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91화 (91/124)

< 청춘을 즐겨라 (11) >

“그나저나 우리 쇼핑은 어떻게 해요? 옷도 속옷도 아무것도 못 샀는데.”

장요한이 대뜸 물었다.

“뭘 어떻게 해!? 이제부터 하면 되지.”

“호텔은? 호텔도 가야 되잖아요?”

“바보냐? 지금가면 당연히 손해지. 무대 인사하고, 쇼핑하고, 호텔가면 8시는 넘을 텐데. 뽕 빼게 놀려면 내일 체크인 해야지.”

“아······.”

박진우의 시원한 대답에 장요한이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인다.

그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다. 아무래도 오늘 호텔에 투숙하기 위해서 체크인을 하기에는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란 말이지.

“뭐에요? 뭘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느새 무대 위에서 내려온 본투비들이 대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선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손대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뭐, 일종의 조건 반사 같은 거다.

첫 앨범에 운 좋게 인기 좀 얻었다고, 인사를 게을리 하면 뒷말이 더 나올지도 모른다는 차조영 실장의 말 덕에 우리는 오히려 데뷔 때보다 더더욱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걸 보고 본투비의 입가에 피식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괜히 인사돌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나 봐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인사돌?

“요즘에는 플레어보고 다들 그렇게 불러요. 인사를 하도 열심히 하고 돌아다녀서, 인사돌이라고.”

꼭 건강 보조제 이름 같고 좋네.

어쨌든 칭찬인 거지?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직접 대면하고, 이렇게 보니까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네. 앞으로 회사··· 아니, 사석에서도 종종 보기로 해요. 이렇게 좋은 동생들인걸 알았으면 진즉에 친하게 지낼걸 그랬네. 이참에 연락처도 교환해요. 근데, 뭔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었어요?”

“아, 선배님들.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그냥 편하게 동생들이다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종종 볼 건데, 이러시면 저희가 불편합니다.”

장요한이 달라붙어 싹싹하게 말하자 본투비 애들의 얼굴이 보기 좋은 미소가 떠오른다. 역시나 장요한의 친화력은 어딜 가도 잘 먹힌다. 말랑말랑해진 표정을 짓던 본투비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그럴까?”

“넵!”

우리는 꽃 청춘 촬영이야기와 첫 날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들려줬다. 그리고 버즈 알 드림 호텔에 초대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시시각각 본투비의 표정들이 변한다. 부러움이 섞인 그런 표정이었다.

“으아, 우리는 언제 한번 그렇게 즐겨보나?”

“왜요? 오늘 공연 끝냈으니까 하루정도 즐기다 가면 되잖아요.”

본투비 리더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내일 저녁에 팬 미팅 스케줄이 있어서, 오늘 비행기 타고 바로 돌아가야 해.”

“아······.”

“아쉽지만 하는 수 없지. 아참, 그리고 옷이랑 속옷 그거 사야한다고 그랬나? 가만있어 보자. 원래는 우리가 호텔에서 갈아입으려고 여분의 옷이랑 속옷을 좀 챙겨온 게 있거든? 괜찮다면 그거라도 줄까? 속옷은 이번에 협찬 받은 거라 아직 상표도 뜯지 않은 새 것들인데.”

눈이 번쩍 뜨였다.

장요한은 거의 읍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본투비 멤버들이 웃으며 저마다 가지고온 여분 옷과 속옷을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그걸 받아든 멤버들이 크리스마스날 선물 받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용케 사이즈도 맞춘 듯이 다 맞았다. 신체조건이 다 엇비슷하니, 이런 점에서 이점이 있구나.

“뭐해. 얘들아 무대 인사하러 나가야지?”

밖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한 실장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 손짓했다.

우리들이 서둘러 대기실 밖으로 나가자 아직도 그 많던 관객들이 발을 딱 붙이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엄청난 함성소리였다.

낯선 타국 땅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와 환호.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 열기가 더 뜨거울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본투비와 플레어였습니다.”

무대 인사를 끝마치고 내려오자, 앞을 다투어 현지 방송국 기자들과 외신기자들이 앞을 다투어 취재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zee tvn, Al Arabia News등. 본인들이 어디어디 방송국 기자라고 소개하는데, 우리가 뭐 그런걸 아나.

보통 해외 공연을 하게 되면, 간단한 인터뷰내용들은 미리 준비해놓고, 달달 외운다고 하던데, 우리는 너무 급작스럽게 공연을 오게 된 터라 인터뷰를 준비해온 이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가장 영어로 원활한 소통이 되는 내가 전담했다.

그리고 30분 후쯤.

비행기 시간에 쫓긴 본투비가 거의 도망치듯 공항으로 달아났다. 우리도 프로그램을 찍고 있는 중이라 공항까지 배웅은 하지 못했지만, 헤어짐의 아쉬움은 한국에서 다시 만나 풀기로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뭔가 오늘 하루가 후딱 가는 기분이다.

“형, 생각해보니까 우리 돈 엄청 많이 남는 거 같은데요?”

“엄청 많이 남지. 옷, 속옷도 살 필요 없고, 내일 숙박할 곳도 정해 졌고, 식사 한 끼도 무료니.”

장요한의 말에 김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좀 맛있는 거 먹어도 되지 않아요?”

“맛있는 거? 괜찮긴 할 것 같은데······.”

애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한다. 내가 웃으면서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장요한이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레스토랑에서 분수쇼 보면서 저녁식사 하고 싶어요. 여기 분수쇼가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하대요. 밤에 보면 엄청 멋있다던데요?”

“맞아요. 여기에서 하는 분수쇼가 세계 3대 분수쇼 하나로 손꼽힌대요. 8시-9시 사이에 보는 분수쇼가 제일 멋지다고 하니, 지금 가면 시간도 딱 맞을 것 같아요.”

김태현도 말을 보탰다.

애들 반응도 나쁘지 않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그래? 그러면 가면 되지.”

내 말에 애들이 환호한다.

“돈 걱정 없이 팡팡 한번 써 봐요!”

“스테이크. 스테이크 먹어도 되죠!?”

애들이 신이 나서 한 마디씩을 보탠다.

음식 값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돈도 충분히 남았으니. 뭐, 별 걱정은 없겠지.

*

메뉴판을 확인한 애들의 눈동자가 지진 나듯 흔들렸다.

“형, 여기 겁나 비싸요. 빵 한 조각에 25디르함(약7200원)이나 해요.”

“스테이크는 어떻고. 제일 싼 스테이크 한 접시에 220디르함(약64000원)? 형, 우리 그냥 나갈까요?”

근사한 레스토랑에 들어온 것 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다. 애들이 급속도로 쭈그러든다. 급기야 주위사람들 눈치까지 보고.

역시나 관광명소답게 사람들이 많았다. 허나, 메뉴판 가격가지고, 주문을 망설이는 테이블은 우리 테이블 밖에 없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오니 사악하다는 두바이의 물가가 피부로 팍팍 와 닿는다.

애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나만 쳐다보고 있기에 괜찮다고 손짓 했다.

“그냥 시켜.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봐? 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

나갈까 말까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애들이 그 말을 듣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돈 많이 벌어서 자식들한테 맛있는 거 사주는 가장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직 애는커녕 결혼도 못했지만 왠지 그 심정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여느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야채, 샐러드, 공갈빵, 양고기, 스테이크등. 취향대로 음식을 시키고, 느긋이 분수 쇼도 구경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광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의 향연과 시기각각 모양이 변화하는 분수의 향연은 꽤나 볼만한 장관이었다.

덕분에 주머니가 급격히 가벼워졌지만 이 정도의 볼거리면 돈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김태현이 핸드폰을 들어 재빨리 사진 몇 장을 찍다가 나 피디를 향해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 피디님. 분수를 배경으로 저희 단체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엉겹결에 핸드폰을 받은 나 피디가 사진을 찍어줬는데, 결과물을 봤더니 내 얼굴이 반쯤은 잘려 있다.

“피디님 이게 최선이었어요?”

애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 피디가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하자, 옆에 서 있던 메인 작가가 손을 내민다.

“이리 줘. 내가 찍어줄게. 원래 피디님은 사진 발로 찍으셔.”

한층 나아진 결과물을 받아든 애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거다. 우리가 꿈꾸던 여행이라는 건.

그걸 트위터에 올렸더니 바로 반응이 온다. 팬들의 안부 인사가 빗발친다. 사악한 제작진들이 괴롭히지는 않느냐,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좋은 사진 업데이트 잔뜩 해달라등등.

멤버들과 달라붙어 그것들을 읽다보니 두바이에 온지 이틀밖에 안됐지만 벌써 한국이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숙소는 김태현이 APP을 통해 예약했다.

대충 저렴한 편에 속하는 숙소가 인당 약 300디르함(약87000원).

가격이 진짜 사악하다. 욕이 절로 나온다. 결국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당 160디르함(약46000원)정도 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묶기로 합의를 봤다. 어차피 인원이 5명이니 큰방 하나를 내어줄 거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게스트 하우스라기에 낯선 타국에서 외국인들과 모닥불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래도 부르고, 서로의 문화차이도 교류하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바디 랭귀지를 동원하며 대화를 하는 그런 흔한 상상을 머릿속으로 잠깐 했는데······ 개뿔.

아파트형으로 독립된 구조라서 그런지 묶고 있는 인원이 한명도 없다.

어떻게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일수가 있지?

숙소로 이동한 우리들은 샤워장에서 씻고 나와서 내일 아침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스태프가 잡아놓은 옆방에서 희미한 말소리가 새어 나온다. 목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리는 데, 희미하긴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고함소리에 가까웠다.

뭐지?

영삼이를 통해 청각을 증폭시키자 마치 한 방에 있는 듯 소리가 귓속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틀렸어. 넌 어떻게 그걸 소라고 표현할 수가 있어?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이잖아. 이래가지고 이길 수 있겠어?

-아, 겁나 어려워요. 피디님. 그냥 다른 거 하면 안돼요? 왠지 이번에도 질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그러니까 연습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돼.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처음부터 다시 잘해봐. 몸으로 표현하는 게 그게, 그렇게 안 돼? 정 안되면 컨닝이라도 하라고!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눈에 그려진다.

아무래도 조금 뒤 우리와 할 게임을 만들어오려는 모양인데. 게임하기에 앞서서 미리 연습을 해놓고 있나보다.

조금 치사한데. 저건 반칙 아닌가?

저마다 널 부러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잠시 후, 나 피디가 슬금슬금 다가와 무심코 내일 일정에 대해 툭하고 던졌다.

“내일은 사막 열기구를 한번 타보는 건 어때요? 열기구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 광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열기구요?”

“원래 열기구 투어가 인당 1100바트예요.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32만원. 이거 엄청 비싼 투어에요.”

선심 쓰듯 이야기를 하는데, 저절로 귀가 쫑긋거린다.

여지껏 별 관심 없었는데, 괜히 비싸다니까 해보고 싶은 그런 심정? 그런데 비싸긴 엄청나게 비싸네. 5명이 다 타면 도대체가 얼마란 소리야.

김태현의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며, 화면을 내밀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로 두둥실 떠다니는 열기구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모습.

명화 속에서나 나오는 한 폭의 예술 장면 같다.

그걸 본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친다.

“타요. 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물론 공짜는 아니고요.”

돌연 기다렸다는 듯이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오는 나 피디의 음성에 애들의 눈이 표독스럽게 변한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투어 같은 건 제작진에서 돈 다 대준다면서요!”

나 피디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물론 다 대드리죠. 게임에서 이겼을 경우에는.”

< 청춘을 즐겨라 (11)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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