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 천국 (1) (최종수정) >
도전 천국 (1)
MC대기실 안.
“아, 혀어어엉.”
“아, 왜 또.”
서동휘 PD가 MC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치근덕거린다. MC신동현이 질겁하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같이 한 프로그램을 합치자면 횟수로만 5년이다. 방송 전 꼭 저렇게 대기실에 와서 앓는 소리를 낸 뒤 할 말은 불 보듯 뻔 했다.
“오늘은 진짜 형이 이것저것 챙겨주고, 신경도 좀 써주고 그래야 돼. 걔네들 요즘에 제일 핫한 애들이란 말이야. 걔네 섭외하느라 우리 팀 고생 엄청 했어.”
“어휴, 플레언지 플레인인지 난 모르니까 지들보고 알아서 하라고 그래. 그리고 게스트가 어디 걔 혼자뿐이야? 신인 때는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뭐. 나 신인 때는 입 한번 벙긋 못해보고,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했어. 왜 이래.”
“아, 그거야 옛날 때고 지금은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고! 그리고 플레어가 작년에 그 플레어인줄 알아? 걔네 이제 신인이라고 보기도 힘들어. 팬 클럽 회원 수만 20만 명이야. 20만 명. 아마 제대로 안 챙겨주면, 게시판 폭격 받아서 아주 난리가 날걸? 형 생각 안나? 예전에 넥서스 게스트로 나왔다가 말 잘 못해서 사과문 올린 거?”
의자에 편히 앉아 발을 꼬고 있던 신동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걔들이 그 정도야?”
“넥서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걸? 걔네 나가는 방송마다 터져서 지금 여기저기 다른 프로에서 못 모셔서 다들 안달이라고. 그러니까 형이 오늘 특별히 좀 신경 써서 애들 좀 챙겨줘. 문제 중간 중간에 말도 좀 시켜주고, 이상한 말해도 잘 받아서 살려주고. 응? 그런 거 형 특기잖아.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MC신동현이 한숨을 내셨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위치다보면 아이돌들은 여간 신경 쓰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전문 예능인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 경험도 많지 않아 자칫 방치했다가는 병풍 되기는 일쑤. 그나마 리액션을 받아줄 다른 게스트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출연자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라 그런 것도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팬은 왜 그리도 많은지. 아주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했다가는 방송이 나간 뒤 아주 난리가 난다.
하지만 자꾸만 쳐져가는 시청률을 그나마 지키는 방법은 핫하다는 연예인들의 피를 수혈하는 것뿐이란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시청률 단위부터가 틀려지니까.
“알았어. 오늘 나오는 애들 중에서 예능 좀 해본 애가 누군데?”
“최강민이라고, 리더인데 얘가 방송을 몇 번 해봐서 그런지 감이 아주 좋아. 편안하게 말도 잘하고, 카메라 의식도 잘 안하고. 아마 오늘 방송은 얘 위주가 될 거야. 아, 그리고 장요한이란 애도 비글미 있어서 좋고. 얘가 리액션이 좋아. 그리고 김태현이라는 애는 조용한 편이긴 한데, 조곤조곤 말을 잘하고, 또······.”
“잠깐잠깐. 일단 애들 프로필부터 좀 보고 말하자. 요즘 아이돌 그룹이 너무 많이 나와서 난 이름 외우기도 벅차더라.”
MC신동현이 출연자 프로필 파일을 짚어들고는 종이를 넘기면서 말했다.
“다시 말해봐. 누가 누구라고?”
*
스튜디오 안.
카메라 정면에 비치는 자리에 MC신동현과 김지애 아나운서가 자리해있다. 아직 도전자들은 입장을 하지 않은 대기상태인가 보다.
도전 천국 1대 100은 기본 적으로 예능 포맷이다.
말 그대로 게스트 한명, 혹은 한 팀과 100명이 상식퀴즈를 겨루어서 상금을 타가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진행은 온라인상으로 신청자들이 참가 신청서를 내면, 제작진측에서 심사를 한다음 100명을 뽑는다. 신청자들은 도전의 입장이 되는 것이고, 게스트는 기본적으로 도전을 받는 위치에 속해 있다. 서로 대결을 하여, 게스트가 문제에서 탈락하게 되면, 남은 일반인들끼리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대결을 펼쳐, 단계별로 올라가는 상금을 획득하는 그런 방식이다.
“와, 카메라가 도대체 몇 대야.”
장요한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제는 적응될 법도 싶었지만 여전히 스튜디오 정면에 빼곡하게 둘러싸인 카메라는 적응이 안 된다. 10대도 넘어 보인다.
“원래는 카메라 7대 정도 돌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신경 써서 몇 대 더 추가했어요.”
서동휘PD가 친근한 표정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제가 오늘 강민씨 퀴즈고수로 특별 초청한 거 아시죠? 나 피디 프로그램에서 퀴즈 맞힌 거 봤는데, 실력이 아주 장난이 아니던데요? 오늘 문제 마음껏 맞혀주세요. 역대 시청률 한번 찍어보게.”
아, 그걸 보고 섭외한 거구나. 어쩐지 그럴 것 같다 싶더라니.
문제 회 차가 커질수록 상금도 커지고, 기대감도 커지니 당연히 시청률도 오르겠지. 반작용 같은 거다.
“아참, 그리고 보니까 오늘 뮤비 티저 영상 발표했던데. 아까 잠깐 봤더니, 반응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미리 대박 축하드려요.”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제가 MC신동현씨한테도 오늘 잘 좀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 드렸어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안방이다 생각하시고, 녹화 하시면 될 거에요. 잠시 있다가 도전자들이 들어오고, 녹화 들어갈 거니까 그동안 MC분들이랑 편히 인사 나누세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MC 둘이 다가왔다.
신동현은 47세 나이로, 진행만 15년차가 되는 전문 예능 MC고, 김지애 아나운서는 27세의 나이로 하얗고, 단아한 이미지로 프리 선언한 3년차 아나운서다.
먼저 신동현이 살짝 패인 주름진 얼굴을 하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와, 오늘 스튜디오가 다 훤하네. 잘생긴 친구들이라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건 생각보다 더 잘 생겼네. 최강민씨는 드라마도 찍었죠? 저도 봤어요. 장선화씨랑 나오는 거. 연기가 아주 일품이던데. 그냥 가수가 아니라 배우 하셔도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일일이 멤버들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하며 생글거린다. 덕담도 나눠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등, 편하게 형이라고 생각하라는 멘트까지 날리면서.
아무래도 나이차 때문에 나이 어린 게스트랑은 벽이 좀 있기로 말 있는 MC인데, 챙겨주겠다는 서동휘 PD의 말은 진짜였다.
그리고 김지애 아나운서는 우리의 팬이라며 웃는 낯빛으로 사인을 부탁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녹화가 시작됐다.
“자, 도전자들 들어오세요!”
둥그스름한 관객석 같이 생긴 세트장에 문이 양쪽에서 열리며, 도전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도전자석이 가득 찼다.
가만히 앉아 있는 이들을 살폈다.
10대로 보이는 학생부터 점잖아 보이는 60대의 노신사까지. 남녀 성비 따지지 않고, 각계각층 유명인사를 모셔온 것 마냥 아주 다채로웠다.
“오늘은 긴장 좀 하셔야할 거예요. 특별히 오늘은 각 분야에서 특화된 분들만 모셔왔거든요.”
살펴보니 공학 박사, 유명 대학교수, 변호사, 작년 전국모의고사 1등을 했다는 어느 고3학생. 시사 교양프로그램에서 종종 얼굴을 보이는 방송인등. 나름대로 정보망을 펼쳐 똑똑하고, 상식 좀 있다 소문난 사람들은 죄다 불러 모은 것 같았다.
“자,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큐 사인이 떨어지고, MC신동현이 정면을 보며 오프닝 멘트를 날렸다.
“오늘은 특별히 가장 핫하다는 분들을 이 자리에 모셔봤습니다. 요즘에 이 분들 모른다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듣죠. 출연하는 드라마, 예능, 음원. 손만 댔다하면 전부 대박만 터트리기로 유명한 분들입니다. 플레어입니다.”
도전자들의 박수소리가 잠시 들렸다 사라졌다.
잠시 후, 곧장 가벼운 근황 잡기식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최근 1년간은 거의 플레어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인기는 실감 나시나요? 예전과는 달리 길거리에 다니시든가 그러면 사람들이 엄청 알아보고 그럴 것 같은데. 저도 신인 때 방송 몇 번 나가고 혹시 사람들이 나 알아보나 해서 일부러 대학로, 번화가 같은 데만 골라서 다니곤 했거든요.”
확실히 명MC는 달라도 뭔가 달랐다.
자신의 경험담을 슬쩍 풀어놓으면서 대답을 유도해 내는 솜씨가 누가 봐도 일품이다. 이러면 게스트 된 입장에서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 그 질문을 덥석 물 수밖에 없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장요한이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행히 김태현이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
“이런 일들이 다 꿈만 같아요. 아직도 얼떨떨하고, 우리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생각해 보곤 해요. 저희를 이렇게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실망시키지 않은 플레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후로 질문이 몇 가지 더 날아왔다. 보통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아이돌 그룹들이 한두 번씩 정도는 받았을 법한 뭐, 그런 흔한 질문들.
가벼운 토크가 이어지고,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집을 내려다본 김지애 아나운서가 입술을 달싹 거렸다.
“우선은 첫 문제니까 가벼운 문제로 시작하겠습니다. 플레어의 대표선수는 최강민씨로 선정하셨으니까, 정답을 말할 때는 최강민씨가 말씀하시면 됩니다. 자, 첫 번째 문제입니다.”
이윽고 첫 번째 문제가 출제됐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섬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유명 모 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 섬의 이름입니다.”
문제가 나오자마자 애들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는 게 보인다.
장요한이 툭툭 건드리며 묻는다.
“형, 뭐예요? 정답 아세요?”
“마라도.”
내가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하며, 정답 판에 정답을 적어 넣었다.
나를 보는 녀석의 얼굴에 존경과 흠모의 표정이 떠오른다.
잠시 후, 정답지를 확인한 MC신동현이 정답을 공개했다.
“네, 정답은 마라도였습니다! 동경 126˚ 16' 북위 33˚ 07' 에 위치하여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있는 동중국해의 섬.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약 11km 정도 떨어져 있는 최남단 섬이 맞습니다.”
첫 번째 문제에 열 명 정도가 탈락했다.
“플레어 다행히 첫 번째 문제를 잘 맞혀주셨습니다. 누가 알고 계셨던 거죠?”
MC신동현의 물음에 멤버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손가락을 펴 찔러댔다.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작진한테 듣기로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퀴즈 문제로 맹활약을 하셨다고요? 실력이 대단하시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역시나네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 운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두 번째 문제 드리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김지애 아나운서가 말을 받아 문제를 냈다.
“멀티미디어 파일을 전송과 동시에 재생하는 기술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이거는 플레어한테 아주 유리한 문제 같은데요. 가수시니까 아주 잘 아실 거 같네요.”
“네, 정답은 스트리밍입니다.”
답안지를 확인한 MC신동현이 탄성을 질렀다.
“맞았습니다. 플레어, 정답은 스트리밍입니다!”
그 후로도 정답 퍼레이드는 계속 이어졌다.
“신라시대의 신분제대로 성골, 진골 등의 신분이 있던 제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골품제입니다.”
“정답!”
“네 번째 문제는 역사 문제입니다. 다음 중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았던 왕은 누구일까요? 1번, 태조 2번, 세조 3번, 인종 4번, 현종.”
“4번 현종입니다.”
“정답입니다! 와, 이거 놀랍습니다.”
문제가 이어질수록 도전자의 숫자도 백 명, 구십 명, 오십 명, 갈수록 줄어 열 다섯 번째 문제를 맞힐 쯤에서는 단 두 명밖에 남질 않았다.
그리고 열 일곱 번째 문제에서 나머지 두 명마저도 탈락했다.
도전자들이 모두 탈락하고 나자, 멤버들은 물론 두 명의 MC도 이제는 놀람을 넘어서 경악서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최강민씨. 일단 우승자로 확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혹시 평소에도 일반 상식 같은 걸 따로 공부하시는 편인가요? 20대 초반의 나이로 알고 있는데, 역사에 대해서도 빠삭하신 거 같고, 또 시사문제에도 어려움 없이 척척 맞히시고. 혹시 누가 옆에서 정답을 알려주고 있나요?”
MC신동현이 장난스럽게 질문했다.
물론 알려주고 있지··· 만 그걸 말할 수는 없지.
천연덕스럽게 입술에 침을 묻히고 대답했다.
“오늘은 아주 운이 좋네요. 아는 문제만 나오는 걸 보니.”
“음. 그러면 오늘 몇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시나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역대 가장 많은 문제를 맞힌 분이 스물일곱 개의 문제까지 맞혔습니다.”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 번 열심히 맞혀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네, 자신감 있는 대답 잘 들었습니다. 자 최강민씨가 언제까지 정답을 맞힐 수 있을지 지켜보면서 다음 문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도전 천국 (1) (최종수정)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