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4 ----------------------------------------------
파워버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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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거야?”
“외출금지잖아. 한달간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이번기회에 진주나 품어볼까 생각중이야.”
“뜬금없이 양식조개같은 소리 하지마.”
“그럼 뭐 어쩔 건데? 루나 말도 맞잖아. 아저씨도 싫어하고.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내가 살다보니까 모든 일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더라고.”
“...너 두 살이잖아.”
“그런 사소한 건 신경쓰지마. 어쨌든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진짜 안 들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을걸.”
“뭐... 변장을 하면 되지 않을까?”
“절대로 안 돼.”
“끙...”
펄이 고개를 저었다. 엘라가 한숨을 쉬며 물속에 고개를 박았다. 꼬르륵. 하고 기포가 올라오더니 돌연 물밖으로 튀어나오며 외쳤다.
“유레카!”
“정답! 소크라테스!”
“시미. 이건 퀴즈가 아니야.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아니고 아르키메데스라고.”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펄이 입을 열었다. 엘라가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
“당근.”
“근육.”
“끝말잇기도 아니야. 어쨌든 다들 모여봐.”
엘라가 그렇게 말하며 시미와 펄을 불러모았다.
란도넬 행성은 빠른 속도로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아직 사회곳곳에 스며든 병폐는 모두 해결되지 않았지만, 공장이 증설되며 시민들의 수입이 늘어나자 도시 분위기도 조금씩이나마 활기차게 변하고 있었다.
마약중독자들에 대한 치료가 병행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독자들의 모습도 사라지고 있었다. 사회 전체에 활력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표정에도 조금씩이지만 미소가 나타나고 있었다.
확실히 새크리파이스 치하에 있던 것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명확했다. 전국적 시위가 일어난 것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변화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자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체 왜 매출이 이렇게 까지 떨어진거야?”
프라이어 시티 마약판매조직 퀄리파이드의 보스인 카스텔로가 잔뜩 인상을 구겼다. 델타스피릿이 란도넬 행성을 집어삼키면서 오프라인 판매점을 철수한 이후로, 조직은 계속해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그게... 아무래도 중독자들의 수가 줄어든데다가 공급물량이 적은 탓에 원가가 상승한지라...”
“그러면 가격을 올리면 될 거 아냐!”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판매에 문제가...”
“지금 장기적인 플랜을 짤 때가 아니잖아!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최대한 뽕을 뽑은 다음에 다른 행성으로 튀어야지!”
그렇지 않아도 몇 개의 마약조직이 소탕되었다. 그나마 자신들은 빠르게 음성화해서 조직을 건사할 수 있었지만, 세상이 달라진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프라인에서 매장을 유지하던 간 큰 놈들이 전부 검경의 강력 수사에 걸려서 모두 철퇴를 맞은 것이다.
카스텔로는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생각했다. 많은 조직이 붕괴한 만큼 판매책이 줄어들게 되고, 매출의 상승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약이란 일단 수요가 생기기 시작하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약매매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의 일 회 투약량의 가격은 대략 5천원 선. 그때는 그야말로 기호품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중독자가 양산되었고, 마약시장은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
카스텔로는 그렇게 넓어진 시장을 자신이 독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꿈이 일장춘몽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델타스피릿에서 주도하는 중독자 케어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핵심은 저렴한 가격에 마약중독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약물의 공급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치료제는 단 일회의 투약으로 그 모든 중독증상을 없애버렸다. 의료계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이었지만, 그러한 발전이 달가울리 없는 카스텔로였다.
결국 그렇게 줄어들 것 같지 않던 마약의 수요가 엄청난 기세로 줄어들었고 지금에 와서는 전성기의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조차도 계속해서 감소추세에 있었다.
부하를 내보낸 후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란도넬 행성을 뜰 생각은 없었다. 도망치려면 진작에 했어야 했다. 이미 자신은 1급수배자였고, 출항허가를 받을 수 있을리 없다. 타 행성으로 가기 위해선 무조건 플랫폼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 공항검색대에 비해 몇 배는 까다로운 그 절차에서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젠장... 더 몸을 사려야 하나...”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의 모든 사업체가 망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4천의 헌터 반란군이 준 알스버그에게 패배하면서 더 이상 대규모의 반란군 조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제로에 가까웠다.
결국에는 지금보다 더욱더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제기랄.”
세상에 내것인 마냥 활개치고 다니던 시대가 그리워졌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황금의 시대일 뿐이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이나 한잔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다.
쿠당탕!
그때, 갑자기 문이 부서지면서 방금 나갔던 자신의 부하가 피를 흘리며 굴러들어왔다.
“뭐, 뭐야?”
“보, 보스... 피하십시오!”
“뭐냐고! 이 자식아!”
“자, 자경대입니다.”
“뭐라고? 아직도 그런 미친놈들이 있어?”
[1급수배자 확인. 후안 카스텔로. 퀄리파이드의 수장. 키, 나이, 외모 적합. 유전자 채취 시도.]
그때 문 뒤에서 나타난 붉은 머리의 소녀가 수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는 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파워버프걸인가 뭔가 하는 년이로군. 으득.”
최근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이슈가 된 녀석들인 만큼 모를 리가 없었다. 최근 자경대들의 활동이 뜸한 사이 새롭게 부상된 녀석들이었다. 어린 소녀와 세일러 복의 조합 때문인지 알아보기가 어렵진 않았다.
“제법 유명해졌다고 여기저기서 설치고 다니는 모양인데. 오늘 본때를 보여주지.”
카스텔로는 벽에 걸려있는 군도를 쥐고는 붉은머리의 소녀를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에게 겨누어진 총을 보고는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자, 잠깐... 그건 반칙...”
타아앙!
“커헉!”
굉음과 함께 발사된 탄환이 카스텔로의 어깨를 명중하며 뼈를 부수었다. 평소 방탄능력이 있는 케블라 소재를 덧댄 옷을 입은 덕에 관통은 면했지만, 제대로 어깨를 쓸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크흐흐...”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검을 왼손으로 바꿔쥐고는 다가오는 붉은머리 소녀를 향해 으르렁댔다.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오면 네 년의 머리를 날려버리겠다.”
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최소한 이대로 무력하게 잡히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그는 칼 끝에 마나를 실었다.
하지만 붉은 머리의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스텔로를 향해 다가가 손을 뻗었다.
“어딜!”
슈칵!카앙!하지만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검은 소녀의 팔을 잘라내기는 커녕 약간의 흠집만 낼 뿐이었다.
“금속음...? 읏?”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머리칼 한 줌을 뽑아가는 그녀의 손에 그는 몸을 움츠렸다. 순간 여자애에게 쫄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이 엄습했다.
[유전자 분석시도.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일치율 99.8퍼센트.]
“뭐, 뭐하는 거야...”
카스텔로는 그녀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지 못했다. 붉은머리 소녀의 얼굴에는 약간이지만, 기뻐하는 듯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검거 성공. 정보 갱신합니다.]
한동안 뜸했던 파워버프걸이 다시금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에 많은 인터넷 게시글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각종 커뮤티니에서는 그녀들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영상물을 올렸다. 하나같이 모두 압도적인 무력으로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그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헌데 신기하게도 그녀들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듯 여러곳에서 출몰하고 있었다. 동시간대에 두 곳 이상에서 출현하는 것은 기본이고, 경찰서에 범죄자를 인도하면서 또 다른 곳에서 노상강도를 때려잡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파워버프걸의 능력이 순간이동이나 분신이 아니겠냐는 추측도 나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란도넬의 주요 방송과 신문에서 특종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엘라!”
쾅!
199층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준이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방금전까지 뉴스에서 파워버프걸이 활약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확인한 때문이었다.
“아빠?”
하지만 엘라와 아이들은 방안에서 흙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방금 전 지하투기장 하나를 박살내고 도망쳤던 모습을 본 준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지?”
“무슨 말이에요?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었는데?”
“검둥아. 이 녀석 말이 진짜냐?”
“네. 형님.”
검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리모컨을 들어 방안의 TV를 켰다. 그러자 뉴스에서는 실시간으로 파워버프걸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그녀들은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서는 카메라의 시야를 벗어나 사라졌다.
“그럼 쟤네들은 뭐야?”
“몰라. 그냥 따라하는 애들인가. 그것 때문에 그렇게 무섭게 들어온거에요?”
엘라가 약간 나무라는 듯 준을 향해 입을 열자, 그는 미안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사과했다.
“미안. 네가 혹시 또 위험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서 말이야.”
“나참. 아빠는 딸을 그렇게 못믿어요?”
결국 준은 엘라에 의해서 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아니면 저런 짓을 할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냥 따라하려는 녀석들인가...”
생각해보면 꼭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영상속의 소녀들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세 아이들의 모습과 동일했다. 외모야 비슷하게 꾸밀 수 있다고 해도, 세 명의 여자아이가 저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질 확률은 낮았다.
“어때. 내 연기가. 그럴듯하지?”
“나중에 결혼해도 딸은 낳지 말아야겠어.”
“너는 인간도 아닌 게 무슨 결혼을 한다고 그래?”
“외도도 결혼할 수 있다 뭐.”
“맞아. 맞아.”
엘라의 말에 펄과 시미가 발끈했다. 숫적으로 밀리는 낌새가 들자 엘라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이걸로 이제 우리가 나가서 일을 저질러도 의심받지 않을거야. 이게 다 내 덕분이라고. 다들 인정해.”
그녀들이 이곳에 있는 동안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다름아닌 프랜을 개조한 모델들이었다. 현재 그녀가 만들었던 로봇들은 오리지널만 데리고 온 상태였고, 나머지는 모두 알파시티의 테마파크에서 무보수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지금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녀석들은 전부 엘라가 새롭게 만든 로봇들이었다.
새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크기가 조금 작을 뿐 기본 구조는 프랜과 동일했다. 외모는 얼추 자신들과 비슷하게 만들었고, 대신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펄이 가지고 있는 제트팩과 동일한 물건을 모두 달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