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524화 (52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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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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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조심스럽게 자비스를 향해 접근했다. 그녀의 시선이 점점 노골적인 적의를 띄었다.

‘이런 식이면 계약을 받아들이진 않을텐데.’

외도에게도 계약이 먹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준에게 완전히 굴복하거나 혹은 호의를 보인 다음의 일이었다. 지금 처럼 아예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이 성립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볼 생각이다. 정 안되면 로버를 이용해서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고 강제로라도 계약을 맺을 생각이다. 외도가 죽음 직전까지 인간을 공격하긴 하지만, 생존욕구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를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무조건 적인 공격성이 있을뿐.

그걸 압도할 정도의 무력으로 녀석을 초죽음 상태로 만들면 강제로 계약을 성립시킬 가능성도 있다.

한가지 변수라면 자비스는 외도가 아니고 놈의 적개심도 인간을 향해 있지는 않다는 점. 녀석이 도시를 공격하는 이유도 엑조틱 탱크를 얻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크으으.”

50미터 정도까지 접근하자 자비스가 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위협을 해왔다. 더 이상 다가오면 공격을 하겠다는 의사로 보였다.

‘약간의 이성은 있는 건가?’

기존에 보아오던 자비스라면 이런 경고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무턱대고 몸으로 밀고 들어왔겠지. 이성이 약간이나마 살아있다는 것이 희소식일지 아닐지, 준은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 들이대는 수밖에.’

5미터나 되는 여자에게 다가가며 준은 두 팔을 벌렸다. 이쪽에서는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다.

움찔.

녀석이 손을 작게 오므렸다 폈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건물이 무너진 폐허속을 걸었다. 준의 움직임에 따라서 푸른색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자비스의 눈동자가 조금씩 일렁이는 듯 했다.

‘엄청 크구만.’

가까이 다가갈 수록 5미터짜리 인간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준의 눈눞이가 그녀의 허벅지 무릎 위와 비슷한 정도. 괴물들과는 달리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보니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10미터 거리까지 도달하자 꿈틀거리는 근육에서 숨막히기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몸 주위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한여름 같군. 헌데 묘하게 덥지는 않은데.’

아마도 업그레이드의 영향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자연스럽게 더위와 추위에 강해진 모양이었다. 기존에도 외부 온도에 영향을 덜받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탁.

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자비스는 어느새 들었던 손을 내린 채 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다할 공격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왠지 호기심이 느껴지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성없이 무작위적인 공격만 가하던 기존의 자비스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생각이라는 게 있는 것 같긴 한데...’

일단 계약부터 걸어보기로 했다. 만약 녀석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면 간단히 끝낼 수도 있었다.

-눈앞의 자비스와 펠로우쉽 계약을...

그때 준의 감각에 무언가 가공할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시간은 없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이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콰앙!

준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좁은 공간에 수십만도의 열기를 일으켜 그안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신형 플라스마 공대지 미사일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준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뭐야... 이건...?’

녹아내리는 대지속에서 준은 자비스의 상태를 가장먼저 확인했다. 녀석이라고 저런 공격에 데미지를 입을리 없다.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크아아!”

자비스가 분노하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제기랄. 대체 어떤 놈들이...’

거기까지 생각하던 준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굳이 누굴까 추론할 필요도 없었다. 자비스를 노린 공격이든, 자신을 노린 공격이든, 혹은 둘 다이든 간에 이곳에 이 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연방정보부밖에 없다.

게다가 이 정도로 정밀하게, 제 타이밍에 날리려면 대기시켜둔 반중력 셔틀이나 헬기에서 날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 가지 더.

아무리 정보부의 권력이 막강해도 이런 무기를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은 없을 것이다. 이건 국방부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

‘대통령이 움직인건가.’

연방대통령의 허가없이 국방부가 움직일리 없다.

“쿠와아아!”

쿠웅!

분노한 자비스가 준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준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플라스마의 열기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

사방에서 수십개의 미사일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폭발이 일었다.

콰콰광!

“크윽!”

눈앞이 어지럽다. 파편이든 폭발로 인한 충격이든 준에게는 어떤 데미지도 입히지 못했지만, 그런게 수십 발이 날아오면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다. 바닥이 터져나가는 폭발에 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재빨리 중력제어를 이용해 자세를 잡았지만 폭발의 후폭풍과 화염, 먼지등으로 인해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후웅!

쾅!

그 와중에 먼지를 가르고 거대한 자비스의 주먹이 날아왔다.

‘결국 육탄전이냐.’

준은 일단 미사일은 무시하기로 했다. EX필드만 남아있다면 저런 구시대 무기들은 조금도 데미지를 입힐 수 없었다. EX필드의 양이 1이라 자비스에게 한대만 맞아도 날아가겠지만, 그건 안맞으면 될 일이다.

지금의 준에게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후웅!

자비스의 주먹을 피해 움직이며 준은 시스템을 향해 메세지를 넣었다.

-계약은 어떻게 됐지?

-펠로우쉽 계약은 제시되었고, 거부되었습니다.

-쳇. 역시인가.

그 이유가 미사일 때문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놈이 흥분한 상태에서 계약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후웅! 쾅!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며 준은 생각했다.

‘일단 계약은 실패. 그러면 물러나야 하나? 아니, 일단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 시도하는 건...?’

준은 고개를 저었다. 자비스보다 자신이 먼저 지칠 확률이 상당히 높다. 게다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자신도 모른다.

괜히 시간을 질질 끌필요는 없다. 놈을 지치게 만들려면 차라리 던전안에 처박아 두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무중력 던전에서 흐르는 시간은 바깥의 8배. 그곳에 짱박아 놓고 내버려 두면 알아서 순순히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때려눕혀야 한다는 거군. 귀찮게 됐어.’

기존의 자비스에 비해서 훨씬 더 강할 거라고 예상되는 녀석과 부딪히는 게 썩 내키진 않았다. 장민성 같은 녀석들이야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에 희열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준은 애시당초 전사가 아니라 엔지니어다.

싸우는 방식도 자신이 얼마나 안전한 상황에서 상대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 준에게 전투의 희열이라던가 기쁨 같은 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런 건 어울리지도 않고.’

준은 일단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무리하게 맨몸으로 싸울 필요는 없었다. 막 로버를 향해 돌아가려는 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아직도 연기가 가라앉지 않는거지?’

후웅!

“이크!”

자비스의 공격을 피하며 준은 로버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타타탓!

순식간에 백여미터를 주파한 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게 시야가 뿌옇게 흐린 것을 보고 거의 확신했다.

‘애초에 날 노리고 한 공격이었군.’

시각정보를 차단시키는 것은 자비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놈은 어차피 무차별 파괴를 일삼는 녀석이니까. 그렇다면 그 대상은 준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명백했다.

‘로버를 노리고 있어.’

그걸 깨닫자마자 준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초가속.’

쑤욱-

준의 이속이 3배로 늘면서 마치 공간이 그를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듯 일그러졌다. 이 모습을 바깥에서 봤다면 그의 몸이 늘어지는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거의 몇초만에 로버가 있던 곳까지 도착한 준이 발견한 것은 부서진 건물의 잔해였다. 그 짧은 사이 에피알게나스를 제압하고 로버를 탈취한 것이다.

‘이것들이...’

준은 재빨리 델타맵을 켰다.

하얀 점이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속도는 거의 음속을 돌파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준에게서 도망치려는 모양이었다.

대체 얼마나 준비를 했길래 그 짧은 사이에 30미터짜리 로봇을 들고 튈 수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것도 내가 내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을...’

하지만 궁금증은 잠시다. 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중력장제어.’

준의 몸을 중심으로 중력이 기울어졌다. 마치 벼랑에서 떨어지듯 준의 몸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텍사스 임시 정보국 주통제실.

[금고털이 성공.]

“좋아.”

작전 1팀장 테일러 루윈으로 부터 무선이 들어왔다. 피셔국장이 주먹을 말아쥐며 입을 열었다.

에반스가 입을 열었다.

“그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로버와 여자를 데리고 있으니 놈이 미쳐날뛰기 시작할터. 그때가서 처리해도 늦지 않아. 어쨌건 간에 놈은 연방의 손님이니 우리쪽에서 무턱대고 죽일 수는 없지.”

“만약 녀석이 연합으로 돌아가서 함대를 이끌고 온다면요?”

“그건 더 반가운 일이지.”

피셔국장이 웃음을 흘렸다. 준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저 연방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뻔히 준 알스버그가 연방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제법 문제가 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 그가 뿌린 인공지능 로봇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준 알스버그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태. 여기서 갑자기 그가 죽는다면 상황이 이상하게 꼬일 우려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강대국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자비스로 인해 유명해진 준이 아무이유 없이 죽어버리게 되면 당연히 엄청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일단 VVIP에 대한 소홀한 경호와, 안전하지 못한 연방의 치안이 도마위에 오를 것이다. 그를 죽인 자들을 분리주의자라고 뒤집어 씌운다고해도, 결국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왜 아직도 처리하지 못하느냐에 대한 여론이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신이 저지른 일들 중 아주 사소한 사실이라도 드러나게 된다면 대통령이 자신에게 독박을 씌워 꼬리를 자를 수도 있었다.

‘그건 안될일이지.’

하지만 만약 준 알스버그가 미쳐 날뛰어 준다면, 이쪽에선 마음편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미 테일러를 비롯해 외부 출장을 나갔던 최상급헌터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었다.

벨트레와 로렌스가 죽은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로버안에 여성이 탑승하고 있었다. 재빨리 기절시키긴 했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이야기 해달라.]

테일러에게서 무선이 들어왔다. 피셔국장이 입을 열었다.

“로버의 조작법을 알 수도 있으니 살려두도록.”

[오케이. 그럼 안전하게 귀환하겠다. 문을 열어 두도...치칙!]

“뭐지? 통신상태가 불량한데?”

피셔국장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콘솔을 조작하던 오퍼레이터 하나가 입을 열었다.

“무선이 잡히지 않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안잡혀? 통신방해가 있어도 신호는 잡힐거 아냐?”

“신호가...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어째서 갑자기...”

피셔국장이 당황하며 외쳤다. 통제실 내부가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통신이 재개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약 10분이 지났을 무렵.

[치칙...]

“신호가 들어옵니다!”

오퍼레이터가 큰 소리로 외쳤다.

“휴... 그러면 그렇지. 지금 어디인거지?”

“위치는... 어?”

“뭐야?”

“이, 이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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