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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인더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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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협의는 결렬되었다. 준의 요구목록은 간단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델타스피릿에 투자협정을 맺어 1조의 금액을 지원한다. 델타스피릿에서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10기의 전차를 생산, 제공한다.
하지만 이는 갤럭시 쪽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그야말로 내 물건 팔테니 1조 주고 가져가라 라는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준의 모든 제작기술을 독점하길 원하는 갤럭시와, 단지 판매처 중 하나로 생각하는 준의 입장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차피 하루이틀새 끝날 협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갤럭시 측을 다급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어디에서 왔다고?”
“새크리파이스측에서 도착했습니다.”
“누가?”
“글쎄요. 이름은 드와이트 덴버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방문이라는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 잘 됐군. 그 자의 숙소를 갤럭시 측 숙소 바로 옆에다가 배정해.”
“이미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제임스의 대답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자를 만나봐야 무슨 의도로 이곳에 온지 알 수 있겠지만, 단지 새크리파이스의 사람이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강원삼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후 준의 사무실로 강원삼이 쳐들어왔다.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일단 흥분하지 마시고.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왜 협상중에 다른 기업을 끌어들이냐 그말입니다.”
“아. 이야기를 못들으셨나 보네요. 개인적인 방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원래 새크리파이스의 소유라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아마 플랫폼에 관련된 조언이라도 하려고 들렀나보지요.”
“하필 지금 말씀이십니까?”
“공교롭게도. 그런 셈이죠.”
준도 사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직 그를 만나보지 못했으니 목적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왕 좋은 기회가 생긴 김에 준은 그것을 철저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강원삼은 준의 책상을 탁, 소리가 나게 내리치며 준을 노려보았다.
“당신.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는 거의 준의 얼굴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협상이 결렬되면 위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글쎄. 여길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새크리파이스라고 해서 너희를 보호하지는 못해.”
강원삼은 준이 새크리파이스와 뒤로 손을 잡지 않을까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일로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오랫동안 공들인 사업이 망가지게 되면 그 피해는 강원삼이 전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이 판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렇게 된 이상 그도 칼날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셈이었다.
“누구도 날 보호할 필요는 없어.”
“과연 그럴까? 잘 생각해 보는게 좋을거야.”
“글쎄.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건 네 쪽이 아닐까?”
“컥?”
갑자기 강원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목을 쥔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며 준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준은 피식 웃으며 책상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는 몸을 뒤로 젖혔다. 강원삼이 마나를 일으키자 그의 몸을 압막하던 염동력이 풀렸다. 가까스로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바닥에 착지한 그는 준을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며 습관적으로 왼팔을 더듬었다. 하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던 자동석궁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먼저 협박한 것은 그쪽이야. 나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줬을 뿐이고. 잘 생각해보라고. 이 일이 결렬되면 누가 가장 골치가 아플까? 나? 아니면 이곳 플랫폼의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새크리파이스? 바로 당신이야. 강원삼 대리. 협상을 하러 왔으면 결과를 봐야지, 협박으로 일을 처리하려 들면 되겠어? 만약 갤럭시에서 함선을 끌고 오면 도망치면 돼. 그정도 시간은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될까? 해고당하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내가 물건을 풀기 시작하면? 그쪽에서 만든 물건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엑조틱 웨폰을 팔면 어떻게 될까?”
“우주끝가지 쫓아가서 제거하겠지.”
“맞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도 곤란하긴 마찬가지겠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두겠어? 가진 재산이 얼마가 있든지 간에 탈탈 털리고 쫓겨날걸? 아니, 그걸로도 부족할테니 평생 노예신세나 되겠지.”
물론 준의 발언은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갤럭시와 새크리파이스는 달랐고, 준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상급헌터였고, 현장에서 뛰는 꽤나 쓸만한 인재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의 말에는 진실이 섞여 있었다.
“왜 이런 중요한 일에 너를 대표로 보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언제든지 책임을 덮어씌우고 제거해도 된다는 이야기잖아.”
강원삼은 그제서야 자신이 뭔가를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식적으로는 대리직급에 불과한 자신이지만, 상급헌터이자 현장에서 움직이는 그는 나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갤럭시 내에서 임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때문에 더욱 열정적으로 일을 처리했고 그런 모습에 경계심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정적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일에 별 반대를 하지 않고 보내준 것에 대해서 미처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주 협상자로 나선이상, 제대로 된 협상을 끌어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서로 피곤하게 가지 말자고. 나도 현금이 필요하고, 당신들은 전차가 필요하니까.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잖아. 다만 새로운 협상자가 나타난 이상 조건은 좀 더 우리쪽에 유리하게 흘러가겠지만.”
준이 새크리파이스를 언급하자, 강원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거래를 갤럭시와 델타의 양자구도가 아니라 새크리파이스가 끼어든 다자구도로 끌고가려고 하는 준의 의도가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일은 더 골치아파진다.
“좋아. 그러면 지금 끝내도록 하지.”
“지금? 아직 회의를 시작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네놈이 다른 곳에서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
“뭐, 그렇다면야.”
준은 서두르는 강원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로 흔들어 두었으니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일을 진행 시킬 수 있을 듯 했다. 제임스가 협약서를 꺼내에 강원삼에게 내밀었다.
종이로 된 서류였고, 강원삼이 사인만 하면 되게끔 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해 둔건가?”
“준비는 늘 철저해야지.”
강원삼은 제임스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듯이 가져오고는 천천히 읽었다.
“잠깐. 이건 1차안 보다 더 지독하잖아.”
원래 1차 안은 10대의 전차를 공급하고 1조의 투자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헌데 이번에 건넨 안은 그 가격이 세배인 3조로 기재되어 있었다.
“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기업은 어디에도 없을 거다!”
“쯧. 멍청한 녀석. 보이는 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숫자의 의미를 파악해야지.”
준이 혀를 차며 입을 열자 강원삼의 표정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에게 사회초년생이나 들을 법한 소리를 들은 것이다.
“말해봐. 만약 날 납득 시키지 못한다면 내손으로 직접 함대를 이끌고 와서 네놈을 죽여버릴테니까.”
“뭐, 그게 가능할리는 없겠지만. 간단히 설명하지. 네가 원하던 것이 기술이전과 독점공급아니었나?”
“그렇다.”
“기술이전은 불가. 그러면 남은 건 독점공급인데, 내 입장에서는 굳이 그쪽에 안팔아도 된단말이야. 당장 새크리파이스가 여기에 와 있고, 아니면 다른 곳에다 팔아도 되는 거지. 이해했나?”
“계속 이야기 해.”
“그런데 내가 그쪽에 3조에 10대의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해봐. 내가 다른 곳에 그보다 싸게 팔 수 있을까?”
“흠...”
“신의성실의 원칙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야. 갤럭시에 그돈으로 팔 수 있는데 왜 다른 곳에 더 싸게 팔겠냐는 거지. 그리고 갤럭시를 제외하면 이 물건에 그런 돈을 지급할 녀석들도 없을걸.”
“차라리 비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 그건가?”
“뜯어서 연구를 하든 복제를 하든 아니면 그냥 팔든 그건 그쪽 마음대로야. 그 가격으로 사던가, 아니면 그냥 돌아가서 함대를 이끌고 오던가.”
“으음...”
이미 한풀 기가꺾인 강원삼은 어찌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첫날같았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새크리파이스의 등장과, 준의 압박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그를 따라왔던 두 명의 사람들이라도 있었다면 그를 제지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강원삼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할 수 없으면서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거 재미있는데...?’
준은 눈앞에 떠오른 수치를 확인하며 고민하는 강원삼을 지켜보았다. 그 숫자는 3조 즈음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상인’의 능력중 하나였다. 즉,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그것을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이다. 따로 기술이 배정되어있지는 않았고, 밥에게는 없는 능력인 것으로 보아 델타의 사용자인 준에게만 부여된 능력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 가치는 협상 상대의 심리상태에 따라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 준이 보고 있는 수치가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준은 그것으로 강원삼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수치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고, 다시 내려가면 이성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준은 여기에서 준비해두었던 것을 하나 더 내어놓았다.
“전차용 포탄은 50퍼센트 할인해 주지.”
“정말인가?”
강원삼은 고개를 치켜들며 준을 보았다. 사실 전차값이 너무 비싸서 그렇지 포탄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경험치를 이용해야만 만들 수 있는 D2전차의 포탄은 개당 경험치가 대략 50정도 들어간다. 단순히 생각해도 오백만원짜리다. 그것을 준은 제안서에 개당 이천만 원으로 적어넣었다. 외도를 때려잡을 수 있는 포탄인 만큼 비싸지만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들어갈 포탄의 개수를 생각하면 엄청난 이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천 발만 사용한다고 해도 200억이 100억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리고 그 유용성이 확인되어 더 많은 전차와 포탄을 사용하게 되면 줄어들게 되는 금액은 조단위까지 오를 수도 있었다.
그말을 듣자마자 장원삼의 머리위에 떠있던 숫자가 3조를 찍었다. 그리고는 그 서류에 사인을 했다. 준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강원삼은 사인을 한 이후에 약간 후회하는 듯 했지만, 이미 결정 내린 사안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걸로 당장 투자협약이 발효되는 건 아니야. 본사에서 반대하면 결렬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으니까.”
“상관없어. 이정도 조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과는 거래할 이유가 없으니까.”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