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95화 (39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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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조틱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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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설비가 10퍼센트 정도 완공 되었을 무렵부터 준은 채용공고를 내었다. 채용요건은 란도넬 시민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가능했다. 물론 관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부 숙련공을 스카웃해서 이미 기계를 숙지하도록 한 후, 상급자로 채용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 소식에 전국에서 엄청난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엑조틱엔진 공장 자체가 첨단시설인데다가, 월급도 나쁘지 않고 작업환경도 좋은 편이다 보니 멀쩡한 직장에 근무하던 이들까지 지원을 한 것이다.

대기업 생산직에 대한 로망은 란도넬 행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일차 서류는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이 지원서를 내었다. 공장 완공시, 전체 예상 근로자 수를 50만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열배에 가까운 수가 지원을 해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서류전형에서 탈락을 시켜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또 경력자 위주로 선발을 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애초의 목표였던 불법사업에 관여했던 이들이 대거 탈락하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냥 그대로 가십시오.”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이스카야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란도넬 행성으로 온 것이다. 대규모 토건 작업과 함께 엄청난 수의 인원을 모집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임스의 도움이 없으면 진행하기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델타 엔지니어링이라는 새 기업을 만들어 기업의 형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말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하셨어야지요.”

“그건 그렇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에게 있어 중요성이 외도에게 있다면 제임스에게 있어서 외도는 차후의 문제다. 그는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었다. 준이 저지르는 사고의 뒷감당은 그가 없으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잘 부탁해.”

“뭐, 이게 제 할 일이니까요.”

이제와서 그런 일에 불만을 가질 제임스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뒷돈만 챙기던 과거에 비하면 그래도 일하는 맛은 나는 것이다.

지금도 며칠째 잠 한 숨 자치 못하고 업무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은 역시 에피알게나스의 회복능력 덕분이었다. 이번에 만든 해독약을 먹어보더니 체력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잔뜩 챙겨두기도 했다.

“그럼 일차로 5만 명 가량의 신입사원을 모집하겠습니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밀고 나가겠습니다.”

제임스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숙련공들이 잔득 모여있는 만큼 초기불량이 많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홍보영상제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엑조틱 엔진은 만든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초기 생산 설비가 예상치의 십분의 일인 이유는 경험치가 부족해서이기도 했지만 생산량에 비해 판매량이 부진할 경우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어느정도 상황을 봐가면서 공장을 늘릴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에피알게나스에게 부탁은 했어. 전문 영상제작팀에게 맡길 생각이야.”

“그녀라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군요. 서은설 양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아도 자기도 끼워달라고 떼를 쓰던데...”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그녀 옆에 서면 보이지도 않을텐데.”

“하긴.”

현재 광고영상 촬영의 주인공은 에피알게나스로 낙점된 상황이었다.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 시선을 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인식은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다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넘쳐나는 영상물 시대에 외모만으로 스타가 되는 때는 지났다고해도, 그녀 정도의 존재감이라면 굳이 이런저런 걸 따질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서은설도 손을 들고 나섰다. 자신의 새로 얻은 직업을 위해서라도 연예계에 데뷔를 해야한다는 논리였다. 본인이 하고싶다는 데야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옆에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약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애초에 저 녀석이랑은 상대가 안된다니까. 그런거 생각하면 할 생각도 못했지.”

서은설은 분장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란도넬 행성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팀을 불렀고, 모델은 에피알게나스와 서은설 두 명 뿐이었다. 원래는 에피알게나스만으로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나중에 끼어들면서 콘티가 변경 된 것이다.

“그러냐. 난 네가 혹시라도 상처받을까봐 걱정을 했다만.”

“애초에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나도 그정도 생각은 한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무시하고 가야지. 그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자고, 에피알게나스 덕분에 나도 방송데뷔하는 거잖아. 막스아저씨에게 할 말이 생겼다고.”

“하긴 그 양반 하루이틀도 아니고 널 볼때마다 그거 가지고 자랑하긴 했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얻은 이후부터 막스의 놀림이 더욱 잦아졌다. 그는 델타스피릿의 간판 아나운서(?)였고, 그의 인지도는 어쨌든 준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그러니 서은설이 분해할 만도 했다. 에피알게나스야 그렇다 치지만, 늙고 못생긴 아저씨에게도 진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으리라.

“그럼 시작합니다. 배우들 준비해주세요!”

감독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들도 델타스피릿이 행성을 장악한 이후 처음으로 맡게되는 큰건에 약간 흥분하고 있었다. 한동안 내수가 얼어붙으며 광고계도 불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다들 열의에 불타있었다.

“그럼 난 이만.”

“어? 안 보고가?”

“일이 많아. 제임스가 날 죽이려고 하고 있거든.”

“흐음... 내 매혹적인 모습을 좀 보여주려고 했는데.”

서은설이 아쉽다는 눈빛으로 입맛을 다셨다. 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서은설의 뒤로 몸에 달라붙는 붉은 색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에피알게나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순간 장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

새하얀 도화지에 그린 붉은 입술, 그 아래 뛰어난 예술가가 그어 내린 완벽한 곡선이 이어졌다. 이데아라고 불릴 법한 무엇.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 그것은 그 존재가 무엇이든, 눈이 있어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 아름다움 앞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그런 종류의 미였다.

꿀꺽.

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목이 타들어갔다.

장내의 침묵을 깨는 것은 다름아닌 서은설의 한마디였다.

“야. 어딜 보는거야? 이 몸을 보라고.”

서은설이 준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윽. 뭐하는 짓이야?”

준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그제서야 에피알게나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큰일이네. 내가 두 번짼데.”

“뭔 소리야?”

“흥. 모르는 척 하지말라고. 메롱.”

서은설은 혀를 내밀고는 입고 있던 드레스 자락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그녀가 향한 곳은 에피알게나스의 곁. 촬영을 앞두고 두 사람의 기본촬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 솔직히 엄청나게 비교됩니다... 서은설 양도 상당히 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카심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제임스가 도착하기 이전 이미 델타스피릿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정직원으로 입사를 했다. 일반 사원으로 입사를 했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들어올 이유는 없었지만, 란도넬 행성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서2번으로 준의 곁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뭐, 저 녀석 옆에 붙어서 비교되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까.”

준은 그렇게 말하며 촬영장을 떠났다.

홍보영상이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기업을 상대로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초기 직원만 5만. 공장에서 무수히 뽑아내는 엑조틱 엔진은 가정용으로도, 산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 되어 있었다.

약간의 개조를 거치면 우주선이나 차량에도 쓸 수 있을 정도로 범용성도 높았다. 사실상 엔진업계에 대혁명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물건이었다.

때문에 홍보영상이 유출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신경쓰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핵심부품, 그러니까 결정체를 에너지로 변환하는 전환회로는 델타폰과 연동되어 각 공장에 전송되었고, 그것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전환회로는 경험치를 약 900정도 먹는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약 9천만원가량. 거기다가 완전조립공정까지 마치고 나면 순수원자재값만 1억이 넘어간다.  차량에 올리는 엔진가격으로는 다소 비싼감이 있었다. 하지만 일단 탑재하고 나면 엄청난 전력을 수년에 걸쳐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고급형 세단이나, 높은 출력을 필요로 하는 대형 수송용 트럭에는 사용하기에 좋았다. 그 외의 고가 장비에는 더욱 효율이 높았다.

무엇보다도 이 장비의 뛰어난 점은 발전설비로 전용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낮은 가격에 거의 무한한 전력을 생산해내는 핵융합 발전기에 비하면 그 효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초기투자비용을 따져보면 이쪽이 훨씬 더 경제적이었다.

그리고 약 3개월의 시행착오 끝에 엑조틱 엔진의 시제품이 나왔다. 이미 던전 안에서 일만시간 테스트도 마친 상태였고 구조적으로 문제도 없었다. 이정도면 시판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곧바로 홍보영상을 뿌리기 시작했다.

일차적으로 판매 대상은 이스카야, 수라드, 란도넬이었다. 란도넬 행성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긴 하지만, 일단 4천만이 넘는 내수시장을 먼저 테스트보드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델타스피릿의 야심작인 엑조틱 엔진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지 일주일. 아직까지는 생각만큼 잘 팔리고 있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대체로 전망을 밝았다.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 다름아닌 일반인이 구입하기에는 다소 비싼 가격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어차피 여기서만 팔 것은 아니니까. 중요한건 이 제품의 효용성이 입증되는거야. 그를 위해서는 일단 초도물량만 어떻게든 팔려나가면 돼.”

준은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이는 역사를 바꿀 정도로 혁명적인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것이 본격적으로 팔려나가게 되면 지금 파티마제국과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전쟁도 사실상 의미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우주로 진출하고 200년. 인류는 이제야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게 되는 첫걸음을 떼게 되는 것이다.

“반응은 대체로 좋습니다. 가격문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제임스도 준과 같은 의견이었다. 초도물량의 저조한 판매실적은 델타스피릿에 대한 신뢰문제도 있었다. 만약 갤럭시 인더스트리나, 다른 대기업이었다면 초반에도 엄청는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판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라드나 란도넬 모두 점령지 행성이었기 때문에 아직 델타스피릿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는 않았다.

헌터들이야 우호적이지만, 아직 그 분위기가 일반인들에게까지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제임스가 업무를 위해 사장실에서 나가자, 준은 의자에 몸을 파묻고 델타포럼에 접속했다. 직접적으로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데는 이만한 공간이 없었다.

역시 포럼에는 새로운 엔진에 대한 이야기들로 다들 싸우고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것들은 언제나 정신차릴려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도 툭하면 키배를 여는 것이 일상이었다. 멀리서 보면 한심해 보이는 일들도 막상 자신이 하면 그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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