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9 ----------------------------------------------
특이 던전
*
*
*
그렇다고 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지역을 그냥 걸어서 지나갈 수는 없었다. 지천에 깔려있는 것이 외도였고, 던전의 형태는 개활지에 관목들이 무성한 지역. 준의 키보다 낮은 나무와 풀들이 많다보니 그 사이 숨어있는 외도에 의해 공격받을 위험이 있었다.
‘중력제어를 이용해서 날아가는게 낫겠군.’
지금의 준이 관성제어를 풀로 전개해서 날아가면 5분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5분이라면 짧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5킬로미터를 날아가기에는 넘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전력으로 모든 마나를 소모하면서 관성제어를 사용할 경우, 이론적으로 450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었다. 단숨에 대기권을 돌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공기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자기장 제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 까지 감안해보면 약 150킬로미터 까지가 현재 준이 날아갈 수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말은 쉽게 했지만 계산상 3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 시간이면 대기권 돌파까지는 몰라도 열 권 까지는 치고 갈 수 있었다.
‘30초 정도면 되려나...’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는 관성제어비행의 특성상 비교적 5킬로미터라는 근거리라도 도착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염동력을 이용해서도 비행이 가능했지만,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속으로 날아야 하는 염동력 비행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이쪽이 훨씬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다.
후웅-
준의 몸이 떠오르며 근처의 먼지들이 함께 떠올랐다. 잠시 허공으로 치솟는가 싶던 준의 몸이 어느순간 수직으로 꺾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준의 주위로 전자기장 필드가 펼쳐지며 공기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알카트뢰즈에서 대기권을 돌파할 때 사용했던 전자기 레일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콰아아!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준은 목적지를 스쳐지나가기 직전에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엄청난 가속력을 받고 있는 상태였지만, 관성제어의 능력은 상대속도의 벡터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속도량 자체를 0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휴. 잠깐 사이에 마나가 3000이 날아갔구만...”
예상치보다 많은 마나를 소모했다. 하지만 재활용스킬로 인해 돌아오는 마나도 있었고, 마나재생패시브도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금방 회복될 수치였다.
탓.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은 준은 언덕 위에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화철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곳이다 보니 근처의 흙도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골렘류가 몇 마리 보이고... 그 외에는 딱히 특이한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군.’
일단 준은 염동력을 이용해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삽 같은 도구가 있다면 조금 나았을 테지만 아무런 도구가 없는 상황이다보니 제법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이 몇 마리의 골렘이 접근했지만, 붉은 색 외도였고, 무기 없이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파내려간 끝에 준은 단단한 지층을 만날 수 있었다.
“찾았다.”
그다지 깊이 파내려 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산화철로 이루어진 지층이 드러났다. 매장량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준이 무기를 만들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염동력으로는 캐내기 힘들거고...’
준은 허공으로 떠오른 다음, 철이 묻혀 있는 지역을 향해서 화염구를 퍼부었다. 철을 녹일 정도의 화력을 내지는 못하지만, 마법이 가진 폭발력으로 철광석들을 캐낼 생각이었다.
콰콰쾅!
지축이 흔들리며 주변에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준은 후끈한 열기를 느끼며 계속해서 화염구를 날렸다. 쿨다운이 있는 기술이다 보니 다른 마법도 섞어 주어야 했는데, 의외로 파동권이 제법 쏠쏠하게 능력을 발휘했다. 겉과 안, 양쪽으로 충격을 주는 기술이다 보니 손쉽게 광물을 캐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와르르르.
“흠... 이거면 되겠군.”
준은 일차로 뽑아낸 철광석들을 사용해 곡괭이 서른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정도 도구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경험치는 사실 거의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라 마음껏 만들고 사정없이 땅을 내리찍었다.
얼마나 험악하게 다루었는지 여기저기서 곡괭이가 부서져 나갔지만 준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부서진 곡괭이는 다시 붙이면 돼.“
준은 제작스킬 중 수리파트를 불러내어 전체 수리를 시전했다. 그러자 부러진 녀석들이 순식간에 다시 원상복구가 되었다.
‘이거 꽤 편리하군.’
그동안은 비교적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물건들만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무작정 찍어내고 소모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광석들을 파내는 곡괭이들을 보자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기본적인 도구들의 쓰임새가 사라질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광석들로 곡괭이를 추가하고 하는 식으로 백여개의 곡괭이를 한 몸처럼 부리며 땅을 더욱 깊이 파내려간 끝에 준은 수십 톤의 철광석을 얻어낼 수 있었다. 원래라면 여기에서 순수한 철을 뽑아내기 위한 정제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흠... 일단 가장 쓰기 편한 물건은 역시 전차겠지.’
셔틀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를 위해서 들어가는 시간과 경험치를 생각하면 전차쪽이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은 일인용 D1전차. 사실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외도는 모두 정리할 수 있었지만, 곡괭이들은 전부 니들건으로 바꾸었다.
위이이잉!
콰앙!
우지직! 쩌억! 쿵!
D1전차가 관목수풀을 사정없이 뭉개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풀을 뜯고 있던 아르마딜로들이 화들짝 놀라며 분분이 흩어졌다. 개중 몇몇은 준에게 공격을 시도했으나 다가오기도 전에 동축기관총에 몸이 벌집이 되어 사라졌다.
게다가 해치가 오픈된 전차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준의 위쪽에는 백 개의 니들건이 호시탐탐 외도들을 노리며 쇠못을 발사하고 있었다.
촤라라락!
니들건은 전기로 움직이는 물건 인 만큼 전자기장을 다루는 준에게는 재충전도 필요없는 편리한 무기였다. 거기다 탄환도 거의 무제한으로 보급할 수 있기 때문에 아낌없이 쇠못을 퍼부어가며 이동하고 있었다. 공격을 시도하던 녀석들은 준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주황색 레벨이라고 해서 조금 긴장했는데 별거 없구만.”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던전에서 전차를 꺼내서 전투를 벌인 적은 없었다. 니들건이나 라이트세이버를 사용해서 전투를 한 것과 전차를 이용한 전투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차의 포격은 파란색 외도에게마저 데미지를 줄 수 있을 정도니 붉은색이나 주황색 외도들은 도망치기 바쁠 수밖에 없었다.
콰앙!
쾅!
외도들이 개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도 거의 이백마리. 하지만 준은 녀석들이 몰려있는 곳에는 포격을 날렸고, 중거리에 있는 놈들에겐 기관총을, 그리고 근거리는 니들건을 난사하며 손쉽게 외도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펑! 펑!
아르마딜로를 닮은 외도들은 철갑비늘 같은 몸을 공처럼 굴리며 몸통공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어지간한 헌터의 공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을 그 강력한 외피가, 전차의 포격과 기관총 세례에는 버틸 수 없는지 사정없이 터져나갔다.
끼에에액!
그나마 니들건에는 제법 버티는 편이었지만, 그것도 집중사격을 당하면 온몸에 쇠못이 꽂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 외의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콰드득! 콰득!
준의 D1전차가 외도들의 시체를 밟고서 빠른 속도로 구릉지대를 벗어나 멀리 보이는 고성을 향해 달렸다. 거의 시속 60킬로미터로 치고 지나가는 전차의 위용에는 아무리 외도라고 해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정도 외도를 해치우고 나자 녀석들의 공격도 뜸해졌다.
덜컹.
“후우.”
준은 전차의 해치를 연 채 바람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기는 온화하고, 완전한 개활지였다. 관목수풀들이 있긴 하지만 외도만 정리하고 나면 사람들이 지내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군데군데 키큰나무들도 있어 적당히 쉴만한 공간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넓었다. 공장지대에 비해서도 열 배는 더 컸다.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가로세로 10킬로미터 정도는 되는 듯 했다. 이정도면 하나의 도시를 던전 안쪽에 꾸려도 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준이 찾던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에 훈련장을 만들면 몇 개 조를 운용할 수 있겠는데?’
현재 2번 던전에서 장민성이 가르치고 있는 이들이 대략 오백 명 가량. 처음 사천 명에 이르던 이들은 둘째 날에 천명으로 줄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 절반인 오백 명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최종기한인 4개월 후, 그러니까 바깥시간으로 한 달 후에는 아마 그보다 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 번에 몇백 명의 헌터를 찍어낼 수 있는 셈이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일단 1기 졸업생을 배출하고 나면 정말로 헌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고, 2기부터는 지원자의 숫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들을 모두 이 곳에 수용하게 되면 적어도 몇만 명 정도는 한꺼번에 훈련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수천 명의 헌터를 보유할 수 있게 되고, 그 정도면 결정체 수급에도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다른 행성에서도 사람을 받아 헌터양성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대신 란도넬 행성에 정착시키는 식으로 간다면 훈련생이 부족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가 많아짐으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차후에 생각할 일이었다.
구릉구릉-
그렇게 앞으로의 생각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웅장한 고성이 준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동네 촌구석에 있는 남작의 성 수준이 아니라 적어도 백작 이상은 되는 이들이 사용했을 법한 꽤나 규모있는 성이었다.
높은 성벽과 해자의 흔적도 있었고, 철문은 내려져 있었고 문에 걸려있는 쇠사슬의 크기도 제법 대단했다.
‘전차는 두고가야겠군.’
십여 킬로미터를 달려오며 거의 백여마리의 외도를 깔아뭉개며 달려온 D1전차였다. 일회용으로 사용하기에 아깝긴 했지만 준이 투자한 만큼의 제값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던전을 깨뜨리지 않고 귀속시킨다면, 이 전차도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버린다고 볼 수도 없었다.
전차에서 내린 준은 니들건만을 가지고 천천히 성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 자체가 제법 큰 편이라, 탐색만 하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최소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외도의 습격을 경계하면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성을 다 돌아보려면 그 두배 이상의 시간은 걸릴 것으로 여겨졌다.
‘급할 건 없으니까.’
업무관련 일들은 펠로우쉽 통신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직접 준의 결재가 필요한 일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들은 밀린 숙제 해치우듯 해결하고 온 상황이었다.
‘보물 찾기라고 했으니...’
일단은 본성을 뒤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은 거대한 내성을 지나 성의 정문을 슬쩍 밀었다. 꽤 낡은 때문인지 제법 힘을 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