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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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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황망한 정신을 수습하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를 보고 다리에 힘이 풀리다니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지 다시한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이토록 흔들리게 만들 수 있을까. 준은 낮은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에서 강화수트를 한벌 꺼내었다. 만약 생존자가 있다면 데리고 나가야했고, 정황에 따라 틀리겠지만 인간과 비슷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강화수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준비해둔 것이다.
“입어.”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묶었다. 익숙한 그 동작에 준은 그녀가 어느정도 훈련받은 항해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강화수트를 보고도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했을 텐데, 그녀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긴 백발의 머리칼을 요령좋게 묶어올린 그녀는 조심스럽게 강화수트에 몸을 집어넣었다. 수트는 그녀의 몸에 맞춘 듯이 딱 맞았고, 수트위로 드러나는 신체의 라인에 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헬멧을 쓰고나니 그나마 숨을 돌릴 만했다.
“일단 나가자. 기기를 부수느라 소란이 있었으니 경비대가 올 수도 있어.”
준은 자신이 가지고 온 헬멧을 썼다.
[그 녀석은 어때?]
준은 바닥에 쓰러진 브랜든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막스가 입을 열었다.
[어느쪽이길 바라는 거야?]
[살아있어야지.]
[살아있어. 뭐, 언제까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를 살짝 찌른것 같긴 한데. 제시간이 치료받는다면 살거고, 아니라면 죽겠지.]
[그럼 살겠군.]
어차피 조금있으면 연구원들도 깨어날거고, 늦지 않게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준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꼴보기 싫은 녀석이라고는 하지만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죽일 것처럼 패길래 죽길 바라는 줄 알았는데. 잠시지만 언행일치가 안되는 함장님이라고 생각했다고?]
[사정이 있어. 나중에 설명해줄게.]
[아는 녀석이야?]
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납득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감옥에 온 이유와 관련되어 있는 거겠군.]
[눈치빠른 녀석같으니라고.]
[그 정도야 뭐. 처음보는 녀석을 그렇게 죽일 듯이 팰 이유는 없으니까. 그것도 완전히 무력한 녀석을 상대로 말이야.]
[어떻게 보면 저녀석에게 고맙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군.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고마워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건 사실이었다. 루나도, 과거의 그일이 없었다면 평생 만날일이 없었을 것이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는 뜻이다.]
볼칸이 입을 열었다. 막스가 놀랍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오호.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야?]
[모르는 건 너뿐인 것 같다만. 음?]
볼칸이 말을 하던 와중 갑자기 ‘그녀’가 끼어들더니 브랜든의 앞에 몸을 숙였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가 의아해 할 무렵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다쳤네. 치료해도 될까?]
[뭐?]
준이 말릴 사이도 없었다. 그녀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는 브랜든의 몸에 손을 올리자, 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빠르게 그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러졌던 갈비뼈가 제자리를 찾고, 이가 뽑힌 사리에는 새 이가 돋아나고 있었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브랜든의 표정이 편안하게 바뀌면서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너...]
준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힐러였냐?]
[응.]
[...이거 뭐라고 해야할지. 엄청난 녀석을 주은 거 같은데.]
[전 우주의 운을 전부다 끌어다 쓰는 것 같구만.]
막스가 입을 열었다. 그만큼 힐러는 구하기 힘든 존재였다. 거기다가 순식간에 브랜든의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으로 봐선 그 능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상위의 레이드 팀으로 갈수록 팀당 한 명정도의 힐러가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상처를 회복시키는 이들은 거의 손에 꼽을 만한 숫자였다. 전체 헌터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존재확률은 아득히 0에 수렴하는 수준이었다.
[준. 들려요?]
그때 다급한 듯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새크리파이스의 레이더 망에 걸렸어요. 빨리 와야할 것 같아요.]
[뭐라고? 대체 어쩌다가?]
[은폐장이 풀렸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젠장. 최대한 빨리 갈테니까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
알바트로스에도 무장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준이 유일한 상황. 만약 저쪽에서 공격을 시도하면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카모플라쥬가 풀린거지?’
준은 일행과 함께 빠르게 폐함선의 통로를 달렸다. 마주오는 통로에서 수트를 입고 있는 경비대 한 명이 준 일행을 보고 총을 겨누었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강화수트의 모습이 새크리파이스 정식제원이 아님을 빠르게 판단한 그의 눈썰미는 칭찬해줄 만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당하지 않아도 될 피해를 당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퍼억!
번개같은 속도로 질주한 검둥이가 그 경비대의 복부를 후려쳤다.
[커헉!]
아무리 강화수트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경비대로서는 검둥이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수미터를 날아가 통로 바닥을 구른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죽였냐?]
“어쩌면요.”
[끙. 어쩔 수 없지.]
준은 혀를 차고는 그대로 달렸다. 남의 처지를 봐줄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이미 씻은 지 오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쪽으로!]
준이 함선의 틈새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들어왔던 입구와는 달랐지만, 일단은 바깥으로 나가는게 우선이었다.
[응? 누구냐?]
바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경비대원 두 명이 갑자기 우주선에서 뛰쳐나온 준일행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년 가까이 아무런 일이 없었던 상황에서 예고도 없이 나타난 침입자를 발견한 때문인지 허둥대느라 총기도 제대로 집지 못한 상태였다.
[매크로 어택!]
파파팡!
준의 손끝에서 수십개의 마력탄이 쏘아져 나갔다. 마치 기관총을 연상케 하는 그 엄청난 화망속에서 두 사람의 경비대원은 그저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퍽!
[커헉!]
[으악!]
수십발의 마력탄에 얻어맞은 경비대원들이 힘없이 튕겨나갔다. 준은 그들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셔틀을 꺼내들었다.
구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반중력 셔틀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셔틀의 문을 통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갑자기 나타난 셔틀에 놀란 새크리파이스의 경비대가 총을 들고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준은 재빨리 조종간을 잡고 스위치를 올렸다.
[이게 우주선인 거야?]
[셔틀이야. 궤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어.]
[멀리까지는 못가는 구나.]
[궤도에 워프가 가능한 우주선이 있으니까. 일단 거기까지 가면 돼.]
준은 그렇게 말하며 조종간을 당겼다. 반중력 엔진이 진동하며 빠른 속도로 셔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
셔틀은 거의 6G이상의 가속을 뿜어내며 상승했다. 훈련받은 항해사라고 해도 버티기 힘든 속도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정도 가속쯤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다만 하나 걱정되는 것은 방금 함선에서 데리고 나온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준은 약간 신기해 하면서도 일단은 최대한 상승하는데 신경을 쏟았다.
단 5분만에 궤도에 오른 셔틀은 빠르게 알바트로스를 향해 움직였다.
타탁. 탁.
준은 곁에서 무언가를 조작하는 여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거나 만지지마.”
“잠깐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엔터를 누르자, 현시창의 한 쪽에 알바트로스를 확대한 모습이 떠올랐다. 준은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거야?”
“그렇게 어렵지 않아.”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물론 저런 간단한 조작은 그리 어렵지 않은게 맞다. 준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셔틀에 처음 탄 사람이, 처음 본 모델을 조작하는 것이다. 기체에 따라서 조작방법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메뉴얼을 숙지해두지 않으면 능숙한 오퍼레이터라고 해도 이런식으로 조작을 하지는 못한다.
“후. 나중에 이야기 하지.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준은 디스플레이에 떠오른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확인했다. 다행히 지금 당장은 별다른 이상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함선끼리의 전투는 일단 초장거리 사격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지금 이상이 없다고 해도 안심할때는 아니었다.
번쩍!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알바트로스의 곁으로 엄청난 에너지의 파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길! 양전자포야!”
준은 황급히 셔틀의 속도를 높였다. 아무리 알바트로스가 공을 들여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양전자포를 한방이라도 맞으면 끝이었다. EX필드라도 둘러져 있지 않은 이상, 양전자포의 압도적인 화력은 알바트로스의 장갑을 종잇장 처럼 찢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상황은?]
준은 황급히 루나에게 통신을 보냈다. 돌아온 것은 서은설의 목소리였다.
[현재 미스틸테인 님이 회피기동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젠장. 최대한 빨리 갈테니까 착륙장 문 열어놔!]
알바트로스의 크기에 비해 셔틀의 크기가 비교적 큰 편이었기 때문에 착륙을 할 때는 정밀한 조작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밀한 조작을 할 여유가 없었다. 준은 다소 피해를 감수하고 거의 들이받듯이 알바트로스의 착륙장에 셔틀을 밀어넣었다.
“다들 꽉 잡아!”
쿠웅! 콰드드득!
무리한 착륙으로 인해 착륙장 내부와 셔틀이 부딪히며 내부를 엉망으로 휘저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착륙에 성공한 준은 빠르게 움직이며 알바트로스의 함교로 향했다.
쿠웅!
“큭.”
함교로 달리는 와중에 알바트로스가 크게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거의 30도 가까이 기우는 함선에서 준은 벽을 타고 달렸다.
풍운보를 극성으로 유지하며 준은 거의 바람처럼 달렸다.
쾅!
함교의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온 준은 함교의 내부 상황을 먼저 파악했다. 일단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조종석에 있는 루나였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조종석을 붙잡고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애쓰고 있었다. 전면에 보이는 현시창과, 그 옆에 커다랗게 떠있는 디스플레이에서는 날아오는 수폭미사일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준!”
가장 먼저 준을 발견한 서은설이 외치자, 루나가 황급히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익숙하지 않은 조작인데 적의 공격까지 회피하려다 보니 심력의 소모가 극에 달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쪽에 가서 벨트메고 앉아 있어.”
“네.”
준의 거의 명령과도 같은 말에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움직였다. 원래라면 오퍼레이터라고 하겠다고 나섰겠지만, 그녀는 홀몸이 아니었다. 지금은 우선적으로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제임스.”
“네.”
“오퍼레이터. 할 줄 알지?”
“메뉴얼은 숙지 했습니다.”
“후.”
그나마 제임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알바트로스에 올라탄 시점부터 메뉴얼을 숙지하기 시작해 어느정도는 기기를 조작할 수 있었다. 다만 능숙한 것은 아니라 반응속도는 느릴수밖에 없었다.
“수폭미사일이 500킬로미터 까지 접근했습니다. 100킬로미터 안에 들어오면 영향권에 들어섭니다.”
서은설이 큰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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