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 ----------------------------------------------
파워버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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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나쁜 사람들이죠?”
“아니. 이 아저씨는 경찰이야.”
매카시의 말에 엘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경찰이 왜 그렇게 무섭게 말을 해요?”
“원래 경찰은 무섭거든.”
“흐응...”
엘라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경찰서처럼 보이지 않는 건물도 그렇고, 나쁜 사람을 잡아가둔다는 경찰이 오히려 나쁜 사람처럼 생긴 것이다. 하는 짓도 영 미덥지 못했다.
아직은 사람에 대해서 딱히 의심해 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미. 네가 보기엔 어때?”
“막스 아저씨보단 착해보이는데?”
시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디선가 막스가 귀를 파는 사이, 철문뒤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허리에 단검 두 개를 차고 있었는데, 외도 보다는 인간을 사냥하기 좋아보이는 무기였다.
“이 년들인가? 제법 맛있게 생겼군. 크크.”
“시미는 먹는 거 아닌데욧!”
시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게 뭐라고 그러는 거냐?”
“저도 잘... 어쨌든 조심하십시오. 저기 빨간머리 년은 머리카락을 칼처럼 사용합니다. 그 공격에 벤의 손목이...”
“흥. 그래봐야 어린애지. 그 나이에 능력이 있다는 건 대단하지만 지금은 애송이일 뿐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하나 뽑아들었다. 쌍수로 사용하는 단검이지만 지금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아... 역시 그냥 죽였어야 돼.”
“정말 나쁜 사람들이구나... TV에만 있는 사람들인 줄 알았어.”
엘라가 신기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그 표정에 두려움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란트리스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이것들 진짜 세상물정 모르는 계집들이로군. 어느집 딸인지 확인해서 몸값을 받는 편이 더 비싸게 먹히겠어.“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매카시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란트리스는 이쪽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은 새천년파의 히트맨이었다. 상대 조직원을 암살하거나, 혹은 골치아픈 경찰등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 솜씨도 상당해 이 근방에는 란트리스의 이름만 들어도 우는 애들이 울음을 그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반항하다가 그 예쁜얼굴에 상처가 나는 걸 원하지는 않는데, 그냥 순순히 들어가면 다치지는 않게 해주지.”
엘라는 잠시 시미와 펄을 쳐다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이 정도쯤 되면 가만히 있는 게 바보였다.
“시미.”
“알았어.”
엘라의 말에 시미가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사라졌다. 란트리스, 매카시, 그리고 흑인사내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세 사람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뭐지?”
란트리스는 자신의 이목을 숨기고 사라진 세 소녀를 찾아 천천히 움직였다. 아무래도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현재 중급의 헌터. 실력 자체만 놓고보면 그다지 특출날 것은 없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그의 전문이었다. 상급까지는 어려워도 중급내에서 일대일 싸움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의 장기는 민감한 감각이었다. 어둠속에서도 적을 발견하고 죽일 수 있는 시각과 청각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런 그의 이목을 숨기고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보통의 계집들이 아닌 모양이군.”
란트리스는 그렇게 주변을 천천히 수색했다. 순간이동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갑자기 사라질수 있을리는 없다. 그저 눈에서 사라진 것일 뿐 반드시 이 근처에 있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엘라와 시미, 그리고 펄은 그들에게서 겨우 2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란트리스가 움직이면서 슬쩍 시미를 건드렸지만, 그는 전혀 눈치를 채지도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시미의 정신교란은, 중급헌터 정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파훼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만약 시미가 거두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이 근방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다가 굶어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놀러나간다더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아빠!”
엘라는 머리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들었다. 검둥이가 데리고 온 여자를 던전에 집어넣자마자 황급히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다. 어차피 일반인들을 상대로 시미와 펄이 있으니 엘라가 위험한 일은 없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탓.
준이 바닥에 착지해서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세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은 뭐고.”
“헌터인 거 같아요. 준보다는 약하지만.”
시미가 입을 열었다.
“흠. 그런 거 같은데. 여긴 아무리봐도 유흥주점이잖아? 왜 아침부터 이런 곳에 와있는 거야?”
“그게 말이에요.”
엘라가 자초지정을 설명하자 준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곳은 여성을 납치해서 강제로 윤락행위를 시키는 곳인 모양이었다. 경찰고용을 늘려 치안을 강화했다고는 해도, 워낙 근본부터 썩어 있는 곳이라 쉽게 이런 범죄행위들이 근절되지 않았다.
“시미. 정신교란 풀어.”
“네.”
시미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사내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들은 마치 꿈을 깨는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깜빡이더니 돌연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너, 넌 누구냐?”
란트리스가 양손에 단검을 쥐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무언가에 당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알거없어.”
쾅!
준의 주먹이 녀석의 관자놀이를 날렸다. 란트리스는 바닥을 뒹굴면서 자신을 때린 사내의 등뒤에서 커다란 웜홀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 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준... 알스버그... 젠장.’
현존하는 최강의 헌터. 단신으로 란도넬 행성을 점령하고 헌터반란군을 제압한 인간. 그에 대한 신화같은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퍼져있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눈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소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의 하나뿐인 딸인 엘라 알스버그 일 것이다. 얼마전에 이스카야에서 란도넬로 이사를 했다고 하더니 하필이면 자신이 엮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씨발놈이 누굴 죽이려고...’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매카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란트리스를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준의 염동력에 잡힌 채로 그대로 웜홀 안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매카시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날 인신매매단인 새천년파가 완전히 사라졌다. 유흥주점을 이잡듯이 뒤진 준은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 전부를 던전에다가 던져넣었다. 생각같아선 전부 쳐 죽이고 싶었지만, 옆에서 엘라가 보고 있다보니 손속에 여지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거 엄청 편해보여요.”
“뭐, 그렇지. 굳이 결박한다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고.”
엘라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치고 수습하기도 좋았다. 특히나 헌터들끼리 싸움이 난다고 해도 결국은 연합법으로 처리를 해야하는데, 이런 경우 쌍방폭행이 되어서 골치아픈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럴때면 그냥 던전에 보내버리면 끝이었다.
“나도 있으면 좋겠는데.”
“뭐, 편리하긴 하겠지만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아무리 엘라라도 던전을 생성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건 델타가 아니라, 람다와 시그마의 조각 두 개의 힘이 있어야만 사용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델타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펠로우쉽 계약자가 던전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귀속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참. 그 언니는 어떻게 됐어요?”
“죽기 전에 던전안에 들어갔으니, 내일 쯤 되면 회복되어 있을거야.”
“다행이네요. 혹시 검둥이가 늦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건 그거고 말이지.”
준은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하고선 엘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위험한 일이 생기면 빨리 아빠를 불러야지, 왜 검둥이만 보내는 거야?”
마음만 먹으면 펠로우쉽 통신을 통해서 준을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라는 검둥이만 보냈을 뿐, 딱히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지 않았다. 엘라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안들었어요. 죄송해요.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꼭 아빠를 부를게요.”
“그리고 이런 위험한 일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고. 만약 정말로 무슨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거야?”
“죄송해요. 아빠.”
엘라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얼른 준의 품에 안겼다.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려던 준은 그런 그녀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준이 생각해도 딱히 그녀가 위험했던 것은 아니다. 시미가 있었고, 펄이 있었다. 시미는 초록색 외도고, 펄은 심지어 정예 초록색 외도였다.
사실 상급헌터가 섞인 레이드 팀이 있어도 그 둘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법이다. 시미와 펄, 둘다 그다지 믿음직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실수 한번이면 그녀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엘라와 시미, 펄은 그날의 일로 일주일간 외출금지를 받았다.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방에서 뒹굴거릴 수밖에 없었다.
엘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까?”
“뭐가?”
“그 언니 같은 사람들. 괴롭힘 당했던 것 같은데.”
“글세. TV에선 자주 봤는데.”
시미가 리모컨을 이용해 채널을 바꾸면서 입을 열었다. 마침 방금 전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방송이 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유흥주점입니다. 그곳에서는 얼마전까지 인신매매와 노예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생존자의 증언을 듣겠습니다...]
그리고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여성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 내용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잔혹한 내용들이었다. 그곳의 여성들은 거의 가축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사육되어 온 것이다.
TV를 보는 엘라의 눈동자가 조용히 반짝였다.
“이게 뭐야?”
시미가 녹색의 카라가 달린 세일러 복을 들고서 물었다.
“전투복이야.”
“이게?”
“그리고 이건 네 거.”
엘라는 펄에게도 세일러 복을 건네주었다. 그녀의 것은 붉은 색 카라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엘라는 또 하나의 옷을 꺼내들고는 입을 열었다. 하의는 카라와 같은 색이었다.
“이건 내거. 검은 색.”
“머리색에 맞춘거네? 근데 이건 왜 맞춘거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이 도시는 우리가 살던데랑 달라서 문제가 많은 것 같아.”
“그건 그래.”
“그러니까 저번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구해주는 가디언이 되자는 거야.”
“왜?”
펄이 고개를 꺾으며 반문했다. 엘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야. 심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