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3화 (43/124)

4라운드 미션 (7)

“늦었어? 늦은 거야!?”

중년 여성이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무대 위를 쳐다본다. 황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게 세상 다 잃은 표정이다. 함성은 그들이 들어온 후에도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걸 본 중년 남성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그런 거 같은데? 헌데 반응을 보니 나쁘지 않았나봐. 아니, 엄청 잘했나 본데?”

“그래?”

“쉿! 조용히 해봐. 심사평 한다.”

“어우······. 좋네요. 생각보다 더.”

무대가 끝난 뒤 함성이 가라앉은 뒤 허진 심사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걱정을 좀 많이 했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전 좀 부정적이었어요. 이게 국악으로 퓨전음악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미 다른 무대에서도 여러 번 시도를 했었고. 음악성과 대중성. 이 두 개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걱정을 했는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나와 멤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건 뭐,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제가 들었던 그 어떤 국악 퓨전 곡보다도 좋았습니다. 최강민씨는 가수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프로듀서로서의 능력도 탁월하네요.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지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됩니다. 9.9점 드리겠습니다.”

긴장과 기대, 흥분으로 번들거리던 멤버들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차승민 심사위원이 다음 말을 받았다.

“플레어의 무대는 매 라운드 때마다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네요. K-POP만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데 충분히 성공한 것 같아요. 국악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무대를 보면 그런 소리를 쏙 들어가겠는데요? 아, 그리고 세션으로 참가한분들은 플레어의 지인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훌륭한 연주 잘 들었습니다. 저도 9.9점을 드리겠습니다.”

언더독이 장난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다음 말을 받았다.

“앞선 두 심사위원 분들이 이전 라운드에서 만점 줬던 거에 논란에 조금 일어 신경이 쓰이셨나봅니다. 조금씩 점수를 빼신걸 보면.”

앞선 두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언더독이 그걸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건 절대 이런 오디션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의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당장 외국에 나가서 공연을 해도 충분한 무대입니다.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무대 잘 봤습니다. 노래, 안무, 편곡, 랩까지. 아주 멋졌습니다. 저는 만점 드리겠습니다.”

언더독의 점수판이 올라가고, 홍유라 심사위원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녀가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무대 위에 있는 멤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 고백할게 있는데. 저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감격에 차오르는 그녀의 표정이 무대 위 대형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 진다. 정말로 홍유라는 누군가와 애틋한 사랑에 빠진 듯한 표정이다.

“어떻게 이런 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죠?”

나지막이 관객석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제가 이런 무대를 보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지네요. 하지만 그래도 심사위원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거니······.”

홍유라가 활짝 웃으며 점수를 눌렀다.

10점.

“눈이 오늘 제대로 호강했네요.”

다시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플레어!!! 플레어!!!”

방청석에 앉은 플레어 팬들이 저마다 들고 온 플랜카드를 머리위로 치켜들며 흔든다. 그걸 보고 있던 샤인 팬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거린다.

“나참. 시끄럽기만 하구만. 이런 노래가 뭐가 좋다고.”

“그러게. 뭐가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심사위원들 단체로 돈 먹은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점수가 후해?”

누군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아씨, 이러면 우리 샤인 오빠들이 질 수도 있겠는데?”

그 말에 앞선 여자애 둘이 말한 여자애를 확하고 째려본다.

“야! 재수 없게 그 딴 소리 할래!?”

“아, 미안. 나는 괜히 걱정이 돼서······.”

“어차피 심사위원 점수는 40프로밖에 반영 안 돼. 진짜는 온라인 투표랑 문자 투표지!”

여자애가 출전을 앞둔 장수의 표정을 짓는다. 이 전쟁에서 꼭 승리하고 말겠다는 결연의 의지가 보인다.

“어차피 온라인 투표는 오빠들이 이기고 있으니까, 승부처는 문자 투표야. 다시 한 번 단톡방에 글 올려! 가족,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있는 데로 인맥 다 끌어 모아서 투표해달라고 그래. 무슨 수를 써서든 이것만큼은 꼭 이겨야 돼!”

“어, 알았어!!!”

“노아야?”

무대가 끝나고 퇴장해야할 타이밍에 노아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멀뚱멀뚱 서있길래 내가 다급히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노아가 쪼르르하고 내 옆으로 달려온다.

우리는 무대 뒤편으로 통하는 통로를 통해 마련되어 있는 관람석으로 이동했다.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노아가 슬그머니 상체를 기울이며 나에게 작게 속닥거린다.

“형, 조금 전에 봤는데 우리 부모님 오신 것 같아요.”

“진짜? 두 분 다?”

“네.”

“두 분 다 바빠서 못 오실 거라더니.”

노아의 얼굴에 기쁨의 표정이 떠올라 있다. 노아가 의자에 앉은 채 발을 동동거리며, ‘그러니까요.’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입을 꾹 다물고는 있지만, 방청석을 향해 시선을 가끔씩 던지며, 입 꼬리를 씰룩거린다.

좋기는 엄청 좋나보네.

그 말을 들은 장요한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실은 저희 부모님도 오셨어요.”

“너도?”

박진우 부모님이야 아들, 딸이 나란히 무대에 서는 거니 오시기로 한건 알고 있었고. 우리 부모님도 오신다는 건 내가 극구 만류했다. 얼마 전 어머니가 밭일을 하시다가 허리를 살짝 삐끗하셨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도저히 차를 탈수가 없는 지경이시라.

“형은요? 형네 부모님은 안 오셨어요?”

장요한이 김태현에게 물었다.

김태현이 멋쩍은 표정으로 그냥 머리만 긁적인다.

“어? 안 오셨어.”

“진짜요?”

박진우가 장요한의 옆구리를 툭 치며 끼어든다.

“멍청아. 앞에나 봐. 카메라가 우리 잡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래?”

그 말에 장요한이 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하지만 어쩐지 내 고개는 장요한처럼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평소에도 원래 말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가족이야기가 나올 때면 녀석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아예 말자체가 없어진다. 뭔가 가족사에 문제가 있나? 멤버들도 딱히 뭔가를 아는 눈치 같진 않고.

“혹시······.”

궁금증에 말이 입 밖에까지 튀어나왔다가 도로 들어간다. 나는 뒤에 이어질 말을 간신히 삼켰다. 녀석이 먼저 말하지 않는 것에는 분명 그 어떤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중에요.”

김태현이 그런 내 속내를 짐작했는지 조용히 속삭였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노블 크루와 블루 울프, 그리고 샤인의 무대가 계속 이어진다.

앞선 두 무대도 볼만했지만, 샤인의 무대는 내가 봐도 감탄성이 나왔다.

편곡이 아닌 새로운 곡을 들고 나왔는데 아주 유명한 작곡가의 곡이라더니, 막귀인 내가 듣기에도 어지간한 보이 그룹들의 타이틀곡보다도 좋다.

무슨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 쇼케이스 무대도 아니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저런 곡을 들고 나오는 건 반칙 아닌가?

“와, 확실히 비싼 곡이라 다르네.”

“비싼 곡?”

감탄을 터트린 장요한에 옆에서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소곤댄다.

“저거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서 만든 곡이 아니라, 최정 작곡가가 최정상급 보이 그룹한테 줄려고, 아끼고 있던 곡이래요. 그런데 그걸 엔틱에서 가져왔다고 하던데요? 제 친구 중에 엔틱에 있는 애가 있어서 걔한테 들었어요.”

“진짜? 그러면 엄청 비싼 곡일 거 아니야?”

보통 유명작곡가들의 곡을 가져오는 경우 500만원[email protected]

비싼 경우는 천만 원 정도를 호가 한다. 예전에 어느 인기 그룹 같은 경우는 외국의 유명 작곡가에게 2천만 원짜리 곡을 사와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게 얼마짜리인 곡이야? 미쳤다 진짜.

“1등만큼은 죽어도 안주겠다는 의지인거죠. 회사에서 샤인 엄청 밀어주고 있나 봐요. 그쪽 회사에서는 아직 인지도 있는 보이그룹이 딱히 없잖아요. 이번기회에 돈 좀 투자해서 인지도 팍팍 끌어올리겠다는 거죠. 듣자하니 팬클럽 운영비도 몰래 뒷돈으로 챙겨주고 그런다던데요?”

아. 또 그런 내막이 있었구나.

이건 또 새로운 세계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다들 좋다.

우리보다는 점수가 조금 낮지만 큰 차이가 없다.

그걸 본 샤인 팬들이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른다. 저기에 비교하자면 우리 팬덤··· 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작은 규모지만, 아무튼.

우리 팬덤은 그야말로 호박껍질에 붙어 있는 좁쌀 수준의 존재감밖에 뿜어내질 못하고 있다.

보이그룹은 팬덤에 의해 흥망성쇠가 좌지우지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는데, 진짜 눈앞에서 보니 체감이 확 온다.

MC한조민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오늘 네 팀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케이팝 리그 챌린지의 최종 우승자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우선 네 팀을 무대 위로 한 번 모셔 볼까요?”

우리를 포함한 세 팀이 전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위에 이렇게 다시 올라가니 감회가 새롭다.

공연 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관람석에 앉아 있는 팬들의 표정이 보인다. 무대 위를 바라보는 팬들의 얼굴에는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열망과 흥분 같은 것들이 떠올라 있다.

그리고 내 시선은 좀더 아래에 있는 무대 아래로 향한다.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카메라맨들과 방송 관계자, 스텝들,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우리를 초조하게 쳐다보고 있는 차조영 실장, 박호영 팀장이 보인다.

그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를 밝혀주기 위해 일을 해주고 있구나.

왜 그렇게 많은 연예인들이 수상식 때 일을 하는 스텝들을 거론하면서 감사인사를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뭔가 북 받쳐 오르는 감정과 간질간질함이 동시에 공존하다 사라진다.

MC한조민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팀 인터뷰를 하고 있고, 우리는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블루 울프와 노블 크루는 이미 우승은 물 건너간 것을 알았는지 딱히 긴장하지 않는 눈치였다. 긴장 한 것은 우리 멤버들과 샤인 멤버들뿐이었다.

“샤인의 김은우군. 이중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우승 후보로 한 팀을 점쳐 본다면요?”

MC의 짓궂은 질문에 샤인의 리더인 김은우가 난처한 듯 방송용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글쎄요. 여기 있는 팀들 전부다 잘해서 짐작이 가질 않네요.”

좋은 답변.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그건 MC가 아니겠지.

“음··· 그러지 마시고, 딱 한 팀만 고르신 다면요?”

여전히 MC의 질문이 김은우의 꼬리를 따라다닌다. 그가 의도하는 건 뻔하다. 어떻게든 김은우의 입에서 우리팀명이 나오게끔 만들어 라이벌 구도를 만들고 싶은 거겠지.

김은우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스윽 우리가 있는 곳을 한번 쳐다보더니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다.

“어··· 아무래도 계속해서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있는 플레어 여러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무대 제가 봐도 진짜 멋졌거든요. 좋은 무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오, 생각보다 쟤 인성이 괜찮구나.

1라운드 때부터 자꾸 우리 팀과 대결구도를 세워놓는 바람에 괜히 우리의 걸림돌처럼 여겨져서 마음이 좀 그랬는데.

그리고 여지없이 그 질문은 블루 울프, 노블 크루를 거쳐서 우리 팀에게까지 돌아왔다.

장요한이 마이크를 잡으려고 하길래 박진우가 얼른 마이크를 뺏어서 김태현에게 넘긴다. 장요한이 텅 비어 있는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보며, 사탕 뺏긴 어린애마냥 눈이 동그래진다.

와.

순간 축구를 보는 줄 알았다. 노룩 패스가 너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저건 암만 봐도 박진우가 잘한 짓이다.

장요한 쟤는 진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도 안 와.

“어···. 솔직히 말해서 우승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다른 팀이 우승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무대에 이렇게 올라와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이 자리에 서게까지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마이크를 잡은 김태현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인다. 깔끔한 대답이다.

그 모습을 보고 MC한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자, 그러면 이제 모두가 기다린 점수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승팀은 심사위원 점수 40프로, 사전 온라인 투표 40프로, 실시간 문자 투표 20프로를 합산해서 결정짓도록 합니다. 각 팀의 심사위원 점수를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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