소스는 자칫 느끼해 질 수 있는 맛을 잘 보조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것 하나하나 일일이 따지면서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최근들어 마스터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한 음식들을 자주 먹다보니 자연스레 입맛만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빵조각이라도 주워먹으면 돈 굳었다며 좋아했던 준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식사는 적당히 끝났다. 건강수치가 2퍼센트 오른 것을 확인한 준이 흡족한 얼굴로 마스터에게 감사를 표했다.
“헌데 돈은 따로 안줘도 되겠어?”
“괜찮아. 덕분에 실러스토를 요리해 봤으니 돈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이지.”
“어쩐지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악덕업주가 된 것 같군.”
“어차피 이 집도, 그리고 그 재료도 모두 준 자네 것인데 내가 함부로 돈을 받을 수는 없겠지.”
“아니. 그 정도는 마스터 쉐프를 위해 주는 커미션 같은 거라고 생각하라고. 그리고 할 말이 있는데...”
준은 마스터와 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준은 그들에게 펠로우쉽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펠로우쉽의 숫자를 늘릴거라면 자신과 직접 계약을 하는 이들은 가능한한 믿을만하고 친한 이들을 엮는 것이 당연했다.
곧 막스가 오면 막스에게도 제안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의 부하들은 제외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막스가 5레벨에 도달해 스스로 펠로우쉽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면 그때 가서 펠로우쉽 시스템 안으로 편입하면 될 문제였다.
준은 식사를 마치고 와인한잔을 들어 가볍게 입가심을 마쳤다. 보아하니 마스터와 밥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상상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준이 헛기침을 하고는 마스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마스터를 헌터로 만들어 준다고 했었던 거 기억나?”
“흠. 그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는 것 아니었나?”
“뭐, 그렇긴 한데.”
열마디 설명보다는 한 번 직접 보여주는게 낫다는 생각에 준은 마스터에게 펠로우쉽을 걸었다. 갑자기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메시지에 놀란 마스터가 준을 바라보았다.
“이게 뭔가?”
“펠로우쉽 시스템이라는 건데... 설명하긴 귀찮으니까 그냥 수락하면 알게될거야.”
“흠... 솔직히 수상하지만 문제 될 일을 시키지는 않겠지.”
마스터는 아주 잠깐 주저했지만, 곧 바로 수락을 눌렀다. 준에게도 마스터와 펠로우쉽이 체결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용자 ; 아이작 패튼
레벨 ; 1
클래스 ; 초보자
칭호 ; 펠로우쉽의 대상자(모든 능력치 +1)
능력치
체력 145/145 마나 21/21 경험치 0 잔여 스탯 0
힘 15(+1) 민첩성 13(+1) 지능 18(+1) 정신력 21(+1)
마스터의 이름은 아이작 패튼이었다. 마쉐첼의 애청자인 준은 이미 그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새롭거나 할 것은 없었다.
‘생각보다 능력치가 좋은 편이군.’
일반인 출신 치고 1레벨 스탯 총합이 칭호보너스를 제외하고 67이라는 건 엄청난 편이었다. 준의 최초 스탯이 53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탯만으로 거의 3레벨의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었다.
“어때?”
“뭐가 뭔지 모르겠군. 눈앞에 뜨는 이 이상한 도형들은 뭐지?”
“체력과 마나를 표시하는 거고, 오른쪽위에 있는 건 인근 지형을 표시하는 미니맵이야. 펠로우쉽에도 튜토리얼이 있을테니까 심심할때마다 읽어봐. 내가 설명하는 것 보다는 그쪽이 나으니까.”
준의 말에 마스터는 무언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탄식을 내뱉었다.
“이런 것이 있다니...”
“대체 뭔데 그럽니까?”
밥이 마스터를 향해 물었다. 준이 마스터 대신 입을 열었다.
“그런거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빠르겠지.”
“으음?”
밥의 눈동자도 돌연 초점을 잃었다.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는 그의 표정은 마스터의 그것과 별 다르지 않았다.
준은 밥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사용자 ; 밥 샤벗
레벨 ; 1
클래스 ; 초보자
칭호 ; 펠로우쉽의 대상자(모든 능력치 +1)
능력치
체력 245/245 마나 221/221 경험치 0 잔여 스탯 0
힘 21(+1) 민첩성 17(+1) 지능 10(+1) 정신력 11(+1)
헌터 출신인 밥은 스탯합계 59라는 적당히 높은 능력치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기존에 중급에 올랐던 헌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 상당히 낮은 수치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탯 외에 밥에게는 다른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비교적 뛰어난 체력과 마나량이었다. 1레벨에 200이 넘는 체력과 마나라면 비슷하게 성장했을 경우 준보다 몇배는 더 많은 수치를 나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런 건 사람마다 그 성장치가 다른 법이니까.’
펠로우쉽들이 많아지다보면 언젠가 준을 뛰어넘는 자가 나올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준이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다.
펠로우쉽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서로를 해할 수 없고, 만약 그럼에도 준을 위협하려는 자가 있다면 직접 펠로우쉽에서 해제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사실상 델타의 보조가 없는 펠로우쉽 소속의 헌터들이 준을 뛰어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준에 비해 능력치가 더 높은 이가 등장한다 해도, 준에게는 단순 능력치 이상의 힘이 있었다.
결국 델타 시스템의 핵심은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극대화 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델타시스템’ 자체를 소유하고 있는 준이었다.
델타폰만 해도 델타OS가 없다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AI의 부재는 기술의 응용력을 떨어뜨릴 것이고 같은 기술이라도 준이 사용하는 것도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이많이 퍼뜨려야 겠군.”
펠로우쉽의 무한 확장을 하기 위해선 펠로우쉽 대상자 자체가 5레벨이 넘어야 했다. 준이나 루나를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5레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략 결정체 60개 가까이가 필요했다.
인벤토리에 3000개 가량의 결정체를 보유하고 있는 준에게 60개는 아주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준은 결정체로 그들을 5레벨로 도달시킬 생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5레벨에 도달하게 되면 직업이 열린다. 그때가 되면 가진 기술과 직업과의 시너지를 생각하면서 선택을 해야하는데 지금처럼 기술이라고는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5레벨을 찍게 되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친구들은 정상적으로 성장시키는 쪽이 나중을 위해 좋겠지.’
마스터나 밥 산하의 헌터들이야 어떻게 되든 준이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준의 펠로우쉽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의 능력정도는 가능한 한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
“후. 이거 정말 대단하군. 일반인을 헌터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이런 뜻이었군 그래.”
“나는 없는 말은 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솔직히 말해 무슨 허풍을 저런 식으로 치는 건가 하고 생각했거든.”
“알았으면 됐어.”
“거참. 성격하곤. 헌데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 나이에 헌터가 되어서 딱히 뭔가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마스터의 경우에는 굳이 사냥을 하지 않아도 돼 요리를 하면서 기술을 익히는 쪽도 나쁘지 않으니까. 레벨업은 결정체로 하고, 최대한 기술을 익히는데 힘을 써보는 건 어때?”
“기술이라...”
결국 그의 주요 기술은 ‘요리’와 관련된 것이 주가 될 것이다. 준도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숙련도에서는 마스터와 하늘과 땅 수준으로 차이가 났다.
빠르게 요리 숙련도를 올리고 등급을 높여나가면 요리만으로도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이 오직 제작만으로 상급헌터 이상의 능력을 내는 것처럼.
“나도 전투는 이제 좀 꺼려지는데.”
밥이 입을 열었다. 그 역시 헌터에서 은퇴한지는 꽤 되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당분간 본업에 열중하며 기술을 오픈하고, 그 이후 결정체를 이용해서 5레벨을 찍게 해서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노리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전투요원은 넘치도록 많았다. 때문에 마스터는 요리쪽으로, 밥은 상업 쪽으로 특화된 직업을 가지게 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크 시티에서 생산된 발전기와 델타폰은 빠른 속도로 알카트뢰즈 전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니들건의 효용성이 이전의 무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알카트뢰즈 전역에서 결정체 생산량이 두 배로 훌쩍 뛰었다. 그 때문에 결정체를 넉넉하게 가지게 된 헌터들은 더 많은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알카트뢰즈 전체에 호황기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이 수치는 뭐지?”
알카트뢰즈 관리공단의 소장인 클라이드 버냉키는 월별 보고서를 받아들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가 부임한 이래 이렇게 높은 생산률을 보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달만 30만개의 결정체가 들어왔다고?”
“네. 기존의 생산량에 비해서 100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할 수 있나?”
“얼마 전부터 결정체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세로 돌아선 상태였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수형자들의 능력을 대폭 증가시킨 새로운 무기가 보급되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새로운 무기? 불법으로 반입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아닙니다. 알카트뢰즈에서 생산되는 물건입니다.”
클라이드 버냉키의 비서인 제임스는 니들리스와 델타폰, 그리고 니들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클라이드는 턱을 괸채 생각에 잠겼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군... 어째서 내가 몰랐던 거지?”
“이미 보고서는 제출 했습니다만, 보고과정에서 누락이 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중요한 일을 보고하지 않았을리 없다. 단지 클라이드가 보고서를 제대로 훑어보지 않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굳이 그런 사실을 지적하여 상사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았다.
클라이드는 사실 알카트뢰즈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었다. 5년째 알카트뢰즈 관리공단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그가 유일하게 신경쓰는 것은 결정체의 생산량 뿐이었다. 그것만 이상이 없다면 다른 모든 일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었다.
“좋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운 짓을 하는 군. 장부 처리는 확실하게 하고 있겠지?”
“네. 추가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연방은행을 통해 세탁하고 있습니다.”
“좋군.”
이런 외딴 행성에 부임하는 것은 아무리 책임자라 해도 싫은 일이다. 때문에 그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티나지 않게 결정체를 빼돌리고 있었다. 연합정부에서도 모든 행성에서 일어나는 부정을 감시할 여력은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들키지 않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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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