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159화 (159/540)

0159 ----------------------------------------------

청소

*

*

*

“그래. 개 형태로 있게 되면 여자들의 방심을 노릴 수 있지.”

준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지만, 인간형태의 검둥이는 여러모로 귀찮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준은 검둥이의 기본 형태를 개로 하고, 자신이 원할때만 인간의 형태로 돌아가는 쪽으로 설득을 할 생각이었다.

검둥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모습으로 있으면 에너지가 소모되어서 말이죠. 역시 개가 편합니다.”

그렇게 말한 검둥이는 순식간에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휴. 그래도 다행이군. 사람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어서.’

결정도가 높아지며 더욱 강력한 외도가 되자, 오히려 사람의 형태를 이룰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했다. 그래도 덕분에 준은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펠로우쉽에 소속되며 인간의 형태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에서도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아니요. 구강구조상 힘듭니다.

“그렇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흉근과 골렘들도 조금씩 경험치를 받긴 했지만 진화는 이루지 못했다, 아무래도 크로울리와의 전투당시에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기 때문인 듯 했다.

“어디보자...”

준은 시미와 검둥이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일단 초록색 외도가 된 만큼, 그 능력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사용자 : 시미

결정도 : 10007

클래스 : 만드라고라

속성 : 흙, 물, 나무

체력  : 119,800/119,800

기술

꼭꼭 숨어라! : 적의 정신을 교란하여 시야를 어지럽힙니다. 적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으아아앙! : 적에게 강력한 음파공격을 가합니다. 데미지와 함께 적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요정의가루 : 특정대상을 잠에 빠뜨립니다. 정신력 저항이 낮다면 영원히 잠들 수도 있습니다.

성장촉진 :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킵니다. 반경 100미터의 공간을 숲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 검둥이

결정도 : 4913

클래스 : 개

속성 : 암, 독

체력 : 12,470/12,470

기술

메타모포시스 : 거대화하여 강력한 육체를 얻습니다.

독물기 : 적을 물어뜯어 지속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피격당한 상대는 낮은 확률로 독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질병할퀴기 : 강력한 발톱으로 적의 몸을 산산조각 냅니다. 피격당한 상대는 낮은 확률로 질병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광견병 : 본능을 깨워 야수로서의 힘을 발휘합니다. 시전시간동안 피아식별을 할 수 없습니다.

준은 약간 질린 얼굴로 시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너 어지간해선 정말 죽을일이 없겠다. 대체 체력이...”

그녀의 체력은 1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준의 체력이 이제 겨우 만 삼천 정도인 것을 생각해보면 여덟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것이 외도와 인간의 차이인가.’

지금까지 준이 먹어치운 경험치로 따지자면 시미에 비해 몇십 배는 넘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치의 차이가 이정도로 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육체라는 건 사실 효율이 굉장히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지운 준은 다음으로 그녀의 기술을 살폈다.

“성장촉진이라.”

개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순식간에 사방 100여미터를 숲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능력은 단순히 생각해도 엄청난 효용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알카트뢰즈 처럼 숲이 귀한 곳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물이 없으면 오래 유지할 수는 없어요.”

“그건 어쩔 수 없으려나... 그래도 근처에 지하수가 있으면 어느정도 해결되겠지.”

지하수만으로 그 정도 되는 숲을 온전히 유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일단 만들어 두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시험삼아 한번 만들어봐.”

“여기에요?”

“응. 공기도 건조하고 환자들에게는 별로 안좋으니까 숲이 있으면 좀 낫겠지.”

“흐음. 잠시만요.”

사박. 사박.

시미는 천천히 걸어 사방이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준은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을 느끼고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사라락.

시미가 자신의 몸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몸 전체가 푸른 잎으로 감싸였다. 그녀의 머리칼이었던 푸른 잎들은 엄청난 속도로 증식했고,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우와...”

준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순식간에 퍼진 초록색의 잎들은 황폐했던 주변을 단숨에 초록빛으로 바꾸고는 그것도 모자라 더 멀리, 도시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초록색 외도가 되면 이런것도 되는 건가요...?

검둥이도 입을 떡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준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건 저녀석의 능력이 저런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게다가 요정의 능력까지 몸에 깃들어 있는 상태니까 가능한 거겠지.”

촤라락-

주변을 온통 초록으로 만든 시미의 몸이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색깔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도 점점 딱딱하게 굳더니, 어느덧 몸 전체가 나무처럼 변하고는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멋진데.”

그녀의 몸은 점점 자라 거의 10여미터가 될 정도로 커졌고,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머리칼이 나뭇가지쳐럼 촤악 펼쳐지더니 잎을 틔웠다. 그러자 준의 눈앞에는 순식간에 10여미터가 넘는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잎을 만개한 채 우뚝 서 있었다.

그 장관에 준은 전율이 일 정도였다. 엄청나게 생장하는 생명의 힘이 준의 전신을 깨웠다. 준은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희열을 느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파아!

그리고 그 커다란 나무에서 초록빛의 가루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플라나타러스의 포자공격과도 비슷해보였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신성하고 생명력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팟. 파팟.

이윽고 초록빛의 가루가 땅에 닿자 그것은 순식간에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순식간에 반복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준의 주변에는 온통 꽃과, 나무와, 풀들로 가득차 있었다.

준은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대, 대단하군. 설명으로만 볼때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이야.”

원시림의 탄생을 눈앞에서 지켜본 감동이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근처 건물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포로들도 마찬가지였던 듯, 하나둘씩 건물을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벨벳시티는 방금전의 그 황량한 도시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검둥이의 말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준은 천천히 시미였던 커다란 나무를 향해 다가가 그 나무기둥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냐?”

-으음... 내일까지는 이러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하루에 한번이라는 제한이 붙은 거구나. 어쨌든 수고해. 내일 보자.”

-준. 배고파요.

“결정체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그것도 노란색인데.”

-으응... 하지만 이거 만드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썼는데요.

“알았어. 기다려.”

준은 인벤토리에서 붉은색 결정체 열 개를 꺼내어 나무가 된 시미에게 주었다. 나무가 움직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나무기둥에 결정체를 가져다 대니 자연스럽게 흡수가 되었다.

-조금 부족하지만 이거면 될 것같아요.

결정체 10개를 먹고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숲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엑조틱에너지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 숲을 만든 것 치곤 저렴한 비용이었기에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준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검둥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기술이 몇개 추가되었던데.”

-말하지 마세요.

“왜? 잘 어울리는 데. 광견병이라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기술이 어디있어?”

-으으. 형님. 저랑 다투자는 겁니까? 저는 사람이라고요. 왜 광견병 같은 걸 기술로 가져야 하는 겁니까?

“그런 몸으로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어.”

-이건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한 겁니다!

검둥이는 낑낑거리며 앞발로 바닥을 탁탁 쳤다. 그 모습에 지나가던 군인이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상자들의 병동 옆에 쉘터를 내려놓은 준은 그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일단은 그들이 어느정도 안정이 될때까지는 이곳에 며칠동안 머무를 생각이었다.

풀썩.

피로한 몸을 소파에 던진 채, 비스듬하게 누워 인벤토리에서 스마트패널을 꺼내들었다. 준이 만든 델타폰과 달리 호라이즌 통신사의 마크가 붙어있는 정식 판매품이었다. 이거라면 초광속통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호랑이길드와 연락을 할수도 있었다.

준은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마트패널의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는 한참동안이나 멍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 지능 수치가 얼마더라...”

준은 순간적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호랑이길드 녀석들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것이다. 구골플렉스에서 호랑이길드를 검색해봐야 온통 호랑이 사진만 나올 뿐 녀석들의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억에 달하는 인구가 사용하는 인터넷인 만큼, 최하급 헌터들의 모임에 불과한 호랑이길드의 정보가 있을리 없었다.

“흠... 뭔가 다른 방법이 없으려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셜서비스인 ‘스테이터스’에 호랑이길드원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지만 뜨는 이름만 해도 수백개라 도저히 일일이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인터넷에서 호랑이길드원을 찾아줄 수 있어?

-프로필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검색합니까?

-그래.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분석결과 대략 38시간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소유하고 있는 스마트패널의 프로세서를 통해서만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행하시겠습니까?

-뭐, 이틀이면 내가 찾는 것 보다는 낫겠지. 부탁해.

준은 호랑이길드에 대한 검색을 시스템에 맡기고 오랜만의 웹서핑을 즐겼다. 하지만 곧 스마트 패널을 내려놓았다. 지난 몇달간 준이 크게 달라진 것에 비해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매일 같이 자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만, 또 다음날 일어나는 사건에 의해서 묻히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이틀 뒤 준은 시스템으로 부터 서은설의 스테이터스 페이지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보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준을 만나기 이전에 찍어놓은 사진들만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본 서은설이 반가워 준은 그 밑에 댓글을 달아두었다.

포로들은 약 일주일 정도 안정을 취하며 체력을 회복했다. 벨벳시티의 지하수를 이용해 몸을 깨끗하게 씻고 상하지 않은 음식을 공급하니 포로들은 곧 사망자 없이 전원 회복할 수 있었다.

부르르릉-

포로들을 군용 트럭에 실어서 떠나보낸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벨벳시티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다른 도시들은 계속해서 밴디트들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

“군인들이 움직여 줘야 하는데...”

하지만 당장 준이 그들을 움직일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클라이드에게 가봐야 별다른 소용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준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할수밖에 없었다.

“다음 도시로 가자.”

준은 검둥이와 시미를 데리고 험비에 탑승했다. 숲이 되어버린 벨벳시티를 떠나며 준은 지도를 검색했다. 표시된 밴디트들의 도시는 아직 31개가 남아 있었다.

준은 하나하나 그곳을 돌며 청소를 할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세시쯤 올라갑니다. 조금은 늦을 수도 있어요 ㅎ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