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3 ----------------------------------------------
엑조틱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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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심이 전차를 이끌고 군인들과 함께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다. 상급헌터 셋은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고, 백여 명의 중하급 헌터들은 전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들은 먼저 던전에 들어가 있었다. 사망자가 없지는 않았다.
준이 날려버린 건물에서 여섯명의 사망자가 난 것이다. 대흉근으로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시신은 따로 수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반란군들이 도착했다. 시청사 안쪽으로 자리를 옮긴 준은 그들이 오는 대로 모두 사로 잡았다.
이미 전의를 잃은 헌터들을 이용해서 무장해제를 시킨 것이다. 대세를 깨닫고 순응하는 녀석들은 그대로 전력으로 활용했고, 시끄러운 녀석들은 던전에 집어 넣었다. 그렇게 시청사에 가만히 앉아서 준은 순식간에 반란군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나머지 상급헌터들이었다. 일곱 명 중 세명은 전투불능이 되어 던전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이 도착했다.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하늘을 날아서 시청사에 내려앉은 그는 도열해 있는 헌터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준 알스버그는 어떻게 됐나?”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헌터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고, 그를 따라 마법사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그곳에는 시청건물 입구 계단에 앉아 있는 준 알스버그가 있었다.
“네놈?”
바로 준을 알아본 그는 품에서 짧은 완드를 꺼내들었다. 동물의 뼈로 만든 것 같은 그 지팡이는 노란색 결정체가 박혀 있었다. 마나증폭용으로 사용되는 완드였다. 저런 물건의 경우 결정체의 등급에 따라 그 능력이 다른데, 노란색 정도면 상급에 해당하는 물건이었다. 가격만 수억에 달하는 물건이었다. 확실히 상급헌터인 만큼 장비에 투자하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마술사 오펜하이머지?”
“준 알스버그. 으득.”
그는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이를 갈았다. 시청사가 점령당했고, 헌터들이 무력하게 도열해 있다는 것은 이미 전투가 끝났고 자신들이 패배했다는 것이다.
“이든은 어떻게 됐지?”
“죽지는 않았어.”
“만약 거짓말이라면 네놈은 오늘 여기서 살아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상황파악 좀 해라... 네가 지금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닌 거 같은데.”
준의 말에 오펜하이머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완드를 앞으로 내밀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당장 그들이 어디있는지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일대를 죽음의 불길로 뒤덮어 버릴 것이다.”
“그건...”
준은 오펜하이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법사는 원래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 아니냐?”
“으득. 지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협박이라는 건 뭔가 나에게 손해가 날 일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여기를 불태워봤자 반란군의 본부를 태우는 거잖냐. 그걸 왜 내가 막아야 하는 건데?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인데?”
“그건... 시청사는 다시 지으려면 돈이 무, 무척이나 많이 든다.”
“흠.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을 전부 제압하고 도시를 정상화 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테니, 반란군의 수장을 풀어달라는 말이었어?”
“...”
준이 차분히 설명하자 오펜하이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끝났어. 너도 그냥 항복해. 괜히 서로 힘만 빼는 것도 지치고.”
“흥. 웃기지마라! 플라이!”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허공에 띄웠다. 순식간에 시청사 위로 치솟던 그는 이내 다시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거지?”
그는 당황하며 다시 몸을 띄우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내려오는 속도만 빨라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쳐박혔다.
쿠웅!
“아악!”
그리고 바닥을 구르며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가 벗겨졌다.
“...여자였냐?”
“아으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앗?”
오펜하이머는 후드가 벗겨진 것을 깨닫고 얼른 다시 뒤집어 썼다. 그리고는 중후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놈!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거냐?”
“아니. 이제와서 남자인 척 해봐야... 그보다 그거 목소리 변조 마법이 걸려있는 거였냐.”
“무, 무슨 누가 여자라는 거냐?”
“아니. 우길 걸 우겨야지.”
준은 그렇게 말하며 염동력을 이용해 강제로 그녀의 후드를 뒤로 젖혔다.
“읏. 이게 대체...”
오펜하이머는 푸른색의 단발에 금안을 지닌 소녀였다. 나이도 상당히 어려 보였다.
“너 몇 살이냐?”
“열 아홉이다.”
“보기엔 열 다섯으로 밖에 안보이는데.”
“원래 마법사는 좀 어려보인다.”
“그보다는 발육부진에 가까운 것 같다만.”
“이익...”
오펜하이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러다가 이 상한다. 어쨌든 항복하는 거지?”
“누, 누가 항복한다고!”
그, 아니 그녀는 완드를 허공에 치켜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지옥의 불길이 대지를 태우고...”
퍽!
어느새 나타난 카심이 주문을 외우는 그녀의 복부를 후려쳤다.
“이... 비겁한...”
오펜하이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카심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얘도 노예로 파실건가요?”
“아니. 애초에 왜 내가 노예장사를 한다고 생각하는거야.”
“일전에 파티마제국과 노예거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거야... 나도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새크리파이스에서 포로협상을 안하는데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공짜로 먹일 수는 없잖아.”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감옥행성에 넣고 강제노역 시킬 건데.”
“...그렇습니까.”
카심은 잠시 어느쪽이 더 최악인 걸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준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거기에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10년정도 일하면 풀어줄거야.”
“하긴 반란군이 무조건 총살인 걸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게 인간적인 걸 수도 있겠군요.”
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더 이상의 상급헌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눈치가 빠른 녀석들인지라 시청사가 장악당하고 반란군이 와해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루 정도 죽치고 시청사에서 기다린 끝에 최종적으로 준이 얻은 수확은 중하급 헌터 7백명과 상급헌터 네 명이었다.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어디선가 게릴라 활동을 하던가, 아니면 다른도시에 스며들어서 반란군이 아닌척 하고 살아갈 것이다.
어느쪽이 되었든 사라올 시티의 소요는 끝난 셈이다. 준은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준은 일단 헌터들을 던전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들도 어쨌든 반란군 가담자이니만큼 감옥행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오펜하이머였다.
어차피 이번 반란군 중 4분의 1은 여성이었다. 보통 헌터로 각성하는 비율은 남녀 5:5로 같은 비율이었다. 그렇지만 직접 전투를 하는 쪽으로 나서는 것은 7대3정도. 그것도 원거리 딜러를 포함한 경우였다. 마나를 사용하는 헌터의 경우 여성이라고 해도 남자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성향 자체가 전투보다는 후방지원을 선호하다보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반란군도 얼추 그 정도 비율로 여성이 있었다. 그러니 딱히 던전에 그녀를 던져넣는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신입들이 들어가 있는 던전은 도른도 함께 집어넣어서 질서를 잡고 있으니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감옥행성이었다. 10년 가까이 살게 될 그곳에 여성보다 남성의 숫자가 많아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성비가 맞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감옥이라는 본래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새로운 행성을 하나 개척해야겠군.’
준에게 테라포밍 기술이 있으니, 근처 행성에 감옥행성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외도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외도들은 거주가능행성이든 그렇지 않든 존재했다. 그들은 발을 디딜수 있는 땅만 있으면 먹을 것이 없어도 생존했다. 다만 그런 곳은 비교적 외도가 강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자신들끼리 경쟁하며 서로 먹어치워 힘을 키운 때문이었다.
하지만 델타폰을 지급하고 장비를 제대로 갖추어 사냥을 하면 그정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문제가 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라 행성 근처를 좀 뒤져봐야겠군.’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펜하이머를 던전에 집어넣었다.
사라올 시티의 반란군을 제압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란도넬 행성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당장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고, 대부분이 불법사업에 손을 대고 있던 이들이라 당연히 사건사고가 다수 일어났다. 거기다가 마약중독자들이 떼거지로 병원에 몰려들면서 점점 사태는 악화되고 있었다.
우선 준은 발전소 준공을 서둘렀다. 원래라면 부지선정에서부터 건설업체 선정까지 상당히 긴 기간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일단 준은 빈땅에 대규모 공장부지를 설정하고 그곳에 도시건설을 시작했다. 건축스킬이 상급으로 오르며 도시계획을 통해 건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건물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단지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업무에 투입 될 수 있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그 규모는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신경을 쓴 것은 의료문제였다. 다른 모든 것보다 마약중독자 문제가 심각했다. 준은 에피알게나스와 통신을 연결했다.
-에피알게나스. 뭐 물어볼게 있는데.
-아아. 오랜만. 직접 연락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아마 있긴 할거야.
-흠. 그런가. 너무 오랜만이라서 잊어버린지도.
그녀는 어쩐지 약간 섭섭한 눈치였다. 그녀 정도 되는 미인이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에게 잡아먹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가 준의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떠오른 것이다.
‘뭔가... 종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에피알게나스는 지금은 멸종한 로오나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준을 필요로 했다. 준도 그 부분에 있어서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만으로 그녀를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로버때문이라도 불가능하고.’
로버는 지금 준이 다른 기업들과 대등한 외교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새크리파이스와의 전쟁에서도 그가 없었다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어쨌든 뭔데?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할 방법이 필요해.
-얼마나?
-한 백만명 정도...
란도넬 행성의 상승마약 복용자는 인구의 3분의 1정도 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금단증상으로 이어져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줄 정도는 그나마 그 10분지 1인 백만명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였다. 펠로우쉽으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잠시 기다려.
-응? 응.
준은 일단 통신을 마치고 도시건설 현장을 바라보았다. 대규모 공업단지를 계획하고 건설하는 것이 전공은 아닌지라 제임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전공은 아니었지만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고, 상당한 대금을 지불한 후에 계획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도시계획을 잡았다. 공장 안의 설비들은 오로지 준이 설계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것은 전공분야라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에 들어가는 경험치가 만만치 않았다.
20레벨까지 올리고 나서 남은 경험치는 약 백만 정도. 그뒤로 경험치가 좀 쌓였다고는 하지만 예상 경험치가 거의 천만 가까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단 아쉬운대로 조금씩 건물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10분의 1이라고 해도 완공되는데까지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됐어.
-응? 됐다니.
-해독제.
-아. 그런데 그거 대량생산 해야되는데. 가능할까?
그녀가 펠로우쉽 계약자라면 델타스토어에 올리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알파의 소유자인 그녀는 시스템적으로 델타에 귀속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