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6 ----------------------------------------------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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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도-
철컥- 철컥-
엘라가 종종걸음으로 달리고 그 뒤를 A-10이 쫓았다. 전투병기인 A-10이 엘라의 뒤를 쫓는 모습은 얼핏 보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광경이었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빳!”
“으앗.”
준은 자신의 목에 매달리는 엘라를 안아들었다. 함교는 현재 딱히 업무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준을 포함한 몇 명만이 항로를 체크하며 워프중의 알바트로스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배고파요.”
“마스터가 밥 안줬어?”
준의 말에 엘라가 눈을 고개를 저었다.
“나 말고. 얘.”
“A-10을 말하는거야?”
“응!”
“배가 고프다는 건 전력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맞아요. 하나만 주세요.”
“뭘?”
“보석. 빨간거.”
“결정체 말하는 거구나. 하긴 이녀석은 엑조틱 에너지로 돌아가는 기계였지.”
아직 A-10을 비롯, 다른 로오나 산 기계들의 구동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저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엑조틱 드라이브가 현재의 기술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펠로우쉽 계약을 맺고 있는 엘라의 ‘수리’기능만이 유일하게 저것들을 되살려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부서진 로봇을 고쳐서 사용하는 정도지 대량생산을 할 수 있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준의 제작기술로도 불가능했다. 그의 기술은 어디까지나 현세대 기술의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현 인류의 기술력을 뛰어넘는 로오나의 기계들은 제작이 어려웠다.
A-10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재현이 어려운 기술이 바로 주구동계인 엑조틱 리액터였다.
“하나면 되는 거야?”
“응! 하나면 된다고 했어.”
“누가?”
“얘가.”
준은 고개를 들어 뒤에 서있는 A-10을 보았다. 녀석을 파괴하고 그 안에 들어있던 주황색 결정체를 자신의 손으로 꺼내었다. 그 순간 외도로서의 자아는 파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뒤로 엘라가 수리를 했다고 한들 녀석은 평범한 로봇일 뿐이었다.
헌데 말을 했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자아가 탑재되어 있는 모델이었던 모양이다.
“말 할 줄 알아?”
[가능합니다.]
기계음이 뒤섞인 약간은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오나인의 기술로 인간의 목소리를 재현하지 못할리는 없다. 아마 일부러 기계음을 섞은 것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로봇인 이상 인간과 너무 흡사하게 제작하게 되면 위화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헌데 왜 저번에는 말을 안했던 거지?”
[명령이 없었습니다.]
“끙. 로봇이라 그런가. 확실히 사람과는 다르군.”
AI에도 여러종류가 있다. 인간의 인격을 카피해 독특한 성격을 가진 것도 있고, 아예 인간의 명령에 기계적인 답변만을 하는 종류도 있었다. 로버가 전자고 이 녀석은 후자인 듯 했다.
‘하긴 로버가 특이한 놈이지.’
델타의 AI도 자아가 강하지는 않은 편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처럼 행동하는 기계는 로버가 유일한 듯 했다.
“자. 아껴써.”
준은 인벤토리에서 결정체를 꺼내어 엘라에게 건네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받고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슴니다.”
“예의가 바르구만. 누구와는 달리.”
“안녕하세요오.”
뒤에서 지켜보던 막스가 입을 열었다. 엘라도 막스를 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인사를 했다. 무표정이던 막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날 안 무서워하는 아이는 쟤가 처음인 것 같다. 으으. 저 녀석을 보니 나도 결혼이나 할 까 싶어.”
“여자는 있고?”
“소개 좀 시켜줘봐. 이왕이면 젊은 친구로.”
“그쪽나이를 생각해야지.”
“어허. 겉보기는 이래도 체력은 아직 20대라고.”
“뭐,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과연 우리 엘라만큼 예쁠 수 있을 것 같아? 딸은 아빠 닮는다는데?””
“진지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 해봐. 저애가 널 닮은 것 같냐?”
“으음... 확실히 나보다는 루나를 많이 닮았지.”
준은 엘라의 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와 닮은 거라곤 이 머리색 뿐. 나머지는 모두 루나를 빼다 박은 듯한 외모였다.
“아닌데. 아빠도 많이 닮았는데.”
엘라가 입을 열었다.
“어디가?”
“으음... 그러니까...”
그녀가가 턱을 괴고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준은 참지 못하고 엘라를 꽉 껴안았다.
“엑?”
“이게 대체 누구 딸인데 이렇게 귀여운 걸까.”
부비부비.
“으아아아아~”
준이 엘라의 뺨에 얼굴을 부볐다. 엘라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변할 무렵.
딱, 소리와 함께 준의 머리를 내려치는 손이 있었다.
“누구야?”
“아씨. 머리 진짜 단단하네. 완전 돌대가리잖아.”
서은설이 준의 머리를 내리친 손을 잡고 입김을 후후 불었다. 그러자 엘라가 준의 품에서 빠져나와 서은설에게 안겼다.
“작은엄마!”
“그래. 많이 괴로웠지?”
도리도리.
엘라는 입술을 꽉 다물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눈에는 눈물이 반쯤 고여있었다. 서은설이 준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애를 그렇게 꽉 끌어안으면 어떻게 해? 힘들어 하잖아!”
“그, 그건 엘라가 너무 귀여워서...”
“하여튼 애보는 거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괴롭히지나 말라고. 하루종일 애를 누가 보는 줄 알아?”
“나, 난 일이...”
“시끄러워. 나는 뭐 일이 없나?”
서은설이 더 화가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그러고보니 워프드라이브 중에는 항상 엘라는 서은설과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시미랑 검둥이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하여튼 바쁜건 알겠지만 애랑도 종종 놀아주라고.”
“넵.”
준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서은설에 의해 꼼짝없이 엘라와 함께 함교에서 내쫓긴 준은 A-10을 뒤에 달고서 천천히 걸음을 걷고 있었다. 준은 엘라를 허공에 띄운 채 걷고 있었다. 엘라도 염동력은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아직 준처럼 오랜시간을 유지할 수 없었다. 염동력 자체는 따로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아무래도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다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이거 줘야하는데.”
엘라가 손에 든 결정체를 들어보였다.
“아. 그러고보니 출력이 떨어진다고 했었지. 그런데 어떻게 줘야하는 거지?”
[그냥 주시면 됩니다.]
A-10이 입을 열었다. 준은 엘라에게서 결정체를 받아 녀석에게 건넸다. 그러자 녀석이 그것을 낼름 삼켰다.
“음... 꼭 멋있지는 않더라도 뭔가 그럴듯 하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쪽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하긴. 입으로 뭘 먹는게 몸속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니까.”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피식-
A-10은 마치 컴퓨터를 리부트 하듯, 스스로 자신의 시스템을 셧다운 했다. 몸은 그대로 서 있었지만 눈에 비치던 빛이 깜빡거리더니 곧 꺼졌다.
“얼마나 가려나.”
결정체 하나에 얼마나 오랜시간 동안 기동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몰랐다. 만약 하루에 하나씩 결정체를 집어삼키거나 한다면, 엘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장난감에 그 만한 결정체를 쓸 수는 없었다. 차라리 무장을 갖추고 전투용으로 쓴다면 모를까.
“10년 정도 움직일 수 있대.”
“음? 10년? 그것도 저 녀석이 말한거야?”
“응. 전투만 안하면 그 정도. 싸우면 조금 줄어든대.”
“뭐, 전투중에는 엑조틱 에너지의 소모량이 많으니 어쩔 수 없겠지. 그건 그렇고 10년이라니 엄청나네. 엑조틱 리액터를 만들 수 있으면 배터리 시장을 붕괴 시킬 수 있겠는데?”
현재의 배터리는 스마트패널에 들어가는 초소형 배터리를 기준으로 약 일주일간 사용할 수 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디스플레이를 켰을 때를 기준으로 한 시간이니 결코 짧은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충전포드 근처에 가면 자동으로 고속충전까지 되기때문에 일상생활 레벨에서는 배터리의 부족을 경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음... 그러면 내가 만들어 볼까?”
“하하... 네 엄마도 그건 못만들텐데.”
루나의 현재 지능은 78이다. 인간으로서는 이미 종을 뛰어넘은 지능수치였다. 지금의 그녀라면 어쩌면 로오나인의 기술을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갈길은 멀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지능이 9인, 태어나지 1년도 되지 않은 아이가 만들기에는 너무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아직은 힘들지만... 좀 더 자라면 될 지도 몰라.”
“뭐, 열심히 해봐. 기대할게.”
“응.”
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A-10이 눈을 떴다. 정확히 말하면 움푹패인 눈에 빛이 돌아온 것이다.
[시스템 체크, 올 파트, 올 그린. 관리자 정보 확인. 마스터 엘라 알스버그.]
“그런데 어떻게 이 녀석에게서 슈퍼관리자 권한을 얻은거야?”
“고치면서 시스템을 초기화 했어.”
“그렇군. 자동으로 관리자 모드로 전환이 된거로군.”
엘라는 이미 성인에 가까울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스탯의 상승치도 경이로워, 하루가 다르게 그 능력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성장하게 되면 1레벨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준 자신보다도 스탯이 더 높아질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를 보통 아이로만 대하기는 힘들었다. 한살짜리 여자애라고 무시했다가 오히려 된통당한 이들도 요 며칠사이 꽤나 있었다.
“프랜. 상태는 어때?”
[이상은 없습니다.]
“다행이다. 얼마나 갈것같아?”
[별다른 전투가 없다면 일반모드에서 약 9년 341일 정도 기동가능합니다.]
“엄청나군. 헌데 프랜? 이름이야?”
“응. 내가 붙였어.”
“친구라는 뜻인거 같은데. 혹시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거나 그런거야?”
솔직히 엘라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갓난아기때를 제외하면 알아서 화장실까지 가릴 정도였고, 신체가 자라면서 분유도 빨리 떼고 일반식사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거기다가 펠로우쉽 덕분에 어디 사라지거나 해도 금세 찾을 수 있어 속을 썩이는 일도 없었다.
유일하게 걱정이라면 그녀가 지나치게 빨리 자란 탓에 같이 놀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 정도. 그래서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면 항상 시미나 검둥이가 곁에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니. 시미언니가 있어서 괜찮아.”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녀석이랑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잘 통하는데.”
“하긴. 그 녀석이 워낙 정신연령이 어리니 잘 맞겠구만.”
대화를 해보면 때로 시미보다 엘라가 더 똑똑하게 느껴질때가 많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미도 세상에 나온지는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려웠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너무 어려서.”
“뭐, 그렇지.”
알파시티에도 어린아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헌터들 중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고, 가끔 비슷한 덩치의 다른 아이들과 논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엘라가 유난히 조숙한 탓에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괴롭힘을 당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것이, 오히려 다른 아이들은 엘라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문제는 항상 포지션이 그녀가 다른 아이들과 ‘놀아 주는’ 형태가 되는 것이 었다. 가끔 그녀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곳으로 가면 항상 아이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줄의 맨앞에는 시큰둥한 얼굴로 다른 아이들을 허공으로 띄워주고 있는 엘라의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