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37화 (37/124)

4라운드 미션 (1)

-이번 4라운드의 미션 주제는 K-POP입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에 K-POP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류 열풍에 걸 맞는 K-POP만의 무대를 준비해 주세요. 장르에 제한이 없는 자유곡 미션입니다! 최고의 기량을 뽐내 주세요!

한국의 대중가요를 일컫는 K-POP.

한국의 모든 대중 음악을 통칭하는 말이지만 언제부턴가 댄스, 힙합, R&B,발라드, 록, 일렉트로닉 음악 등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가 아시아 각국에서 열풍을 일으켰고, 2000년대 중, 후반부터는 K-POP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 남미, 중동지역까지 세계 각국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 중 많은 화제를 낳은 것은 당연 아이돌 그룹 음악이다.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 비트감,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그리고 멋진 댄스 실력으로 선보이는 칼 군무.

오랜 기간 연습생으로 훈련을 받은 아이돌의 집단 군무는 뛰어난 외모와 감각적인 패션 스타일, 화려한 댄스 등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히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션 봉투를 받고, 즉시 팀원들끼리 회의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그냥 딱 보기에도 이게 바로 K-POP이다. 라고 말할 정도의 무대를 만들라는 건데, 이게 또 생각하기 나름이라서.

당장 머릿속에 이것저것 드는 생각은 많은데 딱히 구체화된 형체가 없다.

“너희들은 K-POP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야?”

장요한 녀석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음, K-POP하면 역시나 화려한 칼 군무죠. 중남미 쪽에서 인기 있는 그룹은 대부분 칼 군무로 유명한 팀들이잖아요. 군무가 멋진 춤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박진우가 손을 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전 노래요. 군무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노래가 받쳐줘야죠. K-POP은 확실히 K-POP만의 색깔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저희 그룹은 보컬이 둘이니까 노래로 승부를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네 생각은?”

내가 김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녀석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한참동안이나 골똘히 생각어린 표정을 짓더니, 솔로몬의 판결을 내놓는다.

“전 노래, 춤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엄마가 중요해? 아빠가 중요해? 라고 묻는 문제 같은 거라.”

이 녀석 똑똑하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바야흐로 100만 아이돌 지망생 시대다. 요즘 음식점은 맛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어야지 손님이 몰리는 것처럼, 아이돌도 춤과 노래는 기본이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색채가 있어야지만 시청자들에게 어필이 된다.

“전 그보다 이런 미션을 낸 제작진의 의도를 파악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기성곡을 부르든가 편곡을 거쳐서 할 거라면 그냥 3라운드 때처럼 곡을 지정해줬겠죠. 굳이 한류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요?”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김태현의 대답에 앞선 두 녀석의 입이 쏙 들어간다.

“노아 너는?”

노아 녀석을 슬쩍 쳐다봤다. 내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눈이 초롱초롱 해진 채 나를 올려다본다.

왜, 어렸을 때는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빠가 나서서 뚝딱 해결해주는데, 딱 그런 아빠를 쳐다보는 어린 아들 놈의 표정이다. 녀석이 콧잔등을 손끝으로 긁적이더니 대답한다.

“어··· 저는 형이 하는 거라면 다 좋아요.”

저런 대답은 생각도 못했는데.

“진짜? 뭘 해도 상관없어?”

내가 다시 묻자 노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형은 항상 맞는 말만 하니까요.”

헐. 누가 보면 내가 사이비종교의 교주쯤 된 줄 알겠네.

내가 어이없어 하자 눈이 마주친 녀석이 배시시하고 웃는다.

순간 인터넷에서 본 노아 짤이 떠오른다. 누나들의 입덕을 부르는 딱 저 표정이다.

누나들의 심장을 마구 폭격하며 돌아다니는 노아의 웃는 짤은 심지어 팬 카페 메인에도 올라가 있다. 게시판 댓글 란에는 여지없이 누나들이 노아의 피규어화를 부르짖고 있다. 노아를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고 싶다나 뭐라나.

그리고 노아를 치면, 새끼 오리 짤도 나온다. 어미 오리를 졸졸 쫓아다니는···. 방송분에 유독 나를 따르는 노아의 모습이 나가자 팬들이 꼭 오리새끼 같다며 만들어준 짤이다. 참고로 어미 오리는 나다. 아니, 어감이 조금 그러니 아빠 오리쯤 되는 건가?

나로서는 조금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팬들이 좋아해주니 그러려니 하고 있다.

“어떻게 할 거에요. 형?”

김태현의 목소리를 듣고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이들 중에서 진지한 의논을 나눌 수 있는 건 김태현 이놈밖에 없구나.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나도 너와 비슷한 생각이야. 요즘 음식프로그램 같은 것을 봐도 한식을 알리기 위한 글로벌한 주제들이 많잖아. 퓨전 음식 개발대회 같은 경연프로그램도 있고, 대중적인 퓨전 음식점들도 많이 생기는 추세고.”

“아! 저도 알아요. 된장 수프라던가, 김치찌개 파스타 이런 거요!?”

장요한이 손을 번쩍 들며 말한다.

그걸 보고 박진우가 옆에서 거든다.

“따지고 보면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불고기 버거도 그런 일종이죠. 한국 전통 음식인 불고기에 패스트 푸드 햄버거를 합쳐놓은 거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런 음식들은 조금 더 외국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고, 한국의 음식도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듯이, 음악도 그런 식으로 알려 보자는 취지로 이번 미션을 내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흠. 그러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그러면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음악이라면 국악? 설마 국악을 대중가요에 접목시키자는 거예요?”

“뭐, 비슷하지. 어떨 거 같아?”

김태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내 심사숙고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물어본다.

“퓨전음악을 한다면 댄스도 춰야겠죠?”

“아무래도 아이돌 그룹이니까. 한류아이돌 그룹하면 떠오르는 게 댄스잖아.”

김태현 입에서 ‘흐음.’하는 작은 소리가 새어나오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문 채 이리저리 턱을 비튼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마땅찮은지 이빨사이에서 바람 새어나오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이윽고, 한참 후에야 김태현의 입이 벌어진다.

“국악과 발라드나 오페라와 발라드 같은 조합은 종종 보긴 봤는데, 국악과 댄스 조합은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요. 혹시 베이스가 될 곡 염두 해두신 거 있어요?”

“적당한 곡을 골라 봐야지. 개사 좀 해서 가사 좀 덧붙이고, 랩 파트 부분도 넣고. 안무도 좀 파격적으로 짜볼까 하는데, 어때!?”

“어······ 멋질 거 같긴 한데, 너무 일을 크게 벌이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목소리에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다.

대충 김태현이 우려하고 있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퓨전음악이라 함은 보통 두 팀이 콜라보레이션으로 합동 공연을 하는 게 대부분이지, 한 팀이 그걸 둘 다 보여주는 공연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국악적인 요소를 가미한 댄스곡 편곡이라니.

이게 가능하나 싶기도 하겠지. 하긴,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겠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요한이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박진우의 옆구리를 툭 밀쳤다.

“야, 그러고 보니까 너 판소리 전공했잖아.”

“어?”

박진우가 기습공격이라도 당한 거처럼 화들짝 놀란다.

“너희 아버지 국악원도 운영하신다 하시지 않았어? 저번에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멤버들의 시선이 쏠리자 박진우가 머리를 긁적인다.

“어, 맞긴 한데. 나 판소리는 예전에 그만뒀잖아.”

장요한이 고자질하듯 내게 말한다.

“형. 제가 전에 한번 들어봤는데, 얘 꽤 잘했어요.”

“야! 됐어. 부끄럽게 뭘 그런 걸 말해?”

박진우가 질색어린 표정을 하자, 그 틈바구니에 내가 끼어들었다.

“판소리는 얼마나 배웠는데?”

“음. 한 5, 6년 쯤?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옆에서 장요한이 추임새를 넣는다.

“얘네 아버지 인간 문화재세요. 나름 이쪽에서는 유명하신 분이래요.”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형체 없이 맴돌기만 하던 것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국악과 밴드, 댄스. 더군다나 박진우가 판소리까지 했단 말이지? 이거,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

*

잠시 후, 차조영 실장이 픽업을 하기 위해 숙소로 들어왔다.

“실장님. 이번에 치룰 4라운드 무대에 혹시 다른 사람을 세션으로 참가시켜도 되나요?”

“세션? 갑자기 그건 왜?”

“음. 이번 미션 주제가 한류 열풍이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한류를 널리 알리고자 우리나라의 고유 음악인 국악과 대중가요 콜라보를 할까 하는데요. 아무래도 저희는 노래하고 춤을 춰야할 것 같아서 연주해줄 사람이 따로 필요해서요.”

차조영 실장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대답했다.

“뭐, 연주뿐이라면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종종 스케일이 큰 무대에서는 밴드 세션도 부르기도 하고, 그러니까. 잠깐만! 이건 조금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담당 작가한테 한번 물어볼게.”

차조영 실장이 핸드폰을 쥐고, 담당 작가와 통화를 하는 사이 나는 연습실로 가기 위해 외출준비를 하는 멤버들에게 다시 한 번 의견을 물었다.

“그러면 좀 전에 의논한대로 방향성 잡고 편곡하는 걸로 한다. 혹시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있어?”

“어, 아니요.”

그때 이미 준비를 마친 김태현이 눈치를 보며 내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녀석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작게 헛기침을 하곤 묻는다.

“형, 진짜 괜찮겠어요? 편곡 작업이 진짜 힘들 거 같아서 그래요. 요즘 앨범 연습하느라 형도 시간 많이 없을 텐데······.”

“혹시 편곡이 잘 안나올까봐 그래?”

김태현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요. 형이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아서 그래요. 매번 미션 라운드 때마다 형만 너무 고생하는 거 같으니까.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아. 그런 거였나? 다른 멤버들은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이 빠른데, 이 녀석은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라서 간혹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럽기는 하지만 애늙은이다운 면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나도 멤버들 중 이 녀석을 가장 대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그렇게 까불고 촐랑거리던 장요한도 김태현이 한 마디 쏘아붙이면, 바로 입을 꾹 다물고 쭈그러든다.

그래도 이건 처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고 있는 편이지. 생전 남 걱정 안할 것 같은 녀석이 걱정 된다고, 따뜻한 말을 건넨 걸 보면······.

내가 김태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런 거라면 걱정 마. 편곡은 내가 며칠 밤을 새서라도 끝내주게 할 테니까.”

통화를 마친 차조영 실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세션 정도라면 문제없대. 근데 너무 인원이 많으면 카메라 잡기도 힘들고, 무대 위에 다 못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감안해서 구하라는데? 몇 명 정도쯤으로 생각하는데?”

“음 일단은 생각해두고 있는 게 국악 쪽 대금, 해금, 가야금, 태평소, 장구연주자 5명과 일렉기타 2명과 드러머 1명. 총 8명 정도요.”

“음. 그런데 연주자들은? 연주자들은 구했고?”

“어··· 밴드 쪽 3명은 제가 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요.”

내가 박진우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 국악 연주자 쪽은 진우랑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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