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 ----------------------------------------------
개척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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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던전을 빠져나온 후, 준은 시간을 체크했다. 던전을 클리어 하는데는 휴식과 전투를 반복하며 약 세 시간이 걸렸다.
“삼십분?”
막스가 시간을 체크해보더니 살짝 놀란 눈치였다. 이미 던전의 시간흐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바가 있었디만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여기는 6대1이군. 미리 체크를 해둬야 겠어.”
어째서 던전마다 시간 흐름이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굳이 알필요는 없었다. 그저 현상을 체크하고 잘 써먹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총 획득 경험치는 2만에서 그쳤다. 그 중에서 준의 기여도는 약 50퍼센트. 뒤에서 보조만 했음에도 절반의 경험치를 가져갔다. 에피알게나스는 기여도에 포함되지 않다보니 결국 1만 경험치를 나머지 스무명이 갈라먹는 형태가 되었다. 그래도 한사람당 약 500의 경험치를 가져간 셈이니 다들 만족하는 눈치였다.
막스는 아슬아슬하게 9레벨에서 멈춘 상태였다. 그는 아쉬운 듯 준을 쳐다보았지만 준도 당장 던전을 열 생각은 없었다. 던전 하나를 여는데 들어가는 경험치가 20만이다 보니 마구 열기에는 준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음 던전은 행성 개발을 완료하고 열 생각이었다.
준은 던전에서 얻은 드론과 기계들을 인벤토리를 통해 모두 루나에게 전송했다. 그녀에게 할당된 10개짜리 인벤토리는 로버를 제외한 모든 로봇을 보내는데 문제가 없었다.
루나는 제법 기쁜 기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연구에 진척이 없던 차에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것이니, 준의 예상이 어느정도 들어맞은 셈이었다.
“거봐. 루나가 좋아할 거라고 했지.”
“형수님 취향이 특이한 건 알았지만...”
검둥이는 여전히 루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법이지. 여자라고 모두 꽃이나 옷, 가방 같은 것만 좋아하라는 법은 없거든.”
“뭐, 자기가 좋으면 최고의 선물이지요.”
검둥이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서 이족보행로봇을 가지고 놀고 있는 엘라를 지켜보았다. 굳이 2기를 잡아온 것은 엘라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도 자신을 닮았는지 인형 같은 것 보다는 기계류에 관심을 더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위험할까 싶어 결정체까지 빼둔 상태니, 지금 그 로봇은 움직이지 않는 고철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 후 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했다. 분명히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을 로봇이 벌떡 일어나서는 걸어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엘라와, 그녀와 함께 놀고 있던 시미가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준은 황급히 그녀들에게 다가가 A-10 로봇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게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저는 대외도형전투병기 모델명 A-10입니다. 귀하의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준 알스버그.”
[준 알스버그. 데이터 입력완료. 주인님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A-10이 엘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엘라가 잠시 손짓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빠.”
[주인님의 혈연으로 설정합니다. 최고등급 관리자로 설정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A-10의 말에 준은 엘라를 돌아보았다. 저 녀석은 엘라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그렇다는 이야기는 저것을 고친 사람이 다름아닌 그녀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된거야? 이걸 어떻게 고친거지?”
“그냥 고쳤는뎅.”
“그냥이라니... 이건 현대기술로는 복원불가능한 녀석인데?”
“보였어. 어디가 고장났는지.”
엘라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준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준이 알기로 녀석의 고장부위는 주동력을 뽑아내는 엑조틱리액터.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스태빌라이저 두 군데였다. 동력이 없으니 움직이지 못하고, 설령 동력을 어떻게든 보충한다 하더라도 스태빌라이저가 맛이 간 상태라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헌데 그녀는 잠시 만지작 거리는 것만으로 그것을 수리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수리를 위한 부품조차도 없었다.
“보이다니...”
준은 혹시나 싶어 그녀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그러자 얼마전에 확인했을때도 없던 새로운 기술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기계수리(중급) : 기계물품의 고장 난 부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마나를 사용해 고장난 부위를 고칠 수 있습니다. (숙련도 11%)
“중급?”
애초에 그녀의 기술은 염동력과 사이코키네시스 두 개 뿐이었다. 헌데 갑자기 기술이 나타난 것은 물론, 중급에 까지 올라가 있는 것이다.
‘설마 이게 금수저의 능력인가?’
금수저.
손쉽게 기술을 획득하고, 숙련도의 상승이 빠르다는 설명이 붙어 있는 패시브 기술이다. 하지만아무리 그래도 등급상승이 너무 빠르다. 백보 양보해 며칠사이 기술은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숙련도의 상승치가 너무 빠른 것이다. 플랫폼에 오르고 알바트로스에 탑승한 것이 길어야 며칠. 그 사이에 우주선 안의 기계들에 호기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이 중급에 오를 정도의 숙련도를 쌓았다는 것은 솔직히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생겼어.”
“이건 나도 못고치는 건데. 어쨌든 조심해서 가지고 놀아. 무기를 빼놓기는 했지만 이 녀석 원래 병기로 만들어진거니까.”
“응.”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미와 함께 녀석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준의 방에는 루나의 옷가지도 있었기 때문에 입힐 옷은 충분했다.
졸지에 대외도용전투병기에서 엘라의 옷갈아입히기용 인형이 되어버린 A-10이었다. 자아가 없는 녀석이어서 망정이지 만약에 로버같은 녀석이었다면 울부짖으며 신세한탄을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엘라의 수리능력은 엄청났다. 로봇뿐만 아니라 알바트로스에서 생기는 크고작은 고장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순식간에 복구가 되었다. 준에게도 ‘기승’이라던가 ‘제작’기술에 일정부분 수리능력이 붙어 있지만 그녀의 능력처럼 본격적인 기술은 아니었다.
“나중에 굶어죽을 염려는 없겠군.”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시미의 곁에서 우유를 마시고 있는 엘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고장 난 주방의 냉장고를 수리해 준 것이다.
“그거 말고 또 고장난거 없어? 엘라가 진짜 기가막히게 고친다니까?”
준이 입을 열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꽤나 큰 것이 상당히 흥분된 얼굴이었다. 밥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린애 부려먹으면서 뭘 그렇게 좋아하냐?”
“그야 기쁜게 당연하지. 우리 딸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끙. 자식자랑은 그만하면 됐고. 이제 얼마나 남은거야?”
“삼일 정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금방 도착할거야.”
어느새 워프기동을 한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다. 알바트로스로는 편도 열흘짜리 여행이었지만, 일반 수송선이나 여객선으로 가게 되면 최소 보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이정도면 상당히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스카야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행성인 만큼 준이 관리하기에 까다로울 것으로 여겨졌지만, 여차하면 웜홀을 열어 올 수 있으니 관리 자체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차피 거의 모든 생필품은 델타폰으로 보급할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다. 질서도 이미 던전안에서 어느정도 잡혀 있는 상태였고, 딱 하나 걱정되는 거라면 샬롯과 멜기오스의 존재였다. 멜기오스는 이미 완전히 외도화가 진행되어진 상태였고 샬롯은 아직까지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을 언제까지 던전안에만 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안은 떠들썩 했다. 준이 개입하기 전의 살벌한 분위기는 새롭게 던전의 식구가 된 함대승무원들로 인해 약간 부드러워져 있었고, 그 이유의 상당수는 여성승무원 들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여자들에게 잘보이기 위한 남자들의 쓸데없는 배려심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그 얼마안되는 기간에 연인이 되거나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차피 다들 새크리파이스의 식구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아주 척을 질 이유는 없는 관계였다.
“분위기 좋은데? 별 사고는 없는거지?”
사라센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준은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베를루스 대위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너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협박은 아닌 것 같고... 보이는 것과 분위기가 다른 모양이지?”
“남자들이 많다보니.”
베를루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딴 생각하지 말라고 델타폰도 줬는데.”
“물론 구현화 기능 덕에 다툼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이 많다보니 별의별 인간들도 다 있는 법이라.”
“EP가 모자라기라도 한가?”
“내 기준에서는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있겠지.”
“일단 며칠 안으로 도착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잘 관리해. 이곳 시간으로는 한달이 조금 안되겠군.”
준은 그렇게 말하며 결정체 가방을 건넸다. 그 안에는 대략 천여개의 결정체가 들어있었다. 굳이 돈으로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그들이 준에게 벌어다 줄 결정체를 생각하면 큰 돈은 아니었다.
베를루스는 잠시 가방안을 들여다보더니 놀란눈을 하고 다시 준을 보았다. 처음에 델타폰으로 건네줄 때에는 놀라지 않던 그였지만, 실물로 천개가 넘는 결정체를 보니 어지간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만큼이나 내어준다는 건 그만큼 뽑아먹겠다는 거겠지?”
“일전에 이야기 했잖아? 열심히 일하라고.”
델타폰을 건네줄 때 그것을 사용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결국 델타폰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결정체가 필요했고, 결정체를 얻기 위한 사냥만이 그들의 유일한 생산활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정체를 몰래 숨겨봐야 시간이 지나면 열화될 뿐, 결국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그들이 열심히 사냥을 하면 할수록 그 이득은 준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10년동안 살아남으면 자유인으로 풀어준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동안 잡아둬봐야 괜한 다툼만 생길 뿐이다. 게다가 그곳에 들어갈 이들은 앞으로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새크리파이스와의 충돌도 일회성은 아닐테고, 그들과의 분쟁이 끝난다 할지라도 델타스피릿을 곱게 보지 않을 이들은 많을 것이다.
정 사람을 구하기 힘들면 해적퇴치라도 하면서 쓸만한 일꾼들을 모을 수도 있었다. 골치아픈 해적들도 해결하고, 써먹을 일꾼들도 만들고, 해적들 입장에서는 10년간 고생하는 대가로 헌터가 될 수 있으니 어쩌면 그들에게도 이득일 수 있었다.
‘너무 내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 같긴 하지만...’
자유를 빼앗은 대가로 헌터가 된다. 만약 과거의 자신이라면 그것을 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럴듯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 준을 원망하면 원망했지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지원자를 모아서 헌터로 만든다음에 일정기간 동안 봉사하도록 하는 방법도 나쁘진 않겠군.’
헌터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헌터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지금처럼 억지로 사람을 가두어 놓으며 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일을 시키느니, 차라리 지원자들을 모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리제 항성계(WDC U1020.00)
행성 엘라.
본래 글리제 d라고 명명 되어있던 푸른색의 별이 현시창을 통해 눈에 들어왔다. 행성의 3/2가 물인 지구형 행성이며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차이점이라면 빙하가 없는 비교적 높은 기온의 행성이라는 점. 하지만 고위도 지방은 비교적 온화한 기후이기에 인간이 살기에는 가장 최적화된 행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버려진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연방, 파티마, 연합의 세 국가의 국경에 걸쳐있고, 각 국가들의 주요 산업행성들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우주시대의 각 국가들은 지닌 영토에 비해 상당한 인구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였고, 그렇다보니 거주가능행성이라고 해도 굳이 개발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말그대로 시골의 한적한 행성인 것이다.
“도착했군.”
준은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열흘간의 일정은 우주선 승무원들에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중간에 던전도 탐색하고 엘라와 놀아주느라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시커먼 우주공간을 열흘내내 지켜보는 것은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쌓이기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