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7 ----------------------------------------------
협동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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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흘간의 공사 끝에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 하나를 뚝딱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덕분에 시미가 만들어낸 숲의 절반이 사라질 정도로 나무를 베어야만 했다. 그나마 전부 베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대형막사를 지을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이 정도면 얼추 공간은 충분하고...”
준이 건축기술을 이용해 집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다름아닌 휴대성이었다. 집을 지으면서 휴대성 생각을 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전장을 계속해서 옮겨야 하다 보니 매번 막사를 새로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한번 만들어 넣고 인벤토리에 넣어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수형자들이 군인 출신이라면 알아서 막사도 짓고 하겠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이들이 없기 때문에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냥 바닥에 재우는 것도 한 방법이었겠지만, 자신의 뜻에 따라 싸워야 할 펠로우쉽 들에게 최선의 지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그 안에 들어있었다.
그덕에 새로 큐브를 확장하느라 경험치를 수십만 가까이 써버렸지만, 이미 그동안 십일조로 받은 경험치만 해도 그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혜택을 돌려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웅-
멀리서 수송기 한대가 레이크시티를 향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반중력장을 이용해 행성궤도까지 진입이 가능한 최신예기체였다. 사실 로터를 이용한 수직이착륙기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지만, 현재 불릿타임과 관리소에서 불협화음이 일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내어준 모양이었다.
준은 골렘들에게 시켜 다져놓은 땅으로 수송기를 인도했다. 반중력 엔진 특유의 진동음을 내며 수송기가 착륙했다.
치익-
해치가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준은 그들을 모두 착륙장 한켠으로 모아 신원을 확인했다. 그 작업은 막스가 맡았다. 준은 그에게 레이크 시티의 병력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준보다 막스가 능숙했고, 실제로 어린 준보다는 막스가 대장이라고 착각하고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준은 굳이 그것을 정정하지 않고 막스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은 전력외로 움직일 것이다. 다른 이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이상 함께 싸우는 것보다는 별동대로 움직여 적의 보스를 잡는 편이 오히려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준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이들도 있었다.
“오오. 처음뵙겠습니다. 전 루벤스라고 하고 여기 이 친구는 체르노빌이라고 합니다. 사인 한장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연예인도 아니고... 쓸데없는 짓 말고 가서 줄이나 서.”
“하하. 역시 듣던대로 싸가지... 읍.”
“그, 그럼 이만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루벤스의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했다. 준은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손짓을 해서 그들을 물렸다.
애초에 델타포럼에서 자신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적당히 접근하기 어려운 편이 더 편했다. 실제로 준을 알아본 이들은 꽤나 많았지만 그에게 다가온 이들은 저 둘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재빨리 쫓겨나자 더 이상은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흠. 이제 시작인건가.”
준은 고개를 들어 레이크시티로 속속 도착하고 있는 수송기를 올려다보았다.
대당 서른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수송기는 현재 열 기 정도만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관리소에서 가지고 있는 수송기 중,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총 동원한 상태였다. 겨우 열대라고는 하지만, 한 번에 삼백명을 이송시킬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전력이기는 했다.
그렇게 사흘이 더 지나자 레이크시티는 펠로우쉽으로 가득찼다. 조용하던 레이크시태도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고, 펍은 발디딜틈없이 가득 차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조용한 곳에 있으려고 레이크시티를 만들었는데 이거 결국 나하라랑 다른게 없네.”
“그래도 살기는 훨씬 좋잖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 막스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물이 부족한 나하라보다야, 커다란 호수가 있는 레이크시티가 이래저래 쾌적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은 레이크 시티의 사람들에게 가장 바쁜 날이었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인원을 출신지별로 분류하고 열 명 단위의 부대로 쪼개어 각 분대의 장을 선임하고 권한을 일임하느라 막스는 평생 쓸 머리를 단 며칠동안 다 써버린 기분이라며 하소연할 정도였다.
하지만 준은 준 나름대로 할일이 있었다. 밴디트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그들을 공격할 방도를 찾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천명이상의 대규모 전투를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이러한 용병술은 민간인인 준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는데, 그는 어쩔 수 없이 볼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펠로우쉽을 통해 볼칸과 연락한 준은 그에게 간단히 병력의 운용방법과, 작전계획을 짜는 법 등을 전수받고 서툴게나마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삼백명으로 쪼갠 각 중대장들과 모여 그 작전회의를 열고 있었다.
“대강의 계획은 이렇습니다.”
간단히 브리핑을 마친 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펍의 2층에 마련한 간이 회의실 안에는, 준과 막스, 그리고 세 명의 중대장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준이 브리핑을 마치자 심각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흠... 역시 어설픈가...?’
준이 짠 계획은 다소 급조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현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이었다.
훈련되지 않는 수형자들은 대체로 레이드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고, 때문에 탱커와 딜러진의 분리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같은 인간끼리 싸울때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때문에 준은 탱커와 딜러진을 부대별로 섞어 서로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배치했다. 또한 개개의 실력은 밴디트들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소대단위로 똘똘 뭉쳐 절대로 난전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물론 실전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방식이라 상당히 많은 문제제기가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이 없는 것은 준이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나름 중요인물로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조차도 이런 대규모 전투에는 문외한이었다는 것이다.
“괜찮을 것 같소.”
“뭐, 나쁘지 않군.”
“탱커와 딜러진을 나누지 않아도 괜찮을까?”
“이사람아. 이게 외도를 상대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나누었다가는 딜러진이 먼저 공격받고 붕괴한다고.”
“그렇구만.”
준은 별다른 반대없이 자신의 의견이 통과되는 것을 보고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이고, 이렇게 된 이상 어설프더라도 이 방법으로 적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저들이 화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만약 참호를 파고 우리를 상대한다면 저들을 물리치기는 힘들 것 같은데.”
편의상 1중대를 맡긴이는 다름아닌 바스라였다. 나하라에서는 꽤나 유명한 헌터였고, 현재 실력도 중급으로 올라선 그는 나하라 출신의 헌터들을 움직이기에 적격인 사내였다.
“그 부분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일단 밖으로.”
준은 그들을 펍 바깥의 공터로 안내했다. 그들의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뒤따랐다. 준은 이자리에서 대흉근과 골렘형제들을 선보일 생각이었다. 아는 이들도 상당히 있었지만, 그 존재를 모르는 이들에게 갑작스레 나타난 골렘들은 충분히 적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걸 보일 생각인가.”
이미 대흉근에 대해서 알고 있던 바스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반면 그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카랑카와 코르크 출신의 중대장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대체 이 어린 대장이 무슨 짓을 하려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터에 도착한 준은 주변을 빼곡이 채운 펠로우쉽들을 보며 고양된 감정을 느꼈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저들은 자신을 따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승리를 위한 카드를 공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흥분되는 일이었다.
“대흉근! 골렘 1,2,3호!”
준이 큰 소리로 외치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사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퍼포먼스이긴 했지만 사람이 많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쿵! 쿵! 쿵! 쿵!
오오오오오!
허공에서 네 마리의 거대한 골렘이 등장하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전에 그들을 이미 본 이들도, 허공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네마리의 골렘의 위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대흉근과 그 형제들로, 적들의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 일선에서 돌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물론 이들만으로 적들의 엄폐를 완전히 무력화 할 수는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군의 병력손해가 있을 거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들 익히 아시다시피,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으니 모두 두려움을 잊고 싸워주시길 바랍니다.”
우오오오!
와아아아!
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네 마리의 골렘들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고, 그에 맞추어 펠로우쉽들도 큰 소리로 환호했다.
“델타! 델타!”
“펠로우쉽을 위하여!”
“밴디트를 물리치자!”
“준 알스버그 만세!”
갑작스런 환호에 준은 어색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더더욱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지금까지 단순히 네트워크 상에만 존재했던 델타의 주인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 엄청난 힘을 과시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 전투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첫 전투는 앞으로 사흘 후입니다. 그 전까지 휴식을 취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치도록 하십시오. 혹시라도 니들건이 없으신 분은 상점에서 받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으니 늦지 않게 받아가십시오.”
“와아아아!”
“공짜다!”
“만세!”
니들건을 배급하는 문제는 한동안 밥과 조율을 해야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단체가 한 몸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동일한 무장을 갖춰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그로 인해 지원병에 한해서 만큼은 니들건을 무상제공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합치했다.
물론 개중에서는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짜로 받아가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니들건 자체가 무게가 상당한 물건이었고, 한 대 이상 가지고 있어봐야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하나 이상 가지려는 이의 숫자는 적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게다가 니들건을 받아가기 전에 신상정보를 확인하니 한 사람당 하나 이상 받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찌르륵-
전투를 앞두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벗어난 준은 조용한 호숫가에 앉아 밤하늘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준은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고 이 자리까지 와주었다.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진행했던 일이지만, 막상 천여명의 사람들을 보니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차라리 혼자라면 이런 긴장감없이 적을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밴디트의 발호는 알카트뢰즈에 살고 있는 모두의 위기였고,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것에 지나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세시에 올릴게요. 열심히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