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51화 (51/124)

< 뜻 깊은 무대 (3) (수정) >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먼저 저희 무대를 봐주러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래는 이 자리는 저희 앨범을 발표하는 쇼 케이스 무대로 마련된 거지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신 박남길 선배님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갑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했

습니다. 이점 깊이 사과드리고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와 멤버들은 일제히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욕을 하거나 물병을 집어던지는 이는 없었다. 이미 MC가 앞서 분위기를 잘 잡아놓은 터라 팬들 사이에서도 다들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오히려 플레어의 노래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소리 지르는 팬도 보인다.

“그러면 오래 기다리셨을 테니, 첫 번째 곡을 들려드리고 시작 하겠습니다. 첫 번째 곡으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남길 선배님의 ‘물안개 피어오를 때’입니다.”

멤버들이 무대 뒤로 들어가고, 장요한이 건반 앞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준비된 의자에 앉아 기타에 손을 뻗었다.

디리링. 기타를 잡고 현을 긁자, 웅성거리던 관객석 쪽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지나간 추억에 잠겨 봐요.

그날도 그랬었죠. 사랑을 속삭이던 그날 아침도.

간주가 끝이 나고, 첫 소절이 시작됐다. 나지막하고, 읊조리는 듯 담담하게 부르는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4천 명의 관객석을 향해 뻗어나간다. 깊은 울림과 귀를 간질이는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

VIP석에서 팔짱을 낀 채 노래만 시작해봐라. 어디 제대로 평가해주마. 라는 눈빛으로 무대 위를 쏘아보던 김문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도 그 무렵쯤일 거다.

옆에 앉은 후배 가수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형님. 쟤 노래 잘하는데요?”

“나도 귀 있어. 조용히 해봐. 노래 좀 듣게.”

노래를 잘 부를 수는 있다. 요즘 아이돌은 회사에서 3년이다 5년이다 몇 년씩 제대로 된 보컬트레이닝을 받고, 무대에 올라오니까.

그래서인지 노래를 시켜보면, 테크닉, 발성, 호흡법등 하다못해 고유의 음색마저도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은 노래는 잘하는데, 그 이상의 뭔가가 없다. 마치 같은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낸 것 마냥 이름, 그룹명만 틀리고 다

한사람이 부르는 느낌이다.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가수가 아니다. 어찌 보면 일종의 편견일수도 있지만 김문재가 생각하는 아이돌이란 크게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헌데, 웬걸.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뭔가를 계속 툭툭 건드린다.

노래에는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서가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김문재는 옛 노래를 좋아한다. 자신이 멋모르고 패기 부리며, 음악을 한다고 한참 까불거리던 80, 90년대 추억이 떠올라서.

그 시절 노래를 듣고 있자면 추억과 회한이 동시에 밀려들어오는 듯 했다.

하지만 동시대 가수가 아니고서야 그 같은 정서를 표현해 낼 줄 아는 가수는 드물다.

‘물안개 피어오를 때’는 사랑하는 옛 여인과 처음 하룻밤을 강가에서 보낸 후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마음을 전달하듯 부르는 노래다. 시대마다 사랑의 표현법이 다르듯이 그 시절에는 주로 편지 같은 걸 통한 낭만적인 사랑고백이 주를 이뤘다.

첫 연인과 공유하고 싶은 소중하고, 애틋한 마음을 한자 한자 펜에 눌러 담아 편지를 작성하는 그 남자의 심정은 아마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일 거다.

그래서 사랑 노래가 어려운 거다.

물론 상상이나 간접경험을 통해서 흉내내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흉내를 낼 뿐이다. 가수란 모름지기 노래를 통해서 표출해내고 싶은 감정을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을 할 줄 알아야 된다.

그게 김문재의 생각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팔의 털이 쭈뼛 일어선다. 김문재는 가만히 팔을 쓸어내렸다.

온몸이 말을 해주고 있다.

쟤는 진짜다.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틀어박히듯 꽂혀 들어온다. 마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음색도 완전히 다르지만 자꾸만 김문재는 눈앞에 돌아가신 박남길 형님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깊은 떨림과 울림이 있는 바이브레이션이 사정없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 가슴 한 쪽이 뭉클해지며, 눈에 자꾸 뿌연 뭔가가 올라 찬다. 그동안 박남길

과 같이 지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이내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

다른 이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명중 한명은 눈시울을 붉히며, 멍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쳐다보고 있고, 다른 한명은 여지없이 손끝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노래는 잘 모르는 듯 보이지만 어린 소녀 팬들도 그 같은 분위기에 동화되어 눈이 그렁그렁해진 채 훌쩍인다.

그래, 진정한 노래란 저런 거다. 단 한번 만으로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의 심금을 울릴줄 알아야 하는 거지.

- 나는, 그대를 그렇게 사랑했나보오······.

노래가 끝이 났지만 관객석에서는 한참동안 아무런 반응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셋 중 한명은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고, 훌쩍임과 울음소리만이 가득 메우고 있다. 자신도 이런 자리에서 진행을 맡는 건 처음이라 MC심현섭이 당황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첫 번째 곡이 끝이 났습니다. 모두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순간 박수소리가 드림시티 공개홀을 메웠다. 환호성은 없었다. 다만 뜨겁고, 묵직한 박수소리만이 가득할 뿐.

반응은 사실 현장보다는 라이브 중계를 하고 있는 홈페이지 채팅 방에서 먼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무대 현장에서야 이런 저런 이유로 다들 말을 아끼고, 침묵을 하는 분위기지만 넷상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니까.

-와, 소름. 이 노래 뭔데 이렇게 내 여린 심성을 막 자극하는 거죠?

-물안개 피어오를 때임. 돌아가신 가수 박남길씨 노래에요.

-원래 이렇게 노래가 좋아요? 그냥 듣고 있으니까 막 눈물이 나네요ㅠㅠ

-원곡 가수보다 최강민이 부르니까 더 잘 사는 느낌. 이거 부르기 쉽지 않은 노래인데.

-케리챌 때부터 느낀 건데 최강민이 노래하나는 진짜 잘하네요. 뭘 먹었길래 저렇게 노래를 잘하지?

듣는 것만으로도 울었다는 네티즌이 태반이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1초에 글 20, 30개씩이 달릴 정도로 휙휙 올라간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물안개 피어오를 때, 플레어 최강민이 차례대로 올라갔다.

프레스 석을 가득 메운 기자들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 타이핑하기에 여념이 없다. 서로 앞 다투어 현장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반응을 짤막한 기사에 싣는다.

기사들마다 칭찬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소란 중에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달밤의 노래.

앞전 곡보다는 조금 더 경쾌한 곡이다. 이 노래 또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 또한 사랑과 관련된 노래인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창문 씬을 연상케 하듯 남자 주인공이 2층 발코니에 서 있는 자신의 연인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하는 곡이다.

4분 45초짜리 곡으로 나와 박진우가 파트를 나눠부르고, 나머지 멤버들은 화음을 넣기로 했다.

장요한의 건반선율에 맞춰 내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뒤이어 박진우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혹시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나 조금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놀랄 만큼 잘한다. 아마도 내가 없었다면 플레어의 메인보컬은 틀림없이 박진우가 맡았을 거다.

두 번째 곡이 시작되자 훌쩍거림이 잦아지며, 사람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무대 위를 향한다.

막 울고 그럴 만한 슬픈 곡은 아니었지만, 단 한 사람.

VIP석에 앉아 있는 여인의 표정이 위태위태하더니, 결국 1절이 끝나기도 전에 거의 오열하듯 울음을 터트린다. 가수 김문재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인데, 카메라 한 대가 여성을 계속 비추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무대 한켠 옆에 비켜서있는 MC심현섭에게 스태프 한 명이 다가가 속삭인다.

“저분 돌아가신 박남길씨 부인분이시래요.”

“아, 그래요? 나도 오신다고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MC심현섭이 그런 중년 여성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짤막하니 인터뷰 괜찮으시냐고 한 번 여쭤봐 줄 수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 좀 그렇지 않아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좀 그래요. 일단 한번 여쭤봐 줘요. 이건 본인 의사가 중요한 거 같으니까.”

스태프가 카메라를 피해서, 중년 여성에게 다가가 속닥거린다. 그리고 이내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낸다.

그 사이 두 번째 노래가 끝이 나고, 박수소리와 함께 MC심현섭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어··· 지금 이 자리에 생각지도 못하게, 故박남길 선생님의 부인 분이 와 계시다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잠깐 인사의 말씀 좀 나눠 봐도 될까요?”

카메라가 VIP석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을 비춘다. 그러자 무대 위에 있는 대형 화면에 그녀의 모습이 자리 잡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아직도 퉁퉁 부은 채다. 아직도 발개진 눈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는 그녀가 좋다는 의사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

자, MC심현섭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 그녀에게 다가섰다.

“실례지만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이틀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박남길의 부인 김수정입니다.”

“우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MC심현섭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이 故박남길씨의 발인 날이었는데요, 매장지에서 곧장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 괜찮으시다면, 이 자리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어···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냥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말을 이어갈 때마다 꾹 눌러 담고 있는 감정이 울컥 치솟는 것이 눈에 보인다.

방청객들이 웅성거리며 ‘어뜩해.’를 외친다. 그리고는 자기들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어 내기에 급급하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부인 김수정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남편을 땅속에 매장하고, 매장지에서 넋 놓고 앉아 있는데, 김문재씨가 이곳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따라간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희 남편이 진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구나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장례식장이나 장지에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분들이 와주셨거든요. 그중에는 일반인 분들도 많이 계셨는데, 제가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릴 수가 없으니 이렇

게라도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부인 김수정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 그래서 이 자리에 이렇게 오시게 된 거군요. 잘 알겠습니다. 헌데, 조금 전 노래를 들으면서 엄청 많이 우신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혹시 남편 분 생각이 많이 나셔서 우신 건가요?”

“네. 사실 그 노래 남편이 연애시절 당시 저에게 해줬던 것을 노래로 만든 거예요. 저에게는 조금 특별한 의미라··· 그 노래를 들으니 갑자기 그때 생각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만.”

“그러셨군요. 어쩐지······.”

옆을 슬쩍 보니 멤버들도 부인 김수정의 짤막한 인터뷰가 시작되면서부터 벌써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저마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억지로 참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하면 그대로 눈물을 콸콸 쏟아낼 것 같다.

특히 장요한은 아주 끅끅 거리며 울고 있다.

헌데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관객석에서 울지 말라고, 소리치며 응원을 해준다.

인터뷰를 하고 있던 김수정이 문득 고개를 들어 무대 위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따스한 시선이 내게 닿고 있음에 느껴진다.

“조금 전 노래를 불렀던 분이 플레어의 최강민씨··· 맞죠? 제가 젊은 가수분들 이름은 잘 몰라서.”

내가 무대 위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녀가 울음기 걷힌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활짝 웃는다.

“조금 전 꼭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 남편을 만난 기분이 들었어요. 첫 번째 곡도 좋았고, 두 번째 곡도 좋았어요. 이 노래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마이크에서 입을 떼자 MC심현섭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오늘 이 자리에는 부인 김수정씨 이외 많은 연예인 동료 분들도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세 번째 곡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허밍음과 함께 세 번째 곡이 시작됐다.

잔잔하고, 조용한 어쿠스틱의 기타 선율이 손끝에서 울려 퍼지고, 가랑비에 젖어 있는 듯한 촉촉한 음색이 드림시티 공개홀에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 뜻 깊은 무대 (3) (수정)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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