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67화 (67/124)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6) >

이틀 후, 꽃미남 학교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40초짜리 짧은 영상이었지만,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금방 조회 수 2만을 돌파했다. 대부분이 재미있겠다. 기대 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실시간검색어에도 꽃미남 학교가 오르면서 덩달아 출연자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김준호, 장선화가 가장 먼저 실검에 올라갔다. 그리고 내 이름과 3대 천왕인 최하늘, 이우빈 역시.

여지없이 홍보기사 덧글에는 내 연기에 대한 평가들이 달린다.

-최강민 연기 잘하네요. 티저 본사람?

-에이, 잘 나온 것만 짜깁기 해 논 거죠. 뚜껑은 첫 방 시작해봐야 암.

-무슨 불신병 걸리셨나. 저 파주 촬영장 갔다 온 사람인데요. 최강민 연기 잘하는 거 맞아요. 제가 봤음.

-님이 심사위원이에요? 님이 뭔데 잘 한다 못한다를 판단? 님 혹시 댓글 알바세요?

이쯤 되면 그냥 포기다. 차조영 실장도 프로불편러들이라며 그냥 신경을 끄라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여신 김현아도 안티 팬은 있다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팬이 될 수는 없으니, 일부 버려야할 팬들은 과감히 버려야할 줄도 아는 게 연예인으로서 가진 숙명이라고도 말해준다.

그래도 대부분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에서 팽팽하게 갈리던 의견이 잘한다쪽으로 많이 기운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이다.

그게 어디냐. 하는 위안을 삼고 있는데 이동하고 있는 차가 서서히 정지를 하더니, 이내 큰 건물 앞에서 멈춰 선다. 레슨 학원 앞이다.

“주차하고 올라갈 테니까 먼저 올라가 있을래?”

“네.”

나는 조그마한 가방을 갖고,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몇 번 와본 곳이라 익숙한 걸음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가는데, 그 앞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했다. 다름 아닌 나를 R&N엔터테인먼트로 인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형식

실장.

바로 서은채의 매니저.

반가운 마음에 내가 성큼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어?”

주춤한 최형식 실장이 나를 알아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같은 회사에서 지내면서 서로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었네. 그동안 잘 지냈고?”

“실장님도 잘 지내셨죠?”

“나야 뭐, 항상 똑같지. 차 실장 통해서 종종 네 이야기는 듣고 있어. 드라마 첫 촬영 시작했다면서?”

“네, 며칠 전에 찍었어요. 그런데 최 실장님이 여기는 왜, 아······.”

나는 그제야 최형식 실장 뒤에 서 있는 서은채를 발견했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훨씬 작은 서은채가 완전히 가려져있던 터라 이제야 발견한 거다. 내가 서은채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최강민이라고 합니다.”

나는 최대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서은채라면 R&N을 대표하는 간판스타 중 한명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회사 선배, 가요계 선배, 그리고 연기자 선배이기도 하다.

붙일 수식어가 참 많기도 하다.

하여튼 오늘은 딱히 스케줄이 없는지 가벼운 화장에 스키니 진과 가벼운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스타라기보다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동생 느낌이다. 아, 나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누나인가?

내가 고개를 숙이자 서은채도 같이 고개를 숙여온다.

“안녕하세요.”

최형식 실장이 서은채에게 부가 설명을 해준다.

“너도 알지? 플레어라고, 거기 메인보컬로 있는 최강민. 너도 종종 캐리챌 보면서 언제 한번 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제가요?”

서은채가 눈을 깜빡거리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너 CD도 샀잖아. 같은 회사동료로서 의리상 사줘야 한다면서. 차안에서 노래도 매일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은채가 최형식 실장을 향해 성큼 한발을 더 내딛는다.

“······어, 오빠. 지금 심각하게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요?”

조그마한 얼굴위에 붙어 있는 눈썹이 잔뜩 휘어지고, 꾹 다물고 있는 입술 끝이 움찔거린다. 미간사이로 내뿜는 엄청난 기운은 무림에서나 볼 수 있는 절대고수의 그것과 진배가 없다. 눈동자가 이글이글하다.

좌우로 긴박한 눈동자를 돌린 최형식 실장이 ‘아.’ 소리와 함께 천연덕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착각했네. 아무튼 이렇게 보내 되게 반가워. 연기 레슨 받으러 온 거야? 차실장은?”

그리고는 노련한 매니저답게 금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네, 드라마 캐스팅된 다음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정도 오고 있어요. 차 실장님은 주차하고 올라오신대요.”

“아무튼 반가워. 같이 올라가자고. 은채야 올라가자.”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기에, 나와 최형식 실장, 그리고 서은채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3층을 누르고, 올라가는 도중 최형식 실장이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너 캐스팅하고, 나 사장님한테 보너스 엄청 받은 거 알아?”

“그래요?”

“어, 처음에는 백만 원씩 주시더니, 얼마 전에 너 드라마 캐스팅 확정되고는, 삼백만원 더 주시더라. 아주 주변에서 다들 부럽다고 난리야. 나 여기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주면서.”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진짜 뭐라도 된 것 같잖아요. 제가 여기 온 것도 다 실장님 덕분인데. 제가 감사드려야죠.”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언제고 말만해. 내가 한우 진짜 원 없이 먹게끔 해줄 테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옆을 힐끔 쳐다보니 서은채가 자신의 대본을 펼친 채, 그것을 눈으로 읽고 있다. 간헐적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며.

대본암기 중인가? 엄청 열심히 하네.

저렇게 열심히 하니까 지금 저 정도 위치에 오른 거겠지? 저런 자세는 마땅히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만 보니 대본이 거꾸로 들려 있다.

뭐지? 대본을 거꾸로 읽는 취미가 있나?

“아참, 드라마는 어때? 할만 해?”

최형식 실장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렵기는 한데, 재미있어요. 같이 출연하는 사람들도 다 좋으신 것 같고.”

“하긴, 나도 네가 들어간다고 해서 라인업 유심히 봤는데, 작가, 감독이 캐스팅을 잘한 것 같더라고. 연기도 다들 훌륭하고, 성격들도 좋은 사람들이야.”

하긴, 최형식 실장이야 서은채를 따라다니면서 이런저런 배우들을 다 만나봤으니 나보다는 잘 알겠지.

사실 나는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이 부분을 가장 염려했다.

화면에서 보던 연예인들의 대외적인 이미지라는 것은 만들어진 형태가 많아서 실제로는 화면에서 비추어지던 성격과는 정반대인 성격일까 싶어서.

연예인 생활을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도 그런 연예인은 수도 없이 봐왔다. 특히나 샤인 멤버 애들은 그 정점을 찍었지.

걔들은 지금은 해체를 하네 마네 그러고 있다.

아주 욕이란 욕은 있는 대로 사발로 퍼먹고 있지. 멤버들도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일부러 샤인 기사를 찾아보고, 댓글을 읽고 있다.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댓글들을 보면, 그날 받은 스트레스가 풀린다나 모라나.

“연기란 게 처음이 어렵다고 느껴지지 하다보면 또 그보다 재미있는 게 없을 거야. 아니, 그렇다고 노래하는 게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고. 노래든 연기든 서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법이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런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서은채의 귀가 쫑긋거린다.

간헐적으로 힐끔거리는 곁눈질에 최강민의 얼굴에 닿는다.

‘음, 인성은 나쁘지 않은 것 같네. 얼굴 좀 잘생겼다고 잘난 체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데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더 잘생긴 것 같네. 뭔 남자 피부가 저리 좋지?’

슬쩍 엘리베이터뒤쪽에 붙어 있는 거울을 쳐다본 서은채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얼굴이 왠지 오늘따라 수척하고 병들어 보인다. 요 며칠 잠을 못 잤더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화장이라도 좀 하고 올걸 그랬나?’

띵.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언제 한번 사적인 자리에서 보자고.”

“불러만 주세요. 바로 튀어나갈 테니까.”

흐뭇한 표정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최강민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차형석 실장이 서은채를 보며 말했다.

“저 친구 사람 참 괜찮은 거 같지?”

“칫, 그거 잠깐 보고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요? 그런 건 좀 더 겪어봐야지 아는 거지.”

그러더니 복도를 따라 걸어가며 나지막하게 묻는다.

“그런데 오빠. 최강민씨 나이가 몇 살이라고 그랬죠?”

“음, 스물넷 됐으니까. 너보다 한 살 어리지 아마?”

머릿속에서 최강민의 나이를 떠올려본 최형식 실장은 대답을 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옆에서 잘 따라오고 있던 서은채가 걸음을 멈춘 채 도끼눈을 하고 있다.

“왜, 왜!? 내가 뭐 잘못했어?”

“빠른 생일이라 나도 스물넷이거든요!? 어쩜 오빠는 내 매니저라면서 여지껏 내 나이도 몰라요?”

서은채가 입술이 튀어나온 채 툴툴거린다.

“아··· 그래그래. 동갑이네 동갑.”

최형식 실장이 얼른 말을 정정했다.

“둘이 친구하면 되겠네.”

그제야 서은채의 사납던 표정이 눈녹듯 스르르 풀린다.

서은채 매니저 생활만 5년째다. 이제는 서은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도대체 저 조그마한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얼른 들어가자. 선생님 기다리시겠다.”

최형식 실장이 손짓을 하자 입술을 삐죽거리던, 서은채가 졸졸 뒤를 따른다.

*

연기 레슨을 받고 난 뒤, 쉬는 시간.

차조영 실장이 걸려온 전화를 받는 다고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다름 아닌 개인 스케줄이 잡힌 거다.

“예능이요? 그것도 저 혼자요?”

“원래 드라마 첫방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이 홍보차원에서 예능 많이들 나가고 그래. 그래도 넌 몇 번 나가봤으니까 잘할 거야.”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팀 단위도 아닌 단독 예능 스케줄이라니.

“제가 막 예능에 적합한 캐릭터는 아니지 않아요? 저 웃기는 재주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누가 나가서 웃기래? 그냥 적당히 드라마이야기 좀 하고, 극중 캐릭터 설명하고, 노래시키면 노래 부르고, 춤 시키면 춤도 추고, 그냥 MC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막 몸 굴리고, 그런 예능이 아니라 적당히 토크도 섞여있으니까 할 만할 거야. 오늘밤 뭐

해. 친구야! 라는 프로그램 본적 있지? KBN에서 하는.”

“아, 본적 있어요.”

‘오늘밤 뭐해. 친구야’는 남자 MC김경규와 여자 MC임현경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심야에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늦은 저녁에 친구를 불러내 엉뚱한 미션을 시키고, 그 미션을 수행한 친구가 세트장까지 오면 성공하는 뭐 그런 맥락의 프로그램.

최근에 본 기억으로는 어느 인기 여배우가 나와서 지금 당장 캠핑 떠나자면서 친구에게 가서 부침개 해 먹을 재료를 사오라고 했지. 그것도 한 겨울에.

그 말을 전해들은 상대가 전화로 필터링 없이 미친년, 술 취했냐? 라고 해서 아주 스튜디오가 초토화 됐다. 이게 남자였으면 재미없었을 텐데, 둘 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배우들이라 아주 네티즌 사이에서는 빵 터졌다.

거기는 제법 유명하고 알려진 사람들만 게스트로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내가 벌써 그런 데 게스트로 나갈 급이 된 건가?

기분이 좋기는 하다. 그만큼 내 인지도가 올라간 게 증명이 된 거니까.

헌데, 여기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런데 저 부를 친구가 마땅히 없는데요? 일반인들 부르면 재미없잖아요. 연예인을 불러야 재미가 있지.”

“그건 걱정하지 마. 정 부를 사람이 없으면 멤버들이라도 부르면 되니까.”

차조영 실장이 명쾌한 대답으로 내 걱정을 덜어준다. 그리고 말을 덧붙여준다.

“숙소 들어가면 재방송 보면서 모니터링 좀 해. 나도 그날 같이 따라갈 거지만, 김경규씨 진행스타일이 예능 초보라고 막 챙겨주고 그런 진 않거든.”

“저 말고 게스트 누구누구 나가요?”

“음, 일단 배우 김강현은 확정인거 같고, 나머지 한 명은 개그맨으로 섭외할 거 같은데? 지금 알아보고 있나봐. 다음 주에 바로 녹화 들어간다니까 지금부터 슬슬 준비해보자고.”

남들은 못 잡아줘서 안달인 예능 스케줄이건만, 왠지 걱정이 앞선다.

그나저나 촬영가서 누구를 불러야 하지?

진짜 멤버들이라도 불러야 하나?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6)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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