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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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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준은 그 기술을 익혔다. 아니, 익히려 했다.
-광물탐색과 채광기술은 제작기술로 분류됩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제작기술이 가득찼습니다.
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채광이 제작기술에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스템에 질문을 했다.
-채광은 그냥 땅속에 있는 광물을 파내는 거잖아 어째서 제작기술이 되는거지?
-유용한 자원을 생산해 내는 기술은 제작기술의 범주안에 들어갑니다.
-만드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있는 걸 파내는 건데도?
-그렇습니다. 특히 광물탐색은 광범위한 위치에 적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강력한 처리능력이 필요합니다.
‘뭐, 어쩔 수 없나.’
준은 약간 아쉬웠지만 일단 프로그래밍을 빼고 그 자리에 광물탐색과 채광을 넣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두 개의 기술이지만, 하나의 기술로 인정되는 모양인지 둘 다 문제없이 등록이 되었다.
기술
광물탐색(초급) : 반경 100킬로미터 내의 지질을 탐사합니다. 지형의 복잡도에 따라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탐색된 광물은 채광기술을 통해 캐낼 수 있습니다.(숙련도 0%)
채광(초급) : 광물탐색으로 인해 알려진 자원을 캐낼 수 있습니다. 채광용 장비의 효율이 높아집니다.(숙련도 0%)
기술의 내용은 심플했다. 초급 치고는 탐사 반경이 넓어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 있을 듯 했다. 광물탐색은 토글형식으로 켰다가 껐다가 하는 형태였다. 켜둔상태에서는 계속해서 경험치를 소모하고, 한 자리에서 오래동안 탐사를 할수록 깊숙이 있어 찾지 못했던 광물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채광은 곡괭이와 같은 장비를 필요로 했는데, 기술을 발동하고 곡괭이를 내려치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땅을 파들어 갈 수 있었다. 사용여하에 따라서 광물을 캐는 용도가 아니라 땅굴을 파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명에 따르면 곡괭이가 아니라 전동드릴이나 굴삭기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것은 실험을 통해 차차 알아갈 생각이었다
“음?”
일단 광물탐색 기능을 켠 준은 반경 100킬로미터 부근에서 빠르게 점멸하고 사라지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플랫폼의 고도는 약 3만킬로미터 였기 때문에 지상의 광물을 탐색한 것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십니까?”
준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곁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 근처에 광물 같은 게 있을 만한 곳이 있을까?”
“광물이라. 지상을 말씀하시는 건 아닌 듯 하고...”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를 말하는 거야.”
“있을 수 없겠지요.”
“그렇지?”
“딱 한가지 가능성은 있습니다.”
“뭔데?”
“유성입니다.”
“유성?”
“네 우주공간속을 떠돌아다니는 먼지들 중 광물 성분을 가지고 있는 제법 큰 돌 덩어리
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중에서 쓸만한 건 없는건가?”
“있긴 합니다만. 제대로 된 경제성이 있으려면 직경 300미터에서 1킬로미터쯤은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희귀원소를 포함한 경우에 한하죠.”
“어쨌든 그럼 그것들에서 자원을 채취하면 돈이 꽤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 그런 일을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남는 장사라고 보긴 힘듭니다.”
“왜지?”
“경제성이 있는 소행성을 찾기가 어렵고, 찾는다 해도 오랜시간 채취할 수 없습니다. 일단 채굴선을 소행성에 접근시켜서 착륙을 해야하는데 중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위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어렵고, 제대로 된 정제는 힘들죠. 그래서 원석 그대로 가지고 와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또 운송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돈이 되긴 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경제성이 있으니 아직도 그 일을 하는 기업이 있는거지요.”
“그럼 한 번 해보자고.”
“네? 어떻게...?”
“일단 돈이 될 법한 소행성을 찾아보고 알바트로스를 이용해서 가까이 가는거지. 다음은 간단하잖아?”
“흠... 뭐가 간단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인벤토리에 넣어버리면 되잖아.”
예를 들어 길이 300, 높이 50, 너비 100의 소행성이 있다고 하자. 간단히 이들을 전부 곱하면 15만이 나오고, 이는 결국 1500만의 경험치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비교적 작은 것들은 현재의 상태로도 얼마든지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현재 경험치로만 300만이 넘게 가지고 있었고, 보유 결정체의 숫자는 30만개가 넘었다. 그동안 꾸준히 결정체를 사들인 덕이었다.
준은 알바트로스를 끌고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양자컴퓨터를 켜, 인근 소행성들의 위치를 탐색했다. 소행성 자체의 움직임을 탐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홀로그램을 통해 이스카야 행성 주변 소행성들의 궤적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만 해도 엄청나군.”
가까운 것은 10만 킬로미터에서 먼 것은 3백만 킬로미터까지 떨어져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준은 가까운 소행성들을 향해 함선을 이동시켰다. 최대한 근접한 다음에 탐색기술을 통해 그 소행성의 광물유무를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준. 할 말이 있어.”
“뭔데?”
함께 우주선에 타고 있던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현재 그녀는 일등 항해사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실지로 로오나인들의 앞선 기술력을 통해 만든 우주함선의 항해사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우주선에 대한 부분은 여러모로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함교에는 준과 그녀 둘 밖에 없었고, 그 외에는 기관실에서 기기를 관리하는 몇 명 정도만이 있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도움이 되고 있는 건가?”
“충분히.”
치유능력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 외에도 해박한 지식과, 외도에 대한 정보는 지금의 준이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이네. 약간 걱정이 되었었거든.”
“무슨 걱정?”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너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떠넘긴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현실감이 없을 뿐이야. 네 말대로 더 강력한 외도가 나타나면 그때가서는 체감이 될지도 모르지.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훗. 긍정적이네.”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이지.”
에피알게나스는 천천히 준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준은 영문도 모른 채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으로 인해 목이 뻐근해 질 정도였다.
“너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아아... 방금 샤워를 한 때문일지도.”
준은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지금 그녀의 행동은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괜히 지레짐작해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준의 말에 에피알게나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옛날 생각이 났을 뿐이야. 이렇게 평화로운 우주를 보고 있으면 마치 지난 일이 꿈처럼 느껴지거든.”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에피알게나스의 우윳빛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려워 할 필요 없어. 이곳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테니까.”
“상냥하네. 당신은.”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맙고.”
삐---익!
[준, 들려?]
통신회선이 열리며 전면 스크린에 서은설의 얼굴이 떠올랐다. 준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떼어네고는 통신을 연결했다.
“아. 무슨 일이야?”
[플랫폼에서 이상 에너지현상을 관측했어. 그쪽에서는 아직 파악이 안된 것 같으니까 영상을 보내줄게.]
“뭔데?”
[일단 봐.]
서은설의 말이 끝나자 마자 전면 스크린이 전환되었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적외선 모드로 전환할게.]
서은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다음 순간 그 검은 공간에 이지러진 무언가가 드러나고 있었다.
“웜홀?”
[초대형 웜홀이야. 이런 건 본적이 없어.]
“크기는?”
[대략 200미터. 거리는 알바트로스로부터 약 20만 킬로미터 지점으로 추정 돼.]
“흠... 일단 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
[위험할 것 같으면 무리하지 말고 돌아와.]
“알았어. 나도 딸린 식구가 있는 몸이라고.”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웜홀의 위치좌표를 받아 급히 함선의 방향을 수정했다. 20만 킬로미터라면 3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초대형 웜홀의 등장은 준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도른이 있었던 대형웜홀이 나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나타난 100여미터 짜리 웜홀의 존재는, 저쪽 우주의 침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알바트로스는 30여분을 날아 초대형웜홀의 지근거리까지 도착했다. 그곳은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어 빛을 산란하고 있었다. 우주선 안에서 그 모습을 보던 준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길 들어가?’
지상에 있던 웜홀이라면 미친척하고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웜홀도 저렇게 크다보니 쉽사리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왠지 예감이 안 좋은데.”
준은 몇 백미터 거리에 있는 웜홀을 주시했다.
그때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무리어미일지도 몰라.”
“무리어미?”
준은 처음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하면 외도들의 우주선이라고 보면 돼.”
“그런게 가능한가...?”
우주선은 발달된 과학의 산물이다. 하지만 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외도가, 우주선을 만든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과학이라기 보다는 태생적인 능력이라고 봐야겠지. 그 능력은 외도 수천마리를 태우고 워프를 할 수 있을 정도야.”
“무시무시하군. 한꺼번에 수천마리의 외도가 뚝 하고 떨어지는 건가.”
“아니라면 좋겠지만... 아마...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에피알게나스는 그렇게 말하며 현시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긴 촉수 같은 무언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비행선처럼 생긴 타원형의 몸체에 십여미터가 넘는 눈 두 개가 양쪽에 붙어 있었고, 그 겉면은 짙은 갈색과 푸른색이 뒤섞여 번들거리며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아래 수없이 많은 촉수들이 배부분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안에 에피알게나스가 말한 대로 외도들이 숨어 있을 거라고 추정되었다.
“저게 무리어미라고 하는 건가?”
“맞아.”
에피알게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준비해둔 양전자포를 녀석을 향해 겨누었다. 솔직한 말로는 녀석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지 더 관찰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에피알게나스의 말에 의하면 저 녀석은 위험했다.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혹시 모를 피해를 입을 수는 없었다.
준은 스위치를 올리고 전력을 끌어 올렸다. 알바트로스의 원자력발전기에서 생산하는 모든 에너지가 양전자포에 집중되었다.
“만나자 마자 이별인가.”
준은 볼을 실룩이며 붉은 버튼을 내리쳤다.
번쩍!
시야를 가득 메우는 빛과 함께 양전자 덩어리가 코앞에 있던 무리어미에 명중했다.
기기기---
준은 마치 무리어미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듯 했다.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소리가 전달될리 없었지만, 그 소리는 분명하게 준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다.
“뭐지?”
“무리어미의 비명소리. 뇌파로 직접 전달되지. 가까이에서 들으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어.”
“그런가.”
준은 현시창을 통해 몸의 가운데가 뻥 뚫린 괴물의 모습을 보았다. 몸길이 약 50미터, 높이가 30미터인, 비행선처럼 생긴 그 촉수괴물은 사방으로 몸을 뒤틀면서 조금씩 몸이 분해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 수백마리의 작은 벌레같은 것들이 우주공간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레이더를 통해 그것을 확인한 준이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저것들 최소 노란색 외도 같은데? 초록색 외도도 섞여있잖아?”
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란색 외도만 해도 상대할 수 있는 헌터가 한정되어 있다. 하물며 초록색 외도는 상급헌터가 아니라면 막을 수가 없었다. 헌데 그런 녀석이 수십마리가 눈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