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예능 (10) >
대왕 도마뱀을 잡았다는 소식에 주변이 또 다시 시끄러워졌다.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가장 먼저 가까이에 있던 노아와 김태현이 달려오고, 조금 뒤에 박진우가 도착했다.
다들 열심히는 한다고 한 거 같은데, 어째 된 게 다들 손이 비어 있다.
내가 좀 특별해서 그렇지, 사실 새총으로 닭이나 새를 쏴 맞힌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
그런데 제일 먼저 달려와서 호들갑을 떨고 있어야할 녀석 얼굴이 보이지가 않는다.
“요한이는?”
“걔는 닭 한 마리 찾아서 맹추격 중이에요. 지구 한 바퀴 돌고 올 기세던데요? 아마 내일까지도 안돌아올지도 몰라요.”
내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열정 같아서는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그런데, 이게 대체 뭐예요?”
노아가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늘어져있는 도마뱀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물었다. 미동도 없자, 그제야 김태현과 박진우도 다가와 도마뱀에 신기한 듯 얼굴을 들이민다.
“와 엄청 커! 도대체 이건 어떻게 잡은 거예요?”
그에 관현 답변은 VJ가 대신했다.
나를 담당하고 있던 VJ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이거 최강민씨가 새총으로 잡은 거예요. 나무 위로 올라가는 도마뱀을 정확히 새총으로 딱!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진 녀석을 붙잡고, 그냥 육탄전을······. 전 무슨 레슬링 경기를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뭘 또 그렇게까지 씩이나.
헌데, 그 말을 들은 멤버들은 우와, 하는 감탄성을 연발한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그런 표정들로.
“형, 이제 돌아가실 거죠?”
“어, 그래야지. 너는?”
“저는 조금 더 사냥 해보고 갈게요. 왠지 이대로 돌아가기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라······.”
투지를 끓어 올리며, 조금 더 남아서 새를 잡아보겠다는 김태현과 박진우는 내버려둔 채 노아와 둘이 생존 캠프로 컴백을 했다.
노아랑 둘이서 도마뱀 껍질을 벗기고, 닭털을 뽑았다.
그런데 문득 한숨이 나온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도마뱀 껍질을 이빨로 뜯고 있고 있기 한데. 살다보니 이제는 별거를 다 해보는 구나. 생 닭털을 뽑고, 도마뱀 옷을 벗기는 경험까지 해보고.
반면에 노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처음이기는 자기도 마찬가지일 텐데, 마치 몇 번 해본 것 마냥 일러준 대로 능숙하게 닭털을 뽑아낸다.
되게 열심히다. 마치 수능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는 수험생처럼.
하긴, 쟤는 뭐든지 자기에게 주어지는 건 열심히 하는 편이긴 하지. 특히나 요리를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하다.
저렇게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 아마도 연예인이 안됐으면 요리사가 되지 않았을까?
이왕 잘하는 거라면 요리프로그램이나 영화 같은데 요리사로 캐스팅되면 딱 일텐데 말이야.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닭과 도마뱀 손질을 끝낼 무렵 김태현과 박진우, 장요한이 세상사를 초탈한 그런 표정으로 양손을 늘어트린 채 터벅터벅 생존 캠프로 컴백했다.
안 봐도 뻔했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고. 줄곧 셋 닭 꽁무니만 쳐다보며 달리기만 주구장창 한 것 같은데.
기가 쪽 빨린 얼굴들이라 껍질을 벗겨놓은 코코넛 열매를 구멍을 뚫어 마시라고 던져줬다. 반색을 하며 맥이 탁 풀린 표정으로 코코넛 과즙을 마신 녀석들이 그제야 얼굴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제야 자기들끼리 모여, 조금 전에 겪었던 일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닭 주제에 무슨 백 미터씩을 쉬지 않고 날아가느냐, 분명 돌에 맞은 것 같은데 애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메추라기 본 사람이 있냐 등등. 무슨 찜질방에 놀러와서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마냥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계속 이어진다.
“고생들 했어. 자, 이것들 좀 먹고 좀 쉬어.”
닭과 도마뱀 손질을 하면서 미리 모닥불에 넣어놓은 남은 바나나와 카사바 두 조각을 꺼내며, 멤버들에게 나눠줬다. 어제 질릴 만큼 먹은 후라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것 같았는데,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니 입으로 넣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먹을 것을 받아든 애들 표정이 어째 좀 묘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먹을 줄 알았는데.
“배 안고파?”
“저희들 이거 먹어도 돼요?”
장요한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잠자코 앉아 있던 박진우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랬는데, 여태껏 저희가 여기에 와서 한 게 너무 없어서. 미안해서 그래요.”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대충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가긴 한다.
특히나 장요한은 미리 이것저것을 연습해보고 왔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는데, 이렇다 할 활약상도 딱히 없고, 매번 하는 거는 허탕만 치고 있고, 자괴감도 느끼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놈이었나 싶기도 하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멤버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사기다.
여기서 만든 어설픈 새총으로 닭이나 도마뱀을 잡는 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별말을 다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왜 한 게 없어. 여기 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적응해나가고 있는데. 저녁에 코코넛 크랩 잡으러 가야하니까 그거 먹고 체력 보충하고 있어.”
“코코넛 크랩이요?”
“그래, 내가 밤눈이 조금 어두우니까 있을 만한 장소를 알려주면 수색은 너희들이 해야 돼. 그러니까 그거 먹고 힘 보충하고 있어.”
내 말에 장요한이 조금 밝아진 기색으로 대답한다.
“저 밤눈 엄청 밝아요. 이번에는 꼭 잡고 말 거에요!”
그러더니, 독립운동을 하러 나가는 독립 운동가마냥 결연한 표정으로 바나나를 꼭꼭 씹어 삼킨다. 누가 보면 산삼이라도 먹는 줄 알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닭 잡느라 엄청나게 달리고 왔는지, 불을 쬐고, 먹을 것을 먹자 표정들이 금세 노글노글 해진다.
어느새 주위가 어둑어둑 해지고 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는 느낌.
문명이 없던 시대의 선조들은 하루의 걱정이 먹고, 자고, 싸는 거였다고 하던데, 정글 생활 2일차 만에 그게 무슨 소리인지를 몸으로 깨닫고 있다. 먹는 순간에도 다음 끼니 걱정이고, 사냥에 성공을 해도, 다음 끼니를 위한 식사준비를 위해 그 에너지를 소모해야한다.
왜 선조들이 식량을 그렇게 축적하고, 농사를 지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형, 저기. 저기 한 번 보세요.”
노아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해안가로 펼쳐진 끝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해무리가 번지고 있다. 일몰시간이 다가온 모양이다.
그토록 강렬하게 내리쬐던 태양이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며 점점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저건 진짜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은 예술 그림이다.
모두들 넋을 놓고 그 장면을 한참동안이나 봤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드릴게요. 다들 모여보세요!”
카메라 감독 말에 멤버들이 부리나케 움직이며, 모여 든다.
한국에서는 그토록 잘나가는 꽃 미남 얼굴들이었는데, 어째 이틀 만에 다들 상거지가 됐다. 얼굴은 지저분하고, 머리는 봉두난발에 꾀죄죄해서는 몸에서는 냄새까지 난다. 이 몰골들을 본다면 백년 덕심으로 무장한 팬들도 오다가 다 도망갈 지경이다.
그러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를 보며 히죽거리는데, 다들 행복한 표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다들 웃으세요.”
그리고.
카메라 셔터가 찰칵, 눌러졌다.
*
그날 저녁.
그 칠흑 같은 정글의 어둠속을 다섯 명이 헤쳐 나가고 있었다.
나뭇잎 밟는 소리, 나뭇가지 밟는 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와 온갖 곤충들이 합창하듯 시커먼 밤하늘의 정적을 깨고, 요란스럽게 울려 퍼진다.
하늘을 뚫을 듯 쭉 뻗어있는 이름 모를 열대나무들.
사람 얼굴보다도 더 큰 야자수 잎들이 바람이 흔들거릴 때면, 마치 어서 이곳에 잘 왔다고 손짓하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게 만든다.
장요한이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떼어놓으며 후레쉬로 사방을 비추며 작게 속삭였다. 눈동자가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앞서 걷고 있는 박진우와 툭 부딪혔다.
“야야,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소리는 무슨 소리. 바람 소리겠지.”
“아니야. 내가 분명히 들었어! 누가 나한테 뭐라고 말한 거 같은데? 혹시 네가 나한테 말 건거 아니야?”
장요한이 몸을 흠칫 떨더니, 가뜩이나 커진 눈이 더욱 커졌다.
“설, 설마 귀신!?”
“멍청아.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냐는 소리를 하냐며 장요한이 박진우를 흘겨본다.
“세상에 귀신이 왜 없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이 세상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기이한 일들이······.”
“그러면 귀신인가보지. 그렇지 않아도 네 옆에 아까 전부터 뭔가 하얗고, 희미한 물체가 둥둥······.”
“으, 으아아악!”
툭하고 내던진 말에 장요한이 기겁을 하며 옆을 돌아본다.
그런 장요한을 박진우가 세상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내찼다.
“참,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전방 20미터 앞에 코코넛 크랩이 있습니다. 코코넛이 잔뜩 떨어진 돌 무리 큰 바위 아래입니다.
주위를 스캔하고 있던 영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운 소리다. 드디어 첫 번째 수확물을 찾았구나.
천천히 걸음을 걸었다. 일부러 보란 듯이.
그리고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쉿! 지금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장요한이 얼굴을 하얗게 질린 채 속삭였다.
“거봐. 틀림없이 귀신······.”
“코코넛 크랩소리인 거 같아.”
장요한의 말허리를 자르는 말에 애들이 동상처럼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로봇처럼 삐걱거린다.
“지, 지지진짜요?”
“어.”
“어디예요?”
“가만 있어봐.”
천천히 걸으며 바닥을 훑어보자 영삼이가 말한 코코넛이 무더기로 떨어져있는 지역이 보인다. 멤버들이 어미 쫓아가는 새끼병아리마냥 졸졸 내 꽁무니를 쫓아온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코코넛을 한 개 짚어 천천히 관찰했다.
“여기 봐. 코코넛 크랩은 큰 집게로 코코넛껍질을 파헤쳐서 과육을 먹는데, 흔적이 날카로운 걸로 파헤쳐져 있잖아. 흔적이 최근에 생긴걸 보니까 틀림없이 이 근방에 코코넛 크랩이 있어.”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걸 먹은 녀석이 어제 다녀갔는지 한 달 전에 다녀갔는지 내 알바 아니다. 대충 상황에 끼어 맞춰서 그럴 듯하게 말을 하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분위기 탓인지 멤버들은 여과 없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표정이다.
나는 몇 발자국 더 깊이 덩굴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영삼이가 말한 돌 무리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는 척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히 여기 어디쯤엔가 있을 것 같은데······.”
“형, 저희가 수색해볼까요?”
“어. 특히 이런 돌 무리가 있는 곳에 잘 숨어 있으니까. 한 번 잘 찾아봐봐.”
영삼이가 말한 돌 무리를 장요한에게 던져주고, 나는 일부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잠시 후.
열혈 수색 중이던 장요한의 입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터졌다.
밤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런 외침이었다.
“형형형형!!! 여기! 여기요!!!”
누가 보면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 인줄 알겠다.
아니지, 이곳에서는 코코넛크랩이라면 산삼보다도 더 귀한 취급을 받을지도.
“왜, 왜!?”
그와 동시에 멤버들과 VJ들이 장요한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장요한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마구 가리켰다.
“저기, 저기저기이이이이!”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돌 틈 사이 뭔가 커다란 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멤버들의 얼굴의 놀람의 이채가 서린다.
“도대체 이게 뭐야?”
“완전 괴물인데. 뭐가 이렇게 커!? 이게 코코넛크랩인가?”
멤버들이 앞 다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돌 틈에는 몸통크기만 거의 50-60cm는 넘어 보이는 코코넛 크랩이 사나운 집개발을 세운 채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헌데, 돌 틈이 끼어 있는 터라 있는 힘껏 뒷걸음질하고 있는 녀석을 꺼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몇 번이나 쑤신 끝에야 녀석이 집게발로 그걸 잡자 장요한이 아이 달래듯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형형! 제가, 제가 잡았어요!”
나를 본다.
이 어마어마한걸 제가 잡았어요. 라는 그런 뿌듯해 하는 얼굴로.
< 또 다른 예능 (10) > 끝
ⓒ 윤민우