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60화 (60/124)

< 풍요로운 4월의 어느 날 (3) >

플레어님 대기실.

문 앞에 붙어 있는 커다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무려, 단독 대기실이다. 그것도 숙소 거실보다도 더 큰.

음방은 출연자들이 많아서 두 팀, 세 팀이 한 대기실에 쓰는 경우도 허다하고, 인지도 없는 팀은 넓은 회의실 같은 데를 대기실 겸용으로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미용실에나 놓여있을 법한 개인 소파와 화장대는 물론,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까지 비치되어 있다.

“우와, 쿠키랑 사탕도 있어요! 기다리는 동안 간식으로 먹으라는 건가?”

양손에 옷을 한 열 벌쯤 들고 들어오던 코디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째 애들보다 더 좋아하는 표정이다. 옷을 행거에 걸어 넣고는 쿠키 포장지를 벗겨내고는, 그것을 냉큼 집어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음, 공짜라서 그런가? 왠지 더 맛있어요!”

“너무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된다. 그리고 그거 공짜 아니야. 뇌물이야.”

어느새 차조영 실장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말한다.

“네? 뇌물이요?”

코디의 눈이 커진다. 표정이 꼭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먹은 백설 공주 같다.

“그렇다고 너무 쫄 건 없고. 들어오면서 김피디 만났는데, 그거 조연출 시켜서 가져다 놓은 거라고 하더라. VCR영상 찍으러 올 건데 잘 좀 부탁한다면서.”

“아, 난 또. 그건 당연히 찍어야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웬 뇌물?”

“가끔 1위 후보들 중에 신경 예민해져 있어가지고, 거절하기도 한다고 하더라.”

차조영 실장의 말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장요한이 손을 내젓는다.

“에이, 우리가 뭐 그럴 급이나 되나요? 그냥 찍자면 찍는 거지.”

오히려 그 말을 들은 코디가 대뜸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머, 왜요!? 지금 플레어라고 하면 다들 난린데. 저 그래서 어디 가서 플레어 코디라는 이야기도 못하고 돌아다녀요.”

“왜요?”

“사인, 사진 청탁이 장난 아니게 들어올 것 같아서. 아마 개인 연락처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을 걸요? 그런 일 많아지면 피곤해서 같이 일 못해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에이, 뭘 그렇게 씩이나.

멤버들의 어색한 반응을 보고 오히려 본인이 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머, 진짜 모르시나보네. 다들 길거리 안 돌아다녀 봤어요? 지금 장난 아닌데?”

당연히 안돌아봤다. 가는 곳이라고는 숙소, 차안, 행사장, 녹화, 스튜디오. 일반인들을 마주칠 겨를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인기 실감도 못할 수밖에.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고개를 흔드는 멤버들을 데리고 차조영 실장이 대기실을 돌기 시작한다.

음방 1위 후보면 뭐해.

아직은 데뷔한지 1년차도 안된 새파란 신인인데.

돌아야할 대기실에 차고 넘친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데뷔한 플레어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다시 인사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이제는 이 말이 입이 붙었다. 자다가 툭 건드리면 잠꼬대처럼 흘러나올 정도다.

팬덤이 거의 없다시피 한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솔로, 혹은 듀엣 가수들은 우리가 인사하러 들어갈 때마다 축하의 멘트를 던져준다.

“1위 후보 축하해요.”

혹은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이번 노래 진짜 좋던데요?”

칭찬 섞인 덕담도 해준다.

하지만 모두가 달갑게 우리를 반겨주는 건 아니다.

팬덤층이 10대, 20대위주인 그룹 가수들은 인사를 받아주는 표정들이 달갑지만은 않다. 환대해주는 대기실과 아닌 대기실의 온도차가 확 느껴진다. 그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시기와 질투, 경계, 부러움 등의 뒤섞인 감정들이 엿보인다. 그럴 수밖에.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서 벌써 자신들을 넘어서고 있으니 불안하고, 초조하고 왜 그런 마음이 안 들겠는가?

이 연예계 바닥은 인기가 곧 명함인 그런 곳인데.

대기실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끝내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기자들이 기사에 쓸 만한 것이 있나 하는 심정으로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대기실로 찾아온다.

대부분 샤인 사건에 대한 질문들이 주를 이룬다.

샤인과 따로 연락을 해봤냐. 이택민이 사과는 해왔냐. 회사에서는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하려는지. 기타등등. 어떻게든 엮어서 기사 트래픽을 높여보려고 수작질 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지금 애들이 긴장을 많이 해서요. 인터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조영 실장이 철벽을 치자 몇몇 기자들이 불만을 등을 돌리며 지들끼리 중얼거리듯 불만을 토해낸다.

대부분 엄살 섞인 징징거리는 말들이라 차조영 실장이 알아서 커트치며, 기자들을 대기실에서 떼어놓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인터컴을 목에 건 VJ가 노크와 함께 6mm카메라를 들고 들어온다.

“화면에 나갈 VCR좀 찍을게요.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네.”

“이거 예전에 나간 VCR보신 적 있죠? 원래 출연 팀들은 윗순위에 있는 팀을 소개해주는 건데, 1위 후보 팀은 후보팀들끼리 소개를 해주면 돼요. 6초짜리 영상으로 나가는 거니까 부담없이 그냥 아이디어 짜서 재미있게 해주시면 돼요. 상대 후보가 누군지

는 알고 계시죠?”

우리와 같이 후보에 오른 팀··· 아니, 가수는 다름 아닌 신소라다. 겨울 왕국에 엘O가 있다면 OST왕국에는 신소라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는 여자 발라드 가수. 여지껏 히트시킨 OST만 열곡이 넘는 OST계의 여왕.

음, 그나저나 소개말을 어떻게 하면 되지?

고민 끝에 우리는 그냥 멘트와 함께 노래가사 한 소절을 따라 부르고, 노아의 애교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노아는 왜 자신이 그걸 해야 하냐고 반박했지만, 그룹 내에서는 나이가 깡패다. 형들이 까라면 까야지.

“감성을 부릅니다. 발라드계의 여왕······!”

김태현의 멘트가 시작되고.

“좋은 사람 만나.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전해 들었어.”

애잔하게 흐르는 노래가사와 함께.

“신소라씨의 무대 많이 기대해주세요. 뿌잉··· 뿌잉.”

주먹을 움켜쥔채 뺨을 문지르는 노아의 애교까지.

6초짜리 영상이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노아는 부끄러워서 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죽으려고 든다. VJ는 흡족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보낸다.

문득 궁금증이 인다.

신소라씨는 과연 우리 소개를 어떻게 하려나?

나중에 꼭 녹화 본 모니터링 해봐야지.

*

“꺄아아아악!!!!”

가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함성이 들려온다. 빽빽이 빈틈없이 들어찬 관객석을 바라보니 그 열기와 흥분에 가슴이 두근거려 온다. 노아는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우물거리고 있다.

우황청심환인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빛으로 ‘형도, 줄까요?’ 라고 묻는 거 같아서 나는 됐다는 표시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캄캄한 관객석. 보이는 것이라고는 형형색색 한 LED불빛이 전부다.

그걸 보고 있자니 팬덤층의 경계가 확실해 보인다.

저 파란색은 이번에 4집 앨범으로 돌아온 브이투 팬덤, 그리고 그 아래 노란색 응원봉은 바나나의 노란색을 상징하는 바나나걸즈의 응원봉일 거다.

저걸 보니 좀 부럽기는 하다.

팬덤 규모가 좀 큰 곳들은 저마다의 응원법도 있고, 팬덤을 상징하는 응원봉도 있는데, 우리는 아직 응원 봉이 없다. 음방도 처음이고, 무대 위에 많이 선 것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직 못 열어봤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무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관객석 1층에서 플랫카드를 들고 있는 우리 팬들이 보인다.

전국각지에서 오롯이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돈,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와준 고마운 팬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애틋함도 든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팬들이 자기들이 응원하고자 하는 가수들을 목 놓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브이투 파이팅!!!”

“바나나 걸즈 컴백 축하해요!!!”

“오늘 1위는 신소라거다!”

역시나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리는 브이투와 바나나 걸즈다. 두 그룹의 이름이 경쟁하듯 들려온다. 아마도 오늘 출연하는 그룹 팀들 중 팬덤이 가장 큰 두 팀이다 보니 당연한 거다.

무대 뒤편에서 우리 팀을 호명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관객석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장요한이 갑자기 우리를 보더니 웃는 표정을 짓는다.

“어, 지금 플레어라고 하는 거 들었어요?”

“진짜?”

우리 팬덤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형 그룹 팬덤에 비하며 그야말로 조족지혈. 새발의 피다.

“잘못 들은 거 아니고?”

박진우가 놀리듯 말한다.

“아니야. 진짜 라니까? 어? 또 들린다. 들었지, 들었지? 지금 분명히 플레어라고······”

장요한의 그 말은 진짜였다. 곧이어 아주 선명하게 여러 명, 아니 수십 명이 일제히 플레어라고 부르는 게 반복해서 들려온다.

어째 갈수록 소리가 커져간다.

여지껏 들려온 목소리를 모두 뒤덮을 만큼.

“플레어를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

MC석에서 던지는 짧은 멘트와 함께 우리가 무대에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붉은색 물결이 일제히 팟 하고 켜진다.

“어, 어······ 저, 저기!”

놀란 장요한이 무대 위 생방송이라는 것도 잊은 채 전방을 향해 삿대질을 마구 해댔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일제히 녀석이 가리킨 곳으로 향한다.

그걸 본 우리는 누가 할 것 없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은색 물결이 파도치고 있다.

아기 주먹만 한 붉은색 응원봉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뭔가 글씨를 만들어내고 있다.

플. 레. 어. 그리고 하트 모양.

우리는 분명히 응원 봉 같은 거 없었는데. 저게 어떻게 된 거지?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팬들도 아까 주차장에서 본 규모의 몇 배는 됨직했다.

“형형. 저거 뭐에요! 저거 우리, 우리 팬들······ 으아아아!”

녀석의 목소리에 서서히 물기가 배어나온다.

그걸 듣고 있던 박진우가 옆에서 쏘아붙인다.

“멍청아! 방송사고 낼일 있어? 음악 들어온다. 빨리 자세 잡아!”

박진우가 쏘아붙이자 녀석이 허둥지둥 바닥에 무릎을 대고, 노래 들어갈 포즈를 취한다.

1절이 끝나고 간주로 들어가는 부분, 붉은 불빛이 좌우로 흔들거리며, 사랑해요 플레어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멤버들끼리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한다.

모두들 말은 안했지만 얼굴에 뭔가가 가득 차올라 있다. 그리고 무대에 선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이 흘러넘친다. 특히나 장요한은 지금 기관총 하나만 쥐어준다면, 혼자서 전쟁터에 나가 적장수까지 쳐 죽일 기세다. 안무 중간 중간 평소에 안하던 윙크를 해

대고, 손 하트를 만들고 난리도 아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 팬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환호해준다.

그야말로 이 한곡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표정으로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들어가자 차조영 실장이 금방 웃는 얼굴로 따라 들어온다.

“방금, 그거 뭐였어요?”

“팬들이 너희를 위해서 깜짝 이벤트 해 준다고 준비한 거란다.”

내 질문에 차조영 실장이 대답한다.

“으아, 으아아··· 완전 감동 받았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장요한이 눈물을 글썽거린다.

“응원봉. 저희 회사에서 만든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아도 슬슬 제작논의가 있어서 의견 좀 받아보려고, 팬매랑 통화를 했는데, 팬들 중에서 소품 관련 쪽에서 일하는 팬이 있더라고. 이미 써먹으려고 팬들끼리 만들어봤다고 하는데, 샘플이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아서 몇 가지만 보안하고, 그

걸로 정식 제작하려고 의뢰해놨어. 오늘 갖고 온건 만들어놓은 샘플들이고."

“진짜 고마운 팬들이네요.”

내 말에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지. 그러니까 팬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하잖아. 너희들도 어딜 가도 팬들 사랑은 절대 잊으면 안 돼.”

우리는 잠시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1위 발표 직전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또 다른 1위 후보인 신소라와 출연했던 가수들도 하나, 둘씩 무대 위로 올라온다.

“아, 오늘 진짜 1위하고 싶다.”

노아가 작게 중얼거린다. 좀처럼 욕심 없는 노아도 이런 심정일건데, 다른 멤버들은 오죽할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곳까지 찾아와 깜짝 이벤트를 해준 팬들을 위해서라도, 꼭 1등을 해서 그 기쁨을 가져가게 해주고 싶다.

카메라가 무대에 서 있는 가수, 그룹들의 표정을 일일이 클로징하며 잡는다.

무대 옆쪽에 자리잡은 대형 화면에 가수들의 모습이 휙휙 지나치더니, 신소라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생방송 투데이 뮤직. 이제 1위 결과만을 남겨놓고 있는데요, 소감을 안 들어볼 수가 없죠. 먼저 신소라씨. 오늘 1위는 누가 할 것 같나요?”

“음, 플레어가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팬이거든요.”

그녀가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마이크가 내게 넘어왔다.

“그러면 플레어는요?”

솔직히?

당연히 우리가 했으면 좋겠지.

헌데, 그렇게 대답했다가는 당돌하면서 싸가지 없는 후배로 낙인찍힐 거다. 그럴 순 없지.

“저흰 여기까지 온 것도 진짜 꿈만 같아요. 신소라 선배님이 1위 했으면 좋겠어요.”

앞말은 진짜고, 뒷말은 입에 발린 말이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순위 발표하기 직전 인터뷰에서 저런 뻔한 멘트를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역시 사회생활은 힘들다.

“자, 그러면 1위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갈지 화면 보여주세요!”

MC의 손짓에 모두의 시선이 무대 뒤에 있는 화면으로 홱, 돌아갔다.

< 풍요로운 4월의 어느 날 (3)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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