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136화 (136/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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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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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호숫가의 집 테라스에 앉아 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달간의 긴 휴가도 끝났고 이제 내일이면 다시 연구소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옮겨갔다.

“데이터 분석은 끝났어?”

“연구소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해보려구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네요. 그래도 실험은 역시 기계에 넣고 돌려 보는 게 제일 인 것 같아요. 강입자 충돌 실험 같은 건 시뮬레이션으로는 불가능하니까요.”

“아아. 솔직히 난 그 기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던데. 그냥 강화할 때 실패확률을 낮추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어.”

“얼추 컴퓨터에서 돌리는 시뮬레이션과 비슷해요. 차이가 있다면 정확도에서 압도한다는 점이죠. 대략 99퍼센트 정도의 정확도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대단하군.”

실제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변수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시뮬레이션’기술은 그러한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마저 스스로 예측해낸다. 펠로우쉽에 복제된 시스템의 처리능력도 델타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99퍼센트라고 해도 1퍼센트의 오류가 작은 수치는 아니에요. 정확한 실험을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시행해서 그 오차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어요.”

“기술을 만드는 쪽은 어때?”

“이론정립 스킬 말이죠? 간단한 몇가지 정도는 시험적으로 완성했어요. 보시겠어요?”

“뭔데?”

그녀는 대답대신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 잔을 들었다.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자, 잔에 담겨있던 와인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약 10초간 허공에 둥실 둥실 떠있던 보랏빛의 와인이 곧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며 와인잔을 채웠다.

찰랑!

“오?”

“일시적으로 와인의 중력을 0으로 만들어 버린거에요. 헌데 마나소모량이 너무 심해서 아직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대단한데? 거의 마법같은 느낌이야.”

“마나를 소모해서 사용하는 것이니까, 사실상 마법이나 마찬가지에요. 그 위에 과학이라는 포장지가 덧씌워져 있을 뿐이지 발동원리는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걸요? 애시당초 중력조작은 마법사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마법중 하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원래 루나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거겠지. 또 다른 건 없어?”

“이런 것도 가능해요.”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와인잔 위에 슬쩍 손을 올렸다. 그러자 와인잔이 서서히 테이블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테이블 속으로 흡수된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엇?”

“대체로 물질간의 마찰은 전자기력의 반발로 인해서 생기는 거에요. 때문에 전자기력의 반발력을 낮추어 버리면 이렇게 물질과 물질이 융합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전자기력이 없어지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텐데.”

“물론 그렇죠. 기본적으로 전자기력은 핵력과도 연관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애초에 수식자체가 오류투성인 걸요. 요는 기본 개념에 마나만 부여하면 어떤 식으로든 작동한다는 거에요. 지속시간이 짧고, 사용범위가 협소하다는 점에서 굉장한 페널티가 있긴 하지만 응용범위는 상당하죠. 이번엔 강력을 제거해 볼게요.”

“으음... 그건 좀 무서운데.”

강력은 원자핵이 전자기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로 뭉쳐있게 만드는 힘이었다. 자연의 네가지 힘인, 전자기력, 강력, 중력. 약력 중 가장 강력한 힘으로, 그것의 힘이 약해지면 물질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쪼개지며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즉, 그녀가 이론정립을 사용할 수 있는 1미터 범위내에서는 어떤 물질도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툭.

그녀가 테이블에 박혀 있는 와인잔을 건드리자, 와인잔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가루조차도 남지 않을 정도로 조각조각 분해되어, 방금 전 이 자리에 와인잔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의심될 정도였다.

“뭐든지 전부 분해 해 버릴 수 있다는 거군... 이건 너무 사기같은데?”

물질을 소립자 단위로 분해해버릴 수 있는 것이 이론정립의 능력이라면, 그녀가 없앨 수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그 능력이 외도를 향해 사용된다면, 설령 그 외도가 상위등급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제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루나는 준의 생각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자연상태의 물질은 거의 분해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엑조틱 에너지가 깃들어 있으면 그 힘의 반발 때문에 이론정립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요. 같은 원리로 마나를 지니고 있는 생명체도 비슷한 반응을 보여요. 외도의 육체도 마찬가지이구요.”

“설마 생체실험을 한거야?”

“생체실험이라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비슷해요. 검둥이와 함께 외도를 한 마리 잡아서 실험해 봤어요.”

“그렇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도를 죽여서 결정체를 얻는 것이나 생체실험이나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별 다를게 없었다.

“일단 기술로 등록을 해둘까요? 미리 말해두지만 마나소모량이 엄청나서 아직 제대로 사용하기는 힘들거에요.”

“일단 올려놔.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나으니까.”

준의 말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을 등록하는 것은 금방 끝났다. 그녀의 프로필에서 기술을 확인한 준은 그것을 기술목록에 추가했다. 전자기력과 강력은 따로 구분되지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하나의 방정식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기술

그래비티필드(초급) : 대상의 관성력과 중력을 제어합니다. 시전자의 1미터 범위 이내에서만 사용가능합니다. (숙련도 0%)

일렉트릭필드(초급) : 대상의 강력, 약력, 전자기력을 제어합니다. 시전자의 1미터 범위 이내에서만 사용가능합니다. (숙련도 0%)

“응? 관성력도 제어가 가능한건가?”

“네. 기본적으로 중력과 구분이 불가능하니까요. 해보니까 되던데요?”

“관성력이 제어가 가능하다면 총알도 막을 수 있겠군.”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가능하긴 할거에요. 범위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투사체의 관성력을 0으로 만들어 버리면 아무리 빠르게 날아오는 총알이라도 멈추겠죠. 문제는 역시 마나소모량이죠.”

“그럼 어디 한 번 실험해 볼까?”

준은 전력으로 중력제어장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아?”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준을 올려다 보았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10여 미터 이상 날아오르고 있었다.

-곧 마나가 고갈됩니다. 이 이상 상승할 경우 추락데미지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쳇. 역시 마나가 문제로군.”

전력으로 그래비티필드를 시전하니 대략 초당 100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그의 마나로는 연속으로 20초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준은 재빨리 중력장을 조절하여 조심스럽게 땅위로 내려섰다. 루나가 그런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준은 약간 머쓱해져서 고개를 돌리며 괜히 웃었다.

“저기...”

“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루나는 입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두근. 두근. 두근.

‘어, 어쩌지? 이거 너무 위험해.’

준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루나는 그가 손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거의 다리에 힘이 풀려 있었다. 만약 서있었다면 그대로 주저앉을 정도였다.

휘잉-

그의 얇고 가느다란 머리칼 한 올이 바람에 날려, 그녀의 손등위로 떨어졌다. 마치 전기가 스치듯, 온몸으로 짜릿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정신차리자. 이건 와인 때문일 거야.’

후우.

그녀는 붉어진 뺨을 누르며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심장소리는 더욱더 커져갔다.

그의 곁에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떠날 시기가 다가올수록 초조함은 커져갔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떠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동안 억지로 눌러왔던 마음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럼, 슬슬 일어날까? 내일 출발하려면 일찍 자두는 게 좋을거야.”

‘안 돼.’

일방적으로 마음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상대에게 부담인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오늘 밤을 그냥 보내게 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준의 팔을 잡았다.

“응?”

“저기...”

루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

준이 묻자 루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루나에게 손목을 잡힌 채,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 더 있을까?”

또르르.

대답대신 루나의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지로 입술을 깨물고 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신음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기...”

준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가만히 준의 손길을 느끼며 루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곤란하게 해서.”

“사과할 필요없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준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턱을 들었다. 루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보지 마세요.”

“미안.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무말도 하지마요. 어차피 안아줄 것도 아니면서.”

루나는 투정하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녀는 준의 단단한 팔이 자신을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쿵. 쿵. 쿵.

준은 한참이나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심장소리를 느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 준은 참을 수 없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준...”

품에서 살짝 떨어진 루나가 준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릿속이 뒤엉켜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준은 몸을 숙여 그대로 그녀를 탁자에 눕혔다.

“자, 잠깐... 흡?”

루나가 반항하기도 전에 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그것은 조금의 상냥함도, 부드러움도 없는 거친 키스였다. 루나가 몸을 비틀며 준의 어깨를 떠밀었다. 난폭한 행위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이었다. 하지만 이미 준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준의 혀가 집요하게 루나의 입술을 파고 들자, 계속해서 반항하던 루나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준의 어깨을 때리던 손은 어느새 그의 등을 꽉 쥐고 있었다.

“하아.”

“루나...”

쭈압!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맞붙기를 수차례. 준은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아아...’

준의 혀가 그녀의 입천장을 건드릴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루나는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추고, 오로지 본능적으로 그의 거친 행위에 순응하고 있었다.

쿵. 쿵. 쿵.

두근. 두근. 두근.

두 사람의 심장소리와, 서로의 혀가 얽히는 소리, 그리고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한 호수면을 스치고 있었다.

“으응...?”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루나쪽이었다. 준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지나 가슴을 쥐고 있었다. 루나는 깜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준이 순간적으로 흠칫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싫어?”

“...여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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