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도전 (1) >
세 번째 노래가 끝이 난 후, 잠깐 동안의 휴식 시간을 갖고 플레어의 노래를 발표하는 무대가 이어졌다.
우려와는 달리 반응은 아주 좋았다. 떠들썩하고 환호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하다는 분위기 속에서 반응이 올라왔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쪽은 프레스 석에 앉아 있던 기자들이었다.
“김기자, 조금 전에 불렀던 그 곡이 최강민이 작사 작곡했다는 자작곡 맞지?”
“어, 시작할 때도 이게 아임 더 베스트라고 했잖아. 큐 카드에 쓰여 있네. 생각보다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번에 나온 샤인 타이틀곡 보다 더 좋은데? 이걸 최강민이 만들었다고?”
“좀 전에 음원도 떴는데 빠르게 상승세 타고 있는 게 심상치 않은데?
“그래?”
쇼 케이스가 앨범을 홍보하고, 노래가 나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자리라면 그 목적은 훌륭하게 이룬 셈이다.
무대가 끝이 난 후, 예정된 기자 간담회, 포토타임, 팬 사인회를 진행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와 멤버들은 큰 숙제를 하나 덜어놓았다는 해방감에 몸이 축 늘어졌다.
“아, 뭔가 힘든 하루였다.”
“그러게.”
그 말에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운전을 하고 있던 차조영 실장이 백미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대성공 한 거지. 사실 오늘 같은 날은 뭘 해도 쉽지 않았을 테니까. 어지간한 기성 가수들도 대부분 행사는 다 취소하는 분위기였어. 어쩔 수 없는 행사들만 참가하고. 샤인보면 알잖아.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웃는 짤 돌아다니면서 욕먹고 있
는 거.”
하긴. 그것도 그러네.
걔네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싶겠지만, 결국 연예인이란 보여 지는 직업이고, 또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은 보이는 것만을 보고 판단하니 어쩔 수가 없다.
괜히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소리가 나온 게 아니지. 얼마 전에 대법원 판례도 나왔다. 연예인은 공인이라고.
“간혹 악플 같은 거 달려도 신경 쓰지 말고 좋은 것만 봐. 아참, 가는 길에 식당이라도 들려서 뭐라도 먹고 갈래? 다들 배 안고파?”
“으, 그냥 숙소로 가서 쉬고 싶어요.”
“저도요. 그냥 숙소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먹을래요.”
애들이 축 늘어진 채 흐늘거린다. 하루 종일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맥이 탁 풀려있다.
그때 보조석에 타고 있던 박호영 팀장이 뭔가를 들여다보더니, 뒤에 시선을 주며 말한다.
“어··· 얘들아?”
가늘어진 눈빛이 웃고 있다. 뺨이 씰룩거리고 있는데, 뭔가 의뭉스러운 표정이다.
도대체 뭔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혹시 음원 차트 확인해본 사람?”
“아, 맞다! 음원 차트!”
장요한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
반응이 어째 다 비슷한걸 보니, 깜빡한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공연 시작 전 집중하는데 방해된다고 핸드폰을 다 걷어갔으니 뭘 확인할 방법이 있어야 말이지. 보관해놓고 있던 핸드폰을 멤버들에게 돌려주며, 박호영 팀장이 묻는다.
“혹시 성적 안 좋으면 괜히 마음 싱숭생숭 해서 무대에 집중 안 될까봐 일부러 말 안했는데, 6시에 음원 출시된 거 알고 있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잠깐 순위 확인 하지 말고 말해봐. 몇 위쯤 했으면 좋겠어?”
“어······.”
멈칫한 멤버들이 다들 말이 없다. 속으로는 1위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다들 그걸 입 밖에 꺼낼 엄두가 나질 않는 거지.
음원 1위가 생각처럼 쉬운 건 아니니까.
대게 우리와 같은 신인 그룹 같은 경우는 50-70위권에서 시작한다 해도 성공적이라고들 말한다. 그것도 1, 2시간 차트 순위에 들었다가 광탈 당하기가 일쑤고.
그것도 성적이 잘나오는 편에 속하는 거고, 조금 더 부정적으로 말하면 차트순위 100위 안에도 못 들어본 그룹이 발에 차일정도로 넘쳐흐른다.
그래도 우리는 방송을 통해서 인지도도 어느 정도 쌓았고, 실검에도 올라봤으니······.
“어, 한 30위쯤? 아니, 너무 욕심인가? 40위요. 40위! 그 정도만 되도 좋겠어요!”
장요한의 목소리에 다들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멤버들의 반응을 본 박호영 팀장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조금 전 보였던 그 의뭉스러운 웃음이다.
“도대체 몇 윈 데 그래요?”
“직접 확인해 봐봐.”
기대감을 주는 박호영 팀장의 말에 장요한이 가장 먼저 핸드폰을 쥐고는 인터넷창을 연다.
원래 그동안은 보통은 자정을 기점으로 음원을 발매하는 게 통상적이었다.
낮보다 일반 이용자가 급격히 떨어지는 심야 시간대에서 팬덤의 호응으로 1위를 휩쓸거나 10위권에 줄 세우기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에.
일부 회사에서는 이점을 악용해서 브로커들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이용한 무한 스트리밍, 불법 음원 사재기 등으로 순위를 높이는 방법들을 공공연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허나 2017년 차트 개편된 이후로, 음원 시장에서 자정 출시는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통상 낮 12시나 오후 6시에 음원을 발표한다.
대중성이 강한 가수들은 낮 12시에, 팬덤이 있는 가수들은 오후 6시. 오후 6시는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들이 음원을 발표한다. 하굣길 팬덤을 공략해 차트 진입 시 초기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다.
“어, 어···?”
음원순위를 확인한 장요한이 기괴한 비명소리를 지른다.
“왜, 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은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장요한 핸드폰 앞으로 모여든다.
“우리 곡 7위인데? 계속 조금씩 올라가고 있어. 어, 6위 됐다.”
우리 앞 계단 세 번째에 샤인의 그룹명이 보인다.
3위 - 샤인
“우리 기사 엄청 많아! 실검에도 계속 떠 있고!”
“실검은 아까부터 떠 있었거든?”
“아까랑은 순위가 틀리잖아! 순위가!”
차트 확인을 한 후에 멤버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 검색란 옆에 떡하니, 플레어란 단어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아래로 故박남길, 플레어 최강민도 보인다.
플레어를 클릭하고 들어가자 플레어의 쇼케이스에 대한 이야기가 둑 터진 것처럼 화면에 온통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공세라고 생각했는지 홍보팀에서도 어마어마한 물량을 토해내고 있었다.
sns와 커뮤니티사이트에도 속속 우리의 관한 글들이 보인다.
맨 처음 작성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중복된 글들이 커뮤니티 사이트 곳곳에 보였는데, 그건 샤인과 우리를 비교해놓은 글이다.
샤인과 라이벌 구도로 방송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우리 팀은 샤인과 비교대상이 되어 왔다. 올라온 글을 요약하자면 샤인은 실력 없고, 얼굴마담 김은우빨로 명맥을 유지하는 무 개념 아이돌 그룹.
우리는 정반대로 실력 탄탄하고, 개념 있고 개개인의 개성이 넘치는 개념 아이돌 그룹으로 비유됐다.
누가 올린 건지는 몰라도 소름끼칠 정도의 분석력이다. 너무 예뻐서 직접 만나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네.
음악 차트란에 들어가 앨범을 클릭했다.
별점도 꽤 높고, 후기도 칭찬일색이다.
-타이틀곡 완전 쩜. 지금 계속 무한 스트리밍 중.
-전곡이 다 퀄리티가 좋네요. 앨범커버도 예쁘게 잘 빠졌는데, 전 바로 주문했어요.
-이걸 최강민이 만들었다고요? 실화임?
-케리챌 못 봤어요? 최강민이 작곡 천재래요.
-확실한 건 노래는 다 좋네요. 현재 순위 8위인데, 더 올라갈 것 같은데요?
-잘하면 샤인 위로도 올라가겠네요. 어, 9시 10분. 현재 지금 7위임.
-샤인은 이미 상대가 아님. 각 떴음. 이건 1위각임.
“형, 우리 곡 1위 할지도 모르겠다는데요?”
같은 덧 글을 봤나보다.
장요한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옆에 앉아 있던 박진우가 가만히 장요한의 팔뚝을 꼬집는다. 소리를 지른 장요한이 눈을 매섭게 뜨고는 팔뚝을 문지른다.
“야야! 미친놈아, 갑자기 나는 왜 꼬집는 건데!?”
“혹시 꿈인가 싶어서. 아프다는 걸 보니 꿈은 아닌가보네.”
“근데 왜 나를 꼬집어! 네 살을 꼬집으면 돼지.”
그걸 몰라서 묻냐? 자기 살을 꼬집으면 아프잖아.
김태현도 핸드폰을 돌려받은 다음부터는 머리를 박고,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몰라도 간간히 입 꼬리가 들썩들썩 올라가고 있다. 노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계속 반달눈을 한 채 실실거리고 있다.
차트 순위를 확인한 순간부터 멤버들의 두 눈에는 기묘한 열기가 하나둘씩 서린다. 그리고 내 눈에도.
가장 맨 첫 페이지에 보이는 플레어의 아임 더 베스트.
솔직히 지금 이 순간도 믿겨 지지 않는다.
내가 만든 자작곡.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그룹 음원이 6위······.
“어? 또 올라갔어. 5위야 5위!”
아니, 5위라니.
만감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D&M에서부터 그토록 무시당하고, 괄시받던 연습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만일 그때 영삼이가 내 몸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이 순간 뭘 하고 있을까?
어쩌면 연습생 생활을 때려 치고 부모님 집에 내려가서 알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알바자리도 구하지 못해서 어쩌면 방구석에서 빈둥거리고 있을지도.
*
우리는 숙소에 들어온 순간까지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질 못했다.
후속 기사들이 계속해서 인터넷에 올라왔다. 모두 내용은 비슷비슷했지만, 헤드라인문구를 보자 클릭을 안 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놨다.
덕분에 실검 순위도 상위권에 줄곧 우리와 관계된 단어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오늘 올라온 팬들의 쇼 케이스 반응과 음원 차트 순위.
그리고 커뮤니티 사이트의 팬들의 반응.
팬 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가동되고 있는 채팅방 내용까지.
모니터링 할게 잔뜩이다.
동영상 사이트에는 오늘 우리가 보여준 무대 동영상이 이미 2만 건의 조회클릭수를 기록 중이다.
단 한 줄의 덧글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핸드폰, 태블릿, 노트북을 저마다 들고,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장요한은 몇 번씩이나 이게 꿈인가를 물어봤다.
꿈이라고 대답하면 영원히 안 깰 기세다.
하긴, 나도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는 몇 번 상상해봤지만,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결과가 좋았다. 상황이 이런데 좋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나도 아까 전부터 형과 부모님한테 전화가 오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돈의 팔촌, 심지어 이제는 이름도 기
억 잘 안 나는 동창생들한테까지 축하 메시지가 왔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나 몰라.
상황은 멤버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숙소로 들어온 순간부터 전부 다 음 소거 모드로 바꿔 놨다.
불필요하다 싶은 전화도 받지 않고 있고.
“자고 일어났는데, 우리 곡이 1위 돼 있으면 진짜 좋겠다.”
아까 전부터 순위의 변동 없이 우리 곡은 5위에 머물러 있다.
위로는 실력파 듀엣가수와 싱어송 라이터의 노래, 그리고 샤인, 이번에 3집으로 컴백한 아이돌 그룹의 음원이 차지하고 있다.
“김칫국 그만 마셔. 이 정도도 진짜 많이 온 거니까.”
“쳇, 그걸 누가 몰라? 그냥 해보는 소리지.”
박진우의 일침에 장요한이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나를 또 쳐다보며 말한다.
“형, 그래도 이제 우리 앨범도 나왔고, 차트진입도 성공적으로 했으니까 방송섭외도 들어오고 그러겠죠? 예능 같은데 나가서 앨범홍보도 하고, 얼굴도 알리고 그런다면 차트순위도 더 올라가고 그런다던데.”
“그건 컴백한 대형그룹들 얘기겠지. 우리 같은 초짜들이 무슨.”
“나도 기회만 오면 잘할 수 있다고!”
“뭘 로? 머리텅텅 컨셉으로? 하긴, 그쪽이라면 또 모르겠네. 싱크로율은 죽이겠다. 백 프로 나오는 거 아니야?”
“야! 나 보기와는 달리 똑똑하거든?”
장요한이 도끼눈을 치켜뜬다.
“그래? 그러면 주기율표 외워봐.”
비아냥거리는 박진우의 일갈에 장요한이 한참동안을 머뭇거리다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야, 나 문과였거든!?”
“그냥 멍청하면 멍청하다고 그래!”
그러면서 둘이 또 왈왈 거리고 붙는다.
그와 같은 모습을 멤버들이 평온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제는 일상 같은 모습이다. 노아가 아까부터 뭔가를 계속 꼼지락거리는가 싶어서 봤더니, 보던 것들을 일일이 다 캡처를 하고 있다. 액자라도 만들 속셈인가.
그렇게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멤버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결국 하나 둘 소파, 혹은 러그위로 쓰러진다.
그리고 다음 날.
뭔가 시커멓고 둥근 것이 눈앞에 떠다닌다는 느낌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아 시발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뭔가 싶어 봤더니 장요한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주 넋이 나가있다. 설마 얘 이러고 밤샌 거 아니야? 창문 밖을 보니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뭐, 뭐야!? 왜 이러고 있어?”
“형.”
장요한이 대답대신 보고 있던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 새로운 도전 (1)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