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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조틱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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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거부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서로 번거롭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는 걸 알잖아.”
“자신감이 대단하군. 허나 아직 우리에게는 4개 함대가 남아있다.”
“그것마저 잃게 되면 어쩌려고.”
“으음...”
준의 말에 사쿠라이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새크리파이스 정도의 커다란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행성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 함대들은 절대로 잃어선 안되었다. 만약 또 다시 준에게 패배한다면 그때는 델타스피릿이 아닌, 다른 녀석들이 새크리파이스의 영역을 잡아먹으려고 들 것이다.
탁.
“역시 말로는 안되겠지?”
준이 찻잔을 내려놓고서는 입을 열었다. 사쿠라이가 손을 들며 그런 준을 제지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 델타스피릿의 힘으로 란도넬 행성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인구 4천만의 행성. 수라드 행성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행성의 주요수입 중 하나인 마약생산을 배제하고서 이런 규모의 행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관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만해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효과까지 생각해보면 순식간에 행성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런 피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행성 인구의 3분의 1이 상습마약복용자라고 가정할때, 그들에 대한 치료까지 병행하려면 어마어마한 재정이 소모된다. 그런 모든 것들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당연하게도 현재의 델타스피릿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폭동이 일어날 걸세.”
란도넬 행성은 독이든 성배가 아닌, 독 그 자체였다. 새크리파이스가 아니면 그 누구도 관리할 수 없는 지역인 것이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준이 절대로 이 행성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차라리 다른 행성을 내어주지. 비교적 인구가 적은 지역이니 관리하기도 수월할걸세.”
새크리파이스는 델타스피릿과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다. 10개 함대에 이르던 전력이 4개 함대로 줄었고, 100만 인구의 수라드 행성을 잃었다. 거기다가 전쟁의 패배로 인한 신뢰도 하락으로 인해 엄청난 투자자산이 빠져나갔다.
사실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위태로운 것이다. 거기다가 란도넬 행성마저 빼앗겨 버리게 되면 새크리파이스는 더 이상 100대기업의 일원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축소될 것이다. 사쿠라이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막아야 할 일이었다.
판단 착오로 인한 패배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100년이 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 여기까지 일구어낸 기업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 마약을 통치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너희들 밖에 없을거야.”
이 행성의 중독자는 천만이 넘는다. 상당수는 대마류의 비교적 중독성이 약한 마약을 사용하지만, 코카인 류의 강력한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이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그것들을 단숨에 끊게 한다면 그 후유증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마비되고 말 것이다.
“대신 그만큼 효과적이지.”
사쿠라이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가 보는 준은 강한 힘을 손에 쥐고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였다. 이상에 도취되어 현실을 망각한 전형적인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마약산업을 폐하고도 이 행성을 유지할 수 있나? 란도넬 행성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일이네. 그걸 과연 네가 할 수 있을까? 4천만에 이르는 시민들의 생존을 보장해 줄 준비가 되어 있나?”
사쿠라이는 완전히 승리자의 얼굴이 되어 준을 압박했다. 준 알스버그는 아무런 준비없이 이곳까지 왔다, 그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그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뭐라?”
사쿠라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차는 잘 마셨어. 그럼 이만 가봐.”
“어딜 가라는 거지? 여기가 바로 내 집이다.”
사쿠라이의 평정을 가장하고 있던 얼굴에 빈틈이 생겼다. 준의 행동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란도넬 행성을 델타스피릿이 집어삼킬 수 있느냐고 했지?”
“그렇다. 너무 큰 먹이는 오히려 배탈이 날 수도...”
“아니. 애초에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란도넬 행성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 폭동이든 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 외도에게 죽을 뻔한 걸 살려놨더니 마약을 내놓으라는 놈들까지 내가 구해줄 필요는 없겠지.”
“뭐, 뭐라고?”
“물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거야. 치료시설도 확충할거고, 대체약물에 대한 개발도 할 거야. 그럼에도 부족하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
“많은 사람이 죽어 갈 것이네. 그 업을 과연 네놈이 버텨낼 수 있을까?”
사쿠라이의 말에 준의 표정이 분노로 물들었다.
쾅!
쩌억!
준이 발을 들어 내리 찍자, 두 사람 사이에 있던 탁자가 무참히 박살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날렸다. 자단목 탁자의 파편이 사쿠라이의 뺨을 스쳤다. 주르륵, 하고 제법 많은 피가 흘렀다.
파편을 뒤집어 쓴 사쿠라이를 향해 준이 입을 열었다.
“영감. 헛소리는 거기까지만 해. 죽고 싶지 않으면.”
“뭐, 뭐라고?”
“애초에 마약을 만든 것도, 사람들을 중독시킨 것도 전부 네놈의 짓이잖아. 그 책임을 나에게 떠맡기지 말라고.”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이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네놈은 모를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창기 개척행성 중 하나인 란도넬 행성은 1차 외도의 습격때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겨우겨우 복구를 하고 한숨을 돌리려고 할때쯤 터진 2차 습격은 사쿠라이로 하여금 모든 의지를 꺾게 할 정도의 타격을 주었다.
그렇게 두번의 심각한 타격을 입은 란도넬 행성의 거주민들은 모든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산업기반은 모조리 파괴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하루하루 절망속에서 살아갔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이들에게 미래는 사치였다. 그런 와중에 조용히 마약이 퍼져나갔다. 당시의 연합정부는 란도넬 행성에까지 행정력이 닿지 못하던 상황이었고, 란도넬 행성을 주요 개척시장으로 삼던 새크리파이스는 사실상 부도 직전이었다.
그런 와중, 사쿠라이가 마약시장의 잠재성을 깨닫고 사업을 시작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유통망을 넓혀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함으로서, 시장의 외연을 엄청나게 넓히는데 성공했다. 사쿠라이의 사업수완은 란도넬 행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곧 다른 행성에 까지 마약 밀매를 하기 시작했고, 그 주요 유통책으로 해적을 이용했다. 그것을 통해 란도넬 행성은 유래없는 대 호황기를 맞았다.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행성 하나가 마약을 통해 다시금 도약한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란도넬 행성 자체는 마약에 대한 저항감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마약은 마약이어다. 상습적인 마약투여는 결국 시민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번 돈으로 마약을 구매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란도넬 행성의 생활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현재에 이르러서는 한해에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만 해도 수만명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구입하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모두가 브레이크가 망가진 열차에 타고 있는 셈이었다.
“변명 잘 들었다. 그럼 이제 꺼져줄래?”
“빌어먹을 애송이녀석. 도저히 말로는 되지 않는 구나.”
사쿠라이가 수염을 부르르 떨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이었다.
준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귀찮은 짓을 하는 군.”
“후후. 무슨 배짱으로 혼자 이곳까지 쳐들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녀석을 사로잡게 되면 델타스피릿도 끝이겠지.”
사쿠라이는 득의만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이 일그러지는 데는 단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푸슈슈슛!
“어, 어떻게...”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명에 이르던 병사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수십기의 니들건이 그들을 단번에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준이 사쿠라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협상문 작성할까?”
“이...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나?”
스릉!
준은 대답대신 라이트세이버를 들어 사쿠라이의 목에 겨누었다. 그의 뺨에서 흘러내리던 피는 아직도 멎지 않고 있었다.
“그런 걱정을 해줄 정도로 여유가 있나보지?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일이나 끝내자고.”
새크리파이스는 사쿠라이 회장이 전결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는 설령 이사회라고 해도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협박때문이라고는 해도 사쿠라이 회장의 동의가 이루어진 이상 란도넬 행성에 대한 권리는 준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연히 아무런 잡음이 없을 수는 없다.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플랫폼에 상주중인 4개 함대였다. 란도넬 행성 자체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 함대를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준은 그것을 간단하게 해결했다.
사쿠라이 회장의 목숨과 교환한 것이다. 어차피 놈들도 다시 준과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협상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4개 함대는 플랫폼을 비우고 떠났다.
란도넬 행성의 최상층, 얼마전까지 사쿠라이 마코토의 펜트하우스였던 크리스탈 룸에서 준은 제임스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미쳤습니까?
-뭐, 그렇게 됐다.
준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지구라트의 통제권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필요한 일이었지만 결국 고생하는 것은 제임스였다.
-그곳을 대체 어떻게 통제하실 생각입니까? 란도넬은 수라드 행성과는 다릅니다.
-나도 알아.
-아시는 분이 그런 짓을 벌이십니까!
제임스는 정말로 화가난 듯 했다. 행정가로서 그는 이미 그는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수라드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처리하는 것만해도 업무가 충분히 과중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몇십배에 달하는 업무가 갑자기 밀려들어올 생각을 하니 이제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당분간은 기존대로 운용할거야,
-불법산업체들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준과 사쿠라이는 마약생산기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지만, 실제 란도넬 행성은 마약, 인신매매, 매춘, 장기밀매 등을 주력으로 삼는 비도덕적인 기업들이 널려 있었다. 기존대로 운용한다는 것은 그 기업체들을 전부 인정한다는 이야기였다.
-꺼지라고 해야지.
-후우... 그 기업들이 전부 빠져나가면 태반의 시민들이 직장을 잃게 될 겁니다.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이야.
-무슨 사업을 말입니까?
-발전사업.
준은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던 바를 설명했다. 인구 4천만의 란도넬 행성에는 핵융합 발전소가 있었다. 건설하는데에 막대한 금액이 들긴 하지만 일단 한번 가동되기 시작하면 거의 무한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것이 핵융합 발전소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덩치가 너무 커서 우주선에 탑재하기에는 무리였다. 게다가 건설비용도 엄청나기 때문에 최소 인구가 몇천만 이상이 되지 않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할 방법이 바로 ‘엑조틱 엔진’였다. 결정체를 이용해서 저렴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그 기술은 엄청난 이득을 델타스피릿에 안겨줄 물건이었다.
-...엄청난 기술이긴 합니다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제임스의 목소리가 조금 안정되었다. 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란도넬 행성 하나쯤 건사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