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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델타-528화 (528/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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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피셔국장을 일단 던전에다 넣었다. 어차피 두들겨 팬다고 입을 열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것이다. 던전안에 들어간 이상 생사여탈은 준의 손에 달려있었고, 싫어도 협조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연방이라는 초거대국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역연합을 건드릴때와는 완전히 사정이 다른 것이다.

그때야 갤럭시 인더스트리를 견제할 다른 기업이라도 있었지 연방은 그런것도 없다. 그야말로 주변 항성계의 패자이자, 인류의 패권국가였으니까.

“글쎄. 공격이 오면 받아친다. 그것뿐이야. 내가 언제는 남 눈치보면서 일했나?”

“그렇긴 하지만. 나는 네가 괜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외도는 아직 위협적이지 않아. 네가 말한 태양을 집어삼키는 외도는 수십만년 후에 나타날 수도 있어. 너무 초조해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만...”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연방의 힘에 네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외도를 막아낼 사람이 없잖아. 너의 지식과 능력이 이 세계에 꼭 필요해. 설령 이 세대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능력을 이어받을 사람이 있어야 해.”

“그거라면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데.”

준은 엘라를 떠올렸다. 그녀는 지나치게 뛰어났다. 루나를 닮은 천재적인 머리, 그리고 태어날때부터 델타의 능력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다. 외려 준이 그녀에게 얻어서 쓰는 스킬까지 있을 정도다. 거기다가 준 자신을 능가하는 호기심까지 있으니, 성장한 엘라가 어떤 힘을 가질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엘라만으로는 부족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로오나의 피를 가진 후계자.”

“그 이야기는...”

“너와 나의 아이가 필요해.”

에피알게나스는 준이 뭐라 말하기 전에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준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보통의 남자라면 분명히 좋아해야할 상황이다.

하지만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종마냐.’

루나나 은설와 에피알게나스는 상황이 다르다. 두 사람과는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 지냈고, 친밀함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에피알게나스는... 사실 까놓고 말하면 좀 예쁜 외계인, 좀 더 나가면 로버를 구동하기 위한 동료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최초에 구름처럼 생겨났던 에피알게나스의 팬클럽이 사그러든것도 그녀에게 어떤 인간적인 매력도 발견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향기 없는 꽃. 물론 인간을 초월한 미모는 여전히 살아있어 아직도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은 델타 그룹 내에서 원탑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기세가 예전과 다른 것은 사실인 것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나는 너에게 모든 걸 걸었어. 너도 그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에피알게나스는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얼굴이다.

실제로 준은 그녀에게 빚이 있다. 로오나에 대한 정보도 그녀에게 상당수 의존하고 있고, 로버역시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준에게 충분히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게 아이여서야...

“생각할 시간을 좀 줘.”

“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하긴 할거야.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여러가지로 해결할 문제도 있고.”

루나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은설이도 마찬가지다. 준의 성격상 하룻밤으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면, 그들과 똑같이 대하려고 할테니까.

“나는 아이만 있으면 충분해. 네 아내 역할은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그래. 일단 알았으니까.”

단지 필요한 것은 후계자. 에피알게나스의 태도는 확고했다.

“나아는 아이도 필요없는데.”

시미가 고개를 내밀고 입을 열었다.

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외계인에다가 만드라고라라니. 이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몸이 여러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음...? 그러고보니 벌써 두 개 잖아?’

아예 이걸 이용해서 여럿으로 늘려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자기 자신이 여럿이라는 상황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그게 셋이 되고 넷이 되기 시작하면 또 다른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닐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피셔국장을 납치한 준은 일행과 함께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완전히 비워진 곳이라 얼마든지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굳이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연방의 압박이, 연합과 델타스피릿에게 까지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이곳에서 마무리 짓지 못하면 두고두고 연방은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적이되든 아군이 되든 어쨌건 이곳에서 연방과의 일은 끝내고 나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형님.”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현재 그들은 프라이오스 호텔 최상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룸서비스가 없지만 딱히 문제될 건 없다. 수도와 전기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먹을 건 델타폰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거야. 싸우던 뭘하던 저쪽에서 액션을 취해줘야 나도 대응하기가 편하거든.”

“만약 공격을 해온다고 하면 괜한 앙금만 더 쌓일 수 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아영이들로 계속 구조작업 하고 있는 거잖아.”

자비스에 의한 피해는 초대형 자연재해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러곳에서 헌터들이 포함된 구조작업이 진행중이었지만 아영이만큼 빠르게 해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작업이 진행되는 중에 파손되거나 실종되는 것들이 제법 많았다.

로봇의 특성상 인간이 들어가기 힘든 무너진 건물 지하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반이 무너지며 그 아래 깔리는 사고 등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봐도 숫자 자체가 너무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영이를 추가로 생산할까 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영이들 스스로 자가복제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물론 지금 시점에서는 단지 아이디어일 뿐이다. 준 자신도 그정도의 기술럭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자가수복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로봇이 유기체도 아니고 스스로 또다른 개체를 생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엘라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만드는 로봇은 기술에 기반한 것이 아니니까. 그녀자신이 여러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런 오버테크놀러지 급의 기술까지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로봇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법을 발동하는 것 처럼 사용하는 거다.

생각난김에 곧바로 엘라에게 통신을 넣었다.

-엘라. 뭐하고 있어?

-어? 아빠? 무슨 일이에요? 나 사고친거 없는데...

통신을 걸자마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또 안보는데서 뭔가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런 게 아니라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아빠가요? 나한테?

-그래.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야.

-그럼 나도 아빠한테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요. 사고 싶은게 있어서...

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이 벌써부터 딜을 거는 구만.’

-그래. 사줄게. 뭔데?

-행성이요.

-오타났니? 행성이라고 보낸 거 같은데.

-아니요. 그거 맞는데요. 기왕이면 사람이 살 수 있는데로요.

이 녀석이 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생일 선물로 뭐 셔틀이나 이런것까지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어디다가 쓸건데?

-음... 뭔가 만들고 싶은게 있는데, 여기서 하기엔 좀 좁은 거 같아서요.

-대체 뭘 만들려고 하는 건데?

-그게... 우주선이요.

-우주선?

-네. 행성의 내부열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엑조틱매터를 이용한 워프드라이브를 장착하면 얼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게 되는거냐?

-아직 몰라요. 안해봐서. 그냥 생각이 나서 해볼까 하는거에요.

-해보지도 않은 일을 하는데 행성이 필요하다는 거지?

-너무 걱정 마세요. 아마도 될테니까.

아마도 된다. 엘라가 이렇게 말했다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건 로봇의 복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최대크기의 우주선이 3킬로미터 정도다. 행성크기의 우주선이라는 건 SF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것도 지구인이 아니라 미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그거 꼭 로오나가 할 짓 같은데...?’

준은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에피. 혹시 행성크기의 우주선이 있어?”

끄덕.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로오나는 작은 우주선을 타고 이쪽으로 온거지?”

“차원의 균열이 작았으니까.”

“그렇군.”

무슨 이유에서든지 로오나의 지식이 엘라에게로 전승된 모양이었다. 아마도 화이트크리스탈에 잠들어 있던 정보의 조각이 그녀에게 발현디는 모양인데. 그래도 그렇지 행성급의 우주선이라니 절로 기함하게 된다.

-일단 기다려봐. 지금 살 수 있는게 있는지 알아볼테니까.

-정말이에요? 와아! 사랑해요! 아빠! 최고!

-그, 그래...

뭔가 애들 장난감으로 사주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큰 것 같긴 했지만, 일단 준 자신도 궁금하긴 했다. 그녀가 과연 그걸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대체 행성급 우주선은 어떤 식으로 움직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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