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9화 (79/124)

< 변화의 소용돌이 (4) >

10평 정도 되는 공간 속의 인터뷰실.

카페처럼 보이게끔 꾸며놓은 인위적인 테이블 의자에 나와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기자가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몇 걸음 떨어진 곳 구석에서 차조영 실장이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꽃미남 학교가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 속에 연신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렇게 된 요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건 바로 여기 들어오기 전에 들은 내용이 있어서다.

이곳 투데이뉴스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리드 뽑기로 유명한 언론사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떡밥식의 낚시용 기사를 많이 쓰긴 하지만, 지금은 한마디 한마디가 좀 중요한 때라··· 아니, 안 중요할 때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KBN쪽 요청이 아니었다면 최대한 걸렀을 거라고, 차조영 실장이 이야기해줬다.

그래서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최대한 신중하게 대답하고 있다.

음, 어디 보자.

“일단 작품이 훌륭하잖아요. 감독님이 그것을 잘 표현해내시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기도 하고. 또, 작품에 나오시는 배우 분들 연기도 훌륭하고. 현장에 계신 스텝 분들도 매일같이 고생하시고···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합니다.”

-아, 모두의 노력이요?

뒤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한고비는 넘겼다 싶었는데, 불쑥 다른 질문이 파고든다.

-세간에서는 이게 최강민 신드롬 효과라고 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이번 작품에서 연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계신데, 거기에 대해서는요?

나도 인터넷에 떠도는 그런 소리를 듣긴 했다. 처음에는 별 개소리를 다 듣겠나 싶었는데, 여기에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네.

나는 딱 잘라서 선을 그었다.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음··· 저는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신인 배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드라마 떡밥 가지고는 전형적인 대답 이외는 들을 수 없자, 이번에는 멤버들을 엮어 질문을 던진다.

-혹시 최강민씨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멤버들은 어찌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개인 활동을 하다보며 멤버들에게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사이는 어떤가요? 혹시 질투하는 멤버들은 없나요?

보자보자 하니까 이 기자가 진짜.

아예 작정을 하고, 질문을 뽑아왔나 보다. 질문들이 가시처럼 쿡쿡 틀어박힌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분란의 여지가 있을만한 그런 질문들. 대답여하에 따라 ‘플레어 팀내 불화.’이런 헤드라인이 박힐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요.”

나는 오히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새벽에 촬영장 간다고 하면 애들이 자다가도 일어나서 배웅을 해줘요. 모니터링도 얼마나 열심히 해주는데요. 그런 멤버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오히려 더 힘이 나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못하면 플레어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잖아요. 팬들 보기에도 미안하고.”

-아, 그래요? 아이돌 그룹 중에는 멤버 한명이 특별나게 잘나가거나 그러면 불화가 생기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다행히 플레어는 사이가 좋나보네요?

기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오밤친 녹화 촬영하시면서 황금 인맥으로 급부상을 하셨는데요, 김준호, 장선화씨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신 사이니 그렇다 치지만 서은채씨는 조금 의외였거든요. 서은채씨랑은 친하게 지내시나요? 연락은 얼마나 자주하는 사이세요?

“그냥 회사 간의 선후배로서 보는 게 전부에요. 간혹 문자를 하긴 하는데, 그게 다예요. 배울 점이 많고, 존경하는 선배님입니다.”

내가 철벽을 쳤다. 대답을 들은 기자의 표정이 별로 밝질 않다. 이런 대답으로는 뽑아먹을 게 없다는 생각이겠지.

그 후로도 바늘에 미끼달린 질문들이 몇 번 더 날아 들어왔지만, 나는 물고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계속된 철벽에 기자도 막바지에는 거의 포기한 눈치다. 독기 빠진 눈빛으로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제 플레어의 1집 활동은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데, 2집은 언제 정도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2집도 최강민씨 자작곡으로 가실 예정인가요?

“아직 확답드릴 순 없겠지만,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빠른 시일 안에 만나 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족할만한 인터뷰를 따지 못한 기자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나가자,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들겨줬다.

“와, 강민이 인터뷰 잘하네. 이제는 뭐 거의 선수네 선수.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하긴, 내가 최근 인터뷰를 좀 많이 하긴 했지.

지난 2주 동안 인터뷰만 족히 서른 번은 될 거다.

재밌는 것은 기자들이 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 질문을 뽑았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머리가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오늘처럼 수위가 좀 쎈 질문들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 날아드는 질문 내용이 다 비슷비슷했다.

그러니 뭐 고민하고 말고도 없지.

하지만 그 질문중 유독 하나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돈다.

바로 멤버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대답은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생선을 발라먹다가 목에 가시가 박힌 것 마냥, 계속 생각나고, 찜찜하고 그렇다.

드라마 촬영 시작되고, 멤버들과 별 문제 없이 계속 지내왔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또 나만의 생각일 수 있으니까.

······ 숙소 돌아가면 한번 물어봐야 하나?

*

그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다들 자나?”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들 자는지 방문이 닫혀 있고, 거실 조명등만이 켜진 채 오렌지색의 색채를 발하고 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 오길래 봤더니, 거실 티비가 켜져 있다. 그 앞에 둥그스름한 물체가 앉아 있는가 싶어서 봤더니 노아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눈도 거의 감겨져있고, 상체가 옆으로 기울다 섰다를 반복 중이다. 얘, 자고 있는 거야? 티비를 보는 거야?

시선이 티비로 돌아갔다. 그저께 방송했던 회차다. 아, 재방송을 보고 있는 거구나.

아직도 낯선 내 목소리가 들려오고 화면에 누군가와 투샷으로 떠오른다. 장선화의 해맑아 보이는 웃음이 클로우즈 업 되어 정면으로 비춰진다. 보기만 해도 영혼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는 그런 웃음.

대부분 남자들은 저 웃음에 아주 환장을 하지.

순간 소름이 쭉 돋았다.

실제 모습과 연기하는 모습이 괴리감이 너무 커서.

김준호를 대할 때보면 진지하게 진짜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던데.

“어······ 형, 언제 왔어요?”

노아가 깼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졸리면 들어가서 자지. 왜 이러고 있어?”

“······안 잤어요. 티비보고 있었어요. 이번 회차를 아직 못 봐서.”

그러더니 다시 눈에 힘을 주고 티비로 시선을 돌린다.

눈이나 제대로 뜨고 말해라.

인터뷰할 때 밝혔던 것처럼 내 모니터링은 주로 멤버들이 해주고 있는데, 그중 가장 열심힌 건 당연 노아다. 자기 말로는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두 번, 세 번 보게 된다는데, 대사까지 암기하고 있는 것도 있다.

혹시 얘가 예능 나가서 개인기로, 내 흉내 내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어두운 조명 탓인지 유난히 거실 곳곳에 그늘이 보인다. 왠지 등을 돌리고 있는 노아의 모습도 조명 탓 때문인지 괜히 멀게 느껴진다. 그걸 보자 마음 한구석에 쳐 박아 놓았던 걱정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번 물어나 볼까?

“노아야.”

내가 가만히 이름을 부르자 티비로 고정되어 있던 노아의 고개가 슬그머니 돌아간다.

“네?”

“있잖아. 혹시 멤버들······”

혹시나,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거다. 내가 요즘 멤버들에게 조금 소홀했던 거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 기자의 말처럼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있는 거니까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이면 될 거다.

“멤버형들이 왜요?”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아무 때가 묻지 않은 듯한 그런 순수한 눈빛. 그 눈빛을 대하자 순식간에 불안했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겠지. 일은 무슨······.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왜요? 뭔데 말을 하다 말아요?”

“가까이서 티비 보면 눈 나빠지니까 좀 떨어져서 보라고.”

내 말에 노아가 웃더니, 러그 위에서 슬금슬금 엉덩이를 뒤로 끌고는, 소파에 딱 달라붙어 앉는다.

말 하나는 진짜 기똥차게 잘 듣는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얘네 부모님은 진짜 아들하나 잘 뒀다. 혹시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싶다. 저런 아들을 두다니.

시선이 따갑다 싶어 봤더니, 노아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왜?”

“형, 저녁은요? 저녁은 먹었어요?”

“차안에서 김밥 한줄.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긴 하네.”

본의 아니게 시간에 쫓겨 강제 다이어트중이지. 이러다가 뱃가죽이 붙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면 저랑 같이 라면 끓여먹을래요? 제가 끓일게요.”

노아가 눈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졸려서 꾸벅거리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와 내가 다가가 노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얕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나부끼더니 제자리를 찾는다. 덩달아 노아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나 얼른 샤워하고 나올게. 같이 먹자.”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노아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폈다.

“네. 그러면 준비해 놓을게요! 얼른 씻고 나오세요!”

그러더니 노아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가 이것저것을 주섬주섬 꺼낸다. 파, 양파, 당근, 저건 또 뭐야 브로콜리는 왜 꺼내? 설마, 저걸 넣으려는 건 아니겠지?

재료 조합이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 맛 좀 없으면 어떠냐. 저렇게 착한 애가 음식을 해준다는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노아를 보자, 조금 전에 들었던 근심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래,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는 내가 조금 더 신경 쓰고 잘하면 되겠지.

*

꽃미남 학교 시청률은 순풍을 탄 배 마냥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중국 판권계약까지 무사히 끝마쳤고, 그리고 이젠 30프로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기세라면 연말 시상식 때는 꽃 미남 학교 주, 조연들이 상이란 상은 모조리 싹쓸이 해갈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

감독과 작가, 그리고 KBN방송국 관계자들이 연이어 함성을 질렀다.

드라마에서 방영된 협찬 악세사리, 의상은 떴다 하면 무조건 완판을 기록하는 터라 PPL과 협찬 제안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어느 정도냐고?

패션에 관심 많은 여자들의 주 관심사인 장선화 패션은 그렇다 치지만, 본의 아니게 내가 신고 나간 양말이 화제가 돼서 해당 브랜드회사에서 감사하다며 양말을 한 박스 보내줄 정도니, 이쯤 되면 말다했지 뭐.

덕분에 광고촬영 섭외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카메라, 손목시계, 인기브랜드의 의류 광고등. 몇 개는 드라마 찍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굵직한 브랜드 광고도 있다. A사에서 커플들을 겨냥한 섹시 이너웨어 광고를 찍자는데, 아직은 고민 중이다. 왜냐하면 같이 찍기로 논의대고 있는 여자 중 한명이 바로 장선화거든.

“좀 그렇지 않아요? 가뜩이나 장선화랑 같이 엮어서 떡밥 던지려는 언론, 신문사들 많은데 괜히 그 광고 찍어서 스캔들 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부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던 장요한이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앉은 노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고.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지 않아도 하도 인터뷰나 토크쇼 같은데서 장선화랑 나를 엮으려는 사람들을 질리게 봐온 터라 나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내키는 가장 큰 이유는 듣자하니 젊은 커플 층을 겨냥하고 있는 터라, 노출도 심하고, 컨셉도 과감하다고 하던데 그 상대가 장선화라니 다른 의미로 좀 그렇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장선화의 섹시, 도회적인 이미지가 왠지 내겐 이성보다는 동성친구에 가까운 느낌이라서······.

아마 이 소리를 다른 남자들한테 했다가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다고 칼 맞을지도 모른다.

“태현이 너는 그 광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뒷좌석에 앉아 있는 김태현을 돌아보며 내가 물었다.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내 이야기를 못 들었나보다. 가만 보니 수심 가득한 얼굴로 무릎위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핸드폰 화면이 빛을 내며, 떨고 있다. 전화가 걸려 온 모양인데, 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도대체 전화건 사람이 누구길래?

전화가 끊어지고, 잠시 후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김태현이 황급히 고개를 들으며 물었다.

“네? 방금 뭐라 하셨어요?”

“아, 아니야. 아무것도.”

고개를 든 김태현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작게 한숨을 쉰다.

뭔 일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뭔데 그러지?

< 변화의 소용돌이 (4)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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