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03화 (403/540)

0403 ----------------------------------------------

파워버프걸

*

*

*

“후... 공장을 증설하는 것도 만만치 않네.”

경험치가 쌓이는 데로 준은 계속해서 공장설비를 늘이고 있었다. 건축기술과 엔지니어링, 두 개 기술 모두를 사용하는 일인 만큼 정신적인 피로도가 생각보다 높았다. 대신 그만큼 숙련도는 빠르게 올랐다.

최상급 엔지니어링 기술의 숙련도는 어느새 1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최상급 엔지니어링도 마스터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건축기술도 상급의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건축기술이 최상급으로 올라가면 뭘 할 수 있으려나.’

현재 상급건축기술은 계획도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한번에 하나의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수십개의 건물을 경험치가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규모 공장지대를 만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해 보이던 실업문제도 조금씩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델타엔진 공장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10만 명에 이른다. 공장을 증설하는대로 그때그때 신규 직원들을 채용해서 투입하고 있었다.

란도넬 전체의 실업자수는 수백만명에 달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취직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류의 제조업은 파생효과가 크다. 델타엔진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각종 자재와 설비등을 하청받는 업체들도 호황을 맞이했고, 그로 인해 직접고용 이외에도 간접고용효과가 충분히 발생하고 있었다.

델타엔진이 준의 예상대로 판매호조를 이어간다면 적어도 란도넬 행성의 시민들이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예전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처음처럼 폭력적이거나 반란군으로 변질되는 경우는 없었다. 반 델타 시위대들을 철저하게 무력으로 진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우 준은 용서없이 모두 재판에 넘기고 감옥에 처넣었다. 그런 무자비한 탄압에 많은 사람들이 반발했지만 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애초의 시위의 이유가 웃기잖아. 마약과 노예제를 허가하라니. 차라리 민주화 시위를 한다면 이해나 하지.’

애초에 연합은 민주국가가 아닌 의회제 국가였다. 그것도 의회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국민대부분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말할 권리가 없으며, 투표로서 발휘할 기회도 차단되어 있었다. 애초에 주권 자체가 기업들에게 존재했다. 많은 국가가 국민주권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과 달리 연합은 의회주권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곳의 시민들은 다들 어느기업의 직원이었고, 그 기업들의 심기를 어지럽혀서는 자신들이 먹고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정치체계는 그 국가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빠른 확장을 필요로 했던 연합에서는 의사결정체계가 빠른 지금의 체제가 필요했다. 물론 그 백인회로 인해 생기게 된 기업간의 카르텔은 대표적인 폐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도 다수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의 연합체에서 국민과 영토, 그리고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도약한 이후 연합의 체제는 조금씩이지만 삐그덕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정부를 지향한 연합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쉬고 있는데, 틀어놓은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리버티 가의 대형 클럽에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빠른 신고로 인해 재산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이번 일이 유난히 이슈가 되는 이유가 있는데요. 현장에 있는 로버트를 연결하겠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TV를 보고 있던 준의 눈의 커졌다. 경찰이 출두하기 전 화재현장에서 지나가던 시민이 촬영한 영상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들이...”

세일러복을 입은 세 소녀들의 모습과, 검은 연미복을 입은 개 한마리가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듯 보인 이 클럽은, 사실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용하는 비밀클럽이었습니다. 마약파티와 함께 지하격투장을 운영하던 이곳은 일단의 자경대에 의해서 적발되어 불살라졌는데요, 그 사건을 일으킨 자들은 놀랍게도 어린 여학생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파워버프걸이라 칭하며 이 도시에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경찰은 돌연히 나타난 이 헌터들이 연합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강력 처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파워버프걸.

동명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세 소녀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한 이들의 등장은 순식간에 프라이어 시티의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여전히 도시는 범죄로 들끓고 있었고, 그것은 델타스피릿이 도시를 장악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검경은 대형 조직들의 뒷돈을 받아 챙기며 불법을 눈감았고, 사소한 범죄는 늘 그렇듯이 이슈조차 되지 못하고 묻혀졌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녀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경대들이 나타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실력있는 헌터들은 종종 이런 식의 자경대를 조직하여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그리 오랫동안 활동하지는 못했는데, 그들이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범죄조직들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실력자들을 포섭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그들을 건드렸다가 수적열세에 밀려 오히려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쥐고 움직이는 범죄조직과 오로지 정의감만으로 뛰어드는 자경단들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있었다.

거기다가 델타스피릿이 새크리파이스를 밀어내고 들어선 이후로는 서로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이슈가 생긴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방송을 타기 전부터 인터넷에선 파워버프걸의 등장이 엄청난 이슈였다. 란도넬에서 벌어지는 코믹콘에서는 벌써부터 파워버프걸의 코스프레가 흥행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추종하는 세 명의 소녀들은 지금 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재미로 하고 있었다는 거냐?”

준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전에 있었던 새천년파와의 사건 이후 엘라와 아이들이 자경대 행위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준과 엘라가 일에 바빠서 미처 그녀들을 챙기지 못하는 사이, 자기멋대로 자경단을 조직해서 프라이어 시티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날뛰고 다닌 것이다.

“넌 임마... 애들 좀 잘 지켜보라고 붙여놨더니.”

준은 검둥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움찔하며 준의 눈을 피했다. 개의 형태로 연미복 상의만을 입고 있는 녀석 역시 앉은 채로 두 팔을 들고 있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동참하지 않으면 저를 빼고 몰래 다닌다고 해서... 그나마 저라도 있어야 겠다 싶었던겁니다. 형님.”

“시끄러. 변명같은 건 하지마. 당분간 너희들 전부다 외출금지야.”

“에에에... 그건 너무해요. 우리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잖아요.”

엘라가 볼멘소리를 했다. 준이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 위험한 일을 용납할 생각이 없어. 게다가 너희들이 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잘잘못을 판결하는 거냐?”

“판결은 경찰이 내리겠죠. 악당들을 잡으면 전부 경찰서에 넘기는데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엘라와 시미, 그리고 펄이 움찔 하며 목을 움츠렸다. 준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되고, 난 왜 안돼요?”

“뭐?”

“아빠도 맨날 위험한 일 하잖아요. 엄마도, 작은 엄마도 무척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걸 말이라고...”

탁.

준이 화를 내려는 순간, 루나가 그의 손을 잡았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둘 사이의 싸움이 격렬해 지려고 하자 나선 것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잠시 뒤로 물러섰다. 화가 난 상태로 이야기를 해봐야 싸움만 되지 제대로 된 대화가 될 리가 없었다.

“엘라. 네가 한 행동은 결과로만 보면 분명히 정의로운 행동이야.”

“맞아요. 우리 덕분에 살았다고 고마워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하려는 이유가 불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무, 물론 재미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과가 옳으니 좋은 거 잖아요.”

엘라는 굳은 표정으로 항의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루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부모란 아이의 세계 전부다. 그 부모가 막는 일을 스스로의 뜻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한다는 것은, 그 논리의 빈약함을 떠나 그녀가 정서적으로 독립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는 그녀의 성장세가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을 떠나 정서적인 부분까지 이루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넌 아직 그런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리지 않아?”

“나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시미도 있고 엘라도 있어요. 검둥이도 있잖아요. 저는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말은 네가 네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가 아직 아니라는 거지. 물론 지금 네 행동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어.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 하지만 정말 그렇게만 일이 흘러갈 수 있을까? 만에 하나 네 실수로 선량한 사람이 다치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건...”

루나의 엘라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려다가 그런 거니까...”

“목적이 결과를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말이네. 그런데 어쩌지? 원래 엘라는 그냥 재미로 시작한 일 아니었어?”

“...네.”

“심심풀이로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알겠어요.”

엘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

“네.”

“시미와 펄도.”

“네!”

눈치를 보던 두 사람이 동시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후아...”

엘라가 축 늘어져서는 198층과 연결되어 있는 수조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몸에 닿자 온몸에 누적되었던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시미와 펄도 그녀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조 위에 둥둥 뜬 채로, 엘라가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서 방금 있었던 엄마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는 완벽한 패배. 그녀는 분한 듯 투덜거렸다.

“너무하잖아. 어린애를 상대로 그렇게 전력으로 박살낼 것 까지는 없었는데.”

어린애도 그냥 어린애가 아니라 겨우 두 살짜리 어린애였다. 두 살 짜리 아이가 자경단 일을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부분은 깔끔하게 무시되고 있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솔직히 재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구했잖아.”

“준이 하지말라고 했잖아. 그럼 안하는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저 바깥에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너는 아빠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야?”

“음...”

엘라의 말에 시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 내가 쓸데없는 걸 물어봤네. 펄.”

“왜?”

그녀는 하품을 하면서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