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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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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을 던전에 집어넣고 준 일행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오펜하이머를 추적하는 건 준에게 쉬운 일이었다. 그냥 맵을 띄워서 오펜하이머의 위치를 확인하면 되었다. 펠로우쉽 계약이 되어 있는 이상 누구든 준에게 추적이 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
오펜하이머를 쫓아 준은 계속 이동했다.
하지만 거지사내를 쫓는 만큼 그녀의 발길도 느렸다. 혹시라도 너무 빨리 움직이게 되면 자신들이 거지사내를 추적하는 것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잡담을 하며 걸음을 늦추었다.
준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걸로 이 동네 일은 전부 끝났으면 좋겠군.”
“왜요. 전 준이랑 같이 다녀서 좋은데.”
시미가 입을 열었다. 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야 고민할게 없으니 그렇겠지.”
“애초에 형님도 별로 고민은 없으신... 아야야.”
“시끄러 임마. 그냥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
준이 검둥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투덜거렸다.
“으윽. 제가 감히 형님의 고민을 얕잡아 봤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고. 그냥 심통나서 그런 거니까 신경쓰지마.”
“솔직히 말하면 훨씬 더 쉽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뭐하러 이렇게 돌아가는 건지 난 모르겠어.”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더 쉬운 방법이라... 네 생각엔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연방대통령의 머리가 집무실 책상에 처박히면 끝날 문제아니야?”
“...그러니까 나보고 지금 백악관에 쳐들어가서 대통령을 습격하라는 이야기냐?”
“안될 것도 없니. 그럴 만한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외계인이라지만, 생각의 스케일이 달랐다.
“그게 불가능 하지는 않겠지. 힘이라면 있고. 아마도 로버를 타고 가면 내가 당할 위험도 없을거야.”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지?”
“그야. 나는 지킬게 많은 사람이니까. 예전처럼 손안에 아무것도 쥔 것이 없을 때와는 다르거든. 가족이 있고, 직원들도 있어.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연방 대통령을 건드렸다간 전쟁이야.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나가게 될지 몰라. 어쩌면 그 사람들 중에 내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흠. 인생은 각자도생이지.”
“그런 말 하는 것 치곤 너도 로오나의 생존이라는 목적이 있지 않나?”
“아.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언제 나랑 잘거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정 하기 싫으면 그냥 유전자만 넘겨줘. 그걸로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아니... 일단 그것도 싫어.”
“수억마리나 있는 거 중에서 조금 달라는 건데 그것도 안되는 거야?”
“아니. 일단 남의 그걸... 가지고 물건취급 말아줄래?”
“어차피 로봇에다가... 읍읍.”준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막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거 비밀이라고 했다.”
“휴... 알았으니까 내 차례 잊지 말고.”
“끙...”
준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보부 사람인 걸로 추정되는 사람 발견.
-노숙자는 어떻게 됐어?
-총맞았는데 일단은 살려뒀어.
-오케이. 잘했어.
마약중독자에 노숙자라고는 해도 상관없는 일에 휘말려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가급적이면 거지사내를 살려두도록 했고, 방법은 모르지만 그녀가 일을 잘 처리한 듯 싶었다.
‘최상급 마법사니 뭐 방법이야 많겠지.’
실드를 켜놓을 수도 있고, 총을 맞는 순간에 회복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도 있을 거다. 궁금한 김에 그냥 물어보았다.
-어떻게 살린건데?
-아. 총알을 녹였어.
-음...?
-그리고 노숙사 뒤통수를 쳐서 기절 시켰고.
-총알을 녹이다니... 그게 가능한거냐?
-나는 원래 화염마법사라고. 다른 건 잘 몰라.
-아니, 그게 아니라... 뭐 됐다. 일만 잘 처리 하면 됐지.
날아오는 총알을 녹인다는 건 보통의 기술로 되는 게 아니다. 일단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고, 작은 총알이기 때문에 타겟을 정확히 잡기 힘들다. 그리고 그와중에 적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들어가야 할 작업도 많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신경써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이제 저 양복쟁이를 추적하면 되는거지?
-그래. 들키지 않게. 우리도 따라갈게.
-그럼. 빨리 쫓아와야 할거야.
-무슨...?
메시지가 날아오지 마자, 오펜하이머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준은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미. 넌 주머니로 들어오고. 검둥이는 알아서 따라와. 그리고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준은 에피알게나스를 염동력으로 들어올리고 땅을 박찼다.
오펜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시속 100킬로를 넘어섰다. 결국 지하세계를 벗어나고서도 한참이나 더 달렸지만 달리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쫓을 수가 없었다.
-형님. 못 쫓아가겠습니다.
-일단 나 있는 곳까지만 와.
뒤쳐진 검둥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 일단 멈추었다. 맵을 보니 속도는 이미 40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이 속도를 낼 수 있는 탈것은 많지 않다.
‘셔틀을 탄 모양이군.’
이렇게 되면 달려서 쫓아간다는 건 의미가 없다. 일단 상당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찬가지로 셔틀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검둥이와 시미, 에피알게나스를 태우고 셔틀을 띄웠다. 가급적이면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인적이 뜸한 공원에서 셔틀을 띄웠고, 얼마전에 기술강화를 통해 부여한 시야교란을 사용했다. 구버전의 시야교란은 전파에서만 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 걸린 것은 광학미채에 준하는 기능을 달고 있었다.
즉, 말 그대로 셔틀을 투명화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워싱턴이었다.
연방의 정치적 수도인 워싱턴 D.C.는 백악관 뿐만 아니라 각 정보기관들의 수뇌진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요원을 뿌려대고 있지만 결국 최종보고는 웨스트윙의 상황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거 결국 대통령 얼굴을 봐야하는 건가.”
가급적이면 거기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불편하기도 하고,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라. 뭐. 설마 전쟁을 하자고 하지는 않겠지.’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서로 죽이자고 덤벼들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차피 연합과 연방은 멀고, 연합의 내부는 갤럭시 쪽과 파인애플 쪽의 대립으로 인해서 서로 파가 갈려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연방이 압력을 가한다고 해도, 그 모든 역량을 델타그룹에 투사할 여력은 없다.
오히려 파인애플 사쪽은 내심 이번 기회를 이용해 연합의 내부를 자신들이 장악하고 싶어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갤럭시 그룹측에 압박을 주는 준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무역철회에 여러가지 경제제재가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뒤로는 다들 델타폰을 포함한 물건을 사들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략물자라는 건 많을 수록 좋고, 델타엔진등을 비롯한 물건들은 갤럭시와의 싸움에서 상당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준은 백악관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공원에 셔틀을 내렸다.
광학미채 때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음과 바람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일어난 현상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고, 준과 일행들이 갑자기 나타나자 다들 벙찐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은 천천히 오펜하이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현재 그녀가 있는 위치는 백악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
지도에는 그냥 공터로 나와있는 곳이다. 아마도 뭐가 되었든 정보국과 관련이 있는 장소일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최상급 마법사라곤 해도 그렇게 빨리 날 재주는 없고, 그녀 역시 정보국 요원들이 타고 있는 셔틀안에 끼어들었음이 틀림없었다.
도착한 곳은 평범해 보이는 5층짜리 건물. 빌딩 한채를 통째로 사용했던 중앙정보국과는 그 모양새가 완전히 달랐다. 정말로 관청이라는 느낌?
하지만 그 안에 오펜하이머가 있다는 것이 확인 된 이상, 이곳이 정보국과 관련있는 곳이라는 건 확실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검둥이가 건물 앞에 쓰여져 있는 현판을 가리켰다.
읽어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미 중앙정보국 워싱턴지부’라고 쓰여 있었다. 워싱턴의 주요 건물들은 애초에 목적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정보국이 비밀리에 움직인다고 해도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곳까지 비밀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준은 일행과 함께 천천히 건물안으로 들어섰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갈때까지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그냥 시청건물에 들어가는 듯,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준에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자기일 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그를 스쳐지나갔다.
“흠... 이거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
델타맵을 통해 본 건물의 내부는 숨겨진 공간 같은 건 없었다.
어딘가에는 국장실이 있을거고, 현재는 공석인 피셔국장을 대신해서 도널드 셰어 부국장이 있을 거다.
물론 준때문에 바쁜 분이라 이곳에 없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건가?”
정보국에 원수를 진 준 알스버그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구하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자기 일이 바빠서 그런 거 아닐까요?”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엄청나게 부산스럽긴 했다. 다들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컴퓨터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중년의 흑인 여성이 마침 내 곁을 지나가길래 말을 걸었다.
“아... 저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요즘 골치아픈 일이 있는거 알면서 그러는 거에요? 아니 당신. 외부인 인 것 같은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죠?”
“높은 사람을 만날 일이 좀 있어서요.”
“당신이 누구길래... 아...?”
그녀는 잠시 당황하며 준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검둥이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알아보는 모양입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문제라니까.”
“잠깐만요. 당신들 분명히...”
그녀는 들고 있든 스마트패널을 이리저리 조작하더니 사진 하나를 띄웠다. 그 안에는 준과 일행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었다.
“어...”
“부국장 여기 있나요?”
“어... 그게...”
중앙정보국에서 저 나이까지 일할 정도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일텐데 이런 상황에는 대처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그네들 입장에서는 준만큼 악랄한 테러리스트가 없을테니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당황을 넘어서 공포를 느껴도 이상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자기네들 안마당인 정보국 건물 안에서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자,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황급히 사라졌다.
‘그냥 여기서 일이 끝났으면 좋겠군.’
부국장을 만나고, 대충 협박하고 입막음을 하는 걸로 끝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어렵게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준의 입장에서는 부디 저쪽에서 경거망동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만약 또 총을 들고 덤비거나, 헌터들을 잔뜩 풀어버린다면 워싱턴 한복판에서 로버를 불러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었을때 연방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준 조차도 예상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