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23화 (223/540)

0223 ----------------------------------------------

에피알게나스

*

*

*

“그래.”

알파라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속에 담긴 의미가 너무 명료하게 느껴져, 준은 오히려 혼란을 느껴야 했다.

“설마... 델타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내가 첫번째. 그리고 그쪽이 네번째 조각이야.”

준은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준이 처음 델타라는 이름을 들었을때만 해도 그 단어가 수를 지칭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물건이 여러개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알파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난 이상, 준은 이 외에도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그럼 베타나 감마 같은 것도 있는거야?”

“아마도 있을거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아.”

“확실하지 않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부서졌을 가능성이 있어서. 초장거리 워프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델타가 살아남은 것도 기적적인 일이니까.”

“앞뒤 다 짤라먹지 말고 처음부터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우선 네가 누구인지 부터 밝히는게 어때?”

준의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이름은 나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알파는 아무래도 이름으로 쓰기에는 좀 그런 것 같은데.”

사실 본인이 그렇게 소개를 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긴 했지만, 자신이 델타의 소유자이다 보니 그녀의 이름을 알파로 부른다는 것이 왠지 좀 꺼려졌다. 반대로 자신이 델타로 불린다면 그다지 기분이 좋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르는 이름이 아니야. 부족 이름이지.”

“끙. 그럼 뭐라고 불러야 돼?”

“에피알게나스. 그게 내 이름이야.”

“그건 그거대로 길구만. 뭐, 그걸로 부르도록 하지. 그럼 에피알게나스. 설명을 좀 부탁해도 될까?”

“좀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서서 이야기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긴 이야기가 될텐데.”

“아. 그럼 휴게실로 가자. 아무래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으니까.”

준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호기심이 충만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에피알게나스는 마스터가 내어준 차를 홀짝이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앞에 조용히 앉아 경청할 준비가 된 사람은 관계자들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 수 만해도 막스, 제임스, 루나, 서은설, 볼칸 그리고 준까지 모두 여섯 명에 달했다.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야. 너희들 말로 하면 외계인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놀라지 않는거야?”

“아니... 뭐 그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어.”

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약간 의외긴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가 빠르겠네. 내가 살던 곳에서 몬스터가, 아, 이곳에서는 외도라고 하지? 외도가 나타나서 거의 모든 인류가 멸종을 당할 위기에 빠졌어.”

“흠. 하긴 우주는 넓으니까 이곳에서만 그 놈들이 나타날리가 없겠지.”

“정확히 말하면, 우리 우주에서만 나타나는 놈들이었어.”

그녀의 말에 준은 미간을 좁혔다.

“우리 우주라고?”

“응.”

“음... 내가 잘못이해한게 아니라면 네가 다른 우주에서 왔다는 거야?”

“제대로 통역이 안되고 있는건가? 알파의 기능에 문제는 없을텐데?”

그녀는 잠시 머리를 톡톡 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제대로 알아들었어. 단지 다른 우주라는 말이 놀라울 뿐.”

“멀티버스... 이론적으로만 정립된 건데...”

루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루나가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중우주를 말하는 거에요.”

“다중우주라. 아마도 실제로 관측된 적은 없었지?”

“네. 지금까지는 여러가지 이론들의 허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가설에 불과했어요. 물론 이론적으로 어느정도는 입증이 되었지만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공격도 많이 받았죠.”

“그게 대체 뭐야?”

막스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루나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기에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우리우주는 알수없는 에너지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서로 밀쳐지면서 팽창하고 있어요. 그것을 암흑에너지라고 칭하고 있는데요, 사실 그건 ‘전혀 알 수 없는 힘’라는 뜻이죠. 그리고 그 암흑에너지의 밀도를 ‘우주상수’라고 뭉뚱그려서 칭하고 있어요.”

“그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잖아. 굳이 설명할 필요가...”

거기까지 말하던 준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막스나 볼칸은 물론 제임스마저도 처음듣는 이야기라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교육은 대체 어떻게 되가고 있는거야...?’

준은 내심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사실 보통사람은 모르는게 당연한 이야기였다. 멀티버스가 상식인 것은 어디까지나 물리학도들 사이에서였다.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 존재에 대해서 들어보기는 했을지 몰라도, 그 이론의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준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든 말든 루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주상수는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는 경향이 있는데, 만일 현재 관측 값보다 10배 이상 컸다면 우주상수가 주는 힘 때문에 우주의 먼지들이 한데 모이기 어려워져 은하가 만들어질 기회가 없었고 따라서 태양계나 행성도, 생태계도 불가능 했을거에요. 그런데 이 우주상수가 특정값. 그러니까 지금 관측된 우주전체 에너지의 70퍼센트라는 값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거죠. 굳이 이 값을 가져야할 그 어떤 당위성도 없다는 거에요.”

“우연히 그렇게 정해진 거라는 뜻이구만. 만약 그 우주상수라는 게 달랐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거잖아?”

“네. 이건 아주 엄청난 우연이죠. 그야말로 아주 희박한 확률이에요.”

“로또보다도 낮은 확률인건가?”

“0에 수렴할 정도로 낮은 확률이죠.”

“역시 신이 우리를 만든 거였어.”

막스는 두 손을 모으고 아멘, 하고 기도를 올리는 시늉을 취했다. 루나는 싱긋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막스의 말대로, 우리 우주만 존재하고 기적적으로 인류가 탄생했다는 건 전혀 과학적이지 않죠. 그래서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게 바로 다중우주론이에요. 세상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그 외 다른 모든 우주를 포함한 어떤 ‘대우주’ 안에 있고, 우리 우주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거죠. 그렇게 수많은 우주가 있다고 가정하면, 낮은 확률의 우연이 기대지 않아도 되는거죠. 수많은 우주들 중 우연히 조건이 맞은 우주에서 인류가 태어났다고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그거 어째 만들어낸 이야기 같구만.”

“가설이니까요.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입증이 되어있어요. 관측이 안되었을 뿐이죠.”

“그럼 저기 저 천사같은 아가씨가 바로 그 다중우주론의 증거가 되는 셈이로군.”

막스가 입을 열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입증만 할 수 있다면... 과학사를 바꿀만한 대사건이 되는 셈이죠.”

그녀는 에피알게나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간 이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그녀는, 사실 어느모로 보더라도 인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눈이 네 개나 다섯 개도 아니었고, 팔다리도 똑같이 두 개씩 달려있었다.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비슷한 진화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설명 끝났으면 계속 말해도 될까?”

“아. 그래요.”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피알게나스가 다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흠...”

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신음섞인 한숨을 흘렸다. 에피알게나스는 차분히, 그리고 놀랍도록 이성적으로 현재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 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녀가 살던 곳에는 이쪽에서는 외도라고 부르는 몬스터들이 살고 있었고 그것들과 싸우며 기술을 발전시켜왔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늘어나는 몬스터의 습격에 버티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했고, 그 와중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이쪽 우주로 오기 위해 초대규모 웜홀을 강제로 열어 그곳을 통과했는데, 그 와중에서 상당수의 함선이 유실되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그녀가 타고 있던 고속탐사정이었고, 그 함선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웜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양자붕괴를 일으켜 모두 사망했다. 그녀는 최후의 순간 생명유지장치를 가동시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함선을 조작할 사람이 없어 바쉬르 행성에 불시착 하게 된 것이다.

“너희 종족... 그러니까 나르족이 델타를 만든 것인가?”

준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르 족은 일족의 한 분파일 뿐이야. 우리는 스스로를 로오나라고 불렀어. 이곳의 말로 하면 ‘인간’이라는 뜻이지.”

“그렇군. 로오나 인이라.”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그래 맞아. 델타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졌지. 본래는 다른 우주에 적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체개조프로그램의 일종이야.”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던데.”

“조각을 품으면서 진화한 거야.”

“조각이라.”

“우리 우주와 이쪽 우주는 에너지의 밀도가 달라. 우리쪽은 엑조틱 에너지가 엄청나게 밀집되어 있지만 이쪽 우주에는 아주 희박하게 존재하고 있지. 때문에 ‘오리진’의 힘이 이쪽 우주에서 버티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조각내어 운반하고 있었고, 그것들 중 하나를 그 신체개조프로그램에 실어서 옮기고 있었던 거지.”

“물어불게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질문해야 할지 모르겠군. 일단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그 ‘오리진’이라는 건 뭐야?”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최후의 무기.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만든, 2조6천억의 큐비트를 처리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말하는 거야. 컴퓨터라고는 하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컴퓨터와는 달라. 우리 스스로도 신의 마이너 카피라고 떠들어 댈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말이 그리 과장도 아니었고.”

“그러면 그 조각은 모두 몇 개나 되는거지?”

“6만5천5백3십5개.”

준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알파, 델타 하기에 몇 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많네... 그나저나 하필 왜 그 숫자인거야?”

“컴퓨터잖아. 조각내기에 가장 좋은 숫자를 택한 것 뿐이야.”

“후. 좋아. 어쨌든 네 말대로 조각의 숫자가 그렇게 많다면, 델타와 같은 것들이 이 우주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건가?”

“대부분은 유실되었을 거야.”

준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문을 던지면 던질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알파가 나타나고, 그래서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이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조각의 수가 65535개란다.

물론 상당수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중 일부가 이 우주에 떨어져 있을 확률은 상당히 높았다.

“그나저나 조각의 수가 그렇게 많다면. 왜 알파, 델타로 이름을 지은거야? 조각은 6만개가 넘는데.”

“6만개를 16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이름을 붙이다 보니 그렇게 된거야. 알파는 첫 번째 카테고리의 일부, 델타는 네 번째 카테고리의 일부인거고. 각 넘버링당 4000개 가량의 조각이 존재하는 거지.”

“끙. 4천개라...”

============================ 작품 후기 ============================

오늘은 한 편만 올립니다. 7월의 첫날이니 좀 봐주삼 흐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