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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조틱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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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떻게든 금수조치를 해제하도록 해. 그 외에는 나도 협상에 나서지 않을테니까.”
“후우... 정말 이렇게 하셔야 겠습니까? 일단은 투자형식으로 받고 나중에 재협상을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나중에 약속을 지킬 거라고 어떻게 믿지?”
“저희 회사를 믿지 못하시겠다는 겁니까?”
“신뢰를 저버린 건 그쪽이야. 내가 아니라.”
“후. 일단 위에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장원삼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협상을 이끌어 온 덕에 승승장구 하며 승진까지 했지만, 이런 식으로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그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올때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도록 해.”
“노력해보겠습니다.”
장원삼이 그렇게 말하고 회의실 문을 빠져나가려다 문득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준을 돌아보았다.
“파티마 제국에 물건을 납품하겠다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고는 계신 거겠지요?”
“물론이지.”
“만약 저희 회사에서 델타스피릿을 적으로 규정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새크리파이스보다는 골치아프겠지. 그뿐이야.”
“많이 골치아프실 겁니다.”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라면 그 쯤 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협박을 무서워 할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길 바라는 겁니다.”
“현명한 판단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해야지.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고, 어디에 팔지 결정하는 것도 나니까.”
준의 말에 장원삼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갤럭시에서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준은 프라이어 빌딩 최상층 펜트하우스에 누워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갤럭시와 파티마제국의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타격을 가하고 있다는 소식만 있을 뿐 전체적인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자료를 얻는 기자들이 모를리는 없고, 방송통제 때문이었다. 인터넷 정보는 수많은 허위정보들과 함께 뒤섞여 믿을 수가 없었다.
‘갤럭시가 지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겨도 곤란하지.’
델타스피릿은 표면적으로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협력관계였다. 투자규모가 100조가 넘어갈 정도가 되니 누가봐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갤럭시 인더스트리가 델타스피릿을 기술공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녀석들을 아쉽게 만들어야 할텐데.’
새크리파이스 때와 달리 무식하게 쳐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일단 본사가 멀고, 쳐들어 간다고 해도 소수의 함대만으로 그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란도넬 행성을 점거할 때처럼 준 혼자 행성에 내려가서 깽판을 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토르도 있을거고. 상급헌터의 수와 질이 달라. 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야.’
아무리 준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상급헌터는 확실히 그에게 위협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 저번처럼 몇 명 수준이라면 몰라도 수십명이 넘는 상급헌터들이 준을 상대하면 오히려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었다. 준이 괜히 상급헌터들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는 이들이 아니라 조직력이 좋은 상급헌터팀이 상대라면 준도 무력하게 당할 수 있었다. 결국 함대전으로 그들을 상대해야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본거지인 이스카야, 수라드, 란도넬이 전부 날아갈 위험을 감수해야했다.
이래저래 힘으로 붙는 것은 무리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애당초 규모에서부터 압도적인 차이가 나버리는 것이다.
‘델타 엔진을 파는 건 확실히 위험해.’
하지만 그렇다고 생산된 물건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을 수는 없다. 투자금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해도 월급은 매달 나가야 하는 것이고,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현재만으로도 5만명의 노동자다. 해마다 3~4조의 임금이 지급되고, 그 외의 기타자금까지 하면 두배가까이 자본금을 깎아먹는다. 결국 어떻게든 판매루트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연방은... 갤럭시와 한패일거고.’
물론 같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말만 잘하면 얼마든지 판로를 개척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일든 그쪽은 뒤로 미루어 두기로 했다. 어차피 판매처는 그곳이 아니라도 많았다.
‘일단 킵해두자. 나중에 급하면 파보는거고.’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역시 파티마제국이었다. 델타스피릿의 소속국가이기도 했다. 사기업에 대한 세금혜택이 좋은 곳이다 보니 일단 그곳에 적을 둔 상황이다. 문제는 파티마 제국이 현재 갤럭시와 전쟁중이라는 것. 그쪽에 델타엔진을 팔았다가 그로 인해 갤럭시가 전쟁에서 지게되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분간은 루나가 개발한 개량 엔진을 팔고.’
일단 준이 이곳에 있는 동안 그녀가 직접 움직여 수주를 따냈다고 했다.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개량엔진은 워프드라이브에 한한 물건이고, 준이 개발한 물건은 전력을 생산하는 물건이니 만큼 분야는 달랐다. 즉, 루나의 작품과 준의 작품이 겹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루나의 개발품을 팔고 나중에 준의 델타 엔진을 팔아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남은 건 대중화제국, 소비에트 연방, 아프리카 제국 정도인가.’
그 중에서 가장 적격은 아프리카 제국이었다. 무부투 황제를 필두로 한 자원생산국인 아프리카 제국은 가나 출신의 흑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나라였다. 그들은 행성탐사를 통해 막대한 자본을 벌여들였고, 그를 바탕으로 거주지를 꾸려 많은 흑인들을 새 행성으로 이주시켰다. 내전과 기아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신생 아프리카 제국으로 다수 이주했고 그들은 빠르게 인구를 늘려 현재 약 20억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파티마 제국처럼 자체기술이 적다보니 외국에 기술수입을 해야하는 상황이고, 특히나 전력생산 부문에 있어 상당히 취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20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제국에서 핵융합발전기 하나가 없다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시대착오적인 원자력 발전소만 300개가 넘어가니까.’
석유를 이용한 화력발전은 비싼 유지비로 인해 사용이 제한되었다. 이는 모두 국가규모가 비슷한 형태의 파티마 제국에 비해서 훨씬 작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원탐사를 주력으로 했지만, 아프리카 제국은 다이아몬드나, 금, 보석류의 귀금속 자원을 우선 탐사했다. 하지만 어느 행성이든 그런 자원은 희귀할 수밖에 없고, 설령 찾는다고 해도 금방 동이 났다.
돈이 아주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석유산업이 매년 엄청난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미미하다 할 수 있었다.
‘일단 아프리카로 가봐야겠군.’
중화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은 일단 뒤로 미루었다. 특히나 중화제국은 쉽게 보고 덤볐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을 정도로 약삭빠른 협상가들이 많았다. 게다가 자기네들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된 홍보조차 하지 못하게 될 위험도 있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안전한 아프리카 제국으로 가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사이에 갤럭시에서 공격을 하진 않겠지.’
그 쪽은 새크리파이스와 달리 덩치가 크다. 덩치가 큰 동물은 그만큼 움직임도 굼뜬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데, 다른 곳 까지 전장을 확대시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정 사정이 급하면 주요 인물만 태우고 튀어버리면 되겠지.’
델타 엔진은 생산공장이 없어도 준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생산능력 자체는 급격히 줄어들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갤럭시에 위협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가급적이면 자신을 건드리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이었다. 그들이 직접행동을 개시하지 않을 정도의 선. 그 선을 넘나들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 준의 당면한 목표였다.
워프를 통해 이스카야 행성에 도착한 준은 오랜만에 엘라와 시미, 펄, 그리고 검둥이를 만났다.
“이게 뭐야.”
준이 집 뒤의 공터에 세워진 거대한 놀이공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검둥이가 대답했다.
“엘라가 만들었습니다. 휴. 저는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습니다만. 그 아이가 워낙 막무가내라...”
“일단 내리고 나서 말하지?”
“잠시만요. 이거 한번만 더 돌고.”
검둥이는 인간으로 변하고는 어트랙션이 출발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맨앞에는 시미와 펄이 서로를 노려본 채 경쟁의식에 불타고 있었고, 엘라는 뭔가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빠도 탈래?”
“아니. 난 됐어.”
애초에 이런 물건을 탈 이유가 없었다. 왜 굳이 돈을 들여서 중력을 거스르는 위험한 짓을 해야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준이라면 놀이기구가 궤도를 이탈해서 바닥에 추락하더라도 살아남겠지만, 어쨌거나 위험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출발 합니다.]
그리고 엘라의 로봇인 프랜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실제로 기기조작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봇에 성별은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프릴이 잔뜩 달린 공주님 옷을 입은 채 기기를 조작하고 있으니 그녀라고 해야 맞는 것 같았다.
쿠콰콰콰!
“꺄아아아!”
“우히히히히!”
“케케케케!”
순서대로 시미, 펄, 검둥이의 목소리가 허공에 메아리 쳤다. 준은 녹초가 되어 내리는 시미와 펄을 뒤로하곤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는 엘라를 들어 안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거야?”
“응. 어떻게 하면 더 무섭게 만들까 하고... 별로 인가봐. 손님들이 별로 없거든.”
엘라의 테마파크는 일반인 입장객을 받고 있었다. 어쩐지 대단히 본격적이긴 하지만 이왕할 거면 제대로 해보라는 루나의 조언때문인 듯 했다. 물론 행정적인 절차는 델타스피릿에서 알아서 해결했고, 돈을 받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잡무는 모두 그녀가 만든 로봇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프랜차이즈, 아니 프랜시리즈였다.
네이밍센스도 부녀가 똑같이 프랜1, 프랜2 하는 식으로 부르고 있었다. 참고로 최초의 A-10은 넘버링 없이 그냥 ‘프랜’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도 전부 여성체라 제로시리즈와 헷갈릴 걱정은 없겠군.’
준의 로봇은 외골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형태였지만, 엘라의 프랜시리즈는 유기체피부를 덧입힌 인간형태였다. 최초의 프랜과 달리 최근의 복제품들은 제법 표정도 나타내고 있었다. 그사이 그녀의 로봇제작술이 제법 상승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보기엔 안무서워서 손님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준은 머리위로 치솟은 레일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지나치게 무서워서 일거라고 짐작되었다. 540도 회전을 하면서 급하강한다던가, 수직으로 쏘아졌다가 줄에 매달려 떨어져서는 아슬아슬하게 궤도에 안착하는 등. 일반적인 어트랙션이라고 보기 힘든 난코스들이 잔뜩 있었던 것이다.
“그래? 검둥이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녀석이 원흉이구만. 너 임마. 조언할거면 제대로 해야지.”
준은 검둥이의 목덜미를 쥐고 들어올렸다.
“으아아. 형님. 전 제가 느낀대로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니가 느낀대로 하면 일반인은 죽는다고. 네가 봐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냐?”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빠져버리는 바람에.”
검둥이가 고개를 숙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여성 입장객들이 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면서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사진 좀 같이 찍어도 될까요?”
“네. 당연히 찍어드려야죠. 가는 길에 기념품도 좀 사가세요.”
“다, 당연하죠. 전 벌써 인형도 샀다구요.”
“와아. 감사합니다. 그거 되게 비싼데.”
검둥이가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준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여성입장객과 사진을 찍는 검둥이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들이 떠나고 준이 입을 열었다.
“너 뭐냐. 무슨 마스코트냐?”
“뭐, 그렇게 됐습니다.”
검둥이가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엘라의 어트랙션을 공짜로 타는 것을 대가로 마스코트가 되기로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인간여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보니 미녀들이 달라붙어도 녀석에게는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