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6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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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대체 뭐하는 짓이야?”
로렌스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올랐다. 자신이 있는데 거기에다가 공격헬기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레이저빔까지 투사했다. 그런 공격에 맞을 이유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상황에서 사전경고도 없이 저런 화력을 쏟아부은 것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 소리 할 시간에 저 녀석이나 잡지 그래?”
로렌스의 옆에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났다. 군인 처럼 짧은 머리에 터져나갈 것 같은 근육을 가진 사내였다. 언듯 보면 당연히 탱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그는 단호와 같은 스승으로부터 인술을 익힌 닌자였다.
하늘을 날고 있는 로렌스의 옆에 떡 하니 나타난 것 만 보아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벨트레? 네가 저 헬기에 타고 있었던 거냐?”
“생각보다 골치아픈 놈이더군.”
“보통내기가 아니야.”
“단호.”
“네. 사형.”
“팀장님이라고 불러라.”
“네. 팀장님.”
“저 녀석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봐.”
“놀라운 방어력. 압도적인 힘, 저를 능가하는 스피드, 그리고 마법으로 보이는 분신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전투 내내 여유가 있어보입니다. 감추고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흠... 이곳에 단독으로 쳐들어 올 만큼 실력은 있다는 거군.”
벨트레의 시선이 준을 향했다. 괴상한 갑옷이었지만 그의 눈에 경멸이나 자만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엑손타워의 손실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그가 입을 열었다.
“화력지원 부탁한다.”
“흥.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지만, 단호의 부탁도 있고 하니 협조하지.”
같은 조직에 있으면서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사람이다. 하지만 로렌스 팀에 벨트레의 사제인 단호가 있었다.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렇게 서로 대화를 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타핫!”
쿵!
허공을 밟고 점프한 벨트레가 준이 있는 최상층의 바닥에 내려앉았다.
준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방패를 슬쩍 내려 시야를 확보했다. 아무래도 적은 근접전을 주로 하는 스타일로 생각되었다.
‘저 마법사와 맞먹는 걸 보면 저 놈도 최상급이겠지.’
마법사가 아닌 근접 전투는 어떤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예상이 잘 되지 않았다. 현재 델타 스피릿에는 최상급 헌터가 없다. 카렌도 오펜하이머도 모두 상급헌터.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벨트레 라는 저 사내를 상대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가 본인 스스로도 궁금한 상황이었다.
벨트레가 손을 뻗었다. 준은 다급히 방패 아래로 머리를 숨겼다.
파팟!
순간적으로 다섯개의 투사체가 머리위를 스쳐지나갔다. 손을 뻗는 걸 보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던진게 무엇인지, 그게 몇개인지는 자신의 머리를 스쳐지나간 다음에나 확인할 수 있었다.
‘표창인가... 원거리 공격도 염두에 두어야 겠군.’
인술 자체는 암살을 위한 기술이지만, 애시당초 헌터의 기술이라는 것들이 그렇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법이 없다. 분신술만 해도 정면승부에서 효과가 좋고, 표창술도 활에 비해 중거리 공격력이 좋으니까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있다.
일단 벨트레의 손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그때 준의 귓가에 미세한 소음이 포착되엇다.
파라락!
‘뒤?’
뭔가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몸을 옆으로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준의 머리를 스쳐지나간 표창 다섯개가 바닥에 꽂혔다.
“어떻게?”
놀란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오? 완전 벙어리는 아니었군.”
벨트레가 입을 열었다. 준은 실수를 깨닫고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로 정체가 밝혀지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다.
‘던진 표창이 돌아왔다.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건 등뒤에 올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다는 거다.’
스탯이 오르고, 레벨이 올라가면서 준의 감각도 동시에 민감해졌다. 하지만 방금 단호도 그랬듯이 인술을 익힌 녀석들의 특징은 모든 공격이 은밀하게 시전된다는 것 이다. 가급적이면 힘을 감춰야 하는 준의 입장에서 상대하기가 제법 곤란한 녀석들이었다.
‘차라리 마법을 쓰는 녀석이 편한데.’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지. 더이상 시간을 끌면 위에서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벨트레가 가볍게 바닥을 박차며 달렸다. 엄청난 속도임에도 발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비교적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던 준은 그 속도에 맞추기 보단 녀석의 움직임에 따라 슬쩍슬쩍 방향만 바꾸어 주는 방법을 택했다.
쾅!
“큭.”
하지만 그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로렌스의 익스플로전이 준을 타격했다.
재빨리 옆으로 이동하면서 데미지를 감쇄시키긴 했지만, 그 짧은 사이 벨트레의 움직임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어디냐?’
앞뒤양옆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위?’
준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푸른 하늘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준의 그림자에서 벨트레가 검을 내뻗었다.
캉! 파직!
“큭?”
벨트레가 손아귀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준이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면서 갑옷의 옆면에 검이 스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을 타고 전기가 튀었다.
전자기장 제어를 사용하고 있는 준의 공격에 당한 것이다.
“마법사라고 하더니...”
놈들이 준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이정도의 전자기장제어로 준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기계통의 마법은 흔하디 흔한 것이었으니까.
“결국 근접으로는 힘들다는 거군.”
벨트레가 준으로 부터 멀어졌다. 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자기장 제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갑옷을 뚫고 본체를 공격해버리면 아무리 준이라도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으니까.
‘멍청한 건가...?’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바뀌었다. 벨트레와 로렌스의 합동공격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쾅!
파파팟!
익스플로전이 터지는 순간 준의 이동경로를 예측하여 표창이 날아들었다. 심지어 그 표창은 마치 살아있는 듯 준을 빗겨나갔다가 다시 그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호밍 미사일 처럼 준을 추적하는 그 공격에 준은 계속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큭.”
쾅!
파파팟!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모든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익스플로전에 정통으로 맞은 방패가 걸레짝이 되어 날아갔고, 갑옷 곳곳에 표창이 박혀들었다.
“헉. 헉.”
준이 숨을 몰아쉬자, 벨트레가 입을 열었다.
“제법 버티긴 했지만, 이제 마지막이로군.”
“그걸 할 생각인가?”
로렌스의 말에 벨트레가 말을 이었다.
“큰 기술 한방으로 끝내자고.”
“단호. 뒤로 물러서라!”
“네.”
구경만 하고 있던 단호가 두 사람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뭔가 엄청난 기술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준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일부로 숨을 몰아쉬며 지친 척을 했지만 사실 아직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었다. 준의 체력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상황이었고, 이정도의 움직임을 하루종일 유지해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다만 녀석들의 공격이 너무 강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실드전개를 해야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기술자체는 워낙 여기저기서 써먹은데다가 육안으로 쉽게 관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적들의 정보망에 걸려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야. 너 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 얘들이랑 놀아주는 것도 지친다.
-아. 생각보다 골치아픈 일이 좀 있어서. 잠깐만 기다려봐.
-젠장. 빨리 끝내. 얘네들 큰 기술 쓰려고 하는데 자칫 잘못했다간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겠어.
-어떻게든 잘 해봐.
-끙... 알았어.
준은 그렇게 말하곤 벨트레와 로렌스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두 사람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쿠르르-
로렌스에게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와 멀찍이 떨어진 벨트레가 상체를 최대한 웅크린채 고개만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그에게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이것들 뭘 할 생각이야?’
쿠르릉!
반쯤 날아간 엑손타워 최상층 위로 푸른 빛이 일렁였다. 두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과도한 마나가 서로 얽히면서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이었다.
콰지직. 콰직.
부서진 집기들이 마치 무언가에 압력을 받듯이 우그러지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대기중에 과밀화된 마나가 기압을 상승시키면서 실제로 무시무시한 압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최소한 100기압 이상의 압력이 전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수심 1000미터 이상의 바다속에 있는 것 이상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미친... 건물을 무너뜨릴 생각인가?’
준의 움직임이 거북할 지경이니 엑손타워에 전해지는 하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건물은 최상층의 외벽에만 금이 갈뿐 건물 전체는 별다른 영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압력이 제한된 공간에만 적용된다는 뜻이었다.
‘과밀화 된 마나의 압력을 좁은 공간에 한정시킨다라... 이 녀석들의 마나컨트롤 솜씨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군.’
이정도는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천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결합된 결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멍하니 감탄만 하다가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큰 기술 일 수록 준비시간이 길다.’
아주 간단한 논리였다. 준이 바닥을 박차고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던 로렌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엄청난 기압이 준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렌스가 있는 곳 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앗!”
준은 손에 쥔 해머를 강하게 휘둘렀다.
투웅!
‘응?’
하지만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로렌스를 둘러싼 투명한 막에 의해 공격이 막힌 것이다. 준은 포기하지 않고 해머를 휘둘렀지만, 곧 로렌스와 자신을 가르고 있는 막을 힘으로 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단호가 비웃듯이 입을 열었다.
“그 막은 공간자체를 차폐하는 것. 너와 팀장님 사이에는 하나 이상의 차원이라는 거리가 있다. 전 우주의 끝과 끝보다도 먼 거리지. 그걸 힘으로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차원의 결계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준은 눈앞의 로렌스가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방이라서 그런지 진짜 어마어마한 인간들이 그냥 튀어나오는 구만.’
준은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서야 했다. 아예 여기서 도망갈까 했지만,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미션은 아직 현재진행중이었다.
‘벨트레는...’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로렌스의 두 팔이 허공으로 치솟았고, 벨트레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활짝 폈다.
“프로미넌스!(홍염)”
“낙화유성!”
구궁!
준의 머리위로 거대한 태양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살라먹을 거대한 불꽃이 엑손타워 최상층을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유성처럼 쏟아지는 수천개의 빛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