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8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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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씻고 바람이나 쐴겸 밖으로 나온 준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식충식물에 잡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검은 야행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었는데 온몸이 꽁꽁 묶인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흠... 죽은 것 같진 않네.”
“이건 사람을 죽이는 용도는 아니거든. 그냥 기절만 시켜놓은 거야.”
서연경이 다가왔다. 잠옷차림으로 하품을 하는 모양새가 막 일어난 듯 했다.
“이 사람들...”
“아마도 그 이철희인가 뭔가 하는 놈이 보낸거겠지. 안봐도 뻔해. 이런 일 한두번도 아니고.”
“차라리 그냥 저희와 함께 란도넬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새삼스럽게. 이런 일 한두번도 아니고 됐어. 이미 익숙한 일이고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사람이 살던데서 살아야지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
“그야 그렇다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하의 준 알스버그가 겁이라도 먹은 걸까?”
서연경이 놀라는 듯한 제스춰를 하며 입을 열었다.
“간밤에 MST캐미컬에 대해서 좀 알아봤습니다.”
“오. 기특한데?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어?”
“최근에 그다지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몇가지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한 걸로 밝혀서 상당한 액수의 배상금을 지급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됐어. 그보다 이 사람들 치우는 것 좀 도와줄래?”
그녀가 손을 내저으며 식충식물에 감겨있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가 손을 가져다 대자 사람들을 묶고 있던 식물들이 스르르 힘을 풀었다.
쿵. 쿵.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침입자들의 수는 모두 세 명. 밤 중에 찾아와서 뭘 어쩌려고 했는지는 굳이 이 녀석들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냥 밖에다가 내던져.”
“경찰에 신고 하시는게...”
“어차피 이 동네 근처는 전부 S마트의 입김이 닿는 곳 뿐이야. 경찰이라고 다른 건 없지.”
“그렇습니까...”
비교적 연방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똑같은 모양이다. 준은 사내들을 염동력으로 들어 전부 집 밖으로 내던졌다.
쿵! 쿠당탕!
제법 세게 던졌으니 어디 한군데는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제법 거친면이 있는데?”
“남의 집에 침입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죠.”
“흠... 마음에 들어. 혹시 연상에 관심있어?”
“지금 뭐하는 거에요!”
서은설이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그냥 찔러만 봤어. 혹시 모르잖니.”
“아. 진짜 딸 남자친구한테 작업거는 엄마가 어디에...”
“너 방금 엄마라고 그랬니?”
“으... 아니거든요.”
휙.
귀까지 붉어진 얼굴이 된 서은설이 얼른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서연경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
“동감합니다.”
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미가 풀풀 날아서 준의 머리위에 내려앉았다.
“준...”
“어. 일어났냐?”
“밖에 뭐가 잔뜩 오는데요?”
“응?”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냥 차들이 이동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잠시만 밖을 보고 오겠습니다.”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담장을 뛰어넘었다. 밖을 보니 수십대의 검은 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아예 차량들로 길을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는 사람들의 통행마저 막고 있었다.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분위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데.
우르르.
밴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눈에 익은 인물이 하나 있었다. 말끔한 외모의 사내, 이철희였다. S마트 지점장이면서 MST케미컬의 회장아들. 그쯤 되면 무서운 게 없기도 하겠지.
“무슨 일이지?”
“아. 이 집 손님이라고 하셨지요? 이건 집 주인과 저와의 문제이니 끼어들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용건이나 말해.”
“굳이 들으셔야 겠습니까? 일단 끼어들면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하든 말든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고. 너는 방문목적이나 정확히 말하면 되는거야.”
어딜가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힘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설치는 놈들이 있다. 이 녀석도 같은 부류라는 것이 느껴졌다.
“3자에게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장 비키시죠. 치워버리기 전에.”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감히 내가 누구인줄 알고...”
“알아. 과일가게청년.”
“하... 장난치나.”
이철희가 헛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뒤에 있는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흉흉한 물건들이다. 권총을 들고 소음기를 부착하고 있는 녀석도 보였다. 이 녀석들 아예 확실히 끝장을 보려고 온 녀석들이다.
끼익-
그때 철문이 열리며 서연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생각보다 많이 몰려든 인원에 조금은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이것 참. 대체 그게 뭐라고 이 난리들인지.”
“들어가 계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뭐... 제법 많아보이는데 할 수 있겠어?”
“갤럭시 인더스트리도 박살낸 접니다만.”
“하긴... 그럼 부탁해. 난 안에서 아침드라마 봐야하니까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말고.”
“볼륨은 좀 높이셔야 할겁니다.”
서연경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준은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이철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들었지? 조용히 끝내자.”
“미친... 저 자식 치워버려!”
“네!”
우르르!
준의 주위로 십여명의 양복들이 다가왔다. 대부분 검을 들고 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잘 벼려진 물건이다. 헌터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소이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덩치가 입을 열더니 검을 내질러왔다. 곧바로 급소를 찌르다니.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다. 준은 혀를 가볍게 차고는 검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쩡!
단 일격에 검이 절반으로 뚝 부러졌다.
“뭐, 뭐야이거?”
“참나. 그렇게 약한 걸 검이라고 가지고 다니는 거냐?”
준이 이죽거리자 그의 표정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말도 안 돼... 이, 이게 얼마짜린데.”
“얼마짜린데? 만원은 하냐?”
“이 개자식이!”
으허엉!
사내가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준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마치 거대한 손에 잡혀서 이끌려나가듯 뒤로 튕겨나갔다.
그 광경에 막 달려들려던 양복들의 행동이 일제히 멈추었다.
“저, 저게 뭐야?”
“염동력인가?”
“하지만 염동력은 헌터에게 먹히지 않는데.”
염동력은 실제로 마나를 사용하는 헌터들에게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압도적인 힘으로 누를 수 있다면 염동력은 충분히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현재 준이 발휘할 수 있는 염동력은 꾸준히 상승해 5톤이 넘는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레벨이다. 그 정도면 헌터 몇 명 쯤 날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준이 인벤토리에서 니들건을 하나 꺼내들었다. 일반적인 권총보다는 확실히 크고, 그렇다고 중화기라고 할 정도는 아닌 정도의 이 단순한 무기에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움찔 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총을 꺼내?”
“저 자식 마법사인건가?”
“마법사가 왜 총을 쓰지?”
“이 자식들이! 지금 잡담하고 있을때냐? 당장 저 녀석을 죽이든지 치워버리든지 하란 말이다!”
이철희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네!”
녀석의 호통에 양복들이 다시금 준을 향해 모여들었다. 준이 가장 가까이 접근한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퉁!
두 발이 연사로 나가며 몸통에 명중했다.
“큭. 이정도는!”
하지만 예상외로 별다른 데미지를 입은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니들건이 강력한 무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급외도까지는 손쉽게 때려잡는다. 중급외도까지도 여러 대를 돌려가며 딜을 퍼부으면 잡아낼 수 있는 정도. 헌데 겨우 양복을 뚫지 못하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장난같은 무기로 이 신 소재 갑옷을 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이철희가 자신의 양복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흠. 그러니까 저 양복이 아예 통으로 갑옷역할을 한다는 건가? 제법인데? 이건 연방에서 제작한 물건이겠지?’
아직 정식으로 시판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으니, 연방내에서 비밀리에 거래되는 군용장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들건을 막아낼 정도의 방어력을 가진 섬유라면 응용할 만한 곳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저건 일단 좀 챙겨둬야겠군.’
용병에게 저런 옷을 입혀줄 리는 없고, 아마도 MST캐미컬에 속한 헌터들이나, 이철희를 개인적으로 호위하는 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뭐가 좋을까.”
가급적이면 섬유가 상하지 않게 하면서 녀석들에게서 옷을 빼앗을 방법을 생각했다.
“시미!”
“네엣! 갑니다!”
담장 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시미가 준의 어깨위에 내려앉았다. 갑자기 나타난 요정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음파 한 방 날려줘. 죽지 않을 정도로만.”
“예압! 갑니다!”
꺄하하하하하!
“윽!”
“커헉!”
시미의 정신나간 듯한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시미의 음파공격 귀를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외도들이 당할일도 없지.
“이, 이럴수가.”
준을 둘러싸고 있던 양복들이 전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남은 건 가장 뒤에 있던 이철희 혼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