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23화 (423/540)

0423 ----------------------------------------------

성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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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다다닥. 따다다닥.

성기용은 매트리스에 엎드린 채 델타폰을 펼쳐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워낙 할 일이 없다보니 하루 일정은 델타포럼에서 시작해서 델타포럼에서 끝내고 있었다. EP라도 충분했다면 구현화 기능을 이용해서 야겜이나 하고 있었을 테지만, 바깥시간 기준 한 주에 주어지는 결정체는 제한적이었고 EP를 충전해봐야 며칠 지나면 전부 떨어져 델타포럼에서 폐인짓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다.

무료로 풀려있는 TV드라마나 영화도 육개월 가량의 시간동안 거의 전부 소모한 상태였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던전 안에서도 얼마든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육체단련은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았던 그가 그런 발상을 할 리 없었다. 최근에는 포럼의 자게를 뒤적이며 델타스피릿과 준 알스버그에 대해서 악플을 다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근래의 핫이슈는 1차 헌터양성프로그램이었다. 아직 1차 수료생들이 나오진 않았지만 중도포기한 사람들에 의해서 상당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밀유지계약을 맺긴 했지만 그런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깥으로 알려져도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것이었으니 사실 준도 경고만 해두었을 뿐 이렇다할 직접적인 징계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거기일 듯. 난 딱 한시간 있었는데 정말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서 나왔다.

-나도. 거기 훈련프로그램은 도저히 사람이 할 게 못된다. 무슨 기계도 아니고, 엄청 무식하게 굴리더라고. 완전 스파르타 식이야.

-스파르타식이라니...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건 그냥 죽일려고 하는거지.

-주인장 무식한 거 하루이틀이냐? 그걸 알면서 들어간 놈들이 잘못이지. 크크크. 거기서 하루 이상 버틴 놈들 없냐? 한 시간 만에 튀어나온 의지박약아들 말고.

대부분은 부정적인 의견들이었다. 훈련생들은 델타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보니 중도포기자들만 글을 올리고 있는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투덜거리지만은 않았다.

-난 딱 하루 있다가 나왔는데. 솔직히 후회되더라. 좀 더 버텼으면 괜찮을 것 같더라고.

-뭔 개소리냐? 거기있다가 사람 죽는다고.

-다들 알잖아. 훈련장 안에서는 아무리 심하게 굴려도 안죽는거. 지금까지 다치거나 죽어서 나온 사람 있음?

-없지.

-뭐야? 설마 다친사람도 없는데 엄살 피운 거냐?

-안들어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니까. 거기 장 모 인가 뭔가 하는 훈련교관새끼 있는데 진짜 악랄하기로는 주인장 뺨칠 정도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람을 굴리는데 여기저기서 토하고 있는데 그걸 발로 걷어차면서 계속 달리게 시키더라니까.

-그 정도면 약과지. 윗몸일으키기 하는데 못일어 나는 놈들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리던데.

-야. 근데 거기 여자도 있음?

-ㅇㅇ있음.

-여자도 막 굴림?

-당연하지. 남자고 여자고 뭐 그런거 없이 그냥 똑같이 굴림. 거기 남은 애들 중에서 여자는 거의 없을걸. 외도 앞에서는 남자여자 없다면서. 제대로 못따라오면 그냥 가차없이 두들겨 팸. 내가 본거만 해도 한 열 명 정도 줘터지고 울면서 나갔음.

-야... 그거 트라우마 생기겠다. 진짜 뭐 그런 인간이 있냐...

-그래도 그건 맞는 말 같은데? 외도들이 남자여자 구분해서 공격하지는 않잖아.

-그래도 임마. 사람이라는게 정도가 있지.

-가슴 본 사람?

-머리속에 든게 그런거 밖에 없냐?

-ㅇㅇ.

-솔직히 보긴 봤는데... 훈련하다보면 아무생각도 안 든다.

-쓸데없는 소리들 말고 똑바로 정보나 알려줘봐. 나 다음달에 2차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인데.

-벌써 공지떴음?

-ㅇㅇ. 포럼공지 확인해봐.

아직 1차 훈련생들이 배출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2차공지가 나와 있었다. 성기용도 헌터라는 말에 살짝 혹하긴 했지만, 체험담의 내용이 워낙 무시무시한 지라 참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를 끼워줄리가 없지.’

심드렁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준 알스버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왈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새크리파이스가 있을때에는 사장, 부사장급의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도 황급히 자리를 바꿔주곤 했다. 본사에서는 아버지에게 찍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이런 변방에 내려오면 성상민의 자식이라는 것은 엄청난 권력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 깎였던 자존감을 그런식으로 풀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행동이 자연스러워졌고, 정권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행동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델타스피릿은 새크리파이스보다도 작은 기업이었고 당연히 자신에게 잘보이려고 할거라 혼자 착각을 한 것이다.

아니, 심지어는 어째서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오히려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날 레스토랑에서 준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강짜를 부린 것은 그동안 쌓인 감정 때문이기도 했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이런데다가 반년씩이나 처박아 두다니...”

하지만 그런 걸로 화내기에도 이제는 지쳤다. 그냥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델타포럼에서 노는 것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였다.

저벅. 저벅.

그렇게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델타포럼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근처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고도 멍하니 있다가 곧 사람의 발소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벌떡일어났다.

“누, 누구냐?”

얼마나 오랜만에 입을 여는 것인지, 목에서 쇳소리가 섞여나왔다. 가볍게 헛기침을 두어번 한 그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혹시라도 준 알스버그라면 어떻게 하지 하고, 겁먹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장과장!”

“아아...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장원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준의 괴팍한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혹시라도 성기용을 죽이거나, 혹은 살려놓았더라도 반신불수로 만들어 놓았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친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자식인 만큼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성상민회장이 가만히 있을리 없기 때문이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아. 그나저나 자네가 여기 무슨일로? 혹시 자네도 잡혀들어온 건가?”

“아닙니다. 지부장님을 꺼내드리기 위해서 온겁니다.”

“나를? 그 또라이놈이 꺼내준다고 하던가?”

“일단 협상중이긴 합니다만...”

“협상? 무슨 협상? 그런 놈과 무슨 협상을 하겠다는 거야? 다짜고짜 나를 이런 곳에 반년씩이나 처박아 둔 녀석인데! 본사에서는 대체 뭘하고 있는거야?”

처음에는 장원삼 과장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말을 하다보니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이런 곳에 갇혀서 실종 된지 6개월이 넘었다. 시간배율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다보니 바깥에서는 아직 한 달 조금 넘게 지났다는 것을 모르는 때문이었다. 델타포럼의 시간이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깨닫고 있었지만, 단순한 오류라고 생각했지 설마 이 안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원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반년이요? 얼마전에 저와 만나셨지 않습니까? 길어도 한 달 열흘 쯤 전인데.”

“무슨 개소리야? 내가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몇 개월 넘게 대화도 없이 살았는데.”

공장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좀 무섭긴 했지만 말을 걸 상대는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대화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간에 말을 걸면 대답은 해주니 벽을 보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이 동굴에 들어온 이후로는 사람의 그림지조차 보지 못했다. 아무리 델타포럼에서 폐인짓을 한다고 해도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리가요... 얼마전에 저와 함께 식사를 하셨을텐데요.”

장원삼이 너무 강경하게 주장을 하자 순간적으로 성기용의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바깥에서라면 과장정도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이미 지난 6개월간 혼자 있다보니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상태였다.

“오, 오늘이 며칠이지?”

“지구시간 기준으로 11월 4일입니다.”

현재 인류는 모든 것을 지구기준으로 두고 생활하고 있었다. 일정한 기준을 갖추어두지 않으면 혼란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과 축적, 그리고 무게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지구 기준으로 두고 있었다. 만약 자전속도가 9시간인 행성이라고 해도 하루가 9시간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때문에 어떤 행성에서는 하루에 밤낮이 두세 번씩 바뀌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주가능행성은 지구와 환경이 유사했기 때문에 그 정도 까지 심한 경우는 드문 편이었다.

애초에 생명체가 거주가능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 맞추어져야 했고, 그 기준이 지구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리가. 4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네. 통신 문제가 있어 제가 잠시 나갔다가 온 사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찾아온 겁니다.”

“그렇다면 그게 오류가 아니었던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내가 이곳에서 육개월 가까이 있었는데, 포럼에서는 시간이 40일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단 말이지. 단순히 시간오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말씀이시군요. 혹시나 했는데 정말 사실이었다니...”

“이일에 대해서 아는게 있는가?”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중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동굴속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더라는... 처음에는 그저 좁은 곳에 오랫동안 갇혀서 정신이상이 생긴것이려니 했는데...”

장원삼이 흘깃 성기용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설마 자네는 내가 정신병에 걸리기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닙니다. 지부장님 덕분에 그 것이 사실로 밝혀졌으니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황급히 장원삼이 말을 돌렸다. 솔직히 약간은 의심하고 있었지만, 또 준 알스버그가 보인 기묘한 능력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외도를 공격할 수 있는 전차라던가, 실드가 걸려있는 우주선, 결정체를 사용하는 발전기 등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물론 그것들 중에서는 시간배율이 다른 이 기묘한 공간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증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 어쨌거나 이제 나는 나갈 수 있는 건가?”

“그것이... 방금전에도 말했다시피 협상중인 사안이라...”

“그럼 자넨 대체 뭐하러 들어 온 건가?”

“결재를 받아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일단 보지.”

장원삼은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패널을 꺼내들었다. 패널 위에 띄운 서류를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지부건물을 통째로 넘겨야 한다고? 이 무슨 날강도 같은...!”

“그것도 두 배를 부르는 걸 겨우 막은 겁니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입니다.”

“당장 때려치워! 이쪽 지부를 통째로 날려먹으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제와서는 돌아갈 수도 없단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준 때문에 마약거래를 위해 만들어 놓았던 인맥들까지 통째로 날아간 상황이다. 이제는 갤럭시 인더스트리 란도넬 지부의 지부장이라는 명함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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