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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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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 의식을 집중하자 손에 들고 있던 검의 길이가 거의 2미터까지 자라났다. 딱히 마나를 싣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걸 제대로 써보는 건 처음이군.’
지금까지는 소행성을 자르거나, 둔기로 만들어서 사람의 허리를 꺾거나 하는데만 썼을 뿐이다. 준은 땅을 크게 박차고는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집게을 휘두르는 5미터짜리 벌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어지간한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던 외도의 집게가 마치 두부를 베듯이 잘려나갔다. 분자레벨로 물체를 절단낸다는 단분자 검보다도 훨씬 뛰어난 절삭력이었다.
‘마나를 싣지 않고도 이런 위력이라니.’
준은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집게가 날아간 외도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졸지에 공격수단을 잃어버린 녀석은 몸을 버둥거리며 체중을 실어 준을 내리찍었다. 1톤에 가까운 체중으로 준을 짓눌려 죽이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준은 자신의 몸을 덮쳐오는 검은 색의 거대벌레를 향해 십자형태로 검을 그었다. 혹시나 해서 마나를 실은 공격이었다.
콰드득!
그러자 녀석의 뱃가죽이 완전히 으깨질 정도로 박살이 나며 싯누런 체액이 쏟아졌다. 저런 벌레형태의 외도들은 대체로 체액에 독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준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항력장을 펼쳤다. 준에게 날아오던 체액은 치익 소리를 내며 항력장을 녹였다. 만약 몸에 묻었다면 EX필드고 뭐고 신체의 어느 한 곳이 녹아들어갔을 것이다.
‘확실히 노란색 외도라 그런지 독성도 강하군. 조심해야겠어.’
어지간한 공격은 전부 막아내는 항력장을 녹일 정도니, 인간의 육체정도는 조금만 닿아도 녹아내릴 것이다.
‘매크로미사일!’
준은 녀석과 충분히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원거리 마법을 난사해 죽어가는 녀석의 숨통을 확실히 끊었다. 녀석이 완전히 침묵하자 준은 빠르게 자동분류를 걸어놓고는 두 번째 외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굳이 준이 다가가지 않아도 그를 향해 외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강력한 마나를 발하는 준에게 외도들의 어그로가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나를 감지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위협을 느껴서?’
어느쪽이든 자신에게 공격이 몰린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욘, 시미, 에피알게나스 셋 모두 전투능력은 제로에 가까운 때문이었다.
두두두두-
노란 색 외도들이다 보니 하나같이 덩치가 5미터를 넘어갔다. 처음에는 라이트세이버의 힘을 알아보기 위해 혼자 싸웠지만 더 이상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흉근! 골렘 1,2,3호!”
쿵! 쿵! 쿵! 쿵!
이렇게 한꺼번에 네 마리를 모두 불러내니 알카트뢰즈가 떠올랐다. 당시는 붉은색 외도를 상대로 몰이사냥을 했지만 지금은 노란색 외도였다. 하지만 당시보다 어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사이 준도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이다.
준은 오른손에 들려있는 라이트세이버를 보았다.
‘마나를 싣게 되면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라 거의 찢어버리는 수준으로 헤집어 놓는 군.’
방금 죽인 집게벌레의 뱃가죽을 난도질할 때 녀석의 몸이 마치 종이를 찢듯이 갈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파괴력을 따지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회복력이 뛰어난 외도를 상대로 할때는 훨씬 더 유용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하나씩 맡아서 싸워.
-자유전투다. 신난다.
-알았다. 내가 대표로 말했다.
대흉근과 골렘1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조금씩이지만 자아를 가지기 시작하다보니 서로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대흉근은 좀 더 충동적으로, 골렘 1,2,3호는 좀 더 이성적으로. 준은 외도들에게도 성격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등이 굽은 대형사마귀를 향해 움직였다.
‘이 녀석들 대체로 벌레들을 닯았군.’
무리어미의 뱃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 놈들이 전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쪽에 드랍된 놈들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포격벌레도 그렇고 집게벌레도 그렇고 대체로 벌레를 닮아 있었다. 하나 다르다면 원거리 공격을 하던 갈기 뱀이었다. 헌데 또 생각해보면 뱀이라기 보다는 대형 웜에 가까운 형태였기 때문에 녀석도 일종의 벌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캬아앗!
검붉은 색의 키틴질 외형을 가진 대형 사마귀가 준을 향해 날카로운 앞발을 휘둘렀다.
“이크!”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준은 황급히 몸을 틀어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콰콱!
얼음대지가 움푹 패이며 허공으로 은빛의 얼음가루가 흩날렸다. 햇빛을 밭아 반짝이는 가루들은 지금 이 상황을 잊게 만들 만큼 몽환적이었다. 준은 그 반짝이는 얼음을 뚫고 사마귀에게 접근했다.
키에엑!
준의 빠른 몸놀림에 놀란 녀석이 황급히 허공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거의 10여미터를 허공으로 날아 준의 뒤에 착지한 녀석이 날개를 비비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끼기기기-
“저 덩치에 날기도 하는 건가. 귀찮군.”
그나마 다행인건 멀리 날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준은 녀석들 향해 도약하는 대신 가장 가까운 다른 녀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때 마침 근처에 대흉근이 상대하고 있던 투구벌레 한 마리가 있었고, 준은 가볍게 녀석의 등에 착지하여 라이트세이버를 녀석의 등껍질에 밀어넣었다.
푸욱!
보통의 검이었다면 가볍게 튕겨냈을 녀석의 등껍질 속으로 검이 스르륵 밀려들어갔다. 준은 새삼 라이트세이버의 날카로움에 감탄하며 검을 휘저었다.
꾸에에에에!
대형 투구벌레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고통을 호소했다. 준은 녀석의 등에 검을 박은 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녀석의 몸을 절반 가량 갈라놓고 나서야 물러선 준은 느닷없이 대흉근의 메시지를 받아야했다.
-주인 방해하지마라. 정정당당한 대결이다.
“이 녀석 보게.”
준은 어이가 없어서 녀석을 쳐다보았다. 외도끼리의 싸움에도 그런 것이 있는 걸까? 애초에 초록색 외도인 대흉근과 노란색 외도인 투구벌레의 싸움이다.
-정정당당 좋아하시네. 약한놈 그만 괴롭히고 빨리 끝내.
-알았다. 나는 주인 말 듣는다.
대흉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투구벌레의 뿔을 턱 잡더니 그대로 내리쳤다.
뚜각!
뭔가 심장이 떨리는 타격음과 함께 투구벌레의 거대한 뿔이 뚝, 하고 부러졌다. 그로서 녀석의 유일한 공격무기가 사라진 셈이니 대흉근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녀석의 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껍질이 단단하다 보니 처음에는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없었지만, 이미 준이 등껍질의 절반을 갈라놓은 상태였기 때문이 이내 체액을 내뿜으며 여기저기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준은 녀석에게서 떨어 져서 다음목표를 찾았다.
‘응?’
그때 준의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들자 아까의 그 사마귀가 준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기습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피하기에는 늦었고, 어떻게든 받아내야 하는 상황. 준은 라이트세이브를 역수로 쥐고는 그대로 허공으로 그어올리며 기술을 발동시켰다.
‘매크로 어택!’
수십개의 근접기술들을 융합한 준의 근접공격기, 매크로어택이 발동되자 라이트세이버가 엄청난 속도로 진동을 하며 마나를 받아들였다.
쏴아아아!
아래에서 위로, 대기를 갈라내며 솟구치는 준의 공격에 라이트세이버의 색이 푸르게 변하며 순식간에 대형사마귀의 몸을 날려버릴 기세로 엄청난 폭풍을 쏟아냈다.
치이익-
준이 딛고 있는 얼음대지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라이트세이버에서 뿜어져 나간 폭풍은 대형사마귀의 무시무시한 체중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몸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사마귀는 두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어떻게든 바람을 뚫고 나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라이트세이버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허공으로 높게 치솟았다.
쓰아아!
거의 30여미터 이상 날아오른 녀석은, 곧장 아래로 추락하며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콰지직!
이미 실드를 모두 소모한 상태였던 것인지, 녀석은 바닥에 떨어지자 마자 납작하게 짜부러지며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체중이 큰 만큼 낙하시의 충격도 어마어마한 때문이었다.
“후. 이제 겨우 두 마리 째인가.”
그 사이 골렘들이 세 마리를 해치웠다. 준은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음 타겟을 향해 움직였다.
“저, 저게 사람입니까?”
욘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지금껏 수많은 헌터들을 만났다. 개중에는 상급헌터도 있었고, 상급헌터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나다며 명성이 자자한 이들도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지금 준이 보여주는 만큼의 위용을 보인 적은 없었다.
혼자힘으로 노란색 외도를 조각내는 것도 모자라, 골렘을 소환하고 그들과 협공하여 수십마리의 노란색 외도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외도의 실드를 관통하는 병기를 가지고 있고, 그 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업체도 운영하고 있다. 때에 따라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는 성정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부하들도 있었다.
욘은 준과 함께 다니며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순간에, 그가 준에게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던 것인가를 새삼깨달았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아직까지 무명일 수가 있는 거지...?”
“이제부터 유명해질거에요.”
“그... 그래. 그런데 춥지 않니?”
욘은 반쯤은 벗고 있는 시미를 보며 자신의 두 팔을 감쌌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날씨에 저런 노출도 높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자 자신이 되려 추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춥기도...?”
시미는 약간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그렇지? 그럼 이거라도 입고 있거라.”
욘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시미에게 건네려했다. 그러자 에피알게나스가 손을 들어 막았다.
“이 아이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하, 하지만 얼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얼어죽는 건 너야. 바보. 이 녀석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라도 체온유지가 돼.”
“그런...? 요정은 역시 다르군요.”
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충동적으로 옷을 벗어주려고 하긴 했지만 외투를 벗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던 것이다. 그만큼 이곳의 날씨는 극단적으로 추웠다.
“피아. 나빠. 나도 추운걸.”
“너는 추운 정도지만, 이 사람은 죽을거야. 그리고 에피라고 불러.”
“에피? 그게 애칭이야?”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불렀으니까.”
“에피. 재채기 소리 같아.”
시미는 킥킥 거리면서 몇 번이고 그 이름을 입속에서 굴렸다. 욘이 입을 열었다.
“헌데 두 분은 준 알스버그님과 무슨 사이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냥 직원과 대표사이같지 않습니다만.”
욘도 하루이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준이 두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보통 사장이 직원을 대하는 것과는 다소 달랐다.
“...동료.”
“미래의 연인.”
“음...”
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알게나스는 확실히 평범한 부하직원은 아니었다. 힐러라는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미의 경우는 특이했다. 요정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이렇게 달라붙어서 연인을 자처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사생활을 일일이 캘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이들에게서 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끄집어 낼 수 있을 까 하고 던진 질문일 뿐이었다. 어쨌건 간에 50억이라는 돈을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준에 대한 보고는 반드시 해야했고, 거기에 가능한한 많은 정보가 들어있으면 자신에 대한 평가도 오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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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