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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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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핵 파괴(15/50)
밴디트 처치(3314/5000)
준은 퀘스트 창에 올라온 진행목록을 살펴보았다. 두 부대의 밴디트 무리를 처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처리한 던전핵의 수는 극히 적었다. 아직 35개 가까이 죽여야할 변이외도가 있다는 뜻이었다.
‘동부군과 서부군의 변이외도들은 전부 처리했다. 그럼 나머지는 전부 북부군 산하에 있다는 이야기군.’
두 개의 무리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두 배 이상 많은 던전핵의 보유자가 북부군에 있다.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였다. 일단은 적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불릿타임도 함께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화력적인 측면에서도 밀릴 것이 없었다.
결국은 최소 35마리는 존재하고 있을 변이외도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싸움의 핵심이었다. 저번처럼 녹색 외도가 우르르 튀어나온다면 문제가 심각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전차가 강력하다고는 해도, 서른마리가 넘는 외도를 모두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조금만 머리를 쓸 줄 안다면, 변이외도들을 미리 이쪽에 침투시켜서 후방을 교란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었다.
이미 준은 그 건으로 경계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미 수도의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거나 떠나고 있었기 때문에 검문검색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낯선 인물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주의에 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시어도어 대령은 발사대를 노릴 것이다. 그곳을 장악해서 궁극적으로 플랫폼까지 차지하게 되면 알카트뢰즈는 완전히 그의 손에 넘어가겠지.”
준의 말에 야쿠츠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준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동부전선을 순식간에 승리를 이끈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덕에 늦지 않게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준이 제때 참전하지 않았다면 수도는 지금쯤 이미 함락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심플하군. 막아내거나 막아내지 못하거나.”
막스가 입을 열었다. 이미 수시간 동안 어려운 말들이 많이 오갔지만 핵심은 그것이었다. 어느 쪽도 물러날 수 없는 최후의 승부. 밴디트들의 발호가 이렇게 까지 대규모로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흉과의 전투. 준은 시어도어 대령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칼 레이건의 실험은 이 작전을 앞당기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헌터를 이용해 강력한 외도를 만들어 내고, 그 힘을 병기로 이용한다는 발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옮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그 일에 관련되어 있던 시어도어 대령이 밴디트의 발호를 도왔다는 것은 결국 이 일 자체가 그의 계획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규모의 반란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터. 그는 처음 밴디트의 도시를 발견했을 무럽, 슬로암이 내뱉은 말을 기억했다.
‘너무 이르다고 했었던가...’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충분한 힘을 키우기 전에 준이 도착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역시 이 계획의 일부였을 것이다. 변이외도들이 자중하며 힘을 키우다가 한 순간에 그 힘을 폭발시켜 알카트뢰즈를 점령하는 것. 하나의 행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무한한 부를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변이외도들이 외도와 인간의 욕망 둘 다를 극단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어도어 대령은 그것을 약속해 그들을 끌어들였을 테고.
“전차정비는 확실히 해두도록 해. 그게 이번 전투의 핵심이 될테니까.”
준의 말에 야쿠츠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는 온갖 병기를 총동원한 기갑전의 양상이 될 것이다. 그 싸움에 펠로우쉽 부대가 끼어들어봐야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준은 야쿠츠 소장의 병력과 시어도어 대령의 병력이 총력전을 벌이는 동안, 펠로우쉽 군단을 투입해 녀석들의 본진으로 파고들 생각이었다.
오전 8시. 오스트로스 외각지.
구릉을 타고 접근하는 적들의 기갑부대가 굉음을 내며 접근하고 있었다. 준은 멀리서 천리안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미 초비연을 통해 정찰을 한 바로는 녀석들의 보유한 전차의 수는 최소 50여대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공격헬기와 드론, 강화수트까지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전력을 보유한 불릿타임과 전투를 벌이게 되면 결국엔 유기적으로 병력운용이 가능한 쪽이 싸움을 이길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이번전투가 최후의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준은 북부군에 있을 모든 델타폰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방법은 간단했다. 맵을 띄워 북부군이 위치한 지역의 델타폰 신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적들의 명령체계에 혼선이 올거라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시어도어 대령이 바보가 아닌 이상, 델타폰에 의지해 명령을 내릴리는 없었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려는 것 뿐이었다.
콰앙!
개전을 알리는 포성이 오스트로스에서 울려퍼졌다. 사거리 10킬로미터가 넘는 곡사포가 불을 뿜었다. 하지만 그 정도 화력으로는 포탄이 직격하지 않는 이상 적 전타의 반응장갑을 뚫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운좋게 한 대가 정확하게 명중하며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적 전차들은 쏟아지는 포탄의 비 가운데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맹렬히 돌격하고 있었다.
콰앙! 쾅!
불릿타임은 건물 뒤편에 숨어 계속해서 곡사포를 쏘아댔다. 비록 전차의 진입은 막지 못했지만, 그 뒤를 따르는 보병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덕에 적 병력의 전차부대와 본대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그리고 적 전차가 언덕지역을 모두 내려오자, 그제서야 불릿타임측에서도 숨어있던 전차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양측의 전차들은 도합 100대에 이르렀다. 알카트뢰즈 전체에서 긁어모은 전차들은 곧 서로 사활을 걸고 서로를 향해 포신을 겨누기 시작했다.
양측의 전차는 모두 같은 기종은 T-303 팬저 제너럴. 결국 싸움의 승패는 병력 운용과 전차장의 숙련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펠로우쉽의 전차는 투입하지 않았다. D2전차는 어디까지나 대 외도용 전차였다. 기본 베이스가 T-34인 D2전차는 현세대 전차인 303전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포탄의 위력, 기동력, 반응장갑등에서 이미 압도적인 차이가 나고 있었다.
콰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전차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쿠르르!
격렬한 기동을 벌이는 전차들의 움직임에 마른 대지가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포탄이 도탄되어 사방으로 튀었고, 굉음으로 인해 바로 곁의 사람이 하는 사람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콰앙!
“윽.”
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전차포를 쏘아본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백여대의 전차가 동시에 포탄을 쏘아대니 아무리 준이라고 해도 견디기 힘들었다.
준은 앞주머니에 넣어둔 시미를 보았다.
-괜찮냐?
-뭐가요?
-소음 말이야. 시끄럽잖아.
-이 정도는 별거 아닌데요.
-하긴.
시미는 이보다 훨씬 지독한 음파공격을 뿌릴 줄 아는 녀석이었다. 폭발의 굉음이 끔찍하기는 했지만 시미에게는 거의 자장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준은 건물의 옥상에서 적진을 바라보았다. 병기는 전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멀리서 투투투, 하는 소리와 함께 공격헬기가 떠오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탱크킬러의 대표격인 공격헬기의 등장이었다.
“다섯 대로군. 저게 다 합하면 얼마나 되려나.”
우주선이 광속을 넘어 항성간 여행을 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헬기의 가격은 천문학적이었다. 어지간한 소형 우주선 한 대 값에 해당하는 공격헬기는 가성비에 있어서 상당히 떨어지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상전을 벌일 때 헬기의 위력을 생각하면 아무리 PMC라고 해도 반드시 보유목록에 넣어야 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반응장갑을 탑재한 이후로는 개인화기로는 헬기를 떨어뜨릴 수조차 없었다.
“미안하지만...”
준에게는 그 모든 상식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레일건을 꺼내든 준은 탄자를 걸고, 일렉트릭 필드를 이용해 전력을 끌어올렸다.
파직! 파지직!
준의 주위로 엄청난 전류가 흘렀다. 누군가 지금 준의 곁으로 다가간다면 순식간에 감전되며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총 아홉발. 하지만 이후의 전투를 생각하면 좀 아껴야 겠지.’
준의 마나로는 레일건의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어도어 대령과 그 밑의 변이외도들을 상대하기 위한 마나를 생각하면 다섯발을 사용하는 것도 모험이었다.
‘우선 하나.’
우우웅----
코일에 엄청난 전력이 걸리며 레일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준은 천리안을 이용해 적 헬기와 가늠좌를 정확히 조준했다.
숨을 멈추고, 조용히 헬기를 바라보던 준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상당한 반동과 함께, 준의 어깨가 뒤로 밀려나고 불꽃을 뿜으며 텅스텐 탄자가 적 헬기를 향해 날아갔다. 속도는 마하 50. 준이 불꽃을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은 이미 탄자가 적 헬기의 반응장갑을 관통하고 난 이후였다.
고오오오--- 콰앙!
적 헬기 하나가 휘청거리더니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초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거의 3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준이 저격을 성공한 것은 다름아닌 시스템의 보조 덕분이었다. 시스템은 행성의 자전과 자기장, 공기의 흐름까지 계산한 정확한 조준선을 준의 눈앞에 띄워주었고, 준은 거기에 맞추어 방아쇠만 당기면 되었던 것이다.
콰앙!
“허. 참.”
두 번째 헬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야쿠츠 소장은 기가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그가 생각하기에 적들의 가장 강력한 병기는 바로 저 공격헬기였다. 현재 불릿타임에는 헬기가 두 대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헬기조종사가 시어도어 대령의 수하에 있었기 때문에 설령 더 있다고 할지라도 운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 헬기 다섯 대면 지금 저기서 기갑전을 벌이고 있는 아군전차 50대는 순식간에 정리될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대당 스무 개씩 달고 있는 헬파이어 미사일이면 이 일대가 초토화 될 정도의 화력을 뿜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수월하게 적 헬기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병기에 대한 개념이 혼동되기 시작했다.
“대체 저게 뭐야?”
그는 건물 위에서 초장거리 저격을 하고 있는 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의 부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레일건 같습니다.”
“전력은?”
“저 자의 몸 주위가 빛나는 것으로 봐선, 아마 전기계통 능력자인 듯 합니다. 그것을 이용해 전력을 충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야쿠츠 소장은 강렬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준을 바라보았다. 펠로우쉽 군단이라는 일천의 사병을 부하로 거느린자. 거기다 그는 열한 대의 전차와 한 기의 레일건을 무기로 가지고 있었다. 델타폰의 성능을 생각해 봤을 때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위험한 자로군.”
“이번 전투에는 꼭 필요합니다.”
“나도 잘 알아. 헌데 어쩌다 저런 녀석이 알카트뢰즈까지 온거지? 저 정도 실력이면 여기에 보내지 않을텐데.”
상급헌터 이상은 알카트뢰즈에 올 수 없다. 그들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특별격리가 필요했다. 아예 행성 하나를 따로 배정해서 그곳에 던져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감금하고 있는 상급헌터들의 수만 해도 수천이 넘는 상황이었다.
헌터 하나에 행성 하나라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 적이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반증했다. 헌데 그런 녀석이 중급 이하의 헌터를 수용하는 알카트뢰즈에 있었다는 것이 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산오류라고 생각됩니다.”
“전산오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저 녀석 덕에 이 전투를 쉽게 이길 수도 있겠어.”
불릿타임의 전력이 40퍼센트가 날아간 상태에서 이만큼 싸울 수 있는 것도 준의 덕이다. 그가 없었다면 알카트뢰즈에서 불릿타임의 명맥이 완전히 끊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콰앙!
그 사이 세 번째 헬기가 떨어졌다. 잠깐 사이 다섯 대의 헬기 중 두 대만 남은 것이다. 그러자 남은 두 대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기수를 돌렸다.
“적들이 물러납니다.”
“그럼 이제 우리차례지. 헬기 띄워.”
“네.”
저쪽에서 물러난 이상, 공중은 완전히 이쪽에서 장악할 수 있었다. 야쿠츠 소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군의 헬기가 적진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쐐애액!
콰직! 콰앙!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창하나가 헬기의 반응장갑을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